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 기운이 벌어진 옷틈으로 들어와 맨 살을 스치고 지나갔다. 경련같은 떨림을 느끼고, 단추를 여미우며, 고개를 푹 숙이고 걸어갔다.
내 눈에 보이는 발끝에 무언가가 사뿐히 내려앉았다. 눈 이다. 첫 눈.
아이 손톱보다 작은 실눈자락들이 폴폴 떠다니고 있었다. 순간 보고 싶어졌다. 그녀에게로 가는 지하철에 올랐다. 십년전 그랬던 것처럼.
딱 십년 전, 그녀를 만난지 얼마되지 않았을 때, 눈이 많이 온 날이었다.
만난 후, 처음으로 눈이 쌓인 날이었다.
그녀와의 모든 것에 의미를 부여하고자 했던 나는, 퇴근 후, 전철을 타고 그녀에게 갔다. 전철은 두어 시간을 달렸다. 엉덩이가 뻐근해질때 즘, 그녀가 있는 곳에 도착했다. 그 곳은 내가 있던 곳 보다 눈이 더 많이 쌓여 있었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설국이었다' 라는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소설 '설국'처럼 그곳은 눈에 덮여있었다. 맨 손으로 그녀에게 가기 무안했던 나는 근처 꽃집으로 갔지만, 이미 늦은 저녁에 폭설까지 내린지라, 가게는 모두 문을 닫은 후였다. 길가 잔디밭에 아직 추위를 자각하지 못한 노란 국화 몇송이를 조심스레 꺾어,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 여기 앞이에요..."
아직도 그렇지만, 그녀에게 가면 난 수줍은 소년이었다. 마치 풋사랑 소녀에게 편지를 주는 소년 처럼 수줍게 말하고, 놀란 그녀를 기다렸다. 그녀가 나오고, 노란 국화 몇 송이를 전해주고, 길 건너 카페에서 따뜻한 커피 한잔을 마시고, 다시 두어 시간을 돌아왔다. 헤어지기 전까지 그녀가 잡아주었던 손의 온기가 돌아오는 내내 손에 남아 있었다.
이번에는 십년 전과는 다르게 따로 꽃은 준비하지 않았지만,
그녀는 여전히 동그란 웃음으로 날 어루만져주었다.
눈을 보면 생각이 나서 달려갈 사람이 있다는 것,
내가 그녀를 만난 것이 세상에서 가장 잘 한 일이라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