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모스크바
다행스럽게도 심란한 아이들의 무리 중 일부가 다른 곳으로 보내져 숙소의 상황은 좀 나아졌다. 우리도 빈 방으로 옮겼는데 꼬맹이 남자아이 셋과 부모들이 뒤이어 들어왔다. 그래도 꼬마 손님들 덕분에 비교적 공간에 여유가 있는 편이었다. 이 녀석들은 기특하게도 아침저녁으론 소곤거리고 얌전하게 굴어 엄마들이 냄새를 풍기며 생선포를 뜯어먹는 것만 제외하곤 비교적 만족스러운 룸메이트들이었다. 아이들 무리가 정리되고 나니 삐거덕거리는 침대도, 부직포 시트도 다 괜찮았다. 만족은 지극히 상대적인 것이 분명하다.
우리는 어제 사 온 음식 몇 가지로 점심에 먹을 샌드위치를 싸서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노보데비치 수도원으로 갔다. 수도원 옆에는 큰 묘지가 있었는데 공동묘지보다는 공원에 가까운 느낌이었다. 지난번 파리 여행에서 둘러보았던 몽파르나스 묘지와도 비슷했는데 나는 도심에 이런 묘지가 있다는 것이 매우 부러웠다. 한적하게 산책을 하기 좋을 만큼 잘 정돈된 곳에서 많은 사람들의 마지막 모습들을 둘러보는 것은 전혀 혐오스럽지도 음산하지도 않았다. 게다가 이 묘지는 파리의 그곳보다 훨씬 더 예술적이어서 마치 조각 공원을 둘러보는 것 같았다. 생전의 모습을 표현한 비석을 세우는 것이 한때 유행을 했었는지 발레리나의 모습이나 음악가의 모습도 보였고 어깨에 원숭이를 앉혀놓았거나 개와 함께 앉아 사색을 하는 남자상도 있었다.
뭔가 가슴 한편이 따뜻해졌다. 사람들이 기억해주는 이 사람들의 모습이 너무나 낭만적이어서, 너무나 멋스러워서 그랬던 모양이다. 부부가 함께 찍은 빛바랜 사진이 담긴 합장묘도 제법 많았는데 그 모습이 못내 부러워 남편의 손을 잡고는 우리도 꼭 함께하자고 약속했다.
죽음은 언제나 두렵기는 하다. 내가 사라져버리는 것이 두렵고 더 이상 나로서 기능할 수 없는 것이 두렵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나의 기능이 멈춘다면 두려움의 감정도 멈출 것이고, 내가 사라진다고 하기엔 육체의 모든 물리적인 것들이 그저 공간에 흩어져버리는 것뿐이니 오히려 자유로워진다고 기뻐할 수도 있는 노릇이다. 어쩌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내가 여행을 결심하고 상상하며 느꼈던 알 수 없는 상황에 대한 불안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도 같다. 그러나 '이별'에 대한 극심한 슬픔과 저항이 더해져 견디기 힘든 감정이 생겨나는지도 모르겠다. 더 이상 '함께' 할 수 없음에 대한 깊은 슬픔. 그 대상은 가족이거나 사랑하는 사람일 수도 있고 혹은 나 자신일 수도 있다. 과거에 남아있는 수많은 '나'와의 이별, 앞으로 만들어질 '나'와의 만남이 성사되지 못한 것에 대한 진한 안타까움. 어쩌면 죽음은 사랑하는 사람과의 헤어짐이나 첫사랑과 이루어지지 못한 채 영영 만나게 되지 못하는 일을 겪는 정도로만 여겨질 수도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러니 누군가 이렇게 나를 아름다운 모습으로 기억해주고 종종 추억해주며 함께 있어준다면 훨씬 위로가 될 것 같다.
아직 날이 차가움에도 불구하고 묘 주변에서 움트기 시작한 초록 싹들이 이들이 여전히 이곳에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주었다.
수도원 밖에는 얼어붙은 호수 주변으로 사람들이 산책을 하고 있었다. 조용한 수도원을 좀 둘러보고는 우리도 공원에 앉아 식사를 했다. 아직 바람이 차갑기는 했으나 잠시 쉬어갈 정도는 되었고 나는 비둘기며 청둥오리들을 구경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모스크바에서는 비둘기도 고양이도 사람을 잘 피하지 않는다. 먹이를 주는 사람들이 심심치 않게 보이는데 아마도 혹독한 겨울을 함께 나는 동물들에게 기꺼이 먹을 것을 나눠주는 이곳 사람들이 동물들에겐 친숙한 존재로 인식되기 때문인 것 같았다. 여기저기 여행을 다녀보면 우리나라 동물들이 유독 경계가 심하고 곁을 잘 주지 않는다는 사실에 안타까운 마음이 들곤 한다. 해코지하는 사람이 없으면 좀 더 평화로이 지낼 수 있을 텐데...
새 구경에 시간을 너무 지체한 탓에 서둘러 시내로 들어왔다. 아르바트 거리는 어느 도시에나 있는 중심거리와 비슷하긴 했는데 거리의 폭이 매우 넓고 거리로 나와있는 가판대 같은 것이 없어서 좀 어색한 분위기였다. 악기를 연주하거나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이 조금 있었고 새하얀 비둘기들을 길들여 사진 모델 삼아 장사를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온몸을 감싼 인형 옷을 입고 전단지를 나눠주다가 구석에서 담배를 피우는 청년들이 있었는데 참... 어느 나라나 사는 게 쉽지 않다는 생각에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어떤 청년은 광장에 서서 무언가를 큰 소리로 얘기하고 있었다. 제법 사람들이 발길을 멈추고 들어주는 것이 신기했다. 어떤 사람들은 지폐를 선뜻 내어주기까지 했다. 한 아가씨는 남자가 하는 말과 같은 입모양으로 그의 말을 따라 말하며 흐뭇하게 남자를 바라보고 종종 손뼉을 치기도 했다. 나이가 지긋한 신사분은 심지어 매우 흡족한 얼굴로 동영상을 찍기도 했다. 도대체 저 청년이 무슨 말을 하는 것이기에 저 신사분이 저런 미소를 보일 수 있는 것일까... 너무 궁금했지만 묻는다고 설명해줄 수 있는 사람이 있어 보이지도 않아 그냥 발길을 돌렸다. 가까운 곳에 나른하게 앉아있는 도스토예프스키의 동상이 놓인 러시아 주립 도서관이 있었는데 혹시 그런 문학작품을 읊조리고 평을 하는 것이거나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피력하고 사람들을 계몽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상상만 할 뿐이었다. 내용이 무엇이건 간에 사람들의 표정을 보면 청년은 뭔가 멋진 사상을 가지고 있고 그것을 힘주어 말할 수 있을 만큼의 확신을 지녔으며 사람들에게 그것을 피력할 용기도 있는 것 같았다. 녀석... 멋있는 놈인 모양이었다.
아르바트 거리에서 가장 마음에 든 건 그 청년과 더불어 다양한 풍의 그림들이었다. 싼 값에 팔려나가는 그림들일 테지만 쓸쓸하고 우울한 듯한 그림이 과감하고 선명한 색깔로 대비되어 그려진 모양새가 매력적이었다. 자작나무 껍질이나 동판 등을 이용한 매우 창의적인 작품들도 신선했다. 러시아의 모든 국민이 예술적 재능을 지닌 것은 아닐까 착각이 들 정도였다.
굼 백화점은 모스크바 여행에 매우 중요한 장소였다. 말도 못 하게 고급스럽고 고풍스러운 실내의 분위기가 추운 바깥공기로부터 나를 지켜주기에 충분히 안락했고 분수며 인공 벚나무, 아이스크림을 든 사람들이 기분을 유쾌하게 해주기도 했다. 남편은 이곳의 예스러운 멋을 몇 번이고 감탄스러워했다. 게다가 깔끔한 화장실을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아주 매력적인 점이었다. 조금 무리해서 400 루블 정도를 투자하면 일리 커피 illy coffee를 한 잔 즐기며 지친 다리를 쉬기에도 최적의 장소였다. 상품에 별로 관심이 없는 우리에게 굼 백화점은 아주 커다랗고 고급스러운 휴게소의 역할을 톡톡히 해주었다.
아르바트 거리에 있는 쉑쉑버거 shakeshack burger에 들러 버거에 곁들여 맥주를 한 잔 마셨는데 그 맛이 기가 막혔다. 끝까지 코에 맴도는 보리향이 너무 좋아 벌컥벌컥 마셨는데 너무 고단했던 탓인가? 순식간에 취기가 퍼져 몽롱해진 채로 한참을 그곳에 있다가 9시가 넘어서야 숙소로 돌아올 수 있었다.
모스크바에서의 짧은 일정이 끝나고 마지막 밤이 지나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