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냄 자체가 무언가를 더 견뎌내고 이겨냈다는 증거이기에
은지를 처음 만났던 날을 기억한다. 나를 만나기 직전 옷 가게에 들러 샀다던 주홍색 민소매를 입고 있었다. 자세히 언제 어디에서 만났는지 기억하지는 못한다. 우리는 친구를 찾고 찾다 마주쳤고 우연히 같은 시간에 일정이 비워져 있었을 뿐이었다. 은지는 가족과 시간을 보내다가 왔던 것 같기도 하다. 기억이 어렴풋해 확실하지 않지만, 적어도 나는 그날 은지를 느낄 수 없었다. 우린 가까워질 친구를 찾는 것치곤 낯을 가렸고 말주변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랬기에 얼굴 대신 쳐다보던 주홍색 민소매 티셔츠가 아직 아른거리는가 보다. 그 후로 나는 은지를 여러 번 더 만났다. 편지지 가게를 갔다가 엽서 가게를 가고, 뜨개용품점에 갔다가 토마토 인형을 떠주기로 할 때쯤 얼핏 은지의 얼굴을 제대로 보았던 것 같다.
자림 은지
*모든 질문엔 시선의 검열을 거친 답보다는 가장 개인적이고,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답을 위주로 답해주세요.
-자기소개 느낌으로 은지 씨가 하고 있는 일이나 하셨던 작업, 일, 먼저 얘기해 볼까요?
-네, 안녕하세요. 저는 은지고요. 고등학교 졸업 후에 영상 관련으로 회사 생활을 조금 하다가, 되게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돌연 퇴사를 하고 워킹홀리데이를 가겠다는 생각에 자동차 면허도 따고 바리스타 학원도 조금 다니다가 갑자기 한 영화를 만나게 됐는데… 제가 어렸을 때부터 영화를 좋아했거든요. 그래서 영화를 도전을 안 해보면 내가 나중에 후회하겠다- 해서 갑자기 모든 걸 접고 영화 입시에 뛰어들었다가 생각만큼 잘 안 됐기도 하고 또 입시에 대해 원래도 가지고 있던 회의감을 다시 느끼게 되면서 전공을 조금 바꿔서 영상 쪽으로 지금 학교를 다니고 있습니다. 대학생입니다.
-워킹홀리데이를 생각하실 때 말고는 계속 영상, 영화 등 미디어 쪽을 생각을 하셨던 것 같은데 영상 미디어 작업들을 하고 싶었던 이유나 계기가 있었나요?
-너무 클리셰 같은데… 보통 사람들이 자기소개서 쓸 때 하는, 저는 어렸을 때 이러한 아버지와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이런 게 너무 형식적이고 너무 틀에 박힌 얘기 같긴 한데요, 실제로 저는 그랬어요. 아빠가 영화 보는 거를 좋아하기도 하셨고 특히 영어 조기 교육을 위한 외국 영화를 많이 보여주셨는데 그때 전 영어는 모르겠고 영화에 너무 빠져버린 거죠. 그래서 영화를 어렸을 때부터 좋아했고 또 아빠가 사진기를 다루셨어요. 동호회 같은 것도 하셔서 그때 저도 기록물을 남기는 거나 보는 것에 대해 되게 자연스럽게, 가까이 지내다 보니까 관심이 갔던 것 같고요. 특히 고등학교 진학할 때 입시 설명회를 들었는데 다니던 중학교에 고등학생분들이 와서 설명해 주는 그런 자리에서 특성화 고등학교가 왔었어요. 근데 제가 원래 다니던 중학교 3년 과정이 너무 재미가 없는 거예요. 공부가 나한테 안 맞는 것 같고, 친구들이랑 지내는 거는 괜찮은데 딱히 공부는 안 맞는 것 같다고 생각을 하면서 고등학교 3년을 어차피 똑같이 시간을 보내야 한다면 차라리 새로운 걸 배워보자, 해서 특성화 고등학교 진학을 그때 결심하게 됐는데 그때 제가 바라보고 갔던 전공이 영상이었어요.
-자연스럽게 아버님 영향을 통해 영상을 자주 접하고 재밌어하셨는데 마침 학교가 재미없었고, 그럼 새로운 걸 해보자! 했더니 또 마침 특성화고가 입시 설명회를 와서 진학하고 전공까지 하게 되신 거네요. 또 그 뒤로 전공이었던 영상 위주의 작업/일들을 하신 거고요. 지금은 이어서 대학 생활을 하고 계신데, 영상물이 아니더라도 나중에 하고 싶은 작업이 있으세요?
-저는 원래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서 어렸을 때 꿈이 배우였어요. 왜냐하면 배우는 모든 직업을 해볼 수 있으니까요. 물론 연기를 통해서 하는 거지만, 어느 날은 의사도 됐다가 변호사도 됐다가 할 수 있으니까- 어렸을 때 배우가 되고 싶었는데 나중에 생각해 보니까 배우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던 이유는 그냥 하고 싶은 게 많아서 해보고 싶은 게 많아서 그런 거구나- 느꼈어요. 크면서 좋아하는 게 선명해지면서 그게 문화 예술 쪽, 글, 그림, 사진, 영상 같은 거라는 걸 알게 됐고요. 그래서 최종적으로 하고 싶은 꿈을 말한다면, 문화예술복합공간을 꾸려서 하고 싶다- 그렇습니다.
-물리적인 공간을 말씀하시는 걸까요?
-지금 사실 온라인으로 운영하고 있는 게 있는데요. 온라인도 물론 좋지만 면대면으로 사람을 만나는 그 경험도 저는 소중하다고 느끼기 때문에 그런 기회를 만들고 싶어요. 그런 창구나 장을 마련하고 싶다는 게 있는 것 같아요…
-예술문화복합공간을 만들고 그곳에서 면대면으로 예술 문화에 대해서 많이 나누고 싶으신 걸까요?
-맞아요. 근데 물론 제가 좋아하는 게 문화 예술이지만 저는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세계가 어떻게 보면 결을 같이하고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그 사람이 살아왔던 시간들이나 생각들, 경험들 자체를 나누는 것도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아, 예술에 한정 짓기보다 살아가는 사람들의 인생인 문화, 예술과 문화 중 문화에 좀 더 초점을 맞춘 거라고 생각하면 될까요?
-네, 그렇습니다.
-그럼 오프라인 공간도 생각이 있으시지만, 지금은 온라인으로도 그런 공간을 만들기 위해 시도하고 계시는 중이라고 하셨는데 그 공간은 어떻게 구성해 나가고 계세요?
-사실 한동안 온라인 공간에 조금 소홀했어요. 아무래도 제가 학생이다 보니 학업이나 과제, 이런 것들 때문에 시험 기간에는 뜸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거든요. 근데 처음 생각하게 된 건, 제가 문화예술복합공간을 만들고 싶다고 계속 이야기를 하니까 애인이 먼저 제안해 줬어요. 왜 지금 당장 만드는 건 안되냐고 하면서요. 저는 지금 당장 자본적으로나 여러 여건이 안된다고 생각했는데 애인이 그렇게 얘기해 준 걸 듣고 보니 온라인으로 하면 지금도 뭔가를 이뤄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인스타그램 계정을 먼저 만든 게 시작이 됐어요. 그냥 솔직하게 지금은 20대 대학생이지만 언젠가 이런 공간을 만들고 싶고, 우리, 나의 이런 도전기를 지켜봐 줬으면 좋겠다는 릴스로 첫 시작을 열게 된 것 같아요. 게시물이나 콘텐츠는 영화제 소개, 상영하고 있는 영화나 책 소개 등 추천해 주는 콘텐츠들을 하다가 이 계정을 하나로 연결 짓는, 관통하는 게 없을까 고민하고 펜팔을 생각해 냈어요. 펜팔 친구를 모집하고 그 사람들에게 최소 일주일에 한 편씩 메일을 보내주는 메일링 서비스를 했었습니다.
-펜팔… 이지만 약간 일방적인 걸까요? 메일링 서비스는 일방적인 소통이잖아요. 펜팔은 쌍방적 소통이고요. 근데 그 둘을 합친 느낌인가요?
-네, 맞아요. 물론 제가 더 많은 사람들에게 보내면 좋을 수도 있지만 딱 인원을 답장을 받았을 때 읽어볼 수 있겠다 싶은 만큼 한정지어서, 제가 먼저 메일을 써서 보내드리고 원하시는 분들에 한해 답장을 받아서 그 답신을 제가 다음에 쓰는 메일에 인용하거나 나눌 수도 있게끔 했었어요.
-그럼 정말 펜팔이라는 특성과 메일링 서비스라는 특성이 혼합되어 있는, 그 장점들이 잘 섞여있는 느낌이네요. 펜팔도 메일링 서비스도 아니니 펜팔 서비스,라고 해야 할까요? 참 생소한 단어네요.
-네, 저희는 그냥 펜팔 서비스라고 해요. ‘무료 펜팔 서비스 합니다’ 이렇게요.
-저는 나중에 하고 싶은 작업이 있는지 여쭈려고 먼저 이런 이야기를 꺼냈던 건데 은지 씨는 ‘나중에 이런 걸 하고 싶어요’하시면서 ‘그리고 그걸 이루기 위해서 지금 이런 단계를 밟아가고 있어요’라고 대답해 주신 게 개인적으로 인상적이에요. 앞으로 하고 싶은 미래의 꿈을 먼저 현재로 데리고 와서 진행하고 계신 느낌이랄까요? 너무… 멋진 것 같아요 (웃음)
-감사해요.
-그럼, 이 작업을 지금 진행하고 계신 거잖아요. 오프라인 공간도 만들고, 이렇게 저렇게 더 나아가기 위해서 먼저 온라인 공간을 운영하고 계신데, 아예 혼자 운영하고 계신 건가요?
-원래는 애인이랑 같이 시작을 했는데 하다 보니까 애인은 글 쓰고 사진을 남기는걸 아직 어색해하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거의 저 혼자 계정을 운영하고 중요하게 결정을 해야 하거나 게시할 때는 항상 같이 검토하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도움을 주고 있어요. 아무래도 인스타그램은 텍스트랑 이미지 기반이니까요.
-거의 혼자서 운영하고 계시다면 같이 검토하는 단계가 불필요하다고 느끼실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조금 더 번거롭게 그 과정을 거치시는 이유는 그런 도움이 필요하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처음엔 두 분이서 함께 시작했기 때문일까요?
-필요하다기보다는 같이 한다는 거, 애인에게 역할이 있다는 걸 느끼게 해주고 싶어서 그 의미로 확인을 받고 검토를 받는 과정을 거치는 것 같아요.
-애인 분에게 같이 하고 있다는 역할을 주기 위함이라는 말씀이시죠? 그럼 그 역할을 준다는 게 어떤 의미인가요?
-지금 애인과 반년 좀 넘게 만나고 있는데, 일단 초기 아이디어를 제공해 줘서 그런 면도 있긴 하지만 왠지 저의 미래를 떠올리는 과정에서, 애인이 같이 가는 사람이라는 느낌이 많이 들어요. 그래서 뭐든 준비할 때 같이 하는 것 같고 제 미래에 애인이 포함되어 있으니까, 그만큼 중요한 영향을 끼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니까 그렇게 되는 것 같아요.
-그럼 애인 분을 포함해서 은지 씨는 어떤 사람들과 상호작용을 하면서 살아가고 계신지 궁금해요.
-저는 일단 가족이 있을 것 같은데요. 원래 본가에서 가족 3명과 같이 살았었는데 이번 해부터 따로 살게 됐거든요. 지금은 자주 보지 못해서 이전과는 달라졌지만 큰 고민을 할 때 아무래도 주변 어른 중 가족이 먼저 떠올라서 가족들과 이야기들을 하고요. 또 애인에게 많이 의지하고 친구들이랑도 많이 만나는데요. 저는 특히 사람들에게 되게 영향을 많이 받거든요. 뭔가 고민이 있을 때도 여러 사람에게 다 이야기해서 의견을 들어보고 결정을 내리는 타입이어서, 영향도 많이 받고 영감도 많이 받아요. 저도 제 이야기를 나누려고 하는 편인 것 같아요.
-그럼 은지 씨가 상호작용하는 사람들의 유형을 나눠볼 수 있을까요?
-유형… 어렵군요. 어려운데요…
-어떤 특징이 있는 것 같다든지, 아니라면 어떤 유형과는 상호작용이 즐겁고 어떤 유형과는 좀 힘들다-라든지요.
-근데 저는 그런 게 딱히 없는 것 같아요. 그래도 제가 가까이 두는 친구들의 특징을 보자면 딱히 모난 부분이 없고 고집스러운 부분이 없다는 게 제 친구들의 한 면인 것 같고요.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을 줄 알고 존중할 줄 안다는 점이 제 친구들의 맥을 같이하는 부분인 것 같아요. 그렇지만 제가 또 어떤 사람들을 굳이 골라서 어울리려고 하지는 않는 것 같아요.
-살아가는 와중에 난 이런 사람들하고 만나야지 생각하지 않고 내 친구들은 어떤 사람이야-라고 특별히 정의하지 않는 편이신가 봐요. 그럼 같이 상호작용을 하면서 살아가는 관계 중 가장 아끼는 관계는 혹시 앞서 말씀해 주신 가족과 애인 분이실까요?
-저는 가족은 제가 선택할 수 없는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저를 가장 오래, 어렸을 때부터 봐왔으니까 그만큼 제가 모르는 저의 모습도 알고 있을 테고, 그래서 그 사람들이 없다면 저의 그 모습들이 기억 속에서 멀어지는 거기 때문에 그런 부분에서는 애틋하게 느끼지만 또 한 편으론 애증의 관계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요즘에는 가족보다는 제가 선택한 가족인 애인과 친구들이 가장 소중한 관계인 것 같아요.
-그럼 ‘내가 선택한 가족’이라는 관계는 은지 씨에게 어떤 의미예요?
-저를 받아들여줄 준비가 된 사람, 그리고 저 또한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받아들여줄 준비가 되어 있는, 그런 마음가짐이요.
-은지 씨는 가족이라는 개념을 그렇게 서로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고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들이라고 정의하고 계신가 봐요. 그럼 지금 정의 내리신 개념이 모든 사람들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나요?
-네.
-앞으로 또 만들어가고 싶은 형태의 가족이 있을까요?
-저는 일단 지금 사회적인 가족이나 결혼 제도를 회의적으로 느끼고 있었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나랑은 좀 먼 이야기 같고, 또 제 친구들 중에 비슷한 이유로 가족을 꾸리는 걸 굉장히 경계하거나 부담스럽게 생각하는 친구들도 많은 것 같아요. 저도 작년까지는 정말 가족에 대한 생각이 별로 없었거든요. 혼자 사는 세상이라고들 하는데 나한테 가족이 필요할까? 이런 생각도 하고 제가 가족에 대해서 애정도 있지만 한 편에 증오도 있었기 때문에 혼자서도 잘 살아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번 해 들어서면서 주변에 결혼을 생각하는 친구들도 있고 실제로 결혼을 한 친구도 있고 또 사회에 유의미한 변화들을 보면서 제가 꾸리고 싶은 가족을 생각하게 됐어요. 일단 지금 애인이 포함될 것 같고요, 그리고 그냥 만나는 사람들이 가족인 것 같아요. 같이 밥 먹고 같이 만나서 이야기하고, 그런 사람들이 가족인 것 같아요. 내가 무슨 일 있을 때 고민 없이 전화 걸 수 있는 사람들이요.
-함께 나눌 수 있는 사람들 말이죠? 딱 경계를 정하기보다는 내 바운더리 안에 들어왔다 나갔다 하는 사람들 모두 말이에요.
-맞아요.
-그럼 같이 나누는 삶은 어때요? 같이 나눈다는 거, 나누는 삶에 대해서 어떻게 느끼고 계세요?
-저는 원래 스스로를 되게 계산적이라고 생각했었어요. 왜냐하면 내가 아무리 좋은 것들이 있어도 나쁜 것들이 있으면, 플러스가 있어도 마이너스가 있으면 그냥 없는 것처럼, 똑같이 되는 것 아닌가-라며 계산할 수 없는 것들을 숫자로 매겨서 생각하려고 했던 것 같아요. 재고 따지고, 내가 손해일까, 이런 생각들을 많이 했었는데…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저도 조금씩 바뀌면서 나누는 삶에 가까워지고 있는 거 같아요. 예를 들면, 지금 애인과 같이 살고 있어서 그게 가장 먼저 예시로 떠오르는데요. 처음에 정한 규칙이 있었어요. 분리수거는 같이하자든가, 누가 설거지를 하면 누가 요리를 하자, 이렇게 정해 놓은 규칙이 있었는데 그걸 딱 정해놨어도 제가 더 하고 싶게 되는 부분이 있고 어떻게 보면 내가 손해를 보는 것처럼 보이는 일이더라도 내가 마음으로 조금 더 해줄 수 있고 이런 부분들이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나누는 삶 자체가 보듬어 줄 수 있는 마음, 상대방을 돌봐줄 수 있을 만한 마음인 것 같아요. 내가 물질적으로나 시간적으로, 체력적으로 여유롭지 않더라도 마음에서 우러나와서 할 수 있는 것들이요. 저도 잠을 잘 못 자고 소중히 여기면서 피곤해하지만 애인의 잠을 한 번 더 살핀다든가, 애인을 위해서 제가 불을 끄고 온다든가-하는 그런 마음들 말이에요.
-지금 굉장히 나누는 행위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많이 말씀을 해주시고 그 행위가 스스로 긍정적으로 변화한 지점이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은데요, 반대로 나누기 때문에 불편한 점들도 있을까요?
-나누기 때문에 불편한 점은, 저의 모습을 발견하는 것이요. 나누려고 할 때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정말 마음에서 우러나와서 다른 여유를 따지지 않는 때도 있지만 제가 가진 것이 얼마나 있는지 되돌아보고 내가 무엇을 나눌 수 있는 확인하는 때가 오는데 그때가 조금 힘든 것 같아요. 내가 어떤 면에서는 이렇게 작은 부분도 나누지 못하는구나, 나의 조급함이나 빡빡한 마음들을 깨닫게 되는 순간도 있고요. 그런 마음들이 있어서 문득 나를 되돌아보게 되고 그게 마음에 들지 않고 내 마음에 다 차지 않을 때, 그때가 좀 힘든 것 같아요.
-그 어려운 느낌을 극복하거나 넘기는 은지 씨만의 방법이 있으신가요?
-저는 제가 저를 사랑하는 거는 조금 힘들거든요. 근데 내 주변 사람이 나를 사랑할 거야, 내가 이렇게 해도 날 사랑해 줄 거야-라고 믿는 게 조금 더 쉬운 것 같아요. 최근에도 있었던 일인데, 제가 강박증이 있어서 하는 행동들이 있어요. 근데 그게 애인과 다르다 보니까 저는 상대적으로 부지런해 보이고 애인은 상대적으로 게을러 보여서 그게 맞지 않는다고 느꼈거든요. 근데 제 마음이 좀 가난해진 거죠. 나의 이런 점들이 없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에요. 근데 그 생각을 아예 뚝 끊어버리고 그래도 애인은 날 사랑해 주겠지, 나를 계속 기다려주겠지, 내가 바뀌도록, 더 좋은 사람이 되도록 지켜봐 주겠지-라고 생각하면 더 마음이 편해지는 것 같아요.
-그렇다면 또 반대로 나누기 때문에 나눌 수 있기 때문에 좀 더 근사하고 밝은 점들이 있을까요?
-나누면 행복이 2배가 됩니다.
-나누면 행복이 2배! (웃음)
-정말 그런 것 같아요. 저만 재밌는 이야기 알고 있으면 왠지, 저만 혼자 피식피식 웃기엔 좀 아깝잖아요. 근데 남에게 나누면 재미있는 사람이 두 명이 된다! 이것처럼 나눔도 행복이 2배가 된다!
-그 행복이 2배가 될 때 어떤 느낌이에요?
-저는 충만해지는 느낌이에요. 내가 가득 차 있는 느낌, 그런 것 같아요.
-함께하고 있다고, 같이 있다고 느끼게 되는 공간이 있을까요? 어떻게 보면 함께 나누는 것과 나누는 공간에 대한 니즈가 있으셔서 문화예술복합공간을 만들어가고 계신 거라고 느껴지는데, 개인적으로 함께 있다고 느끼게 되는 공간이 있으실까요?
-저는 원래 카페가 그랬어요. 저는 카페 가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고 카페를 가면 항상 뭔가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하는 것들이 좋았는데 지금은 여기, 이 집인 것 같아요. 전에는 본가에서 가족이랑 살았으니까 못 느꼈었는데 따로 이렇게 살게 되니까 누군가 손님이 왔을 때 차라도, 음료라도 내어주고 온다고 했을 때 며칠 전부터 무슨 메뉴로 음식을 해줄지 장을 봐오고 메뉴를 선정하고 레시피를 외우고 이런 것들이요. 또 원래 이 집은 제가 느끼기에 되게 휑했거든요. 완전 미니멀 라이프였는데 지금 트리도 넣고 의자도 당근 거래해서 넣고 침실도 꾸미고 하는 것들이 제 공간이라는 느낌을 더 더해주기도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남을 쉽게 들일 수 있어요. 제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좋아하는 공간에서 좋아하는 것들을 대접하면서 이렇게 있는 순간들이 좋은 것 같아요.
-어떻게 본다면 집은 정말 극도로 개인적인 공간인데 그것마저 나누고 싶고 나누고 있다고 느끼게 되는 공간이 된 거네요. 지금 원 가족 분들과 떨어져서 지내고 계시잖아요. 그 느낌은 어떠세요? 이곳에서 애인 분과 사시는 것보다 원가족과 살다가 떨어져 나와 사는 느낌이요.
-처음에는 굉장한 자유를 느꼈던 것 같고요. 두 번째로 느낀 건 오히려 멀리 있을 때 소중해진다는 그런 이야기가 있잖아요. 그래서 제가 가끔 본가에 갈 때마다 오히려 저를 더 반갑게 맞아주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너무 가까이 있고 얽혀 있어서 어떤 관계인지 몰랐던 것들이 떨어지니까 더 선명해지고 확실해지는 것 같아서 어느 정도 거리가 필요한 것 같다고 느껴요. 지금 본가까지 대중교통으로 한 시간 반 정도 걸리는데 나와 가족들에게는 그 정도 거리감이 딱 괜찮은 것 같다, 원래 항상 그 정도의 거리감을 느끼고 있었구나, 깨닫게 됐어요.
-원래 가지고 있던 거리감과 물리적인 거리가 이제야 비로소 맞아진 느낌인가 봐요. 그럼 은지 씨 삶에서 가장 소중한 의미를 띠는 단어나 개념이 있을까요?
-그냥 삶이 소중한 것 같아요. 원래는 별로 그렇게 느끼지 않았거든요. 성인이 된 후로, 그리고 새로운 사람들을 많이 만난 이후로, 제가 가족들과 거리를 두게 된 이후로 많은 것들이 바뀌었다고 생각하는데 그중 하나가 삶에 대한 태도인 것 같아요. 나이라는 건 그냥 살아만 있다면 거저 주어지는 거라고 나이를 잘못 먹은 사람도 잘 먹는 사람도 있는 거구나 생각했었는데 이제는 조금 생각이 달라졌어요. 그냥 살아냄 자체가 무언가를 더 많이 견뎌내고 더 많이 이겨냈다는 증거 같아서 삶이라는 개념이 가장 소중하게 느껴져요.
-은지 씨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삶, 아름다운 삶의 형태가 있을까요?
-항상 더 나은 내가 되는 삶, 그렇게 생각하고 바라고 그러려고 노력하면서 사는 삶이 이상적인 것 같아요.
-은지 씨의 삶에서 사랑 혹은 애정은 어떤 의미예요?
-없어서는 안 되는 거요.
-은지 씨 삶에서 사랑 혹은 애정의 중요도가 엄청 높은 거네요. 그럼 그것을 대할 때 은지 씨의 역할은 뭘까요? 물론 대상에 따라서 다르겠지만 그냥 딱 사랑과 애정이라는 단어를 봤을 때 떠오르는 나의 모습이 있나요?
-저는 사랑과 새끼손가락 하나 걸고 있는 것 같아요.
-새끼손가락 하나씩 걸고 같이 걸어 다니는 느낌일까요?
-네, 그런 느낌이요. 왜냐하면 일단 새끼손가락 하나를 걸었다는 게, 손을 놓을 때 되게 눈치 보일 것 같거든요. 절대 놓을 수 없을 것 같고 이거 놓으면 끝이다- 이런 느낌이랄까요. 그리고 어린아이들이 싸우면 너희 손 잡고 화해해-라고 하는 것처럼 뭔가 부끄럽고 쑥스럽지만, 아직 나 자신이 익숙하지 않고 낯선 것 같지만 그래도 손 잡고 있을 수 있는 그런 느낌이요.
-은지 씨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사랑의 이미지는 어떤가요?
-서로 기댈 때도 있고 기댈 수 있도록 어깨를 내어줄 때도 있고 결국 같이 비슷한 곳을 바라보면서 매일매일 더 나아지고 서로를 더 나아지게 하는 것이요.
-이상적으로 생각하시는 사랑이랑 삶이 되게 연결되어 있는 느낌이에요. 사랑 없이 못 산다고 하신 대답 때문에 사랑은 삶이라고 느껴지는데 그렇게 이해해도 될까요? 은지 씨에게 삶과 사랑은 흡사한 개념일까요?
-네, 근데 사랑의 대상이 꼭 사람이라거나 연애 감정에서만 그치는 것은 아니고 일이나 물건에도 같이 연결되는 것 같아요.
-그럼 미디어 속 그려지는 관계 중에서 어떤 관계가 사랑의 표본이라고 생각하세요? 영상물이 아니더라도 좋아요.
-이거 참 어렵군요… 이건 너무 어렵습니다. 생각할 시간을 주세요. 사랑의 표본… 그것은 뭘까요?
-이상적이지 않더라도 현실적인 사랑의 표본도 좋고요, 원하는 방향의 사랑도 좋고요.
-갑자기 떠오르는 <러브라이즈블리딩>이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크리스틴 스튜어트가 나오는 청소년 관람 불가 영화인데요. 약간의 스포를 하자면 그 영화에서 크리스틴은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정말 무슨 짓을 해도 다 덮어주고 이해해 주고 같이 내일로 나아가려고 하는 역할이거든요. 물론 영화다 보니 극적인 요소 때문에 도덕적인 면에서는 옳지 않은 부분이 있지만 그래도 제가 바라는 사랑은 그런 것 같아요. 제가 고등학생 때 친구가 해준 말이 있는데 네가 만약에 사람을 죽였다고 해도 나는 너를 먼저 안아줄 거라고 저에게 이야기해 줬거든요. 물론 제가 사람을 죽였고 안 죽였고는 비유적인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제가 어떤 짓을 저질렀어도 제가 나쁜 짓을 하거나 했더라도 저를 먼저 믿어주고 저를 먼저 안아주고 저에게 먼저 이야기를 묻겠다는 말 같았어요. 그 일과 좀 일맥상통하는 면에서 이 영화가 생각났습니다.
-그럼 진정한 사랑을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진정한 사랑을 위해 필요한 것은,
-(웃음) 그런 믿음일까요?
-(끄덕)
-사랑과 반대되는 개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원래 미움이라고 하려고 했거든요. 근데 사랑하면서도 미워할 수도 있을 것 같아서… 그렇습니다. 모르겠네요.
-인간이 항상 사랑을 하기는 어렵잖아요. 사랑을 하는데 방해되는 요소는 무엇이 있을까요?
-이거 참, 사랑을 하는데 방해되는 요소… 공교롭게도 이 사회입니다.
-이 사회, 이 사회… (웃음) 이 사회의 어떤 부분이 방해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세요?
-물론 저의 개인적인 느낌에 불과하지만, 날이 서있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요. 그래서 조금 더 친절한 사람들이 많아지고 좀 더 들을 준비가 된 사람들이 많아지면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요즘 갖고 계신 고민이 있다면 어떤 걸까요?
-제가 좋아하는 게 많아서 이것도 하고 싶고 저것도 하고 싶고 하다 보니까 일을 벌이기만 많이 벌여놓고 끝맺음, 뒷심이 조금 부족하다 생각을 해서, 어떤 것이든 지치지 않고 해 나가는 힘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게 고민입니다.
-그 고민에 대해서 도움이 필요하다고 느끼신다면 어떤 도움이 필요하신가요?
-진짜 현실적으로 저는 애인의 도움이 필요한데요. 왜냐하면 애인과 많은 시간을 보내거든요. 근데 아무래도 같이 있으면 놀고 싶고 좀 뒤로 미루고 싶고 쉬고 싶고 이런 마음이 찾아와요. 그래서 옆에서 더 할 수 있다고 응원해 주고 지지해 주고 어떨 땐 채찍으로 열심히 해! 말하는 사람이 필요한 것 같아요.
-지금도 갖고 있지만 앞으로도 평생 갈 것 같은 고민이 있나요?
-어렸을 때부터 생각했던 관념 중 하나가 죽음에 관한 건데, 그게 계속 고민인 것 같아요. 어렸을 때는 죽음을 잘 몰라서 두려웠다고 하면, 점점 커가면서 수많은 죽음들이 옆에 있다는 걸 피부로 느끼고, 이렇게 죽음이 가까이 있는데 우린 어떻게 해야 하지? 그게 저의 고민이 된 것 같아요.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럼 그건 과연 온전한 선택이었나? 선택지가 하나밖에 없는 선택이었다면 그걸 선택이라고 하긴 힘들잖아요. 그래서 죽음이란 건 뭐고 우리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고 어떻게 헤쳐나가야 하는지, 그게 저의 평생 갈 고민인 것 같아요.
-가장 은지 씨 다운 순간이 있다면 언제일까요?
-저는 몰랐는데, 애인이랑 신호등을 건널 때 숫자가 얼마 남지 않고 금방 빨간불이 되려고 초록이 깜빡거리면 뛰어가잖아요. 근데 제가 뛸 때마다 웃고 있더래요. 어린아이가 웃는 것처럼요. 드라마 촬영할 때 보면 어린아이들이 뛰는 장면에 항상 웃고 있어서 진지한 장면을 찍기 어렵다고들 하잖아요. 그것처럼 제가 뛸 때 웃고 있다는 사실을 애인이 발견해 준 거예요. 그 뒤로 자각을 하게 됐는데 정말 제가 뛸 때 웃고 있더라고요. 그 순간이 가장 저 다운 것 같아요. 웃고 있을 때요. 아무 생각 없고 아무 고민 없고 정말 반사적으로 자연스럽게 나오는 웃음일 때 말이에요.
-일상 중에 특별히 아끼는 시간이 있다면 언제예요?
-자기 전 시간을 가장 아끼는데요. 해야 할 일들을 거의 끝내고 자려고 취침을 도와주는 약을 먹고 누워있는 상태가 가장 소중한 것 같아요. 제가 원래 잠을 잘 못 자서 잠에 언제 들지? 하느라 그때가 좀 싫었거든요. 근데 요즘엔 약이 잘 맞아서인지 환경이 바뀌면서 마음이 편해져서인지 저도 모르는 사이에 잠에 들더라고요. 그래서 그 순간이 소중한 것 같아요.
-자연스럽고 편안한 상태일 때, 은지 씨 다운 순간과 연결되는 것 같아요. 그럼 요즘 어떤 게 은지 씨에게 원동력이 되나요?
-한국인 같은 말이긴 한데, 밥이요. 네, 밥. 저는 요리를 정말 하나도 할 줄 몰랐거든요. 거의 라면 정도 할 줄 알았는데 혼자 살게 되면서 요리를 어쩔 수 없이 하게 됐어요. 그래서 밥솥을 조작하는 법도 이번에 안 거예요. 혼자 미역국도 처음 끓이고, 정말 다 처음 해보는데 밥을 하고 챙겨 먹는 일, 그게 나를 돌보는 일이고 나에게 잘 차려서 내어주는 일이 힘이 되는 것 같아요.
-오늘 말씀하시는 중간중간 돌봄이라는 키워드가 나오는 것 같은데, 돌봄이 다음 시대 인간의 숙제라는 말들도 있잖아요. 4차 산업시대에 인간이 남아서 할 일, 업은 돌봄이 하는 이야기들이 있는데 그런 의미에서 돌봐주고 싶은 무언가가 있나요?
-맞아요. 일단 스스로를 가장 최우선으로 돌보고 싶고 저를 돌볼 줄 알아야 주변을 둘러볼 여유가 생기는 것 같아서, 저를 가장 먼저 돌보고 싶네요.
-닮아가고 싶은 모양의 존재가 있나요?
-나무요.
-어떤 부분이 닮고 싶으세요?
-제가 수목원을 다녔던 적이 있는데, 나무가 되게 오래 같은 자리에 서 있더라고요. 그리고 사람들은 나무에게 소원 빌고 나무를 끌어안고 나무랑 사진 찍고… 그래도 그냥 가만히 있어주는 그런 모습이 되게 좋았고요. 그 수목원에 쓰러진 나무가 전시되어 있었는데 그 앞 팻말에 뭐가 꽂혀있어서 봤더니, 이번에 천둥을 맞고 쓰러는 나무- 또 이번에 무슨 일이 있어서 쓰러진 나무- 이렇게 쓰여 있더라고요. 그걸 보고 나무는 쓰러져도 나무다. 그게 좋았어서 나무처럼 되고 싶어요.
-10년 뒤에 은지 씨가 갖고 있길 바라는 무언가가 있다면 뭐예요?
-10년 뒤면 나이가 꽤 있군요. 10년 뒤에도 주변에 사람들이 좀 많았으면 좋겠어요. 사랑하는 사람들, 저를 사랑해 주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았으면 좋겠어요.
-그럼 10년 전 은지 씨는 무엇을 바랐을까요?
-10년 전에 저는… 그때도 사람을 바랐던 것 같아요.
-지금 은지 씨는 바라던 걸 갖고 있나요?
-네.
-그럼 반대로 지금 은지 씨가 10년 전 은지 씨에게 주고 싶은 게 있어요?
-네, 스스로를 돌볼 수 있는 힘이요.
-살아가면서 자주 찾게 되는 작품이 있나요? 있다면 그 작품을 은지 씨 언어로 표현해 주세요.
-자주 찾게 되는 작품, 유진목 시인의 시를 좋아하는데요. 제가 좋아하는 시들을 적어놨거든요. 그래서 그때그때 떠오르는 것들이 다르기는 한데요. 유진목 시인의 시도 좋지만 이 시는 이슬아 작가가 서평을 쓴 게 더 좋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소개해드리자면, 제가 고등학생 때 팟캐스트를 듣고 있었어요. 이슬아 작가의 <이스라디오>라는 팟캐스트를 들었는데 어느 날 시를 한 편 소개해주더라고요. 그게 작가의 책 <너는 다시 태어나려고 기다리고 있어>를 따와서 한 거였는데요. 이슬아 작가가 지금 연인이신 하마라는 분과 놀다가 이제 자려고 했는데 그 하마가 되게 살기 싫은 듯한 얼굴을 하고 있었나 봐요. 그래서 이렇게 ‘너는 다시 태어나려고 기다리고 있어’라는 구절을 떠올리면서 나는 네가 다음 날에도 다시 일어나고 싶은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다. 그리고 아침에 일어나면 너랑 식물원에 가고 싶어-라고 하면서 팟캐스트가 마무리되는데, 그 작품, 그 서평을 두고두고 꺼내서 보는 것 같아요.
-요즘 다른 사람들과 같이 보고 싶은 작품이 있나요? 있다면 그 이유도 궁금해요.
-요즘 재개봉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괴물>이라는 작품을 같이 보고 싶은데요. 제 친구들은 이미 많이 봤을 거라 같이 볼 수 없어서 그게 좀 아쉽지만 같이 보고 싶은 이유는, 순수하게 사람을 보는 마음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작품 같아서 같이 보고 싶고요. 또 하나가 더 있어요. 샬로 웰스 감독의 <애프터 썬>이라는 작품인데 이건 많이 모르는 분들도 계실 수 있어요. 기억에 관한 영화거든요. 내가 돌아보는, 내가 어떤 것들을 돌아보고 그 사람은 어떻게 했을까, 다른 시간에서 한 사람을 이해하게 되는 그런 작품인데 두 작품 모두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고 나의 마음과 그 사람의 마음은 어떤지 돌아본다는 점에서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하고, 같이 보고 싶습니다.
-네, 끝났습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
-이렇게 급작스럽게 끝내시는 거예요?
-네, 그렇습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 해주세요.
-오늘 제가 무슨 말을 했는지 모르겠어요. 저의 어떤, 이런 짧은 이야기들로, 표현들로 제가 판단될 수 있다는 생각에 조금 부끄럽기도 하고 두렵기도 한데요. 예쁘게 봐주세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이렇게 어색하게 끝내는 거예요?
-네… 어색해요.
-감사합니다. 어색하니까 노래를…
마주한 은지의 얼굴엔 생기가 어려있었다. 좋아하는 것들을 향한, 넘치는 생기 말이다. 난 그것을 더 만나보고 싶어 졌고 마침내 인터뷰를 요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