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가치
세상은 혼자 살아가는 곳이 못된다.
홀로 우뚝 선 삶은 무의미한가, 묻는다면
나는 ‘홀로서기란 개념은 성립될 수 없다’ 답하겠다.
우린 서로의 것을 주고 받으며 생명을 유지한다.
마치 우주의 구성 요소, 지구의 구성 요소들의 상호작용이나 지구별 속 물의 순환,
이런 것들이 큰 예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함께인 삶은 의식주와 비슷하다.
근래 인간의 의식주는 필수불가결한 개념으로 이해되기보다
겉으로 드러내며 과시하는 모습이 먼저 떠오르지만,
이마저도 의식주는 인간에게 불가피한 개념이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많이들 삶은 혼자라는 한마디와 함께 ‘같이’의 가치를 간과하기 일쑤지만
우린 다시 한번 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그게 본연의 삶이기에, 우린 함께 살아갈 필요가 있다.
서론이 길었다. 지금 내 글을 읽는 당신이 ‘함께인 삶이 중요하다’는 내 주장을 인지했다면,
이젠 내가 왜 인터뷰
-우리 말로는 ‘면접’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수 있지만
‘interview’라는 단어 쓰임의 대체어가 될 순 없겠다고 판단했다.-
를 하겠다고 나서는지 궁금해할 차례이다.
함께인 삶이 버겁고 싫던 아이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난 사랑이란 이름을 달고도 이해할 수 없었다. 언제나 실망하고 상처받았다.
그리고 훗날 사랑도 받았다.
내가 받은 그 사랑은 생각만큼 웅장하고 커다란 마음이 아니었다.
그저 나라는 존재를 궁금해하는 마음이었다.
내가 무얼 좋아하고 싫어하는지뿐 아니라
뭘 원하고 꿈꾸는지 나의 진심은 무엇인지 궁금해하는
그 묵직한 마음을 느낄 때면 난 기뻤다.
게다가 받은 마음을 그대로 주고 싶어하는
이상한 내 머릿속 전개도 꽤나 마음에 들었다.
그 후 난 사랑 인간이 되어갔다.
하다못해 너무 미운 마음에 바꾸고 싶던 이름까지도 사랑스러워지고
혐오를 품는 존재들에게는 깊게 화가 났다.
사랑만큼이나 화는 깊어지는게 아이러니해도
사랑다운 사랑이었기에 열심히 그들을 향해 분노를 표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난 또 깨달았다.
결국 살아남는 건 사랑이고 사랑인데
그냥 사랑에 더 집중할 순 없는 걸까?
그래서 나는 내가 느끼는 본연의 사랑을 일깨우려한다.
내 삶을 위해 함께하며 사랑하고,
내 사랑을 위해 삶을 살며 함께하고,
이 모든 걸 영위하기 위해 인터뷰가 필요하다.
그리고 기록한다.
나의 사랑이 다른 사랑과 모양이 다르더라도
사랑은 사랑임을 스스로 되새기기 위해 말이다.
아, 사랑은 읊조릴 수록 뭉개지는 것조차 마음에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