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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gelsuho Apr 08. 2024

처음 나간 북페어에서 느낀 것들

2024년 2월 25일




2024년 2월 23일부터 25일까지, 홍대에서 열린 '각양각책 북페스타'에 참가했다. 나의 첫 북페어였고, 그만큼 새로운 도전이기도 했다. 나는 세 권의 책을 들고나갔다. 군대에서의 기록을 바탕으로 작년 3월에 만든 작은 책 <오늘을 견디는 법>, 졸업 작품으로 만든 팝업북 <Sweets in Screen>, 요즘 열심히 하고 있는 작업 중 하나인 월간 만화 잡지 <4PAGES>. 책을 많이 팔지는 못했지만 느낀 점은 많았기에 글로 정리해 본다. 앞으로 참가할 또 다른 북페어, 해나갈 새로운 작업들에 대한 많은 힌트와 영감을 얻었다.








- 북페어 전날 밤에는 졸업전시 직전에 느꼈던 것과 같은 자괴감을 느꼈다.

시간은 없는데 할 일은 많은, 그래서 이 많은 일들을 왜 미리 하지 않았냐는 자책밖에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오는 괴로움.

이럴 때면 마치 지금의 나는 졸업전시 때부터 한치도 발전하지 않은 것 같은 자괴감이 밀려온다.

언제쯤이면 모든 할 일을 미리 하고 전시나 페어 날짜를 차분하게 기다릴 수 있을까.

애초에 그런 일이 가능하기는 한 걸까.


- 그러니까 행사를 코앞에 두고 새로운 작업을 한다는 생각은 안 하는 편이 낫다.

'이번 북페어에서 새로운 책을 보여주겠어!'라는 계획은 어그러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

북페어에 나갈 때는 '이미 만든' 책을 들고 가는 것이다.


- <4PAGES>를 가져간다는 발상은 좋았다.

원래는 <cine-pasta recipe book>이라는 파스타 레시피 북을 만들어서 가져갈 생각이었다.

그러다가 시간이 없어지면서 계획이 점점 바뀌어 가기 시작했는데,


'파스타 레시피 북을 판다.' - '파스타 레시피 북 샘플을 가져간다.' - '파스타 레시피 북 펀딩을 홍보한다.'


이 계획들이 하나하나 다 어그러지고 결국 <4PAGES>라도 데려가서 책 세 권이 되었다.


- 홍보용으로 명함과 엽서를 만들었다.

명함은 괜찮은데 엽서 종이가 지나치게 얇아서 너무 슬프다. 그냥 버리고 다시 뽑아야 할 듯.

굿즈의 퀄리티를 높이는 방법에 대해서도 고민이 많다.

당연하겠지만 앞으로 많이 만들어봐야 알게 될 것 같다.








- <오늘을 견디는 법> 군대 시절 관물대를 재현한 캐비닛을 가져가는 아이디어는 너무 좋았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올 수 있는 무언가가 확실히 있는 것이 좋다.


- 디스플레이(디피)가 너무 쉬웠다.

이제 이 정도 사이즈 책상 채우는 건 한 손으로도 한다. 워낙 전시 설치를 많이 하다 보니 작은 책상을 꾸미는 일은 일로 느껴지지도 않는다.

전날 작품 설명이랑 가격표 뽑고, 동선 꼬이지 않게 설치하고, 책상이 비어 보이지 않게 하는 것부터, 실제 디피는 10분도 안 걸린 것 같다.

앞으로도 북페어나 전시에 나갈 때 디피 때문에 받는 스트레스는 없어도 될 듯하다.


- 나의 부스에서 메인이 되는 작업이 무엇인지를 정해야 한다. 

이번 북페어에서 내 부스의 경우 <오늘을 견디는 법>, <Sweets in Screen>, <4PAGES> 세 권의 책이 모두 중요하게 보이는 작업이었는데,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많다.

심지어 뒤에 있는 원화랑 여행 그림엽서는 있는 줄도 모르는 사람이 많았을 거다.

이번처럼 하려면 차라리 팝업북을 완전 메인으로 두고, 뒤쪽에는 그 책에 들어간 그림을 원화로 걸거나 키링을 적극적으로 홍보했어야 한다. 여행그림은 아예 빼고.

판매 목적이면 <오늘을 견디는 법>을 메인으로 했어야 하는데, 그러기에는 임팩트가 부족했다.

다음에 또 행사에 나가게 되면 반드시 생각해야 할 부분. 확실하게 메인이 되는 작업이 하나만 있어야 한다.


- 내 책은 젊은 사람들한테 인기가 많다.

근데 이번 북페어에 오는 사람들의 연령대는 되게 높았다.

지나가다가 내 책에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은 정말 대부분 젊은 층이었다.


- 사실 내 책을 사람들이 왜 사는지 잘 모르겠다.

한 자리에서 내가 쓴 책을 열심히 홍보하고 팔려고 하니 게슈탈트 붕괴처럼 머릿속에 든 개념이 무너지는 느낌이 든다.

책을 팔러 나온 자리에서 '내 책을 대체 왜 사지...?' 하는 이상한 생각까지 든다.

그런 상황에서 계속 책을 홍보하려니 쉽지 않다.


- 친구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나는 낯을 많이 가리고 처음 보는 사람 앞에서 말하는 일을 어려워해서 입이 잘 떨어지지 않는다.

그런 측면에서는 서울 일러스트레이션 페어나 언리미티드 에디션처럼 사람이 정말 많은 행사가 오히려 나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이번 북페어의 경우 소규모였기 때문에 부스 방문객들을 하나하나 응대해야 한다는 어려움이 있었는데, 그런 큰 행사들에서는 수많은 관람객이 마치 컨베이어 벨트처럼 돌아가기 때문에 한 사람 한 사람 붙잡고 설명하는 느낌은 거의 없다.


- 이번에 북페어에 나가보긴 했지만 내가 앞으로 책만 만들 건 아니니까, 나는 그림으로 책도 만들고 영상도 만들고 일러스트페어도 나가고 회화작품도 전시장에 걸고 그런 이것저것 다 하는 사람이니까, 다양한 경험을 해본다는 것 자체가 가장 중요한 것 같다. 출판하는 사람들 속에도 섞여 보고 (북페어), 다음엔 또 회화하는 사람들 사이에 껴보기도 하고 (전시). 언젠가는 애니메이션 작품을 만들어 영화제에 출품해보고 싶은 욕심도 크다.


- 북페어 참가자도 방문객도 고이는 느낌이 많은데, 나는 아이디어가 많으니까 매번 다른 콘셉트를 들고 나오면 좋을 듯하다. 마치 매번 새로운 참가자인 것처럼.


- 북페어 참가비에 비해 너무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배웠다. 직접 경험으로 배우는 것은 몸에 새겨지는 느낌이 든다. 참가에 후회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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