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의 아침을 지나 봄의 저녁으로

오스트리아 빈

by 신지명

오후 5시가 넘어서 출발하는 비행기였지만 오전에 특별한 일정을 잡지 않았다. 호흡이 긴 여행인 만큼 서둘지 않고 여유 있게 움직여야 마지막까지 지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머물렀던 곳을 정돈하고 필요한 물건들을 다시 한 번 점검하고 앞으로 만나게 될 시간을 계획하는 일은 서둘고 싶지 않았다. 같은 의미로 우리의 긴 인생 여정 중 지금의 시간은 충분히 호흡을 가다듬고 걸음을 쉬어야 할 때가 맞는 것이겠지. 모든 것을 놓아버린 지금의 시간에 대한 불안이 잠시 밀려올라와 숨을 길게 내쉬어 몰아내었다.
오후 두 시가 되어서야 호스텔을 나섰다. 아무렇게나 음식을 먹고 어지르는 사람들, 음악을 틀고 몸을 흐느적거리며 춤을 추는 어린 소녀들이 가득한 방종의 호스텔 문 밖은 너무나도 조용했고 눈이 다시 내리고 있었다. 그러나 모스크바의 첫날처럼 춥지도, 날카롭지도 않았다. 살포시 흩날리는 눈은 봄을 향해 떠나는 우리에게 기억되는 겨울의 마지막 인사였다.

여유 있게 움직였음에도 불구하고 브누코보 Vnukovo 공항의 출국 심사대에서 나를 보내주지 않는 통에 비행기 탑승시간에 쫓겨야만 했다. 심사원은 내 여권을 한참 들여다보더니 옆으로 비켜서서 기다리라고 했다. 무슨 문제가 있냐고 물었지만 '노 No!'라는 짧은 대답만 돌아왔다. 그 여자는 지나가던 동료에게 내 여권 맨 뒷장에 적힌 내 연락처를 가리키며 무어라 말을 했다. 나는 냉큼 끼어들어 내 전화번호라고 말해주었지만 그들은 신경도 쓰지 않았고 그 직원은 내 여권을 들고 보이지 않는 복도 너머로 사라져버렸다. 무슨 일이냐고 다시 물었지만 심사원은 손만 한 번 내젓고는 여전히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질문도 하지 않고 더 이상 오지 않는 승객을 기다리며 정면만 응시하고 있었다. 비행기 시간이 다 되었다 재촉을 해보아도 꿈쩍하지 않았다. 진작 심사를 마치고 나선 남편이 문 저편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을 보니 결국에 하지 못한 거주자 등록이 문제 되는 것 같지는 않은데... 20여 분이 지나고 나서야 또 다른 여자가 내 여권을 들고 나타났는데 이번에는 그것을 펼쳐 들곤 어딘가로 전화를 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내가 무슨 암호라도 적어놓고 다니는 간첩이라도 된다는 말이냐? 무뚝뚝하고 무책임한 심사원은 동료에게 건네받은 내 여권에 도장을 쾅쾅 찍고는 무심하게 내밀었다. 뭐라고 설명 좀 해보시지? 하는 눈빛을 던져보았지만 돌아오는 것은 자신이 할 일은 이미 끝났다는 냉랭한 태도뿐이었다.
아르바트 거리의 연설하는 청년과 함께 러시아가 나에게 남긴 두 번째 미스터리였다.

두 시간 반을 날아 건너온 오스트리아는 공항에서부터 완전히 다른 세상이었다. 입국 신고서도 쓰지 않았고 입국심사원은 내 여권을 받은 지 1초도 되지 않아 도장을 쾅쾅 찍어 건네주었다. no paper! no question! 여권의 빈 장을 찾는 것 같지도 않았는데 도대체 어디에 도장을 찍었나 찾아봤더니 실밥이 지나가 제일 잘 펴지는 그곳에 비엔나 도장 하나가 덩그러니 찍혀있었다. 우리가 지나가는 동안에도 사람들의 눈길이 훨씬 많이 느껴졌고 얼굴을 마주치는 일도 잦았다. 머리를 멋스럽게 빗어 올린 공항 직원조차도 어느새 러시아에 젖어버린 나에겐 신선해 보였다. 이곳에 오고 보니 러시아가 생각보다 더 경직된 곳이었음을 실감했다.

시내로 들어가는 s-bahn 열차를 타고 메들링 Medling 역에 내렸는데 이미 어둑해진 거리에서 벚꽃을 만났다. 드디어 봄을 만났다! 오늘 아침은 겨울이었는데 오늘 밤은 봄이라니! 유난히 길었던 겨울이 끝나간다는 사실에 오스트리아에서의 며칠이 벌써부터 설레었다. 설렘이 무거운 발걸음에 붙잡혀 금세 가라앉아버리긴 했지만 말이다. 전철을 두어 번 환승하는 것이 번거로워 삼십 분 정도 되는 길을 그냥 걷기로 하고 나섰는데 숙소가 있는 곳까지의 거리가 좀처럼 줄어들지 않았다. 공항에서 재보니 남편의 가방은 모두 합해 40kg이 조금 넘었고 나의 앞뒤 가방도 27kg 정도가 되었다. 3kg의 손가방 무게를 더하면 딱 30kg이 되었다. 사계절을 모두 준비하다 보니 짐을 줄이기가 쉽지 않았다. 게다가 남편이나 나나 필요한 물건이 즉각 손에 닿아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인지라 온갖 잡동사니를 다 쑤셔 넣은 탓도 있었다. 산티아고를 걷다 보면 이것저것 다 비워내게 되고 삶의 여정에 필요한 것은 그저 온전한 몸뚱이 하나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고 하는데, 글쎄.. 지금 우리의 상태를 보면 그런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지 심히 의심스러웠다. 우리는 분명 필요를 짊어지기 위해 차라리 체력을 기르자며 몸을 혹사시키고 말 것이다. 안 그래도 나는 무거운 발걸음을 걷는 와중에 여행 전 운동할 때 트레이너가 중량을 마구 늘리면서 여행 가면 이보다 더 힘든 순간이 있을 테니 견디라고 다그치던 말을 떠올리며 '그래, 아직 그때보단 괜찮아'라고 위안하고 있었다.
몇 번을 가다가 쉬고 가다가 쉬기를 반복하고 나서야 귀퉁이에 Angel's place라고 적힌 손바닥만 한 간판이 붙은 건물을 찾아냈다. 그러나 체크인은 다른 건물에서 해야 한단다. 고작 2분도 걸리지 않는 거리였지만 왔던 길을 다시 갔다가 체크인을 하고 그 길을 다시 돌아오는 것은 어금니를 꽉 물어야 하는 일이었다. 그래도 불평하지 않고 웃으면서 견딘 덕분인가? 우리의 방문이 열리는 순간 나는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게 우리 방이라고?! 족히 스무 평은 넘어 보이는 5인실 방에 깔끔한 화장실, 부엌까지 딸려있었다. 심지어 오디오까지 있었다! 직원이 분명 인터넷으로 예약 상태를 확인하고 데려왔으니 이곳이 맞겠지, 공용화장실 shared bathroom이 달린 더블룸 double room을 예약했으니 혹시 누군가가 내일쯤 들어올 수도 있겠지 하는 마음으로 따져 묻지 않았고 냉큼 열쇠를 받아 들고 몇 번을 고맙다고 말했다. 1박에 오만 원이 채 되지 않는 돈으로 묵기에는 너무 좋은 방을 얻은 우리는 너무 신이 나서는 곳곳을 열어 구경하고 확인했다. 모스크바에서의 생활을 즐거운 마음으로 잘 보낸데 대한 상을 받은 기분이었다. 이곳에서 4일이나 있을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웠는지 모른다. 비록 남편은 늦은 밤이 되도록 직원이 다시 찾아와 방이 잘못되었다며 우리를 데려갈까 봐 마음을 졸였다고 했지만 말이다.
오스트리아는 여러모로 기분 좋은 만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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