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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gie 앤지 Jul 13. 2022

한 달만에 브랜드 전시회를 만들라니요

9년 차 디지털 마케터의 첫 공간 마케팅 도전기



어그로 낭낭한 제목 그대로, 한 달 만에 브랜드 전시회를 열어야 하는 미션을 받았다. 입사부터 SNS와 콘텐츠 담당으로 시작해 디지털 위주의 마케팅을 해온 지 8년 남짓. 그동안 컬렉션 팝업이나 매장 리뉴얼에는 종종 참여했었지만 브랜드의 이름으로 '전시회'를 여는 것은 처음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디자인팀의 멋진 프로젝트에 숟가락을 얹은 정도이지만- 뜨거웠던 5월. 그토록 해보고 싶었던 공간 마케팅을 처음으로 도전한 '마케터 관점'의 이야기를 짧게나마 풀어본다.



사실 처음에는 그게 아니었어요

5월 팝업을 위해 작년 가을부터 TF가 꾸려졌다. 사진을 찍지 않고는 못 배기는 독특한 콘셉트에 유동 고객도 쉽게 참여해 즐길 수 있는 게임 콘텐츠, 거기에 제품 소구점을 반영한 다양한 콘텐츠 아이디어로 보고를 준비했다. (나름 오랜 시간 치열하게 고민을 했으나 지금 생각해보니 그냥저냥 무난한 정도였던 것 같다.) 그때 갑자기 디자인팀으로부터 새로운 기획이 나왔다. 테마는 제품의 개발 과정을 담은 '아카이브'. 초반 콘셉트와는 전혀 다른, 완전히 새로운 방향성이었다. 남은 준비 기간은 한 달하고도 보름 정도. 가능할까요? 의문을 갖기에는 기획이 이미 너무 좋았다. 고객에게 우리와 우리 제품을 좀 더 새롭게, 더 공들여 보여줄 수 있는 기회였다. 그렇게 과감하게 돌아간 방향키- 그게 바로 신의 한 수였다.



마케터의 역할을 쪼개어봅시다

더 깊이 고민하기에도 촉박한 시간, 거기다 아카이브라는 타이틀에 비해 주어진 공간이 그리 넓지 않았다. 그 안에 우리 이야기를 충분히 담아야 했고, 디지털이 아닌 오프라인에서 고객이 읽게 될 문장을 쓰고 전시답게+우리답게 커뮤니케이션 전략을 짜는 게 나의 롤이었다.



1) 전시 소개/조닝 워딩

먼저 전시를 소개하는 대표 문안과 각 조닝을 설명하는 워딩부터 만들었다. 전시 소개는 리플릿과 SNS, 외부에 돌리는 초대장에까지 들어가는 가장 기본적인 카피 콘텐츠다. 한 문장으로 전시의 핵심 주제를 정리하고 전시에서 체험할 수 있는 것들을 짧게 나열해 방문하고 싶은 매력적인 공간처럼 보이게 했다. 여기까진 디지털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조닝 워딩이 문제였다. 고객의 시야에 보이는 벽면에 프린트되는 카피라니! 여러 가지로 고민이 되었다. 그래서 조닝을 소개하는 워딩은 다음의 요소와 순서를 고려하며 문장을 짰다.


{브랜드의 철학을 담고 + (제품을 만드는데 들어가는 브랜드의 노력도 어필하면서) + 고객이 이 공간이 어떤 존인지 쉽게 이해하도록 하며 + 무엇을 체험하고 가야 하는지}


-> 쿠션과 파운데이션의 전형적인 디자인을 탈피하기 위한 아이데이션의 시작. 디자이너들의 심층적인 고민이 담긴 스케치와 모티브가 탄생한 무드 보드를 통해, B의 영감이 전개되는 과정을 느껴보세요. 최종 문장에서 고민의 흔적이 느껴지셨다면 좋아요와 댓글 부탁드립니다  


어쨌든 이렇게 여섯 개의 존을 소개하는 문장을 만들었다. BM과 토씨 하나까지 고민해가며 만든 열 개 남짓한 워딩 세트는 그렇게 멋들어진 월과 아크릴, 빤딱빤딱한 리플릿에 인쇄되어 전시장 여기저기에 붙어있었다. 크고 작은 액정 속의 문장이 아닌 눈앞에 살아 숨 쉬는 문장들은- 어쩐지 오래도록 기억 속에 간직하게 될 것만 같았다. (뜻밖의 포인트에서 오열하고 마는 디지털 담당자)



2) 티징/오픈/운영 콘텐츠

사실 오프라인 이벤트의 꽃은 티징 콘텐츠라고 생각한다. 오픈 전부터 여러 가지 콘텐츠로 이벤트를 '미리' 알리고, 그걸 고객들이 인스타그램 저장 기능이든 스크린샷으로든 간직했다가 오픈 날 딱! 맞춰 방문하도록 유도해야 하니까. 그래서 티징에 힘을 좀 주려고 했다. 디자인팀을 졸라 3D 콘텐츠를 만들고 미리 받은 포스터/현수막 이미지 소스에 영사기 소리를 입혀 무빙 포스터도 만들었다. (능력자 인턴 친구의 도움이 컸다) 디자인팀에서 예쁘게 만들어주신 그래픽은 약간의 변주만 주어도 임팩트가 커서 신이 났다.

 

오픈일에는 아이폰을 들고 구석구석을 오가며 현장 사진/영상을 찍었다. 테마가 '아카이브'다 보니 동선에 따라 관람을 하는 게 포인트라, 아모레 성수로 들어와 체크인 쿠폰을 받고 - 복도를 지나 전시장으로 와서 - 제1의 존부터 순차적으로 전시를 관람하고 - SNS 인증 뒤 경품을 받아가는 장면까지 릴스로 제작해 전시를 방문할 예정인 고객들이 과정을 미리 체험할 수 있게 했다. 당일 저녁에는 깜짝 현장 라이브 (IG Live)를 통해 한 번 더 동선을 고객에게 인지시키고, 현장에 올 수 없는 고객들도 전시를 경험할 수 있게 했다. (이 또한 진행 능력자 아티스트분의 도움이 컸다)


주말에는 전시회에 대한 무물을 짧게 진행했다. 예약하지 않아도 갈 수 있나요? 언제까지 하나요? 방문하면 무엇을 할 수 있나요? 등 여러 가지 질문이 있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질문은 이거였다.


"이것만은 꼭 보고 알아줬으면 하는 것 있으세요?"


어떻게 이렇게 예쁜 질문을 해주신 건지.. (뜻밖의 포인트에서 오열하고 마는 브랜드 담당자 222) 마케터에게 의도를 직접 물어봐주는 건 정말 감격스러운 일이라 성수 어드메에서 잠시 감동에 젖어 답변을 남겼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성과는요

이 글을 읽는 마케터라면 가장 궁금해할 숫자에 대한 부분. 이번 전시는 작년 유사 이벤트 대비 약 3.4배 이상의 인증샷을 남겼고 (고객이 직접, 오가닉으로) 피드든 스토리든 흔적을 남겨주신 고객분들에게는 나의 무한한 감사의 마음을 담아 하트를 실시간으로 눌러드렸다. 인스타그램에 관련 게시물을 저장한 수치도 1.8배 뛰었다. 전시 기간 중 브랜드를 좋아해 주시는 인플루언서 분들의 자발적인 방문이 이어진 것도 고무적이었다. 엄청난 리워드가 있었던 것도 아닌데 말이다.


대부분 제품 중심의 마케팅을 할 수밖에 없는 소비재 브랜드로서 새로운 시도를 했다는 것도 좋은 성과였다. 특히 레드 필터로 셀피를 찍거나 파운데이션을 직접 조색해보는 체험 존에서는 그야말로 폭발적인 반응이 있었다. 그래서 생각했다. 한 달만에 바꾸기를 참 잘했다. 해내기를 참 잘했다, 우리.



전시는 13일의 짧은 기간으로 마무리되었지만, 그 과정 속에서 여러 가지를 배우고 또 느낄 수 있었다. 내가 한 것이라고는 그저 잘 짜인 기획에 마케터로서 할 일을 한 것뿐이지만- 고객이 직접 보고 만지는 유형의 공간에서 콘텐츠를 만들고 카피를 쓰는 일은 정말 새로워서 9년차에게도 신선한 자극과 찌릿한 경험이 되었달까.


이 글이 오프라인 이벤트를 준비하는 마케터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어느 날 갑자기 여러분도 이런 일을 겪게 될 수 있으니까요.



@angiethinks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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