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그리울, 만두
외갓집은 마당이 있는 주택이었습니다. 일터인 유치원에 살림살이가 딸려있는 구조라 마당에는 호박마차 모양의 그네와 기다란 미끄럼틀, 커다란 모형 배 같은 놀이기구들이 있었어요. 어린 저에게는 마치 천국 같은 곳이었죠. 그래서 늘 외갓집에 간다고 하면 심장이 두근거렸습니다. 혼자서 실컷 그 모든 걸 차지할 수 있었으니까요.
외갓집이 좋았던 이유는 또 있었습니다. 1월 1일마다 외가 친척들이 모두 모이는 연례행사 때문이었죠. 새해 첫날, 아침 일찍 외갓집에 도착하면 외할머니가 미리 준비해두신 만두가 병정처럼 줄을 지어 저를 반겼습니다.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 모두 개성분이라 명절에는 떡국 대신 늘 만두를 먹었는데, 만두소를 준비하는 과정만 해도 어마어마했어요. 순서를 자세히 적어보자면 이렇습니다. 먼저 애호박을 채 썰어 소금에 살짝 절여두고 면포에 싸서 물기를 짜냅니다. 두부도 마찬가지로 으깨어 물기 없이 준비하고요. 고기는 쇠고기와 돼지고기를 반반 섞어 간을 해둡니다. 거기에 한 번 데쳐낸 숙주나물과 파와 마늘을 잘게 썰어, 모두 섞어주면 됩니다. 이렇게 들으면 쉬워 보이지만 생각보다 더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이랍니다. 말하자면 개성식 만두인 ‘편수’처럼 애호박과 고기가 주재료인 만두인 건데, 애호박의 달큼함과 두 가지 고기의 감칠맛이 더해져 식감이 풍부하면서도 마무리가 깔끔해 자꾸만 손이 가는 맛이에요.
“형님~ 형수님~”
커다란 쟁반에 가득한 만두를 구경하고 있으면 어느새 대문 밖으로 하나 둘 정겨운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사 남매 중 장남이었던 우리 외할아버지 덕에 친척들이 모두 모이면 비어있던 현관이 스무 켤레에 가까운 신발들로 금세 복작복작해졌죠. 작은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먼저 들어오시고 이모들과 삼촌들이 차례로 들어오면 마음이 설렜습니다. ‘우리 세희 많이 컸네~ 학교는 재밌어?’ 다정하게 물어주는 덕에 수줍어하면서도 조잘조잘 제 이야기를 늘어놓기 바빴습니다. 저는 첫 조카여서 특히 예쁨을 많이 받았거든요.
아마도 그쯤 외할머니의 사랑이 담뿍 담긴 만두가 끓는 물에 퐁당퐁당 빠지고 있었을 겁니다. 엄마와 이모는 그 앞에 서서 냄비에 부지런히 차가운 물을 끼얹었어요. 만두를 터지지 않고 도랑도랑 예쁘게 삶기 위해 하는 수고였습니다. 그렇게 뽀얗게 잘 익은 만두를 담아 들고 부엌을 나서면 이모와 삼촌들이 또 호들갑을 떨어주었습니다. ‘이렇게 무거운 것도 다 들고 이제 정말 언니 다 되었네~’ 저는 으쓱한 표정으로 상에 만두를 내려놓았습니다. 숟가락이 그릇에 부딪히는 소리, 간장종지를 스쳐가는 소리... 그 왁자지껄함 속에서 만두를 쪼개어 먹으며 부지런하게 귀를 쫑긋 세우고 어른들의 이야기를 듣던 제 모습이 떠오릅니다. 그 떠들썩한 따뜻함은 서른이 훌쩍 넘은 지금까지도 아직 생생하게 기억이 납니다.
대학에 진학하고 타국으로 잠깐 공부를 하러 갔던 시절, 갑자기 그 ‘외할머니 만두’가 너무 먹고 싶었어요. 말도 잘 통하지 않는 곳에 있다 보니 아마도 가족들의 따뜻한 정이 그리웠나 봅니다. 케이타운의 레스토랑에서 만둣국을 시켜먹어도 차이나타운의 덤플링이나 일식당의 교자를 먹어봐도 절대 그 맛이 나지 않았습니다. 결국 큰 도전을 하기로 마음먹고 한인 슈퍼에서 만두 재료를 가득 사 왔어요. 우선 두부와 절인 애호박의 물기를 짜내는 것부터 일이었습니다. 면포도 없어서 새로 사 온 행주를 이용해 낑낑대며 물기를 짜고, 덜덜 떨리는 손으로 삐뚤빼뚤 야채를 썰었어요. 외할머니의 만두처럼 모든 재료를 완벽하게 준비하지는 못했지만 얼추 비슷한 색을 띤 소를 준비하고, 이미 넋이 반쯤은 나간 상태로 만두를 빚었습니다. 조금 욕심을 내면 넘치는 소 때문에 만두피가 찢어지고, 겁을 먹고 조금 넣으면 만두피가 늘어지듯 남았죠. 그렇게 만두 스무 개를 겨우 만들었어요. 그중에 열개는 저를 돌봐주셨던 분께 선물하고 딱 열개가 제 눈앞에 남았습니다. 평소라면 한 끼에 끝내버렸을 양인데 한 입 한 입 없어지는 게 어찌나 아쉽던지요. 결국 만두를 그대로 눈앞에 두고 꾸벅꾸벅 잠을 참아가며 기다렸다가, 한국에서 기상한 엄마가 전화를 받자마자 소리쳤습니다.
“엄마, 나 이제 만두가 왜 명절 음식인지 알겠어!”
이제 명절 만두 잔치의 메인 셰프는 엄마입니다. 외할머니가 가끔 저희 집에 오셔서 총감독관을 하시고요. 엄마의 만두는 특이하게도 두부의 비중이 좀 더 큽니다. 두부가 많이 들어가면 식감이 부드럽고 맛도 슴슴해서 소화가 잘 되는데, 그래서 가족들 모두 부담 없이 만두를 맘껏 먹을 수 있죠. 만두소가 준비되는 동안 저는 마늘간장을 만듭니다. 할머니의 간장에서 살짝 변형을 한 버전인데요. 간장에 다진 마늘을 더 많이 넣고 올리고당으로 마무리해서 맵싸하면서도 단짠이 느껴지는 요즘 맛입니다. 그렇게 삼대를 거치며 만두도 만두 간장도 조금씩 업데이트가 되었습니다. 당연히 외할머니에게 최종 컨펌을 받았지요.
“할머니가 언제 또 와서 해줄 수 있을지 모르니까, 더 자주자주 만들어줄게.”
지난 1월 1일, 김이 모락모락 나는 만두를 앞에 두고 외할머니가 말씀하셨습니다. 저희 집 네 가족 그리고 외할머니, 다섯이 보낸 소소한 설날이었어요. 이제 외갓집 친척 식구들은 한데 모여 설을 보내지 않습니다. 흙먼지가 날리던 모래사장과 알록달록 놀이기구도 사라졌고요. 외할아버지와 작은 외할아버지, 작은 외할머니는 조금 먼 곳에 계십니다. 이모와 삼촌들도 각지에 뿔뿔이 흩어져서 살고 있죠. 그대로인 것은 오직 만두뿐입니다. 그때 그 시절 하얗고 소담했던 모습 그대로- 우리 가족의 이 특별한 만두는 마치 오랜 시간을 함께 버텨온 우리를 따뜻하게 위로해주는 듯합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만두의 레시피는 더 많이 바뀌어 갈지도 모릅니다. 삼대를 거치며 그래 왔듯이요. 하지만 이 만두에 담긴 우리 가족의 사랑만은 영원하겠지요.
언제까지나 당신이 그리울, 만두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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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두를 너무 좋아한 나머지 써보고 싶었던 글.
(사실 공모전용이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