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아티아 자그레브
하하! 우리가 묵은 집은 이름대로 천사가 머물다 간 것이 분명했다. 체크아웃을 하러 갔는데 직원이 의아해하며 'room C'에 묵었냐고 물었다. 나는 방 이름은 잘 모르겠고 체크인하던 날 리셉션에 있던 남자를 따라갔다고 했다. 직원은 우리가 예약한 방은 'room D'인데 다른 방에 묵은 것 같다고 했다. 나는 황급히 우리도 방이 너무 커서 이상했지만 다른 손님이 오겠거니 생각했다고 변명했다. 이미 묵었으니 무를 수야 없고 혹시 비용을 더 청구할까 싶어 콩닥거리며 직원의 대답을 기다렸는데 자기들 쪽에서 착오가 있었던 것이니 예약한 값대로만 지불하라고 했다. 천사처럼 싱긋 웃는 아가씨의 얼굴이 무척이나 예뻐 보였다.
우리는 그녀가 우리를 다시 불러 세울까 무서워 뛰다시피 그곳을 빠져나온 다음에야 둘이 마주 보며 깔깔대고 웃었다.
에드버그 Erdberg 역으로 가는 길은 보슬비가 살짝 내렸다. 모스크바를 떠나던 아침엔 겨울의 눈을, 빈을 떠나는 아침엔 촉촉한 봄비를.. 우리는 조금 더 봄의 깊숙한 곳으로 출발했다.
며칠 전부터 새벽 4시고 5시고 아무렇게나 잠이 깨서 고생한 탓에 버스에 오르자마자 정신을 잃고 잠에 취해버렸다. 종종 깨서는 다시 만난 초원의 풍경에 감탄을 하다가 또 잠이 들기를 반복했다. 두어 시간쯤 지나자 버스가 멈춰 서곤 모두를 내리도록 했다. 버스가 선 곳에는 건물이 하나 있었는데 출국심사를 하는 곳이었다. 간단한 여권 검사를 하고 다시 버스에 탔고 조금 더 가서는 크로아티아 입국 심사를 하는 직원이 버스에 올라 한 번 더 여권 검사를 했다.
예전에 친구들과 체코에서 헝가리로 이어지는 여행을 했을 때 짐칸에 실은 가방에 여권을 넣어놓은 바람에 모두를 기다리게 하고 번거롭게 했던 기억이 나서 피식 웃었다. 나는 보통 여행을 다니면서 온갖 바보 같은 짓은 다하고 다녔더랬다. 콜로세움 앞 로마 병사 복장을 한 사람들이랑 신나게 사진을 찍고는 입장료에 준하는 돈을 뜯겨 정작 콜로세움 안에는 들어가지도 못했었고 여행책자에 로마 떼르미니역은 무임승차를 한 번쯤 해봐도 된다고 적혀있길래 표 없이 역에 들어갔다가 걸려서 벌금도 물어봤다. 스페인 공항에서는 트렁크에 넣어둔 돈 봉투를 통째로 도둑맞기도 했고 스리랑카에선 카메라를 뻔히 눈뜨고 소매치기당하기도 했다. 이런저런 경험은 새로운 여행에서 무엇을 조심해야 하는지, 여러 상황에 어떻게 대비해야 하는지에 대한 확실한 지침이 되기 때문에 교육비용을 지불했다고 늘 자위하지만 비용 지불 없이도 잘만 다니는 사람들을 보면 내가 참 한심스럽기는 하다. 그래도 오랜 시간이 지나면 유적지나 궁전 등을 둘러본 것보다 그런 바보짓이 더 진하게 남고 빈번히 회자되기도 하니 인생이 그런 것인가 싶기도 하다. 임무를 수행해내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냥 이런저런 짓거리를 하고 추억하고 또 그렇게 사는 것. 그래, 다치고 몸 상하는 것만 아니면 바보짓 좀 하면 어떤가?!
옛날 생각에 잠시 젖었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자그레브 버스터미널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어? 크로아티아는 제법 큰 도시였다? TV에서 '꽃보다 누나'를 띄엄띄엄 본 기억으로는 돌길의 성곽 내에 매우 이국적인 사람들이 살고 있는 '마을'이라고 생각했는데 상상은 또 빗나갔다. 자그레브는 매우 현대적인 건물이 널찍하게 들어선, 엄연한 도시였다. 물론 규모가 큰 것 같지는 않았지만 돌길이 깔린 그런 예스러운 곳은 분명 아니었다. 첫인상이 기대와 조금 다르기는 했지만 터미널을 나와 숙소를 향해 걸어가는 동안 마주친 잔디밭과 만개한 봄꽃들 만으로도 내 마음은 살랑거렸다. 쨍한 햇빛에 반짝이는 모든 것들이 봄을 외치고 있었다. 크로아티아에서의 날들이 무척 기대되었다.
자그레브의 숙소 '호스텔 센트럴 Hostel central'은 정말로 관광지 중심에 위치한 최적의 장소였다. 게다가 쾌활한 웃음으로 우리를 맞아준 여직원과 시간이 좀 일러 우리 방의 문을 활짝 열고 정돈 중인 또 다른 직원의 모습이 무척 활기차 보여 덩달아 웃음이 흘렀다. 방이 크진 않았지만 낮고 비스듬히 내려앉은 목재 천장과 화사한 햇빛이 비쳐 드는 작은 창문, 이제 막 청소를 끝내고 마지막으로 뿌려둔 상큼한 방향제 냄새가 모두 푸근하게 느껴져 무척 기분이 좋았다. 하루밖에 머물지 못하는 게 아쉬울 따름이었다.
남편이 빈의 숙소에 카메라 충전기를 두고 오는 바람에 우리의 첫 행선지는 아레나 쇼핑몰이 되었다. 덕분에 파란색 예쁜 트램을 타고 탁 트인 외곽으로 나들이를 갈 수 있었다. 정작 충전기는 파는 곳이 없어 사지 못했지만 잔디에 닿아 하얗게 부서지는 햇빛을 보며 먹는 샌드위치가 제법 맛있었고 몸 구석구석 스며있던 겨울의 한기를 몰아내는 훈기에 기분 좋은 시간을 보냈다.
숙소가 있는 곳 주변이 바로 돌길을 따라 옛 건물들이 늘어선 자그레브 중심 '마을'이었다. 뒷골목 어딘가로 들어가면 약간 경사진 돌길을 따라 레스토랑과 바에서 내놓은 테이블이 가득했고 사람들이 매우 흥겹게 먹고 마시며 이야기하고 있었다. 주황색이나 갈색 지붕을 얹은 집들, 베이지에 가까운 밝은 황토색의 돌길, 그리고 형광으로 빛나는 듯한 파란 하늘 아래 사람들은 몹시 쾌활해 보였다. 우리도 오늘 저녁은 야외 테이블에 앉아 맥주를 한 잔 하자고 다짐하며 그 골목을 뒤로 잠시 물러두었다.
자그레브에 볼거리가 많은 것은 아니었다. 레고 블록으로 지은 것처럼 깜찍한 마르코 성당이나 화재로 불탄 성곽의 대문 하나에 전혀 손상되지 않은 성모님 그림이 남아있는 '스톤 게이트 stone gate', 그리고 성모승천 대성당을 둘러보면 끝이었다. 우리 같은 천주교 신자에겐 몹시 특별한 도시이긴 했지만 말이다.
마침 부활절을 한 주 앞둔 주님 수난 성지 주일이어서 우리는 대성당에 들러 이곳 사람들과 함께 미사를 드릴 기회를 얻었다. 우리는 앞으로 남은 긴 여정을 고려해서 매우 작은 성지를 골라 들고 사람들 틈에 의자를 놓고 앉았다. 노트르담 성당이나 바티칸에서의 미사보다도 많은 사람들이 함께했고 웅장한 성가대의 노랫소리가 울려 퍼진 덕분에 매우 충만한 미사 시간이었다. 낯선 곳에서 처음 보는 사람들과 함께 있지만 매우 익숙한 전례의 시간에 머물며 나의 본당 식구들이 문득 그리워졌다. 벌써 오래전 일처럼 아득했다.
미사가 끝나고 난 시간, 하늘은 짙푸른 색으로 무겁게 내려앉았다. 가로등이 하나 둘 켜지기 시작한 거리를 따라 들어가 한 식당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탄산이 많지 않아 부드럽게 넘어가는 향 좋은 맥주 한 잔, 생바질이 씹히며 코끝에 맴도는 향과 함께 먹는 짭조름한 마가리따 피자 한 판으로 우리는 몹시 행복해졌다. 모스크바의 쉑쉑버거 shakeshack burger 이후 두 번째로 먹는 식당 음식이기도 하거니와 노란 가스등이 켜진 거리 위 사람들 틈에서 부리는 여유가 달콤하기도 했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피자가 너무 맛있어서 조금만 먹고 포장해서 내일 먹자 했던 얘기 따위 둘 다 모른척해버렸다. 우리는 순식간에 마지막 조각을 반으로 나누고 있었다. 아껴두었던 맥주의 마지막 한 모금도 털어마시고 숙소로 돌아왔다.
짧은 자그레브와의 만남이 무척이나 아쉬운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