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과 끝은 결국 하나이다.

떼제를 떠남

by 신지명

떼제의 종이 울린다.
누군가에겐 새로운 시작의 소리이고 누군가에겐 마침의 종소리이다.
시작과 끝은 결국 다르지 않은 하나이고 결국 영원한 순환이 있을 뿐이다.

로마 서간을 읽었다.
'우리가 하느님의 원수였을 때에 그분 아드님의 죽음으로 그분과 화해하게 되었다면, 화해가 이루어진 지금 그 아드님의 생명으로 구원을 받게 되리라는 것은 더욱 분명합니다. 그뿐 아니라 우리는 또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을 자랑합니다. 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제 화해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로마 5, 10-11>

우리는 살면서 영혼에 크고 작은 상처를 낸다. 스스로 만들어낸 상처일 수도 있고 타인에 의해 깊게 새겨지는 상처일 수도 있다. 상처가 많아질수록 또는 깊어질수록 영혼은 불신, 원망, 절망, 시기, 외면, 부정, 회피, 거부, 파괴 등의 갖가지 어두운 감정에 휩싸여 순수의 빛을 잃게 된다.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상처가 났던 그때에 머무르는 것인데 그 이후로 아무런 화해도 하지 않는다면 영혼은 결코 회복될 수 없다.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는다는 것은 온갖 죄, 영혼에 상처를 내는 모든 것에서 벗어나 신과 화해하고 내 영혼의 순수성을 회복하는 것이다. 상실된 순수성을 회복하지 않는다면 생명은 빛을 잃어 어둠에 감춰져 버릴 것이다. 죄를 지은 자는 존재가 드러날까 두려워 어둠에 숨어버릴 것이고 죄를 당한 자는 부정적인 감정에 사로잡혀 더 이상 생명의 빛에 감사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우리는 신 앞에 나아가 끊임없이 화해하고 용서하여 영혼의 상처를 치유해야 한다. 그렇게 한다면 아이와 같이 순수한 영혼으로 부활할 것이며 꺼지지 않는 생명의 빛이 될 것이다.

우리는 초원을 지나고 유채밭을 지나 넓은 포도밭이 보이는 곳으로 가고 있었다.
모든 땅은 제가 낼 수 있는 것을 낸다. 인간이 그리하는 것 같지만 땅과 하늘이 허락했기 때문에 그리된 것이라 생각되었다.
나의 땅은 나에게 무엇을 허락할 것인지... 떼제에서의 시간들을 곱씹으며 창밖으로 지나가는 풍경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마콩에서 리옹, 몽펠리에, 톨루즈를 지나 바욘에 밤 열 시가 넘은 시간에 도착했다. 누군가 바욘역 카페에서 밤을 보낼만하다고 한 글을 보아서 첫 기차가 올 때까지 잠시 눈만 붙일 생각으로 왔는데 경찰이 막차 떠나는 시간에 맞춰 역의 문을 모두 닫고 있었다. 역에서 자면 안 되냐고 물었지만 영어를 잘 하지 못했고 남편의 자는 시늉에 단호히 'No!', 'hotel' 두 마디만 하곤 가버렸다.
경찰에게 등 떠밀려 나와 호텔을 함께 운영하는 레스토랑으로 가봤지만 이미 문을 걸어놔 버렸다. 안에서 가게를 정리하고 있는 사람이 보여 문을 두드려보았지만 그 역시 'No!', 'full'. 또 단 두 마디에 돌아서야 했다.
하는 수 없이 길 건너에 있는 좀 비싸 보이는 호텔로 가서 가격을 물으니 73유로나 한단다. 잠깐 눈만 붙이고 나가기엔 너무 부담스러운 가격이었으나 역 앞 길바닥에서 잘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안될 것도 없는 날씨였지만 행여나 거친 사람들이라도 다닐까 싶어 그러지 않기로 했다. 우린 다시 호텔로 들어가 아침은 먹지 않겠다, 내일 아침 일찍 나갈 예정이다, 아니면 이 근처 다른 저렴한 호텔을 알려줄 수 있느냐 물었다. 매우 상냥한 흑인 직원은 시간이 늦어 갈만한 곳이 없는 모양인지 잠시 생각하더니 10유로 저렴한 가격을 제시해주었다. 호의에 감사해 그 값을 계산하고는 방을 얻었다.
좁디좁은, 춥디 추운 떼제에서의 5일을 보내고 실로 오랜만에 벽이 있고 지붕이 있는 공간에서 푹신하고 고슬거리는 침대에 몸을 누였다. 오늘을 마지막으로 또 한동안은 누리지 못할 호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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