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화한 피아니스트에게 열광하다 끄적여보는 감상문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들을 보면 이런 생각을 한다. "영혼을 팔아서라도 한 번쯤 가져보고 싶은 재능이다!" 예체능의 영역이란 그렇다. 타고난 것과 그를 받쳐줄 무한의 노력이 필요한 영역. 체르니 40번의 중간까지 겨우 치다 말았던, 거실 한편에 놓인 우리 집의 낡은 피아노에 문득 눈이 간다. 역시 내 얘기는 아니지.
그나저나 저 사람은 누구야? 오은철. 포르테 디 콰트로의 음악감독이래. 어쩐지, 지난 무대도 좋고 지지난 무대도 좋았어. 곡의 흐름을 만들 줄 아는 사람이었네. 그리고 그 음감이 글램 메탈 밴드 크랙샷과 한 무대에 오른 날, 나는 그만 티브이에 나의 영혼을 내던지고야 말았다. Oops, I did it again
자발적인 조별과제
슈퍼밴드의 기본 틀은 일종의 '조별과제'다. 심사위원들이 프런트맨을 정해주고 그가 뽑은 팀원들을 이끌고 무대를 만들어 내야 하는 게 미션이니까. 일반적으로 조별과제란 되도록 피하고 싶은 것이지만, 전장으로 달려 나온 이 뮤지션들은 그 과제를 비교적 즐겁게 받아들인다. 어떤 구성원을 뽑을지, 어떤 걸 주제로 할지(어떤 곡을 할지), 그것을 어떻게 만들어 갈지- 이들이 적극적으로 의견을 교환하는 모습을 보면 그 자체로 에너지가 느껴진다. 멋진 결과물을 만들어내기 위해 순수한 열정을 쏟아부어본 게 내겐 언제였나, 그런 생각도 하게 되고.
조별과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누구와 조가 되느냐인 것처럼 <슈퍼밴드>는 조합의 미학이 특히 돋보이는 프로그램이기도 하다. <팬텀싱어>처럼 여러 성부와 컬러의 보컬들이 섞이는 것도 꽤 다채롭지만, 최소 하나 이상의 악기를 다룰 줄 아는 참가자들이 대다수인 <슈퍼밴드>에서 그 조합의 수는 그야말로 무한해진다. 악기를 어떻게 연주할 것인지(손으로, 활로, 또는 장난감 총으로도), 어떤 분위기로 곡을 편곡할 것인지, 어떤 사람이 프런트맨인지에 따라 음악의 색채는 더 다양해진다.
반전보다 탈피에 가까운
이 자발적인 조별과제는 라운드를 거듭할수록 재미를 더한다. 물론 마음이 맞는 조합은 몇 번을 함께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모험을 즐기며 라운드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 더 신선한 작업물을 만들어낸다. 프로그램의 특성도 그렇고, 음악이라는 업을 가진 이들의 성향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이들은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크랙샷처럼 8년을 함께해온 가족 같은 밴드도 마찬가지다.
반전이라는 말로는 부족하고, 탈피라는 말이 더 어울리겠다. 이전 무대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며 사람들의 선입관을 벗어던지는 일. 그들은 우리가 단편적인 영상으로는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가능성과 잠재력을 보여주고, 회를 거듭할수록 더 발전해나간다. 그 모습을 보며 우리는 뮤지션들에게 자연스럽게 동화된다. 어느새 <슈퍼밴드 2>의 출연자 모두를 응원하게 된 건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일 테다.
한 가지 부탁이 있다면 (to. JTBC)
잠깐 다른 얘기를 덧붙이자면. JTBC의 <팬텀싱어 올스타전>에서 가장 좋아하는 무대 중 하나가 미라클라스의 '벚꽃연가'인데, 여기서 나온 박강현의 솔로 파트가 당나라 시인 설도의 '춘망사'라는 걸 나중에야 알아서 아주 억울했던 적이 있다. 비하인드 클립에서라도 그 이야기를 챙겨줬더라면 좋았을 텐데, 결국은 멤버 한태인의 인스타 라이브를 통해서야 그 귀한 비밀을 알게 됐다.
이번 <슈퍼밴드 2> 윌리K팀의 'Oops, I did it again'도 마찬가지다. 오르골에서 흘러나온 노래가 히사이시 조의 'Innocent'라는데 이 곡을 어떻게 떠올리게 되었는지(가사 때문일 것 같지만) 너무나 궁금하다. 그리고 어쩌다 오은철의 피아노 파트에 쇼팽의 대양(Étude Op. 25, No. 12)을 집어넣게 되었는지도 궁금하다. 내가 뒤늦게 알게 된 게 이것뿐일 리가 없는데. 하루에도 이 무대를 수십 번씩 돌려보는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은데 제발 낱낱이 좀 털어놔주실 수 없나요? 바로 이게 한 가지 부탁입니다만.
뮤지션들이 한 번의 무대를 위해 들인 공에 비해 그들의 입으로 썰을 풀 시간이 늘 부족해 보인다. '조회수 폭발할 것 같은 무대네요!'도 물론 이 시대에는 대단한 칭찬이지만, 숫자로 평가되지 않는 부분은 늘 존재하고 그 각각의 의미는 훨씬 더 클 테니까. 요지는 콘텐츠를 위해 억지 고민을 늘어놓는 클립보다는 이런 PRO의 비하인드가 듣고 싶다고요.
누가 말했듯 시국이 시국인지라 미국이 미국인지라 모두가 삶의 즐거움을 반쯤은 포기하면서 2년을 살았다. 팍팍해진 현실에 열정이라곤 찾아보기 힘들고, 진정성이라는 단어도 조금은 마음에서 흐려졌다. 대면할 수 없는 삶은 그렇게 우리의 많은 것을 바꿔놓았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의 밴드들은 마치 다른 세계에서 온 것처럼 매 순간 뜨겁게 타오른다. 시청자들은 나이와 성별을 불문하고 그 불꽃에 환호한다. 우리 아빠가, 엄마가, 동생이, 또 내가 그렇듯이 말이다. 어쩌면 슈퍼밴드는 그 자체로 이미 큰 의미가 있는 프로그램일 것이다. 개중 어떤 이들이 글로벌 K-밴드로 우뚝 서는 것과는 별개로도.
다음 주에도 영혼을 팔 듯 시청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