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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김 Nov 09. 2023

첫 만남을 수집합니다

문신사의 '첫' 문신

안녕하세요?


우리, 처음 만났네요.

'누구에게나 처음은 있다'는 흔한 말. 흔한 것이 늘 옳은 것은 아니지만 이 문장을 부정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우린 나이를 먹어가더라도 늘 처음을 마주치게 된다. 처음은 늘 어렵기도 하고, 기대에 가득 차도록 만들기도 한다. 지금 나는 전자에 가깝다. 나의 브런치에서 첫 글, 왜 기대보다 어려움이 먼저 찾아왔는지는 모르겠다. 잘하고 싶은 마음이 앞섰기 때문이겠지? 그럼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을 하자. 나의 필살기를 출사표로 던져보자.


나를 소개한다. 나는 카페에서 커피를 내리고 문신 작업을 하는 건축학도. 여기까진 나의 공식적인 소개말이지만 나는 그보다 뒷장에 적어낼 이야기가 더 많다. 나의 제일 커다란 소개말은 수집가다. 그리고 우린 이 글을 통해 처음 만나게 되었으니, 첫 만남에 대한 수집작들을 소개해볼까 한다. 수집가의 면모를 뽐낼 기회를 놓칠 순 없지. 수집가는 자신의 마음에 들어온 것이라면 무엇이든 수집한다.




타투? 그거 지워져?

문신과 연결된 첫 만남을 소개한다. 나는 문신사, 그러니까, 더 널리 알려진 이름으로 말하자면, 타투이스트다. 꽤 오래 작업했거나 능숙한 문신사는 아니지만 그래도 몇몇 친구들에게 작업을 하며 명맥을 이어가는 중이다. 사실 나 스스로 문신사라고 밝히는 일이 아주 자주 있는 일은 아니다. 그래서 명줄만 겨우 이어나가고 있나 보다. (친구들아 고마워.) 내가 문신사임을 먼저 밝히지 않는 것은 개인적인 부끄럼도 있지만 사회적 시선 탓이 크다. 여름이면 다들 내 몸에 있는 문신들을 보며 묻는다. "타투? 이거 지워져?", "나중에 후회 안 할 것 같아?", "부모님께 안 혼났어?" 다행히 나는 문신이 있다고 일을 하기 어려운 직종을 갈 예정이 아닌지라 그것에 대한 걱정들은 듣기 어렵지만, 그렇지 않았다면 더 많은 말들에 휩싸였겠지. 문신에 대한 좋지 않은 시선들은 굳이 일일이 표현하지 않아도 다들 알 것이라 생각한다. 내가 직접 말하지 않아도 주변인들이 대신 밝히는 경우도 꽤 있다. 신기하다거나 자랑하는 듯한 느낌으로 말이다. 그렇담 그 자연스러운 분위기에 상대는 말한다. "눈썹 문신 돼?"



타투는 왜 했어요?

나를 잘 아는 사람이라면 내게 문신이 여럿 있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다만, 그래도 간혹 물어보는 사람들이 종종 생긴다. "쇄골에 있는 그 타투, 무슨 뜻이야?" 난 수십 번을 들어온 질문이지만 매번 머쓱해지는 스스로를 만난다. 그리고 난 대답한다. "제 이름 한자를 거울 방향으로 뒤집어서 새긴 거예요. 뜻을 늘 생각하면서 살고 싶어서요." 이렇게 말하고 나면 부모님 이야기는 쏙 들어간다. 내 이름은 '사랑이 임한다'는 뜻을 가진다. 사랑이 턱없이 부족한 이 세상에서 사랑을 기억하고 싶어 새겼다는데, 나쁘게 말할 사람이 몇이나 있겠는가. 그렇다고 부모님께 혼이 나지 않았느냐, 그건 또 아니다. 기특한 건 기특한 것이고, 문신은 문신이다.


난 문신을 왜 하고 싶어 했을까. 나 어렸을 적엔 눈에 띄는 부위에 문신을 한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그리고 정말 가끔 마주치게 되는 당시의 문신인들이 멋져 보인 적도 없다. 그저 생각이 많고 무엇에든 의미를 찾고 싶어 하는 내게는 문신이라는 행위 자체가 멋있었던 것 같다. 자신의 몸에 자신이 원하는 글 혹은 그림을 그려 넣는다니, 어떤 일도 자신 있게 마음대로 하지 못했던 때의 나에겐 아주 낭만적이었다. 그 기억이 어렴풋하게 남은 지금도 문신은 여전히 낭만이 있다.


중학생즈음이었나, 어느 순간부터 나는 성인이 되면 몇 개의 문신을 새길 거라는 의지 아닌 믿음이 있었다. 믿음이라는 표현이 이해가 어려울 수 있다. 당시 나는 변화의 폭풍 속이었고 그 변화 속 중심을 잃지 않는 태풍의 눈 같은 개념 혹은 관계를 원했다. 문신이라는 건 영구적으로 남는 것이기에 흔들리는 자아를 관통하는 '무언가'가 될 수 있을 것 같았고 성인이 되면 그 '무언가'를 가지고 있을 것 같았다. 나에게도 그런 teenage fantasy가 존재했었다. 물론 성인이라는 나이가 되자마자 바뀌는 햇수처럼 갖게 될 '무언가'는 아니란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어쩐지 열아홉 번째 돌이 있는 가을이 되어도 '무언가'의 형상은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가장 많이 불리는 내가 가진 두 번째 이름을 택해 새겼다. 그리고 그 문신의 뜻이 되려 내 삶을 관통하는 '무언가'가 되었다.



타투가 하고 싶어

문신을 받고 돌아오는 광역 버스에서의 시간은 돌이킬 수 없는 일을 저질렀다는 두려움과 새로운 길이 열렸다는 설렘이 가득한 귀갓길이었다. 집에 도착하기도 전에 아버지의 한숨을 들어야 했지만 감수할만한 일이었다. 한동안 문신을 받으며 문신사님과 이야기 나누던 그 순간을 잊을 수 없었다. 난 문신을 받은 사람의 모습만 상상해 왔지, 문신을 주는 사람에 대한 상상은 해본 적이 없었다는 걸 깨달았다. 모두가 나와 같은 마음으로 문신을 받는 것은 아니겠지만 나와 같은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다면 문신을 주는 마음은 얼마나 벅찰까, 상상하고 상상했다.


당장 문신사가 되고 싶었다. 매일 상상을 아끼지 않으며 재미를 느꼈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았다. 나는 대학 생활을 하며 반수를 하던 아르바이트생이었다. 시간을 아무리 쪼개도 남는 것이 없었다. 체력도 깊은 구렁텅이에 빠져 응급실까지 가던 날들이었다. 그 시기를 겨우 넘기고 나니 새로운 학교에 적응해야 했다. 그 또한 없는 체력을 끌어내느라 쉽지 않았다. 때를 기다리며 돈을 아끼고 아끼다 다음 여름 방학에 문신을 배워야겠다고 다짐 아닌 나와의 보상 약속을 했다.

막상 여름이 되고 방학이 되고 나니 막막했다. 인스타그램에 검색하면 나오는 홍대 부근의 학원을 다녀야 하나, 싶어도 집에서부터 홍대는 너무 멀고 그 장르로 문신을 입문하고 싶지 않았다. 또 몇 정보를 찾아보니 흔히들 잡는 기계는 그렇게 무겁다던데 난 이미 좋지 않은 손목을 가지고 있었다. 문득 내게 문신을 주셨던 문신사님이 떠올랐다. 그분은 기계 없이 바늘을 연필대에 고정하고 손수 찍어내시던데, 내가 할 수 있는 문신은 그런 핸드포크인가 보다, 생각했다. 그리고 문신사님의 계정 프로필에 들어가니 이거다- 싶었지만 따로 문하생을 두는 분 같지 않았다. 며칠을 혼자 좌절했다. 이 분께 배움을 얻고 싶은데 그럴 수 없을 것 같은 좌절이었다. 그러다가 번뜩 죽을 쑤어도 도전해 보자는 마음이 들었다. 참 이상하다. 난 평소 쉽게 도전하는 사람이 아닌데, 문신사님 연락처에 무작정 짧지 않은 연락을 남겼다. 떨리는 마음으로 전화기를 덮어두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답장이 왔다.


"작업실에 한번 놀러 올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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