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세 시. 객실 안의 불이 모두 켜지고 사람들이 분주했다. 우리도 기나긴 단잠에서 깨어날 시간이었다.
나는 며칠 동안 '나무'였고 '풀'이었다. 매일 같은 자리에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이어지는 시간의 흐름에 동참할 수 있었고 시시각각 스며드는 햇빛에 몸을 부르르 털었다. 하얀 눈밭의 반짝거림에 눈을 찡긋거렸으며 파랗게 개인 하늘 아래 기지개를 켰다. 내 곁에 앉았다 떠나는 많은 사람들을 구경했고 그들의 삶을 상상했다. 달콤하고 즐거운 꿈이었다.
우리는 17호 차 불이 모두 꺼질 때까지 자리를 지키다가 사람들이 모두 사라진 다음에야 가방을 둘러메고 나왔다. 기차 밖은 어둠을 가로질러 눈발이 흩날리고 있었다.
나는 떠나려는 기차를 사진에 담으려고 가방에서 핸드폰을 찾았다. 그런데 며칠 만에 짐을 오므린 통에 이것이 어디에 들었는지 냉큼 손에 잡히질 않았다. 작은 가방을 한참을 뒤적거렸는데도 핸드폰이 보이질 않자 혹시 기차에 두고 내린 것은 아닌가 싶어 머리가 어질 해졌다. 기차가 막 떠나려는 소리를 내고 있어서 마음은 더 급해졌다. 급기야 눈발이 휘돌아 날리는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가방의 소지품들을 더욱 신경질적으로 뒤적거렸다. 남편도 불안한 마음에 옆에 앉아 다급하게 움직이는 내 손만 바라보고 있었다. 핸드폰은 책과 휴지뭉치, 수첩에 깔린 채 내 휘젓는 손길에 이리저리 밀리다가 겨우 손에 잡혔다. 그제야 멈춰있었던 것만 같던 숨을 길게 몰아쉬고 얼굴에 웃음을 띠었다. 나는 무거운 가방 때문에 저리저리한 다리에 겨우 힘을 주어 일어났는데 남편은 가방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뒤로 나자빠지고 말았다. 차가운 눈발이 남편의 얼굴에 닿아 녹아내리기를 반복하고 있었지만 내 몸 가누기도 어려워 도울 수도 없었다. 몇 번을 버둥거리다가 겨우 일어난 남편의 짜증과 무안이 뒤섞인 이상한 웃음소리가 어두운 플랫폼에 울려 퍼졌다.
배와 기차를 타고 이동하여 이제 진짜 여행이 시작되는 그곳, 모스크바와 우리의 첫 만남은... 그랬다.
너무 오랜만에 넓고 거대한 건물과 많은 사람들 속으로 들어섰더니 정신이 어질 했다. 게다가 가까이 다가선 민머리의 거대하고 얼굴이 붉은 사내가 술 냄새를 풍기며 러시아 말을 거칠게 뱉어내는 통에 나는 더욱 경직될 수밖에 없었다. 그 사내가 의자에 털썩 앉아 온몸이 흘러내릴 듯이 늘어져서 곯아떨어진 후에야 나는 조금씩 낯선 공간에 적응할 수 있었다.
정신을 차리고 둘러보니 역 내부가 무척이나 화려하고 고풍스러웠다. 모스크바 전철역의 아름다움은 익히 들어 기대하고 있었지만 기차역 역시도 옛 장식이 그대로 남아 있어 멋스러웠고 높은 천장이 만들어내는 공간감이 기차 소리, 사람들의 웅성거림, 안내방송 소리들을 묵직하게 둥글리고 있었다.
날이 밝은 후에야 숙소를 찾아볼 계획이었으므로 대합실에서 시간을 보냈다. 공산주의 국가라 그런지 장총을 둘러멘 경찰들이 대합실 입구를 지키고 서서 일일이 표를 검사한 후 입장을 허락하고 있었다. 때로는 옷차림이 허름한 사람들을 골라 불시에 표를 검사하기도 했다. 덕분에 우리는 러시아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에서 조금씩 벗어날 수 있었다.
우리가 일을 그만둔 지 그리 오래되었던가? '출근'이라는 개념을 완전히 잊고 있었다. 커다란 배낭을 앞뒤로 하나씩 챙겨 메고 전철역을 찾아 들어선 순간 우리는 모스크바의 출근 인파에 휩싸였다. 우리는 마치 물 잔에 떨어진 기름 두 방울처럼 어울리지 않는 모습을 하고 정장을 차려입은 사람들 틈새에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매우 이질적인 생김새에 더해 이질적인 차림새를 한 채로 그곳에 서 있으니 무표정한 러시아 사람들이 어찌나 바쁘게 눈동자를 움직여 우리를 쫓는지 눈알 구르는 소리가 들릴 지경이었다.
다행히 두 정거장만에 전철에서 내려 밖으로 나왔을 땐 좀 한산한 거리를 만날 수 있었다. 그러나 사람이 없는 그 공간들은 차가운 겨울바람이 대신하고 있었다. 길이 복잡하게 얽혀 방향을 잡지 못한 막막함 때문일까? 오랜만에 짊어진 가방의 무게가 어깨를 짓눌렀기 때문일까? 분명 서울만큼의 온도일 뿐이라고 했는데, 바람의 온도는 바이칼 호수 위에서 맞았던 것만큼 차갑고 날카로웠다. 가볍게 내리는 눈발도 내리는 중에 공기와 엉겨 얼어붙어버린 것인지 날카롭게 볼을 스쳤다.
우리의 숙소 찾기는 지금까지의 여행 인생에서 최고의 난이도였다. 그나마 러시아에서는 처음으로 자발적인 도움의 손길을 내민 한 처자 덕분에 첫 방향은 잡을 수 있었다. 그리고 기차에서의 충분한 시간 동안 더듬더듬 키릴 어를 읽을 수는 있게 되어 도로명을 찾아 나섰다. 하지만 우리 숙소의 주소에 해당하는 어떤 길도 만날 수 없었고 지도 상의 그 위치를 설명해줄 수 있는 사람을 더 이상 만나지도 못 했다. 심지어 완전히 반대의 길을 알려준 아저씨 때문에 한참을 빙 돌아오기까지 했다. 구글 지도 상으로는 분명 숙소 주위를 맴돌고 있는데 번지수는 6, 10, 20, 17 따위로 엉망진창인 데다가 벽 장식에 창문만 가득한 건물들이 즐비할 뿐, 도움이 될 만한 어떤 간판도 찾을 수 없었다. 매서운 바람에 얼굴과 손이 얼어붙어 핸드폰을 들여다보는 것조차 쉽지 않아 지도를 봐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하... 뒷골목 놀이터 의자에 하얗게 내려앉은 눈을 쓸어내고는 몸을 잠시 쉬며 방향을 다잡았다. 24번지... 분명 이 골목 어딘가에 있는데...
이건 풀리지 않는 수학 문제를 포기하듯이 손을 들 수도 없는 일이었다. 주변에 다른 숙소가 있는 것도 아닌 것 같았고, 추운 몸을 녹일만한 카페나 빵집이 있지도 않았다. 남편이나 나나 너무 괴로운 상태인 건 마찬가지인지라 짜증을 내거나 우는 소리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가방과 추위를 해결하려면 반드시 찾아야 했다.
정신을 가다듬고 다시 한 번 기합을 넣으며 일어났다. 다시 지도를 보며 찾아들어간 골목 안쪽 건물을 기웃거리고 있자니 그 주변 건물 어딘가의 경비로 보이는 남자가 따라와 우리를 불러 세웠다. 어차피 모를 거라 생각하고 길게 말하지도 않았다. 그저 한숨 섞인 목소리로 'hostel'이라고만 나직이 말했는데 그 남자 입에서 'hostel?'이라는 반문이 튀어나왔다! 영어를 따라 말하지도 못하는 이곳 사람들을 며칠 채 봐온 탓에 그 반문만으로도 일말의 기대가 피어올랐다. 눈이 동그래진 나에게 그는 심지어 바로 건너편 건물로 손짓까지 해주었다!
아.. 찾았다!
절대로 호스텔이 있을 것으로 보이지 않는 건물에 호스텔 입구로 보이지 않을 것 같은 철문 앞에 다다라 벨을 눌렀다. 벨 소리가 밖에서는 들리지 않아 잠시 초조한 몇 초가 흘렀다. 드디어 문이 철커덕 열리는 소리가 났고 문을 열고 들어서니 우리를 맞이하는 사람이 있었다. 어깨를 짓누르던 가방을 벗어던지고 건물에 돌고 있는 온기에 몸부터 풀었다.
전철역을 나선 지 한 시간 반이나 흘러있었다. 전철역에서 불과 500m 떨어진 거리였다.
G-Art hostel은 놀라운 곳이었다. 초행의 여행객을 단단히 훈련시키더니 여직원은 우리를 세워두고 체크인을 삼십 분도 넘게 했다. 우리 예약 상태를 확인하기에는 인터넷이 너무 느리다며 이름을 묻고, 일정을 묻고... 를 여러 차례 반복했다. 여러 차례 대답해주기를 반복하는 사이 인터넷이 작동했다. 나중에 이 여직원의 사는 모습을 보아하니 이런 일처리가 충분히 이해도 되었다. 우리가 있는 며칠 동안 가슴을 겨우 가린 민소매 티셔츠에 카디건을 걸친 차림이 변함없었고 떡진 머리를 하곤 식당이라 불리는 장소에서 정신을 잃은 사람처럼 고꾸라져 자기도 하였다.
여하튼 나른하긴 하지만 불친절하지는 않은 이 여자를 따라 들어선 방은 예약사이트에서 본 사진과 매우 달랐다. 보통 그 정도는 감안하고 보는데도 여긴 참 많이 달랐다. 다른 곳을 찍어서 올렸을까? 삐거덕거리는 아슬아슬한 철골의 이층 침대가 빼곡히 들어찬 방이 두 사람이 지나가기도 어려운 좁은 복도를 따라 죽 늘어져 있었고 이 풍경은 이층까지 이어졌다. 화려한 호피무늬의 이불은 한 번도 세탁을 하지 않았을 것만 같았고 그것을 씌우라고 건네준 봉지에선 커다란, 그냥 박음질만 된 커다란 부직포가 나왔다. 충격적이었다. 부직포 시트는 정말이지 놀라워서 남편과 나는 둘이서 계속 헛웃음을 흘렸다. 그나마 10인실에 한 명 있던 남자가 떠나면서 공간이라도 넉넉히 쓰겠다 싶어 기분 좋게 가방을 풀었는데, 그런 바람은 너무나 순진하고 어리석고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인간의 한계를 인정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생각이었다.
짐을 대충 정리하고 아침 식사를 하러 식당이라 불리는 그곳으로 올라갔다. 그곳에는 집도 절도 없이 떠돌 것 같은 사람들이 아무렇게나 포장된 음식을 먹고 싱크대에 빈 그릇이며 컵 등을 그냥 던져놨으며 냉장고 안에는 포장되지 않고 그릇에 담긴 음식들과 봉지에 쌓인 정체불명의 것들이 들어차 있었다. 저렴한 가격에 걸맞은 풍경이다 생각하고 적응하는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도 남편과 나는 적응력이 제법 뛰어난 편이었다. 우리는 넓은 자리 하나 차지하고 앉아 기차에서 미처 다 먹지 못한 식량으로 아침 식사를 했다.
식사를 마치고 드디어 모스크바 관광을 나서는가 싶었는데 갑자기 로비라 불리는 그곳이 매우 어수선해졌다. 내 가슴께까지 올만한 키의 여자아이들이 한 손에 기념품처럼 보이는 똑같은 동화책을 들고 우글우글 들어선 것이었다. 안 그래도 좁은 공간에 사람이 가득 차니 마음껏 지나다닐 수조차 없었다. 이미 방에도 사람들이 꽉 차있는데 이 아이들은 뭐지? 나른한 여직원도 뭔가 문제가 있는 듯 인상을 찌푸린 채 머리를 감싸고 있었다. 우리는 심란한 마음에 차마 나서지 못하고 식당에 올라가 사태를 좀 지켜보기로 했다. 어수선한 상황은 쉽게 진정되지 않았고 잠시 방에 다녀온 남편은 목소리까지 높이며 사태의 심각성을 나에게 전했다. 비어 있던 우리 방에, 우리가 나름대로 부직포를 곱게 씌워 정돈해놓은 침대에 아이들이 올라앉아 발 디딜 틈도 없다는 것이었다. 그 꼴을 안 볼 수 없어 나도 로비로 내려갔는데 심지어 그곳에는 새로운 청년들 무리가 체크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층의 우리 방에는 아이들과 한두 명의 인솔자로 보이는 사람들의 머리만 보일 정도로 빈틈이 없었고 침대 사이의 통로는 그들의 가방으로 담이 쌓여 있었다. 우리의 자리는.. 회생이 불가능해 보였다.
리셉션에는 근무 교대 시간인지 슬픈 그림을 그리게 생긴 남자가 앉아서 머플러도 채 풀지 못하고 상황을 파악 중에 있었다. 나는 그 남자에게 우리의 방에 아주 많은 아이들이 있는데 이 상황을 어떻게 할 계획이냐고 물었다. 그 남자는 28명이 중복 예약 over booking 되었는데 두 시 이후에 비는 침대가 생기니 방을 그곳으로 옮겨 주겠다고 했다. 우리의 가방은 일단 아이들 틈에서 빼내어 보관해주겠다며 함께 방으로 올라갔다. 우리가 들어서도 전혀 미동도 하지 않는 아이들이 얄미워 난 눈을 크게 뜨고 조금 과장된 목소리로 '실례합니다! excuse me!'라고 외치다시피 말했다. 그제야 그들이 조금씩 움직이는 시늉을 해주어 가방을 모두 구출할 수 있었다. 창고에 가방들을 대충 밀어 넣고 우린 일단 밖으로 나섰다. 뭐.. 일단 다른 방으로 옮겨준다고 했으니, 아이들을 저대로 두는 것은 본인들도 답답하겠지 싶어 마음을 비우기로 했다. 하룻밤에 둘이 만 원을 내고 추운 바람 막아주고 뉘어줄 곳이 있다는 게 어디냐며, 그 가방들을 이고 지고 다른 곳으로 가는 것보단 있는 것이 낫다며 서로 토닥여주었다.
여러 가지로 충격적인 시작이었지만 어느새 하늘은 파랗게 개어 내가 좋아하는 양떼구름까지 입고 있었다. 추위는 수그러들었고 도로를 적신 물기만 이른 아침 눈이 내렸었음을 확인시켜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