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저런 일을 할 것이다.'

떼제 3일

by 신지명

이곳에서 기억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무엇을 위해 기도해야 할지 고민했기 때문일까. 밤의 날카로운 한기는 한결 부드러워져 견디기 쉬워졌다.
오늘은 식사시간과 기도시간, 한 시간 여의 산책을 제외하곤 내내 우리 집에 머물러 있었다. 몸을 쉬고 있자니 다른 감각들이 잔뜩 살아나서는 주변의 모든 것이 선명하게 들어왔다. 밤새 오므라져있던 들꽃이 아침해를 맞아 화사하게 피어나는 것도 보이고 풀이며 나뭇가지에 돋은 새싹이 바람에 살랑거리는 것도 잘 보였다. 무엇보다도 새소리가 어찌나 요란하게 들리는지. 다행히 목청이 좋고 소리가 예뻐 하루 종일 요란을 떨어도 또 듣고 싶었다. 나에게 그저 들판이기만 했던 땅은 사실 매우 바쁘게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는 생명이었다. 모두들 제자리에서 제 할 일을 하며 살고 있었다.

야고보의 서간을 읽었다.
'"오늘이나 내일 어느 어느 고을에 가서 일 년 동안 그곳에서 지내며 장사를 하여 돈을 벌겠다"하고 말하는 여러분! 그렇지만 여러분은 내일 일을 알지 못합니다. 여러분의 생명이 무엇입니까? 여러분은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져 버리는 한 줄기 연기일 따름입니다. 도리어 여러분은 "주님께서 원하시면 우리가 살아서 이런저런 일을 할 것이다."하고 말해야 합니다... 좋은 일을 할 줄 알면서도 하지 않으면 곧 죄가 됩니다.' <야고보 4,13-17>

여행을 시작하면서 이후의 삶을 계획했었다. 우리가 가진 모든 금전을 털고 떠나온 여행이니 돌아가면 무엇을 어떻게 먹고살아야 할지 궁리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야고보의 말은 옳은 말이다. 나의 일은 내가 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지금까지도 그래 왔다. 내어 맡기면 알아서 쓰셨던 삶이었다.

열네 살 쯤이었나? 처음으로 잠자리에 누워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한 때였다. 고민도 이야기하고 원망도 이야기하면 신기하게도 마음속에서 나를 편안하게 하는 목소리가 답을 알려주곤 했었다. 그땐 꿈 조차도 광장에 모인 군중을 감싼 성모님을 보거나 초록빛 구름이 십자가가 되는 등의 꿈을 꾸었었다. 종종 뜬금없이 꽃향기가 나서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일도 있었다. 어쩌면 나의 영이 가장 순수했던 때였는지도 모르겠다.
한 번은 외국인 신부님을 우리 집에 모시고 가정 미사를 드린 적이 있는데 그 날의 말씀에 대한 나의 의견을 물어주셨었다. 나는 예수님이 바보 같다고 말했었다. 세상의 잣대로 보면 무척 바보 같은 삶을 사셨는데 나도 그렇게 살고 싶다고 했었다. 바보 같지만 그 삶으로도 행복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그 신부님은 아이같이 웃으시며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셨었다. 그리고 나는 그 날의 기도 중에 '무소유'를 약속해버렸다. '만나'처럼 필요한 만큼만 주시기를 청하고 그 이상은 바라지 않겠노라고 기도했었다.
영이 순수할 때 드리는 기도는 반드시 들어주신다고 했던가. 정말로 나의 삶은 걱정이 없을 만큼 풍족한 적은 없었다. 하지만 부족한 적도 없었다. 내가 필요한 만큼 주어졌고 필요가 끝나면 모든 것이 다시 사라졌다. 때때로 마음이 흔들려 왜 그런 어리석은 약속을 하였는가 후회하고 자책하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삶은 알아서 마련해주시겠거니 믿으며 살아왔다. 단, 그 모든 신뢰는 시키시는 일, 내 앞에 주어진 일은 거부하지 않고 하겠다는 암묵적인 약속을 지킬 때 유효한 것이라고 생각해 뭐든 열심히 했다. 주거니 받거니 계산을 철저히 하는 옹졸한 분이야 아니겠지만 공짜는 금세 사라져 버리고 말 것이라는 내 불안을 달래기 위한 약속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여하튼 늘 그 계약의 언저리에 있다 보니 선하다 할만한 일을 할 기회는 계속 있어왔고 열심히 해왔고 난 부족함 없이 살아왔다.

분명 야고보의 말처럼 살아있는 동안에는 그분이 원하시는 '이런저런'일이 내 앞에 놓이겠지, 열심히 하다 보면 나는 살아지겠지.. 들판의 꽃처럼, 새들처럼 내 할 일을 하는데 필요한 것은 다 주어지리라 믿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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