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의 종소리를 뒤로 하고

이탈리아 친퀘테레

by 신지명

남편과 나는 로마에 며칠을 더 머물고 싶은 유혹과 싸워야만 했다. 안락하고 풍족한 휴식에 젖어서는 앞으로 떠날 순례길을 외면하고만 싶었다. 그래도 언제고 떠나야 할 길이었다. 인생의 시간이 끊임없이 흘러 나를 실어 나르니 말이다. 내 삶의 힘든 순간을 지나쳐 흘러 준 덕에 지금에 이르렀으니 좋은 순간도 스치듯 흘러가는 것이 공평한 일이겠지...
부활절 미사는 왕신부, 남편과 나 셋이서 조용히 드렸다. 그간 마음이 정리되지 않아 미루고 미루던 고백성사도 보았다. 사람이 꽉 들어찬 유서 깊은 성당에서 웅장하고 엄숙한 예식을 하는 것도 매우 뜻깊었겠지만 최소한의 예식으로 온전히 기도로 함께 하는 미사도 마음을 울리기엔 충분했다.
우리만의 미사가 시작될 때 창밖 어디선가 종이 울렸는데 미사가 끝날 때에 또 종이 울렸다. '셋이 모인 곳에 언제나 함께 하겠다' 하신 말씀이 이루어짐을 알리는 종소리라 여겨졌다.



우리가 와있는 동안 약간의 소나기만 뿌릴 뿐 화창하던 로마의 날씨가 완전히 궂어져서는 제법 많은 비를 뿌렸다. 왕신부가 아니었다면 그 비를 흠뻑 맞고 추적추적 걸었어야 할 길을 너무 편안하게 지나 떼르미니역에 도착했다.
왕신부는 우리의 기차가 떠나는 순간까지 플랫폼을 떠나지 못하고 서 있었다. 앞으로 또 한동안은 한국말을 삼키며 외로움을 혼자 견뎌야 할 친구 녀석이 못내 안쓰러워 마음이 시렸다. 기차가 출발하고도 한참 동안 나와 남편은 아무 말없이 이별의 아쉬움을 달래야 했다. 부디 건강히 한국 땅에서 다시 만나기를.

한 항공사 광고로 유명해진 친퀘테레는 항공사 홍보를 빙자한 농간이 아니었을까 하는 의심이 드는 곳이었다. 기차를 타고 내리는데 진이 다 빠졌고 사람들에 부대껴 더욱 힘든 시간이었다. 마을은 그냥 마을이었다. 마음에 든 것은 마나놀라에서 사 먹은 해산물 튀김과 베르나짜에서 본 석양뿐이었다. 작년에 다녀온 이탈리아 남부의 포지타노를 기억하는 탓에 이곳에 대한 기대가 너무 컸던 모양이었다.
어렵게 잡은 숙소, 지금까지 중 가장 비싼 첫 '호텔' 아스토이아 Astoia는 이상한 진동으로 웅웅 거리는 방과 졸졸 흐르는 온수, 차갑지만 않은 물을 내어주었다.
왕신부와의 헤어짐이 아쉬워 모든 것에 더욱 시큰둥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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