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들이 사는 마을. 떼제

프랑스 마콩. 떼제 마을 입성

by 신지명

그저께 라스페지아를 출발하면서부터 계속 떼제를 향해 가고 있는 중이었다. 잠깐 니스에서 쉬긴 했지만 이틀 째 이어지는 여정이었다.
니스에서 애비뇽으로 이어지는 기차 역시 엄청난 풍경이 펼쳐지는 구간이었다. 니스는 이미 환락의 도시가 되어버린 것 같지만 그다음으로 나타나는 작은 마을들, 그리고 안티베와 칸은 내가 본 최고의 해안가 풍경이었다. 막상 시내로 들어가면 어떨지 몰라도 붉은 절벽과 에메랄드빛 파도가 철썩이는 해변가는 너무 매력적이었다. 보통 그런 바다는 잔잔하기 마련인데, 혹은 해변가로는 맑고 푸른색을 띠며 들어오기 마련인데 불투명한 에메랄드빛이 거세게 출렁이다 해변 와서야 풍성한 거품으로 부서지는 풍경이 매우 낯설고 이국적이었다.
풍경이 아까워 내려앉는 눈꺼풀을 치켜뜨며 세 시간을 달렸다. 애비뇽에서 한 차례, 리옹에서 한 차례 더 기차를 갈아타고 떼제 마을이 있는 마콩역에 가까워졌다.
이제 정말 관광이 아닌 순례길의 시작에 접어들려고 하니 남편도 나도 다소 심란하고 걱정스러운 마음을 감추지 못해 눈빛이 흔들리고 있었다. 지금까지처럼 걱정한 것은 모두 별 일 아닌 듯 지나가리라 믿고 있지만 말이다.

마콩 빌레 Macon-ville는 정말 작은 시골 마을인 듯했다. 커다란 가방을 멘 우리가 더더욱 도드라져 보였다.
몹시 상냥하고 친절한 프랑스 남자가 알려준 역 뒤편의 정류장에는 몇 대의 버스가 들어와 있었다. 우리도 십여 분 기다려 떼제 마을 Taize community에 들르는 7번 버스를 탔다. 기차를 타고 오는 동안 감탄하던 초원의 사이사이를 달리는 버스였다. 온통 초록빛이었다. 심지어 버스가 달리는 길가도 버스 절반만큼이나 올라오는 초록빛 둔덕으로 이어져있었다. 분명 이 넓은 초원은 소나 양, 말을 키우기 위한 것일 텐데 정작 주인은 없고 초원만 끝도 없이 펼쳐져있었다. 건물이 없으니 시대를 가늠할 수 없어 더욱 동화 속으로 들어온 것 같았다. 초원 가운데 듬성듬성 나타나는 큰 나무를 보니 문득 빨강머리 앤이 생각났다. 이런 풍경 속에서 산다면 누구도 앤처럼 시적이고 감성적이 되지 않고는 못 배길 것 같았다.
한 시간쯤 초원을 달려 떼제 마을에 내렸다. 우리와 함께 기차역에서 버스를 탄 두 남자도 함께 내렸다. 키가 작고 얼굴이 까만 남자와 키가 멀뚱하니 크고 통통한데다 허여멀건한 백인 청년이었는데 친구라고 하기에는 매우 어울리지 않는 두 사람이었다. 버스에 탈 때 키 작은 청년이 나를 보며 '평화로운' 미소를 지어 보이길래 떼제에 가는 사람들이구나 짐작은 했었다.
우리는 그들과 함께 까사 casa라 불리는 접수처에서 시원한 차를 한 잔 받아 들고 마당에 앉았다. 조용하고 평화로운 작은 공동체를 상상했는데 마당에는 수학여행을 방불케 하는 수많은 청소년들이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부르거나 단체 게임을 하고 있었다. 우리를 맞이해준 Jule라는 여자아이 말로는 독일이 휴가 기간이라 매우 많은 독일 사람들이 찾아왔다고 했다. 우리와 함께 온 청년들도 독일 사람이고 심지어 Jule도 독일 사람이었다. 우리는 프랑스의 한 복판에 들어왔지만 들리는 말은 온통 독일어고 사람들도 모두 독일인이었다.
우리는 생활에 관한 간단한 설명을 듣고 국적과 연령에 따라 차등된 요금, 심지어 범위 내에서 내가 정한 가격을 자유롭게 선택하여 지불했다.
서른이 넘은 어른들의 생활공간은 따로 있어 북적이는 곳을 벗어나 한적한 곳에 텐트를 칠 수 있었다. 하얀 들꽃이 너무 많이 피어있어 자리를 잡기가 쉽지 않았다. 최대한 해가 잘 들고 편평한 곳, 들꽃이 모여있지 않은 곳에 오랫동안 남편이 소라게처럼 지고 다니던 우리의 집, 5일 밤낮을 머무를 집을 내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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떼제 마을은 생각보다 훨씬 넓었다. 성당을 중심으로 접수처, 매점, 의무실 등의 건물이 몇 개 있었고 숙소와 야영장, 식당으로 쓰이는 천막들이 늘어서 있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머물고 있는지 가늠이 되지 않았지만 삼천 명은 족히 넘어 보였다. 그러나 그 많은 사람들이 전혀 붐벼보이지 않을 만큼 땅은 넓었고 주변이 온통 지평선까지 펼쳐진 초원이었다. 우리는 생전 처음 보는 광활한 들판에 감격하며 석양이 사라질 때까지 걸어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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떼제의 첫 식사는 기대 이상이었다. 언뜻 누군가의 블로그에서 보기로는 먹기가 쉽지 않을 정도라고 해서 잔뜩 각오를 했는데 따뜻하게 조리된 으깬 감자는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사실 천막 앞에 줄을 서서는 떼제 노래를 합창으로 시작 기도를 바치는 광경에 이미 마음이 벅차오른 터라 뭐든 영광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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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 년 전, 가톨릭 세계 청년대회 WYD 참석 차 독일에 갔을 때 각국의 사람들이 자기의 언어로 하나의 떼제 노래를 부르는 모습에 크게 감동을 받은 적이 있었다. 한국 땅에서 지극히 한국적인 종교생활만 하다가 처음으로 가톨릭이 세계적인 종교임을, 보편적인 종교임을 체험한 것이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하나의 지향점을 바라보고 '공동체'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고 그것을 가능케 하는 힘이 도대체 무엇일까 궁금해서 종교생활에 심취했었다.
떼제 마을에 대한 환상을 키운 것도 그때부터였다. 친구며 지금의 남편인 남자친구까지 모두 끌어들여 한 달에 한 번 씩 떼제 모임을 열고 사람들을 초대했었는데 그 모임을 시작하며 내가 늘 반복하던 말이 있었다.
'떼제는 프랑스에 있는 작은 마을로, 로제라는 수사님이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함께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만든 공동체 마을입니다.'
몇 번이고 반복해서 소개하던 그 말이 나 스스로에게 거는 주문이었을까? 결국 나는 떼제, 그 '프랑스 작은 마을'에 오고야 말았다. 로마 가톨릭이든 프로테스탄트든 정교회든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 모두에게 열려있는 초교파적 공동체이고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자기의 언어로 기도하고 하나의 노래를 부르며 한 곳을 바라보는 공동체. 그곳에 왔다.

밤이 되자 들판에 놓인 우리의 작은 집은 수많은 별로 둘러싸였다. 살아온 시간도 다르고 내는 색도 제각각이었지만 그것들은 모두 '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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