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니스
오후 두 시 기차라 여유가 있었지만 어제 들르지 못한 친퀘테레 마지막 마을, 몬테로쏘는 가지 않기로 했다. 호텔 로비에서 시간을 보내고 니스행 기차를 탔다. 몬테로쏘는 기차가 지나가는 길에서 볼 수 있었는데 사실 몬테로쏘 다음으로 이어지는 마을들의 풍경이 훨씬 멋있었다.
이탈리아에서 모나코를 거쳐 프랑스로 이어지는 기차는 특별한 목적지 없이 타봐도 너무나 만족스러울 것 같았다. 기차를 따라 이어지는 지중해 위로 햇살이 쏟아져 내려 빛이 파도와 함께 연안 절벽들에 부딪혀 부서졌다. 붉은 절벽 위에 규칙 없이 세워져 있는 집들 바로 앞까지 포말이 닿을 것만 같았다. 그런 곳에서의 삶은 어떨지 상상만으도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 아름다운 풍경을 지나쳐야만 하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었다.
우리는 제노바에서 한 번 환승을 하고 니스로 향했다. 어느 순간엔가 직원들이 파리 사람으로 바뀐 것 말고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채 너무나 쉽게 국경을 넘었다. 나라와 나라를 이렇게 쉽게 넘나들고 햇빛이며 토양, 모든 것이 풍족해 보이는 유럽의 사람들은 무엇에 불평을 하고 살까 궁금해졌다. 과로나 심장마비, 나 같은 부신기능 저하 따위의 병이 있기는 할까? 당연히 이들의 삶도 녹록지 않음은 분명할 테지만 주어진 자연이 축복인 것만큼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또한 그것을 지켜낼 수 있는 이들의 삶의 태도 역시 축복이었다.
니스에서는 기차역 노숙을 할까 고민을 했었다. 저녁 8시에 도착해서 아침 10시 기차를 타는 일정이라 날씨만 괜찮으면 가능할 것도 같았다. 기차역에 짐을 보관할 사물함도 있다고 하니 밤바다나 보고 날을 지새울까 했었다. 그런데 봄 햇살을 머금어 따뜻하다가도 어느 순간 갑자기 서늘해지는 변덕스러운 바람 탓에 몸에 든 한기가 영 빠지지 않는 것이 문제였다. 한뎃잠을 하루 자면 여기저기가 굳어서 삐그덕거리고 욱신거릴 것이 뻔하니 괜한 고생 하지 말자고 했다.
오늘 아침 라스페지아의 호텔 로비에서 노닥거리며 찾아낸 곳은 8인 혼숙 도미토리였다. 니스 역 코 앞에 있는 호텔 안타레스 Hotel Antares는 매우 좁기는 하였으나 깨끗한 곳이었고 도미토리를 예약한 우리에게 트윈룸을 주었다. 4만 원도 안 되는 돈에 욕실 딸린 트윈룸을 주니 매우 의아했지만 오스트리아에서의 기억이 있어 일단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그냥 쓰기로 했다. 뒤늦게 후기를 보니 종종 그런 경우가 있는 모양이었다. 예약이 안 되어 비워두느니 적은 돈이라도 받고 빈 방을 채우는 것이 낫지 싶은 모양이었다. 해변까지 걸어서 15분 거리, 바로 옆 건물에 마트까지. 노숙을 준비했던 우리에겐 아주 대단한 호사였다. 게다가 무슨 파티를 한다며 식당에 가보라고 하기에 들어가 보니 와인과 감자칩이 내어져 있었다. 다른 무언가도 있었던 것 같긴 한데 빈 그릇만 덩그러니 있었다. 시간이 늦어 거의 파장 분위기였다. 우리는 마지막 남은 로제 와인과 감자칩을 컵에 담고 어두워진 길을 따라 해변가로 나갔다. 남편 말대로 프랑스에 들어와 처음 먹는 음식이 와인이라니, 무척 '프랑스 스러운' 웰컴 드링크 welcome drink였다.
니스의 해변가는 사실 해운대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모래사장은 없고 크기며 색깔이 제각각인 자갈변에는 한 무리의 젊은이들이 술을 마시며 합창을 하고 있었다. 넓은 해변가에서 왜 황제펭귄들처럼 다닥다닥 몸을 붙여 비비고 뭉쳐있는지 알 수 없었으나 여하튼 매우 시끄러웠다. 그리고 길가를 따라 죽 이어진 휘황찬란한 조명들, 라스베가스처럼 호텔이며 카지노 등이 불을 번쩍이고 있는 그곳은 매우 실망스러웠다. 사람들이 너무 넘쳐나는 니스는 전혀 자연스럽지 않았다. 낮에 보는 풍경은 달랐겠지만 우린 내일 아침 떠나야 하니까 아마 니스를 아름답게 기억하지는 못할 것이다. 실상이 어떤지와 상관없이 말이다. 우리의 인생도 어느 때의 한 순간만으로는 결코 그것이 아름다운지 실망스러운지 알지 못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상을 알려면 아침이 밝을 때까지, 빛이 드는 그 때까지 기다렸다가 분명히 확인을 하는 수 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