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끄는 대로

지구를 가로지른 부부 이야기 14일 차- 오스트리아 할슈타트

by 신지명

'애증'의 할슈타트였다.
어제 보고 싶은 곳을 다 둘러보았고 빈에서는 내가 상상하던 오스트리아의 초원을 볼 수 없었다. 할슈타트에 가면 초원은 아니지만 매우 '유럽스러운' 호수와 마을의 풍경을 만날 수 있었다. 그러나 왕복 기차표가 둘이 합해 이십만 원이 넘었다. 찬찬히 준비를 했었다면 빈에서 할슈타트로 넘어갔다가 잘츠부르크도 보고 크로아티아에 갔을 것을... 할슈타트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오자니 비용이 만만치가 않았다. 어젯밤 남편과 나는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애꿎은 계산기만 연신 두드려댔고 같은 가격을 굳건히 지키는 철도 사이트에만 몇 번을 들어가 보았다. 심지어 자정에 출발하는 기차가 반값이라는 사실에 혹해 밤길을 나설 작정까지 했다.
그러나 오랜 고민은 결정을 못해서라기보다 이런저런 불편감들을 합리화하는데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하는 것뿐이었다. 날씨가 좀 흐려진 빈이 우리에게 더 보여줄 것이 없음은 분명했고 모스크바에서 말도 안 되는 가격에 숙소를 얻었으니 다음 여행지에서도 조금 절약한다면 예산에서 크게 벗어나지도 않겠다는 등의 핑계를 만들어가면서 말이다.

삼십육 년을 살면서 한 가지 확실히 깨달은 것은 내가 어떤 결정을 해야 할지는 언제나 내가 이미 알고 있다는 사실이다. 내가 그러모으는 정보들은 하나같이 같은 방향을 가리키고 있게 마련이다. 내가 그것을 받아들이느냐 마느냐의 문제일 뿐인데 내가 모은 정보들을 거스르는 결정조차도 결국 내가 원하는 것이, 나를 편안하게 하는 결정적인 무엇인가가 그 방향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뇌과학자들이 연구한 바로는 우리가 '자유의지'라고 하는 것이 착각에 불과하다고 한다. 뇌는 행동명령을 먼저 내린 뒤 재빨리 그 행동에 '자유의지'라는 사고를 부여한다는 것이다. 나에게 '자유의지'가 없다는 것이 충격적일 수도 있겠으나 출생의 순간부터 나를 둘러싼 환경에 의해 행동을 결정한다고 배운 나로서는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사실이다. 결국 내 '생각'이라고 하는 것이 가장 어리석고 생각을 제외한 '나'는 뭘 해야 할지 너무도 잘 알고 잘 살고 있다는 말이다. 나는 '나'의 결정을 믿고 따르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오랜 시간 기다려준 덕에 드디어 결정을 내리고, '합리화'하고, 할슈타트로 향했다.
우리의 기차표에 표시된 'wein Hdf'라는 출발지가 전철 노선도에 표시되어있지 않아서 잠시 당황하기는 했으나(중앙역 Hauptbahnhof, Südbahnhof가 모두 같은 곳!), 기차역 전광판에 '할슈타트 hallstatt'행 열차가 없어서 또 당황하기는 했으나 안내소 직원이 알려준 환승역 이름을 잊지 않으려고 끊임없이 중얼거리며 기차에 무사히 올랐다.
기차에는 사람이 꽉 차 있었고 예약석은 좌석의 선반에 표시가 뜬다는 사실을 모르고 그냥 앉은 바람에 한 차례 쫓겨나 남편과 떨어져 가야만 했다. 빈을 벗어난 지 20분도 채 되지 않아 나타난 풍경은 내가 상상한 그 오스트리아였고 모르는 아저씨 옆에서 혼자 동동거리기엔 너무 아까운 풍경이었다. 다행히 기차를 갈아탈 때마다 사람은 점점 줄어들었다. 풍경이 갈수록 더 깊어진 덕에 남편과 나는 자리를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사진을 찍고 충분히 감상할 수 있었다. 초록빛 넓은 초원과 빽빽이 우거진 숲을 지나 아직 눈이 녹지 않은 알프스 산을 저 멀리 두고 가는 풍경은 '풍족함', '평화로움' 자체였다. 오스트리아 사람들이 경계심 전혀 없는 얼굴로 여유로운 미소를 던질 수 있는 이유를 충분히 설명해주는 풍경이었다. 나는 문득 러시아의 평원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떠올라 좀 슬퍼졌다. 물론 아름다운 풍경을 지니긴 마찬가지이나 이곳에 비하면 사람이 살아내기에 너무 고된 환경이니 그들의 무뚝뚝함이나 불친절을 탓할 수 없는 것이었다.
숙소를 나선 지 네 시간이 훌쩍 넘어서 도착한 할슈타트는 좋아도 너무 좋았다. 눈이 채 녹지 않은 산 아래 평화롭게 흐르는 호수를 건너면 동화 속 숨겨진 마을처럼 할슈타트가 나타났다. 나는 선착장에 내리자마자 차마 소리는 내지르지 못하고 꺅꺅거리는 시늉만 하며 발을 동동 굴렀다. 산과 호수를 내려다보는 마을은 너무나 평화로웠고 어지러운 세상일과는 전혀 상관없이 이곳만의 시간이 따로 흐르는 것 같았다. 살고 있는 속내야 어떨지 알 수 없으나 집집마다 창틀에 올려놓은 화분들이 곱게 꽃을 피운 것을 보면 마을을 닮은 삶일 것만 같았다. 언덕을 조금 올라 들어간 성당 마당에는 마을 사람들의 묘지가 있었는데 때마침 한 남자가 묘지의 비석이며 꽃들을 손질하고 있었다. 아름다운 풍경을 매일매일 내려다보고 가족 같은 마을 사람들이 예쁜 꽃으로 날마다 치장을 해주니 그곳에 묻힌 사람들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들 같아 보였다. 이들의 삶에 놓인 영광스러운 선물이 이 사람들에게도 소중하고 행복한 축복이었기를, 그러한 가운데 편히 잠들었기를. 이곳의 사람들은 동화에나 나오는 사람들처럼 그저 행복하기만 해도 좋을 것 같았다. 세상에 그런 곳도 한 곳쯤 있어야 삶이 희망적일 것 같았다.

할슈타트의 야경을 볼 것이 아니라면 두 시간은 마을을 둘러보기에 제법 적당한 시간이었다.
돌아오는 기차는 매우 한산했고 군데군데 덮여있던 구름이 모두 걷혀 파란 하늘, 초록빛 초원, 흰 눈이 덮인 산맥 그리고 단단하고 아늑하게 지어진 그림 같은 집들을 감상하기에 아쉬움이 없었다.
할슈타트를 다녀온 일은 아주 훌륭한 결정이었다고 '나'에게 말해주었다. 이미 알고 있었을 테지만 말이다.

2015-03-28-21-44-14-294.JPG
2015-03-28-21-56-54-6005.JPG
2015-03-28-22-37-32-6036.JPG
2015-03-28-21-46-06-296.JPG
2015-03-29-00-04-21-6130.JPG


매거진의 이전글클림트와 쉴레의 도시. 오스트리아 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