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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gie 앤지 Jul 07. 2022

#4. 저는 ESTJ고 제 동생은 INFP입니다

어떻게 한 글자도 겹치지 않을 수가 있는지


오랜만에 쓰는 유사과학 에세이. 이번에 소개할 주제는 바로 ESTJ인 나와 정반대인 내 동생 INFP에 대한 스토리다. 사실 우리가 태초부터 정반대의 MBTI였던 것은 아니고.. 나는 ENFJ -> ESTJ가 된 케이스, 동생은 ENFP -> INFP가 된 케이스다. 단 한 개의 문자조차 겹치지 않는 우리의 이야기 (라고 하기에는 엣티제의 시선에서 바라본 인프피 관찰기)를 적어본다.



들어가기 전에

일단 우리 자매의 최근 성격 유형 테스트 결과를 공개한다.


어떻게 사람이 F100 P100


정말이지 맞는 게 하나도 없고 특히 J-P는 극단을 달리고 있는 걸 볼 수 있다. (ㅋㅋㅋㅋㅋㅋ) 이것만 봐도 우리의 가치관이 얼마나 다른지 짐작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대체 계획을 왜 안 짜는 거니?" vs "왜 그렇게 피곤하게 사는 거야?"의 대립. 그중 우리가 두고두고 곱씹는 몇 가지 에피소드를 적어보겠다.



카페를 다녀오는데 너무 추운 거지

지난해 초겨울 즈음, 동생과 함께 동네 카페에 들렀다. 그날 따라 너무도 극심한 추위에 우리는 예정보다 이르게 귀가하기로 했다. 카페 문을 열고 나오자마자 동생이 한껏 몸을 웅크린 채 말했다.


INFP(동생): 아우 추워!


평소에 추위를 많이 타는 동생이라 나는 '어서 집으로 돌아가자'라고 대답했다. 동생이 고개를 끄덕이며 발을 동동 굴렀다. 이럴 거면 마을버스라도 탈 걸 그랬나? 나는 괜히 집까지 걸어가자고 한 것 같아 (아주 약간) 마음이 쓰였다.


INFP(동생): 아우 진짜 추워! 얼어 죽을 것 같애!


동생이 또 한 번 얘기했다. 그래서 나는 다시 물었다.


ESTJ(나): 지금이라도 버스 타고 갈까?

INFP(동생): 아냐, 코앞인데 뭐.

ESTJ(나): 맞아. 근데 추우니까 좀 빨리 걸어가자.


나는 대충 대답하고 걸음을 재촉했다. 그러자 동생은 조금 빨리 걸으면서 한 걸음 한 걸음 옮길 때마다 방언처럼 춥다는 말을 내뱉기 시작했다. 아 추워! 왜케 추워? 날씨 미친 거 아니야? 진짜 너무 춥다 오늘! 아우우! 옆에서 자꾸 춥다고 춥다고 노래를 불러서 내가 물었다. 뭐 이 옷이라도 벗어줘? 내가 겉옷을 흔들며 말했다. 그러니까 동생이 그랬다. 아니 옷 벗어달라고 한 말은 아니었어.


그렇다면 대체 왜..?


엣티제인 나의 머릿속에 물음표가 떠올랐다. 춥다 -> 빨리 가자. 춥다2 -> 버스 타고 가자. 춥다3 -> 옷 줄게. 내가 제안한 모든 옵션을 거절하고 왜 3초마다 춥다고 말하는 거야..? 나는 동생한테 진지하게 물어봤다. 그럼 어떻게 해달라는 거야? 동생이 대답했다. 뭐 해달라고 하는 거 아닌데?


아직도 이 부분은 서로 이해를 못 하고 있다.(ㅋㅋ) 나는 누군가가 문제를 얘기하면 그걸 꼭 해결해줘야 하는 사람인데, 동생은 그냥 머릿속에 있는 생각이 입 밖으로 나오는 거라고 했다. 그래요.. 알겠습니다.. (지금도 글 쓰면서 물어봤는데 딱히 별다른 이유는 없다고 함^^)



밸런스 게임은 불가능해

두 번째는 동생의 불만이 얽힌 에피소드다. '깻잎 논쟁'이 한창 유행일 때 동생이 나에게도 그 질문을 했었다. 언니는 남친이 친구 깻잎을 떼어주면 어떻게 할 거야? 동생이 가볍게 물었고 나는 대답을 하기 전에 되물었다.


ESTJ(나): 어떤 친군데?

INFP(동생): 아니 그냥 생각해보고 대답하면 돼.

ESTJ(나): 근데 어떤 친군지 친구마다 좀 다를 거 같은데..

INFP(동생): 아니 그니까 그냥 물어보지 말고 대답을 하라고.

ESTJ(나): 근데 애초에 그렇게 셋이 만나는 자리를 나는 안 만들 거 같은데..

INFP(동생): 아 그냥 묻는 말에 대답이나 하라고!!!!!!!


열이 뻗쳤는지 동생은 빽 소리를 쳤다. (ㅋㅋㅋㅋㅋ) 근데 진짜 어떤 조건인지 어떤 상황인지에 따라 다른 거 아니냐? 내가 말하자 동생은 다시는 나에게 밸런스 게임을 물어보지 않겠다고 했다. 근데 그래 놓고 또 물어봤고 나는 또 물음표 살인마가 되었고 우리의 사이는 나빠졌고..  암튼 그 뒤에도 몇 번 이런 주제로 얘기를 했지만 나는 '그 상황이 되어봐야 알 것 같은데?'라고 하거나 '그런 상상을 왜 해?'라고 해서 종종 동생의 빈축을 샀다. (^^)



약속을 왜 미리 잡냐니요

가끔 유튜브로 ESTJ&INFP 영상을 보고 수다를 떨곤 하는데,  가지 충격이었던 논제가 있었다. 바로 약속을 미리미리 잡는 것에 대한 얘기였다. (*영상 - INFP ESTJ 만난다면?! : https://youtu.be/XSVVbv8EDtc )


INFP(동생): 아 진짜 약속 저렇게 미리 잡는 거 너무 싫다..

ESTJ(나): 근데 그렇게 약속을 안 잡으면 만나기가 힘들잖아.

INFP(동생): 그 약속이 다가오는 걸 생각하면 너무 힘들어..

ESTJ(나): 그럼 약속을 미리 안 잡아?

INFP(동생): 미리 잡아도 그때 무슨 일이 생길 수도 있잖아.

ESTJ(나): 무슨 일이 생기지 않으려고 미리 스케줄을 잡는 거 아니야?!


그랬다. 이 또한 서로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3주 전이든 두 달 전이든 미리 스케줄을 정리해둬야 마음이 편한 나와 그렇게까지 미래의 약속을 (꼭 만나야 하는 사람이 아니고서야) 미리 잡는 게 싫다는 내 동생.. 혈육 아닌 친구였으면 대체 어떻게 만나고 놀았을까 생각해봤지만 그냥 둘이 안 놀았을 것 같다는 결론을 내렸다.



맛집 리스트는 왜 달라고 하는 거야

비슷한 맥락의 에피소드가 또 있다. 지난 연말 동생이 친구들과 함께 갈만한 용산(우리 회사 근처) 맛집을 알려달라고 했다. 지도 검색하면 다 나오는데 맨날 왜 나한테 물어보냐? 나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열 개가 넘는 추천 식당 리스트를 뽑아서 동생에게 공유해줬다. 1번. 뫄뫄뫄. 공간이 좁지만 어쩌구저쩌구가 맛있음. 2번 솨솨솨. 좀 시끄럽긴 한데 분위기가 좋음. 등등 특이사항도 적어줬다.


INFP(동생): 언니 땡큐~

ESTJ(나): 다 인기 많은 데니까 가고 싶은데 정해서 얼른 예약해~

INFP(동생): 오키오키~


그리고 몇 주 뒤. 12월이 되었고 나는 문득 동생이 어디를 가기로 했는지 궁금해졌다.


ESTJ(나): 야 그래서 연말 파티 어디서 하기로 함?

INFP(동생): 아 그거 아직 안 정함~ 그때 보고 먹고 싶은 데로 가려고~


???...


ESTJ(나): 야 그거 빨리 예약해야 된다니깐?

INFP(동생): 아 오키~


암튼 그랬다. 나 같았으면 알려준 그날 바로 친구들 의견 취합하고 DM부터 때렸을 텐데.. 동생은 한 달 전에 미리 예약을 하면 그날 그걸 안 먹고 싶어질 수 있다는 둥, 무슨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둥 얘기했지만 나는 그럴 거면 왜 미리 맛집을 알려달라고 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 지금 물어보니까 리스트가 필요 없었던 건 아닌데 그 리스트를 가지고 약속이 가까워지면 그때 고르려고 했다고 한다.. 아니 근데 그때 고르면 가고 싶은 식당 예약을 못한다고 이 자식아)



이 글을 쓰면서 동생이랑 같이 지난 일들을 복기해봤는데.. 또 한 번 말다툼을 할 뻔했다.(^^) 동생이 지금 옆에서 중얼거린다. 난 정말 너를 모르겠다~ 그건 내가 하고 싶은 말인데... 그 와중에 언니라고도 안 부르는 내 새끼.. 이 새끼....


너무 달라서 문제긴 하지만 그래도 나는 내 인생의 가장 소중한 절친이 바로 내 동생이라고 생각한다. 섬세하고 다정하고 재주많은 내 동생에게 배우는 점도 많고. 나중에 다음 편을 쓰게 된다면 인프피 동생이 내게 힘이 된 모먼트에 대해서 써보겠다. (나름 그런 때도 가끔 있긴 있음) 


ps.

이 글을 읽고 있는 인프피분들이 부디 상처받지 않기를 바라며..! 

감정없는 로봇이라 죄송합니더,, (하트)



@angiethinks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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