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서기

by Daddy Essay Whisky


요즘 들어 아들은 혼자 해보려는 시도를 많이 한다. 혼자 밥 먹기는 물론, 옷도 혼자 입고 벗으려 하고, 손도 혼자 씻는다고 말을 한다. 지난 주말에 처음으로 변기에 똥 누기를 성공한 이후 자신감이 하늘을 찌르고 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많이 컸네’ 하는 생각과 함께 뿌듯함이 앞서지만 한편으로는 서글퍼진다. 언젠가는 나의 도움 없이 모든 일을 혼자 할 수 있는 날이 올 것이고, 그때가 되면 아들도 ‘홀로서기’를 할 것이란 생각 때문이다. 아직도 먼 날의 이야기이고 당연히 맞이해야 하는 것이지만, 문득 찾아오는 서글픈 마음에 홀로서기에 대해 생각해본다.


‘홀로 선다’는 것은 스스로 삶을 영위해 나갈 수 있음을 말한다. 타인의 물질적•정신적 도움이 없이도 온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 모습, 이를 위해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부모로부터의 독립’이다. 삶의 가장 든든한 조력자인 ‘부모로부터 독립’을 얼마나 잘하는지에 따라 ‘홀로서기’의 시기와 순도가 결정된다.


‘부모로부터의 독립’은 세 가지로 이루어져 있다. 첫 번째는 ‘육체적 독립’이다. 혼자서 자신의 신체를 자유자재로 움직이고, 생활에 필요한 행동을 할 수 있는 단계를 말한다. 보통 유아기 가 지나면 완료가 되는데, 나는 초등학교 입학하면서 ‘육체적 독립’을 이루었다. 7살 때까지 소변을 잘 가리지 못하여 이웃집에 소금을 얻으러 가곤 했던 기억이 있다.


두 번째는 ‘경제적 독립’이다. 첫 번째 독립에서 두 번째 독립까지는 꽤 긴 시간이 걸린다. 단지 개인의 용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식비, 학비, 월세, 전화요금 등 부모의 지원을 받지 않고 생활을 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통은 경제 활동을 시작해야 ‘경제적 독립’이 가능해지며, 대개는 결혼을 하면서 독립이 이루어진다. 나는 첫 직장에 취업을 하면서 그런 독립을 이루었다. 넉넉지 못한 부모의 형편으로 중학교 때부터 아르바이트를 하며 용돈을 벌었지만, 역부족이었다. 서울로 대학을 와서 생활비를 지원받으며 맘고생이 심했던 터라 취업이 확정되었을 때, 쾌재를 외치며 경제적 독립을 쟁취했다.


마지막은 ‘심리적 독립’이다. 이 독립은 사람마다 시기 차가 크다. 대체로 결혼을 해서 가정을 꾸린 사람들이 이 단계에 이르기 쉽다. 가정을 꾸리게 되면 가족의 범위가 달라지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부모로부터의 심리적 독립이 이루어진다. 나 역시도 아이를 낳고, 육아를 하면서 심리적 독립을 이루었다. 아이가 생기기 전까지는 결혼을 했지만, 부모에게 의존하려는 경향이 많았고 나에게 물질적 지원을 해줄 거라는 기대도 많이 했다.


하지만 아들을 만나고 육아를 하면서 가족의 기준이 달라졌고, ‘우리 가족’만의 방향을 설정하고 그것을 향해 나아갔다. 이 ‘방향’이 일반적이지는 않았지만, 중요한 것은 ‘우리의 방향’ 이기에 개의치 않았다. 아내의 경우는 나보다 심리적 독립이 빨랐다. 그녀는 아이가 생기기 전부터, 어쩌면 결혼 전부터 독립의 세 단계를 이룬 것 같다고 한다. 또 현재 미혼이 친구 한 명은 대학교 때부터 심리적 독립을 이룬 듯했다. 학비나 생활비 모두 본인이 벌어 생활하였고, 현재 부모님들의 결혼 독촉과 다른 집안일 등에 구애받지 않고 삶을 살아간다. 이처럼 ‘심리적 독립’은 개인차가 크다.


시기야 어쨌든 결론은, 홀로서기 위해서는 ‘부모로부터 독립’을 이루어야 한다는 것이다. 독립을 통해 온전한 개채로서 삶을 버티고 지탱할 수 있다. 그리고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 삶을 이루어 나갈 수 있다. 가족은 그렇게 재탄생되며, 인류는 그렇게 종족을 이어나가고 있다.


그리스 철학자 에피데투스는 ‘홀로 존재한다는 것이 독립된 인간의 진정한 상태’라고 말했다. 또 심리학자 클라크 무스타카스는 ‘인간은 외로움을 통해 삶과 자아, 진정한 욕망, 존재의 의미, 타인과의 충실한 관계를 찾을 수 있다’고 했다. 자아를 발견하고, 더 나은 삶을 위해 독립은 필수 불가결하다.


돌이켜보니, 난 부모로부터 독립하기까지 40년이 걸렸다. 평균 기대 수명의 절반을 부모와 엮여 있었던 셈이다. 그 기간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는 것이지만, 한편으로는 좀 더 빨리 독립을 했으면 좋았을 것 같다. 만약 그랬다면, 지금보다 더 깊고 단단한 자신을 만날 수 있었을 거란 생각이 든다. 그래서 아들은 나보다는 이른 시기에 독립을 이루길 바라면서도 빨리 자라는 게 아쉽기만 하다. 고민하고 갈팡질팡하는 아빠를 보며 아들이 한 마디 한다.


“아빠, 응아 하고 싶어요”


이제 응아에는 상당한 자신감을 가지고 미리 뿌듯한 표정을 보이는 아들에 그저 행복해진다. 아들 덕에 생각이 깊어진다. 육아(育兒)는 육아(育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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