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마케팅 전략 담당자의 상세페이지 기획 도전기
어느 날 갑자기, 남의 일이라고 생각했던 상세페이지 프로젝트를 리딩 하게 되었다. 나의 본업(?)은 마케팅 전략기획인데 상세페이지 플로우를 리뉴얼하는 업무를 맡게 된 것이다. 어쨌든 내게 주어진 일이니까 해내야 했다. 먼저 최대한 고객의 관점으로 현재의 상세페이지를 뜯어보면서 개선점을 찾았다. 내가 새롭게 반영하고 싶은 점도 정리했다. 하지만 여전히 근본적인 고민이 있었다.
고민점
- NEW 플로우가 커머스에 적합한지 아닌지 판단하기 어렵다
- 제품 개발을 한 BM의 의도를 정확히 파악하고 녹이기 어렵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걸 리딩해도 되는지 자신이 없다
이 고민점을 가지고 리더와의 심도 깊은 면담 끝에 몇 가지 가이드라인을 정리했다.
가이드라인
- (일단 리딩을 하게 되었으니) 내가 제일 잘하는 내 영역인 '커뮤니케이션'에 집중해서 문제를 풀어나간다
- 각 상품별 BM과는 개별 미팅을 통해 개발 의도를 최대한 녹이되, 고객에게 어필할 수 있는 점들을 우선으로 배치한다
- 모든 과정은 최대한 스스로를 의심하지 않고 실행한다 (고 결심!)
그렇게 마케팅 전략 담당자의 우당탕탕 고군분투 상세페이지 기획기가 시작되었다. 아래 몇 가지 팁과 함께 상세페이지 2.0을 기획했던 상세한 내용을 적어본다.
첫 번째, 제품 정보를 뜯어고친다.
산업 군마다 다르겠지만 뷰티는 제품 정보에 특유의 '어려운 용어'가 많다. 물론 제품의 카테고리나 콘셉트에 따라 그런 단어를 의도적으로 사용해야 하는 경우도 있지만, 우선은 눈에 걸리는 어려운 말을 최대한 줄여보기로 했다. 전문 용어를 꼭 사용해야 한다면 하단으로 내리고, 상단에는 고객이 한 번에 이해할 수 있고 고객의 눈에 잘 들어오는 쉬운 문장을 우선으로 넣었다. 평소 글을 쓸 때처럼 문장을 구두로 여러 번 뱉어 읽어보면서 부자연스러운 곳이 없는지 점검했다. 특히 중요한 품목은 워딩 하나하나에 집착을 했다. 컬러 쉐이드 하나를 설명할 때도 촘촘한 / 정확한 / 다채로운 / 딱 맞는 / 정교한 등 여러 가지 단어를 넣어보고 가장 고객에게 와닿을만한 문장으로 다듬었다. BM과 끊임없이 이야기를 나누면서 RTB와 USP의 순서를 바꾸고 표현을 수정했다. 고객이 페이지 하나로 제품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 말이다.
두 번째, 왜? 뭐? 봇이 된다.
이걸 왜 사야 되는데요? 굳이 이걸 왜 써야 되는데요? 이게 딴 데랑 뭐가 다른데요? 이 중에서 제일 중요한 게 뭔데요? 제품 개발 담당에게 집요하게 물어보고, 아티스트와 함께 고객이 제품에 대해 어떤 질문을 할지 예상 안을 정리했다. 그리고 그걸 그대로 전문가(우리 브랜드에서는 BM 혹은 아티스트)의 워딩으로 담았다. 일단 '고객은 이 제품에 최소한의 관심만 있다'는 걸 기본값으로 두고 상세페이지 내에서 최대한 고객을 더 설득할 수 있는 요소를 곳곳에 녹였다. 예를 들어 검색량이 적은 제품이나 카테고리 파이 자체가 크지 않은 제품은 가장 상단에 '이 제품을 구매해야 하는 이유'부터 명확하게 짚어주었다. 대중적으로 인기가 있는 제품은 타사 제품이나 자사의 다른 라인 제품과의 차이점을 적어 구매를 도왔다. 내가 더 냉정하게 따져 물을 수록 제품의 강점이 두드러진다고 믿었다.
세 번째, 친절하게 설명하되 투머치 토커가 되지 않는다.
프로젝트를 맡게 되면서 상세페이지에 대한 기사나 자료를 많이 읽었다. 가장 효율적인 상세페이지를 구성하는 법이나 콘텐츠의 종류, 또는 전체 길이에 대한 조언 등등. 어떤 글에서는 페이지 내에 모든 정보를 최대한 상세하게 소개하라고 하고 온갖 테스트 결과와 제품 성분에 대한 내용을 구구절절 쓰라고 했다. 하지만 어떤 글에서는 긴 상세페이지는 고객이 이탈할 확률이 높다며 최대한 정보를 간결하게 줄이라고 했다. 결론은 브랜드 무드와 제품에 맞는 적정선을 찾는 게 필요했다. 우선 제품에 따라 구성을 다르게 가져가기로 했다. 베이스/페이스 제품은 제형, 컬러, 피부 타입, 엔드 베네핏에 대한 상세한 정보가 필요하다. 하지만 컬러 제품의 경우 설명보다 발색이나 콘셉트를 잘 드러내는 것이 중요하다. 제품의 속성에 맞춘 정보를 친절하게 담되 너무 오버해서 주접을 떨지 않기로 했다. 유관부서 담당자들의 의견을 수렴해 정말로 필요한 정보만 남겼다.
네 번째, 고객에게 진짜 필요한 정보인지 한 번 더 점검한다.
그것까지 들어가야 할까요? 그걸 제일 위에 넣는 게 맞을까요? 프로젝트를 리딩 하면서 이런 챌린지를 많이 받았다. 하지만 주장하는 바를 끝까지 설득하고 밀어붙인 이유는 결국 그게 '고객에게 진짜 필요한 정보'라고 판단해서다. 고객은 심지어 이 페이지조차도 정독하지 않고 이탈할 확률이 더 높기 때문에, 고객이 궁금해할 만한 정보는 작게라도 정리해서 넣자고 주장했다. 이 제품과 가장 비슷한 제품이 뭔지, 그 제품과 이 제품의 차이점은 무엇인지 등을 고민해 페이지에 녹였다. '나중에 필요하면 고객이 찾아보겠지'라는 생각은 버리자고 했다. 나중은 없다. 한 번 들어온 상세 페이지에서 흥미가 떨어진 고객은 다시는 이 페이지에 돌아오지 않는다.
그렇게 고민을 거듭한 끝에 ALL NEW 상세페이지 2.0이 완성되었고 나름대로 만족스러운 결과가 나왔다. 물론 위 방법만이 정답은 아니다. 산업군이나 제품군, 브랜드에 따라 상세페이지의 방향은 천차만별로 달라질 수 있으니까. 하지만 프로젝트를 하면서 세웠던 나만의 한 가지 목표는 이거였다.
고객이 납득할 수 있는 스토리를 전달할 것.
이 상세페이지로 우리 브랜드를 처음 보는 사람이든, 브랜드를 쭉 애정하고 있다가 이 제품을 사려고 들어온 사람이든, 어쩌다가 들어온 사람이든.. 페이지를 쭉 읽었을 때 '아 이 브랜드가 그래서 이 제품을 만들었구나' 하고 고객들 납득시키는 그 한 단계만 넘어갈 수 있다면 프로젝트는 성공이라고 생각했다. 우리 제품이 무조건 좋으니까 사세요, 우리 제품이 이렇게 멋있어요 같은 뜬구름 잡는 얘기 말고.
프로젝트를 하면서 본 업무인 마케팅 전략을 다듬을 때도 이 목표를 다시금 되새겼다. 사실 MC 입장에서 커뮤니케이션 전략을 기획하고 카피를 짜다보면 자칫 멋들어진 것에 집착하거나 무드 중심으로 고착화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하지만 구매의 관점에서 한 발 떨어져 바라보니 마케팅 전략도 더욱 설득력 있고 탄탄하게 보강할 수 있게 되었다.
비록 커머스 전문가는 아니지만 이 글이 상세페이지 기획자 혹은 마케터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