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크바 역에 내려 와이파이가 연결되자마자 생각지도 못한 비보를 접하게 되었다. 내가 다니는 성당에 계시다가 안식년을 맞아 쉬고 계시던 신부님께서 심장마비로 돌아가셨다는 것이었다.
불과 몇 개월 전, 로마에서 공부 중인 친구 신부를 만나 신부님들이 종종 맞게 되는 고독사에 대해 이야기했었다. 죽음의 순간에 찾아든 깊이를 알 수 없는 절망감과 두려움. 그 모든 무게를 오롯이 혼자 견뎌내야 하는 삶의 마지막 순간이 얼마나 두려울지에 대해 이야기했었다. 누구에게나 찾아들 수 있는 그 괴로운 순간을 어떻게 준비하고 맞이해야 할지- 사실은 어떻게 하면 피할 수 있을지가 더 간절한 바람이지만- 이야기했던 그 뜨거운 날의 스페인 광장, 그 계단의 열기가 아직 채 가시지도 않았다. 그 친구로부터 전해 들은 비보라 더욱 마음이 무거웠다.
죽음이 나에게 주는 기괴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어제, 불과 몇 분 전까지 한 하늘 아래에서 함께 호흡하던 한 생명이 갑자기 사라진다는 것. 그러나 세상은 아무것도 달라진 것이 없고 심지어 나는 여행 중에 있다. 하루하루의 발걸음을 당연하게 계획하고 행동하고 만끽하는 여행자이다. 그런데 죽음으로 지나가 버린 이 순간을 누군가는 살지 못하였다. 나에겐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흘러가고 있는 이 시간들, 이 풍경들이 누군가에겐 잔인하게도 영원히 허락되지 않은 것들이다. 여름, 그 날의 이야기가 우리에겐 달콤한 티라미슈 한 조각으로 날려버릴 상상이었지만 누군가에겐 현실이 되었다. 세상 누구에게나 주어져서 하찮고 가볍기 짝이 없는 이 찰나의 순간이 누군가에겐 우주의 무게만큼이나 육중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절박한 순간이라고 하는 이 가벼움과 무거움의 모순이 나를 멈춰 서게 한다. 매 순간을 죽음이 곧 닥칠 것처럼 살다가는 무게에 짓눌려 으스러져버리고 말 것이고 그렇다고 시시각각 사라지는 나의 시간들을 영원할 것처럼 가벼이 넘기며 자유를 순진하게 만끽할 자신 또한 없다.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나에게도 주어질 죽음의 순간, 어디쯤인지 모르는 그 순간이 도래할 때까지 '깨어있는 것' 뿐이다. 시시각각 달라지는 시간의 무게감에 깨어있고 죽음 이전에만 허락된 이 무한의 자유 가운데 무언가를 선택해나가고 살아나가는 것 외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여행이 계속되는 동안, 내 삶이 계속되는 동안 그분이 살지 못한 시간을 대신 짊어지고 최선을 다해 걸어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