떼제 5일
우리가 떠날 때가 되었음을 알리는 빗방울이 떨어졌다. 하늘엔 두께를 알 수 없는 구름이 가득 덮였다. 다행히 빗방울이 조금 떨어지다 말다를 반복했고 비가 쏟아지지는 않았다.
오늘의 아침식사는 남편이 새벽녘에 일어나 지어준 흰쌀밥과 아끼고 아껴둔 김과 멸치볶음이었다.
내가 너무나 싫어하는 콩과 익힌 당근만으로 이루어진 이곳의 식사도 거뜬히 먹을 수 있게 되었지만 한국을 이렇게 오래 떠나 본 적이 없는지라 어제부터 발을 동동거리며 한식을 그리워했더니 남편이 나 몰래 수고를 해 준 것이었다. 좁디좁은 우리 집 안에 둘이 구부정하게 앉아서는 토독토독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먹는 밥은 그 어떤 음식보다도 맛있었다.
남편에게 무한한 사랑과 감사를 보낸다.
어제 샤워를 하고 빨래를 했어야 했는데... 하루를 미룬 탓에 난감해졌다. 내일 아침 이곳을 떠나면 짐을 분류해서 산티아고 순례길 종착지점에 가방 하나를 부쳐야 하는데 오늘 빨래를 하지 못하면 한 달 동안 어떤 상태로 가방 안에서 썩어갈지 모를 노릇이었다. 텐트 안에서라도 말려보려는 심산으로 일단 잔뜩 빨아서 널어놓았는데 갑자기 해가 났다. 짙은 구름 사이에 약간의 파란 하늘이 비치는 것을 보니 한두 시간 빨래를 말릴 수도 있을 것 같아 빨래를 걷어 다시 밖에 널었다. 무척 짧은 시간 동안 날씨 때문에 미친 사람처럼 울었다 웃었다를 반복했다. '인간은 잠깐 나타났다 사라지는 연기일 뿐, 내일의 일은 알지 못한다'는 야고보의 말은 백 번 옳았다.
오늘은 토요일이라 '빛의 예식'을 하였다. 기도 중간쯤 어린아이들이 나와 중앙의 초에서 불을 받았는데 이 아이들이 나누어준 촛불이 순식간에 삼천 개의 빛으로 퍼져나갔다. 이곳에서 밤마다 보았던 별처럼 촛불들이 빛났다.
떼제에서의 시간을 세상으로 퍼트리라는 의미일텐데 부디 그렇게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희망했다. 나로 하여금, 우리로 하여금 누군가는 빛을 얻을 수 있게 되기를. 내가 부디 그러한 삶을 살 수 있게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