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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요에게.
서울에 오게 되면서 제일 챙기기 어려웠던 게 '과일 먹기'였어. 과일은 배고프다고 먹는 게 아니라 따로 챙겨서 먹어야 했으니까. 고등학교 생활까지는 엄마가 매일 챙겨줬던 당연했던 존재가, 홀로 살기 시작하고 냉장고를 누군가와 공유해야 하는 귀찮은 삶이 시작되면서 만나기 어려운 존재가 되었어. 게다가 비싸기까지 하니까.
문제는 20살의 내가 챙기지 못 한 대부분의 것들을 지금은 챙기는데, 여전히 과일을 먹는 행위는 잘 못 챙겨. 여전히 식사는 필요하지만 과일은 없다고 괴롭지는 않나 봐. 그럼에도 과일이 눈앞에 있으면 정말 열심히 먹어치워.
어제와 그제 호텔에서 삼시 세 끼를 먹을 일이 있었어. 그때 정말 열심히 과일을 먹었어. 근데 과일을 안 먹은 지 꽤 지난 후에 먹어서 그럴까, 과일이 너무나도 달아서 입이 계속 이상했어. 과일이랑 점점 멀어지고 있나 봐.
최근 들어 고장 난 믹서기를 새로 사면서 냉동과일과 아몬드브리즈를 갈아먹기 시작했어. 물론 갈면 영양소가 파괴된다고 하지만, 배 채우기에는 셰이크 만한 게 없어. 과일은 그렇게 결국 보존 잘 되고 저렴한 친구들로 여전히 내 주변에 가끔 존재해. 여전히 내게 꽤 어려운 존재야.
과일 먹고 싶다!
2023년 9월 3일
재요.
+ 다음에는 '성장'에 대한 글을 적어 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