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사랑하는 쪽이 진다
나는 생선은 모름지기 날로 먹거나 구워 먹어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백 번 양보해서 매콤하게 조리거나 슴슴하게 찐 요리까지는 괜찮지만, 국물 요리로 만드는 것은 좋아하지 않았다. "먹으려고 힘들게 물에서 건져 올린 것을 왜 다시 물에 담가?"라고 우스개 삼아 말하곤 했다. 특히 기껏 물에서 건져 올려 심지어 말리기까지 한 것을 다시 끓이는 북엇국 속의 북어는 식감이 바삭하지도 촉촉하지도 않고 어중간한 것이, 나에게는 멸치처럼 국물을 우린 후에 건져야 하는데 깜빡한 것처럼 보였다.
북엇국이 맛있다, 좋다고 생각하게 된 것은 영업팀에서 일을 하면서, 그야말로 위에 '빵꾸'가 나도록 술을 마시는 경험을 한 뒤였다. 얼큰한 라면이나 육개장 같은 음식으로 해장을 할 수도 없을 정도로 속이 쓰린 날, 북엇국은 위장과 함께 영혼까지 부드럽게 감싸 주었다. 그런 북엇국의 '참맛'이랄까, '진정한 용도'를 알고 나서는 남편이나 내가 회식을 한 날이면 가끔 북엇국을 끓였지만, 아이들 역시 북어의 식감을 좋아하지 않다 보니 평소에 자주 만드는 음식은 아니었다.
남편은 북엇국을 좋아한다. 가리는 것 없이 주는 대로 먹고, 무엇을 요리해 달라거나 먹으러 가자고 하는 일이 거의 없는 사람이지만 아주 가끔 "이거 먹을까?"라고 하는 음식이 딱 두 가지 있는데 그중 하나가 북엇국이다. 다른 음식은 요청이 들어오기 전에 보통 내가 만들지만, 북엇국은 아이들이 썩 좋아하지 않다 보니 어지간하면 내가 만들 생각 자체를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생수에 살짝 불린 북어를 적당한 길이로 잘라, 참기름을 두른 냄비에 볶는다. 물을 붓고 다진 마늘, 무와 함께 국물이 뽀얗게 우러날 때까지 푹 끓인다. 국간장과 멸치액젓이나 소금으로 간을 맞추고, 마지막에 대파와 두부를 넣어 한소끔 더 끓인다.
달걀을 푸는 것은 왠지 국이 지저분해 보여서 내가 북엇국을 요리할 때는 하지 않는 편이다.(하지만 누가 해주면 감사히 맛있게 잘 먹는다.)
며칠 전에 북엇국을 한 번 끓였다. 13년 넘게 같이 살면서 회식 다음날도 아니고, 남편의 신청이 들어오지도 않았는데 북엇국을 끓인 적은 손에 꼽을 정도였기 때문에 남편은 "이야, 웬 북엇국이야?"하고 놀라며 좋아했다. 뭐 반찬 할 거 없을까 하고 냉동실을 뒤적이다 정리되지 않은 아수라장 속에서 북어 봉지가 무슨 '계시'처럼 툭 떨어졌기 때문에 끓인 것뿐이었지만, 남편이 기뻐하는 얼굴을 보니 내 기분도 덩달아 좋아졌다.
곰곰 생각해 보니 남편만을 위해 요리하는 일이 거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만을 위한 요리도 뭐, 마찬가지이긴 하지만.
우리 집의 식단표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 아이들이 먹을 수 있는 것 위주로 채워진다. 특히 못 먹는 음식이 아직 많은 둘째를 기준점으로 삼아 뭐든지 너무 맵지 않게, 적당히 '어린이 입맛'인 것들 위주로.
아이들이 좋아한다는 이유로 남편이 싫어하는 메뉴를 식탁에 올리는 일도 없긴 하지만, 벤 다이어 그램으로 그리면 이런 상황인 것이다.
집합 B에 속하는 음식들이 주로 우리 집 식탁에 올라오는 셈이고, 북엇국은 집합 A에는 속하지만 집합 B의 밖에 위치해 있으므로 자주 만들지 않는다. 집합 B의 밖에 있다는 것이 아이들이 '못 먹는다'는 뜻은 아닌데도, 아이들 위주로만 생각하다 보니 이렇게 된다.
어른이 아이를 배려하는 것, 부모가 자식을 더 사랑하고 이해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그러니까 이것은 일종의 "더 사랑하는 쪽이 지는" 것과도 맞닿아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벤 다이어 그램으로 그리면 대략 이렇게 되지 않을까?
북엇국이 엄청나게 비싼 식재료를 써야 하는 것도 아니고 만들기 어려운 음식도 아닌데. 애들 좋아하는 것은 하루 두세 번 씩 요리하면서 그동안 북엇국 하나 자주 못 해줬나, 싶어 남편에게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었더니 생각이 너무 엉뚱한 데까지 왔나 보다.
더 시답잖은 소리를 하기 전에 글을 마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