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살핌을 청하는 겸손한 기도

러시아 모스크바

by 신지명

모스크바의 거리는 그동안 다녀본 유럽과 닮았지만 훨씬 시원시원하고 정갈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간판이라고는 찾아보기 어려웠고 그나마 있는 것도 건물에서 도드라지지 않게 어우러져있는 모습이었다. 무엇보다도 파스텔톤의 부드러운 색감이 거리를 무척이나 아름답고 고급스럽게 만들고 있었다.
숙소에서 삼사십 분쯤 걸어내려왔을까? 굼 Gum 백화점의 화려한 벽면이 나타나 시선을 사로잡았다. 건물이 매우 길게 이어져 있어서 골목의 끝에 있는 어느 공간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는 것처럼 급격한 원근감을 만들어 낼 정도였다. 유명한 백화점이 있다고만 알고 있었지 이렇게 멋진 '건축물'일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나중에 내부도 꼭 들어가 보자 다짐하고 조금 더 길을 내려갔다. 곧은 길이 끝나는 곳에 공사장 가림막 같은 것이 길을 막고 서 있었다. 그것을 막 돌아나간 순간, 왼편 시야에 높이 솟은 검은 실루엣이 어른거렸다. 하늘 가득 퍼져있는 햇빛에 눈이 부셔 얼른 눈에 들어오지 않는 그것을 잠시 쳐다보고 있으니 실루엣 안으로 색이며 장식들이 채워졌다. 화려하다! 선명하고 과감한 색이며 문양들로 꾸며진 동그란 지붕이 역시나 개성 있게 벽면을 장식한 탑 위에 얹혀있었고 그런 몇 개의 탑들이 중앙의 뾰족한 탑을 빙 둘러서 지키고 서있었다. 성 바실리 성당은 어디서도 볼 수 없었던 독특한 화려함을 뿜으며 넓은 광장의 한 끝에 그렇게 서 있었다. 사실 성당의 규모가 그리 작지도 않았고 그 바로 아래 서면 제법 굵직한 느낌도 나는 건물이었는데 기다란 백화점과 맞은편의 크렘린 궁 벽면이 한 시선에 모이는 딱 그곳에 위치한 탓에 귀엽고 앙증맞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게다가 광장의 반대편 끝에 서 있는 역사박물관이 어찌나 정교하고 엄격한 대칭을 이루며 떡 벌어져 있었는지, 이 때문에 성 바실리 성당의 탑들이 불규칙하게 '옹기종기' 모여있는 모습이 동화 속 병정들같이 보이기도 하였다.
성당의 내부는 의외로 매우 성스러웠다. 모든 벽면에 빈틈없이, 전혀 없이, 그려진 화려한 그림들, 금속을 정교하게 두드려 세밀한 문양을 만들어낸 온갖 장식들이 이어졌다. 그런데 분명 화려하기 그지없는 그 모든 것들이 로마나 파리 등의 유럽 여느 성당이 주는 화려함과는 확연히 다른 느낌이었다. 화려하면 할수록 장식들이 공간을 좁혀 들어와 내 몸에 그 모든 것이 닿아 있는 것 같았고 오히려 순수한 느낌이었다. 세상 밖으로 펼쳐낸 화려함은 분명 아니었다.
이후에 들른 카잔 성당이나 구세주 그리스도 성당에서 만난 러시아 사람들의 모습을 오래도록 지켜보니 성당이 주는 그 기묘한 느낌이 어느 정도 이해가 되었다. 이들의 종교는 매우 진지하고 경건했으며 매우 겸손했다. 이들은 대부분 얇은 초를 몇 개씩 움켜쥔 채 성호를 긋고 인사를 한 뒤 촛대에 초를 꽂는 과정을 수 없이 반복하고 있었다. 이콘이나 십자가에 여러 차례 입을 맞추며 오래도록 기도하기도 했다. 성인들의 이콘이 많았는데 사람들은 각각 그 앞에 앉아 머리를 숙이고 한참을 앉아있기도 하였다. 어느 성당이건 관광객보다는 기도하러 들른 이곳 사람들이 훨씬 많았다. 그들의 모습이 너무나 진지하고 정성스러워서 한참 동안 숨죽여 보게 되었다.
이런 모습들을 보고 나니 러시아 성당의 화려함이 다른 유럽의 성당들처럼 종교의 위세를 드러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신에 대한 마음을 정성 들여 표현하고 또 표현해낸 것이기에 그런 깊은 겸손함이 느껴지는 것이리라 여겨졌다.
이들은 어떻게 공산주의 국가였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신앙을 지켜낼 수 있었을까? 척박하고 혹독한 겨울의 대륙에서 삶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어쩌면 정치적 의견 따위는 짧은 생명주기를 갖고 쉽게 변화하는 인간 삶의 일부분일 뿐인지도 모른다. 이들에게는 거대한 자연을 관장하는 신만이 이들의 삶과 죽음 앞에 놓인 하나의 지향일 수밖에 없었던 것은 아닐까. 신을 찬양하거나 충만한 감사를 표현한다기보다 '지금' 살아있음을 신 앞에 고백하고 머리를 숙여 나직한 감사를 읊조리며 부디 고된 삶을 위로해주기를 청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런 위로가 필요해서인지 유난히 성모님에 대한 성화가 많았고 성당의 중요한 곳엔 반드시 아기를 품에 안은 성모님이 계셨다. 흔히 유럽의 종교에서 느껴지는 남성성은 매우 적었고 남자들이라도 기꺼이 성모님 앞에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릴 것처럼 섬세하고 감성적인 분위기였다.
나도 모르게 성당의 성스러움에 숨죽이고 있을 때 어디선가 노랫소리가 들렸다. 성가를 틀어놓았는가 싶었는데 그러기엔 울림이 심상치 않아 구불구불한 벽을 돌아 소리가 나는 곳을 찾았다. 검은 옷을 입은 세 명의 남자가 탑 중의 하나로 보이는 동그랗고 작은 홀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세 명의 소리는 서로 전혀 부딪힘 없이 부드럽게 화음이 되었고 심지어 공기와의 경계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공기를 살며시 들어 올렸다 내리며 소리를 내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살아있을 만큼의 숨만 겨우 내쉬고 있다가 그들의 마지막 음정이 공기 중으로 완전히 사라지고 나서야 나직한 숨을 뱉었다. 사람이 내는 소리가 이렇게 숨 막히게 아름다울 수 있다니! 이들이 들려준 노래만으로도 모스크바는, 러시아는 우리에게 할 바를 다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다른 것은 아무래도 좋았다. 앞으로 며칠을 기꺼이 굶을 각오를 하고 이 홀에서 녹음했다는 음반을 샀다. 그러고도 우리는 자리를 떠나지 못해 자리에 앉아 몇 곡을 더 들었다. 나는 눈물이 날 것 같았지만 입술을 살짝 깨물고 참아야 했다. 감동의 눈물을 흘리기엔 며칠을 감지 못해 떡진 내 머리가 너무 민망하였고 모자로 덮어놓은 그 모양새가 감동의 순간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성당을 나서 파란 하늘 아래 그 탑을 한 번 더 올려다보고는 짧은 감사의 기도를 올렸다. 귓가에는 그들의 음성이 잠시 더 머물러있다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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