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첫' 카메라
요즘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아니, 요즘 카메라를 갖고 있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작업용 카메라를 가진 직업인들을 제외하고 보급형 카메라만 센다면 말이다. 그래도 근 5년간 '레트로'라는 이름으로 복고가 유행하면서 필름 카메라부터 십 년 전 디지털카메라까지, 카메라를 찾는 사람은 많이 늘어난 추세다. -위 문장들을 적고 1년이 지난 24년 여름, 이제 카메라는 종로의 여느 상가에서나 만날 수 있는 것에서 다시 한 집에 하나씩 있는, 기록 유행의 산물이 되고 있다.-
그렇지만 보급형 카메라가 또다시 대중적 인기를 누리기엔 불편함이 참 많은 게 사실이다. 대중적인 보급형은 무엇보다 편리성이 강조된다. 편리하지 않은 도구들은 바쁜 현대인들에게 사랑받기 어렵기 때문이다. 공중 전화기가 줄고 휴대 전화기의 인기가 높아진 건 무선 인터넷 사용이 용이해진 스마트폰의 등장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그리고 그 휴대 전화기에는 이미 보급형 카메라 렌즈가 심겨 있으니, '카메라 기능만 남은 (보급형) 카메라'에게 더 남은 쓸모가 있을까?
내 기억에서 가장 오래된 우리 집 카메라는 캐논의 검은색 똑딱이 카메라다. 그 시절엔 카메라가 내장된 전화기 따윈 없었으니 작은 똑딱이 카메라는 말 그대로 어느 집에나 존재했다. 내가 두꺼운 브라운관 텔레비전 앞에서 엉덩이를 씰룩 흔들거나, 어눌한 발음으로 크게 동요를 부르거나, 이젠 누구도 기억하지 못하는 이유를 가진 서러운 눈물을 흘릴 때, 그때마다 까만 똑딱이 카메라는 눈꺼풀을 열고 나를 담았다. 그 몇 번의 깜빡임으로 우리가 그날들을 흐릿하게나마 기리며 웃게 해 줄 사진들을 주었다.
우리 집의 두 번째 카메라 또한 캐논의 똑딱이 카메라였는데, 청바지 주머니에도 쉽게 들어갈법한 작은 크기의 회색 카메라였다. 첫 번째 카메라는 건전지 접합부가 부러져 망가졌지만-언젠가 꼭 종로의 오래된 수리점으로 이송해 줄 테다- 이 카메라는 아주 잘 돌아간다. 나는 이 카메라만을 사용해 영상을 찍고 편집해서 그 영상을 친구들과 공유한 적도 있다. 물론 영상을 찍는 것은 아주 찰나, 잠깐이다. 전용 배터리의 수명이 다했는지 금방 닳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면 우리 가족은 한 달에 한 번쯤 가까운 코스트코 안에 숨겨진 인화소를 찾았다. 어린 난 신이 난 걸음으로 인화소 문 앞까지 달리곤 했다. 들어가지 못한 채 열리는 문 틈 사이로 보이는 어른들이 주고받는 투박한 빨간 무늬의 봉투. 그 봉투가 두툼할수록 나는 좋아했다. 분명 그 시절에만 온전히 누릴 수 있는 낭만이 있다.
난 열일곱이 넘어서야 휴대전화기를 샀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전화기를 가지고 있던 몇 친구들은 날 신기하게 생각했다. 지금의 나 또한 열일곱에 첫 스마트폰을 쥐는 사람이 있다면 신기해할 테지만 어린 내겐 전화기가 없는 게 큰일이 아니었다. 대단한 신념도 없었다. 그저 들고 다닐 전화기가 필요치 않았던 것뿐이다. 가까운 사람들 번호는 죄다 외우고 급한 일이 생기면 공중전화기를 찾거나 근처 가게에 들러 '전화 한 통만 할 수 있을까요?' 물으면 그만이었다. 2010년대 초반까지는 가능했던 일 같다. 전화기가 없냐고 묻는 질문에 배터리가 없다거나 잃어버렸다고 하면 그만이었다. 그렇게 남들 다 있는 전화기도 없이 외출하던 그 시절 내 가방 속엔 대신 값싼 필름 카메라가 자리 잡았다.
내 사진첩엔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인물 사진이 많지 않았다. 카메라로 찍은 사진들을 모아둔 사진첩 속엔 온통 풍경뿐이었다. 특히 내성적이었던 어린 내가 사람을 자주 마주치지 않기도 했고 타인을 내가 기록하는 것에 대한 부담감이 많았다. 그러다 보니 움직임에 눈치 보지 않아도 되는 자연물과 건축물을 담아내는 것에 기쁨이 생겼다.
내가 전화기보다 나만의 카메라를 먼저 장만한 것과 그 카메라로 담은 세상은 내게 무심했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당시의 내 욕망을 가리키는 것 같다. 어쩌면 나는 내 기억보다 더, 예측할 수 없는 시선들에 지쳐있었던 걸지도 모른다. 누구나 그런 시간들이 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관계에 지쳐서 그 어떤 판단의 시선도 받아낼 수 없는 그런 날들은 누구에게나 언제든 올 수 있다. 그리고 나는 그 날밤들을 카메라로 보냈다는, 그런 이야기다.
몇 년 동안 전화기 없이 카메라 하나만 챙겨 나가니 주변 어른들은 내게 오래도록 먼지 쌓인 중고 카메라들을 하나씩 선물해 주셨다. 그 카메라들은 선반에 하나둘씩 쌓여 열개가 넘었는데, 난 이제 전처럼 카메라만을 들고나가는 날이 없다. 그 답답하고도 넓은 세상이 그리우면서도 스마트폰 속 좁은 지도 속에 쉽게 익숙해져 버려 벗어날 용기가 작다. 가끔 전화기 없이 길을 헤매다 마음에 드는 풍경 앞에서 사진을 남기는 꿈을 꾼다. 그 꿈에서 깨어나면 눈을 비비며 변해가는 나를 생각한다. 내게 또 그 날들이 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