짖지 않는 개들

by 리함

짖지 않는 개들



- 기획된 우연, 그리고 침묵의 카르텔


Date: 2025. 12. 11. (목) AM 02:30


Location: 서대문구 연희동 옥탑방.


Drink: 와일드 터키 101(Wild Turkey 101). 식도가 타들어가는 50.5도의 작열감.


Music: Simon & Garfunkel - 'The Sound of Silence'


Atmosphere: 창밖에는 진눈깨비가 날리고, 모니터 불빛만이 유일한 온기인 새벽.


타닥, 타닥.


오늘도 나는 발행되지 못할 기사를 쓴다. 사람들은 뉴스가 세상을 비추는 거울이라고 믿지만, 기자인 나는 안다. 때로는 거울이 아니라, 보지 말아야 할 것을 가리는 두꺼운 커튼이라는 것을.


오늘 대한민국은 톱스타의 타락에 열광했고, 그 환호성 뒤에서 권력자들의 추악한 거래는 완벽하게 세탁되었다. 위스키를 스트레이트 잔에 가득 채워 단숨에 삼킨다.


독하다. 하지만 오늘 내가 목격한 저들의 위선보다는 달다.


1. 가평 천정궁 진입로: 어둠 속의 90도 인사


"왔다."


칠흑 같은 어둠이 내려앉은 가평의 산길. '딥 스로트(Deep Throat)'의 제보는 정확했다. 헤드라이트 불빛이 밤안개를 가르며 검은 세단 한 대가 미끄러지듯 언덕을 올라왔다. 통일교의 성전(聖殿)이라 불리는 '천정궁'으로 향하는 유일한 길목이었다.


망원 렌즈의 초점을 조였다. 차 문이 열리고 내린 남자는 현 정권의 실세, 전재환 해양수산부 장관과 몇 명의 여당 의원들이었다.


국무회의 때마다 꼿꼿하게 허리를 세우고 국가와 국민을 논하던 그는 온데간데없었다. 마중 나온 종교 재단 간부 앞에서 그들의 허리는 정확히 90도로 꺾였다. 그건 겸손이 아니었다. 완벽한 '복종'의 각도였다.


찰칵. 찰칵.


셔터를 누르는 손가락에 전율이 일었다. 장관이 그리고 의원들이, 그것도 사이비 논란이 끊이지 않는 곳에 야밤에 기어들어가 무슨 일을 하는 것일까? 저 안에서 신의 축복이라도 받는 것인가? 아니, 아마도 세속의 욕망을 기름 붓고 나왔겠지.


"빙고. 이건 빼박이다."


나는 카메라를 품에 안으며 산을 내려왔다. 이 사진 한 장이면, 내일 조간신문 1면은 뒤집힐 것이라 확신하며.


2. PM 02:00, 보도국장실: 팩트(Fact)가 임팩트(Impact)에 지다


"킬(Kill)해."


국장의 입에서 나온 말은 너무나도 건조해서,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국장님, 사진 안 보이십니까? 현직 장관입니다. 전재환이 통일교 심장부에 들어갔다고요. 돈 받은 정황까지 파악했습니다."


"야, 이도현. 너 지금 뉴스 안 보냐?"


국장이 짜증스럽게 리모컨을 눌러 벽걸이 TV의 볼륨을 키웠다. 보도국 전체가 웅성거리고 있었다. 화면 하단에는 붉은색 속보 자막이 뱀처럼 기어다니고 있었다.


[속보] 톱스타 강준영, 호텔서 마약 투약 및 집단 환각 파티 혐의 긴급 체포


"봤지? 지금 국민들이 장관이 가평 가서 절을 하든 춤을 추든 관심이나 있을 것 같아? 다들 강준영이 누구랑 잤는지, 뽕을 얼마나 맞았는지가 궁금해서 미쳐 날뛰고 있어."


기막힌 타이밍이었다. 검찰 서랍 속에 묵혀있던 카드가, 하필 전재환 취재가 끝난 오늘 터졌다? 우연일 리가 없다. 이건 '기획'이다.


"냄새가 나잖아요. 이걸로 저거 덮으려는 수작인 거 뻔히 아시면서!" "냄새가 나면 뭐 해. 사람들이 향수에 취해 있는데."


국장은 내 사진을 서류 더미 맨 아래로 밀어 넣었다.


"네가 가져온 그 '대단한 팩트'는, 저 화려한 마약 쇼 앞에서는 그냥 휴지 조각이야. 너 강남서로 튀어. 가서 강준영이 만난 여자 연예인 리스트나 캐와."


3. PM 05:00, 보도국 내 자리: 품격 있는 개들의 침묵


나는 오기가 생겨 야당 출입 동기에게 메신저를 보냈다.


[야, 야당 쪽에 소스 줄까? 전재환 장관 통일교 건.]


하지만 돌아온 답장은 절망적이었다.


[선배, 늦었어요. 야당도 입단속 들어갔어요. 나경희 의원도 지난주에 거기 다녀온 거 여당이 잡고 있대요. 서

로 건드리지 않기로 쇼부(합의) 본 듯.]


나는 모니터에 국회방송 채널을 띄웠다. 마침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 회의가 생중계되고 있었다. 화면에는

야당 중진 나경희 의원도 앉아 있었다.


기가 찰 노릇이었다. 여당 장관의 비리 증거가 나왔는데, 야당 의원 그 누구도 전재환의 이름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 대신 그들이 엄숙한 표정으로 목소리를 높이는 주제는 따로 있었다.


"법무부 장관님, 이번 강준영 마약 사건, 정말 심각합니다. 언제부터 우리나라가 마약 마약하는 겁니까?"


나경희 의원이 비통한 표정으로 책상을 내리쳤다.


"맞습니다! 사회적 기강을 바로잡기 위해서라도 발본색원해야 합니다!"


옆에 있던 다른 의원이 맞장구를 쳤다. 웃기지도 않았다. 거대 비리를 덮어준 공범들이, 연예인 마약 사건 앞에서는 세상에서 가장 도덕적인 척 연기를 하고 있다. 마약 사범을 꾸짖는 저 근엄한 목소리라니.


국회의원의 품격? 아니, 저건 서로의 환부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 짖지 않기로 약속한 개들의 '비겁한 품격'이다.


4. 다시 현재 (AM 02:30): 피자 맛이 궁금한 세상


위스키 병이 가벼워진다.


모니터 속 포털 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1위는 '강준영'. 2위는 '강준영 패딩'. 그리고 3위는 '강준영 피자'다. 체포 직전 그가 시켜 먹었다는 트러플 피자가 품절 대란이란다. 대한민국 참 대단하다. 장관이 사이비 종교에 머리를 조아려도, 마약쟁이가 먹은 피자 브랜드가 더 중요한 세상이다.


대중은 자신들이 정의를 구현하기 위해 강준영에게 돌을 던진다고 믿겠지만, 실상은 거대한 연극의 관객이 되어 티켓값을 치르고 있을 뿐이다. 그 티켓값은 '진실에 대한 무관심'이다. 짖어야 할 개들은 뼈다귀를 물고 '품격'을 연기하고, 진실을 말해야 할 언론은 피자 맛을 분석하고 있다.


나는 기사 송고 시스템 대신, 비밀번호가 걸린 내 '그림자 데스크' 폴더를 열었다. 기자는 기사를 써야 기자다. 하지만 나가지 못한 기사는 무엇이 되는가. 그것은 소설이 되거나, 역사가 된다. 언젠가 이 카르텔이 깨지는 날, 이 비망록이 그들의 목을 겨누는 칼날이 되기를 바라며.


타닥, 타닥.


오늘도 나는 어둠 속에서 타자를 두드린다.


[오늘의 B-Side Track]


이슈: 톱스타 마약 스캔들 vs 정치권 종교 유착 의혹

팩트(Fact): 강준영은 체포되었고, 전재환 장관과 나경희 의원의 가평 방문 기사는 단 한 줄도 나가지 않았다.

진실(Truth): 별(Star)을 떨어뜨려 달(Moon)을 가렸다. 가장 화려한 스캔들은 가장 더러운 비밀을 덮기 위한 방패였다.

기자 한마디: 국회에서 고성이 사라지면 의심하라. 진짜 야합은 조용한 회의장에서 이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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