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장피에트포르. 길이 시작되는 곳

프랑스 순례길 시작

by 신지명

갑자기 편안해진 잠자리가 영 적응이 되지 않아 늦은 밤까지 잠들지 못했다. 그마저도 얼마 지나지 않아 벌겋게 충혈된 눈으로 새벽 일찍 깨버렸다. 그랬으면 일찍 서두를 것이지... 갑자기 연결된 문명 기기에 정신이 팔려 노닥거리는 통에 일곱 시에 나서자는 계획은 어그러졌다. 7시 14분 기차와 7시 45분 버스, 두 가지의 선택지가 있었는데 버스마저도 아슬아슬한 시간에 숙소를 나서고 말았다.
호텔이 기차역 바로 앞이라 제시간에 도착하기는 했는데 버스정류장은 텅 비어있었다. 시간이 2~3분 남았으니 떠났을 리는 없는데... 그때 막 들어와 사람을 태우는 버스의 기사에게 물었지만 저쪽 어디로 가라는 듯한 알 수 없는 손짓을 하고는 가버렸다. 정류장으로 들어온 또 다른 버스를 붙잡고 남편이 물어보니 이번에는 버스 정차 구역 하나를 가리키며 거기에 서서 기다리면 된다고 확언을 해주었다. 하지만 이미 시간은 8시가 되어가고 있었다. 심지어 버스 티켓 판매소로 보이는 굳게 잠긴 건물의 문에는 '생장피에트포르로 가지 않습니다. Don't go to St. jean pied de port'라는 종이가 붙어있었다. 기차역 안에는 친절하게 버스 시간표가 붙어있는데? 도통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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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미 떠났는지 혹은 아예 오지 않을지 모를 버스를 마음에서 버리고 11시쯤 들어오는 기차를 타기로 했다. 그런데 이번엔 표를 사는 것이 문제였다. 창구는 아직 열기 전이라 기계로 표를 사야 했다. 표 사는 기계가 뭐 어려울 것이 있나 싶었지만 순서대로 진행되다가 나에겐 없는 어떤 카드를 넣으라고 하는 통에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할인카드나 뭐 그런 것 같았다. 다시 한다고 될 것도 아니면서 혹시 놓친 것이 있나 싶어 몇 번을 시도해봤지만 없는 카드가 생기는 것은 아니었다. 도대체 일반 표를 왜 끊을 수가 없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온다는 버스는 안 오고, 티켓은 살 수도 없어 마음이 영 불안하기는 하였으나 창구가 열리는 아홉 시까지 기다리는 것 외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런데 왜 기계에서 기차표를 살 수가 없냔 말이다? 나는 다시 벌떡 일어나 시도해보다가 마침 옆에 서 있는 프랑스 아저씨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런데 말을 걸고 보니 그분은 행려자였다. 잘 모르신다... 그런데도 매우 열심히 내가 했던 것과 같은 프로세스를 진행시켜보셨다. 역시나 같은 단계에서 함께 좌절하고 나는 다시 자리에 앉았다.
이번엔 기계로 표를 사려는 젊은 커플이 나타났다. 나는 다시 일어나 다가갔다. 노인이나 청소년이 아닌 이 사람들은 분명 일반 표를 살 것이라는 생각에 지켜보기로 했다. 여자도 익숙하지는 않은 듯 갸우뚱거리기는 했으나 내가 막혔던 곳까지 잘 진행하고 있었다. 내가 뒤에서 기웃거리는 것이 수상했는지 일행인 남자가 나를 흘깃 보더니 커다란 덩치로 기계를 막아서는 바람에 최대한 티 나지 않게 자리를 옮겨가며 넘겨다봤다. 여자는 내가 막힌 그 부분에서 카드 넣으라는 화면의 지시에 잠시 당황하는 듯했으나 무시한 채 '계속 continue'을 눌러 표를 받았다. 아... 그냥 넘어가면 되는 거였다. 나는 나의 과감하지 못함을 자책해야만 했다. 그리고 인간은 타인의 행동을 관찰하는 것만으로도 학습이 가능한 동물임을 기억해야 했다. 진작 좀 기웃거려 볼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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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막상 잘 뽑아낸 표를 보니 기차를 타고 중간에 내려 버스를 타는 시간표가 표시되어있었다. 기차역 안에 붙어있던 시간표에 따르면 그 버스는 이곳 바욘에서도 출발하는 것으로 되어있는데 왜 굳이 중간까지 기차를 타고 가서 다시 내려 버스로 갈아타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게다가 전광판에는 표에 적힌 기차 번호는 뜨지 않고 중간에 갈아타라는 버스 번호만 떠 있었다. 그래서 버스를 타라고? 기차를 타라고?
결국 창구가 열려 직원을 만나야 해결되는 의문이었다.
바욘에서의 시간은 어젯밤부터 내가 생각한 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단 하나도 없었다. 정말 이상하리만치 의문투성이였다. 아홉 시에 창구가 열린 후에야 기계가 내어준 표가 잘못되었고 그냥 버스를 타고 한 번에 목적지까지 가면 된다는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하하...
두 시간 만에 뭔가가 확실해졌고 그러고 난 후에야 산티아고 순례길을 가는 것이 분명해 보이는 큰 배낭을 진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우리가 너무 서둘렀던 모양이었다. 우리라고 하기에는 이번에도 역시 남편은 줄곧 평온했다는 사실이 살짝 약이 오르기는 했다. 나도 불안하지 않으려고 애는 쓰는데 세포 구석구석 저장된 성격을 바꾸는 것은 쉽지 않았다.
속속 나타나는 순례객이 분명한 사람들은 모두 우리가 겪었던 것처럼 뭔가 어리둥절하고 뭔가 이상한 듯 직원에게 묻고 전광판을 보며 헤매는 모습이었다. 내가 조금만 더 오지랖 넓은 사람이었다면 일일이 쫓아다니며 설명을 해주겠다고 나섰을지도 모르겠다.
여행을 시작한 이래로 가장 불확실하고 지루한 세 시간을 보냈다. 그제야 존재하기나 하는지 알 수 없었던 그 버스가 남편에게 알려준 버스기사의 말 대로 바로 그 자리에 정차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버스 기사는 내가 줄곧 불안하게 들고 있었던 잘못된 표를 제대로 확인도 하지 않고 차에 타라는 손짓만 성의 없이 해주었다.
모든 것이 예측을 벗어나고 엉망이었던 바욘에서 드디어 벗어날 수 있었다.
버스에는 스무 명이 채 안 되는 사람들이 탔는데 그중 한국 사람이 우리 말고도 셋이 더 있었다. 우리 땅이 좁아 그런지 어느 곳을 가나 한국 사람들은 참 부지런히 다닌다 싶었다.
오전 내내 지루함에 진을 뺐더니 피로에 눌려 고작 한 시간 반 정도 밖에 안 가는 길이 몹시 길게 느껴졌다. 그나마 중간중간 만나는 멋진 풍경 덕분에 위로가 되었다.
생장피에트포르는 매우 낯선 느낌의 도시였다. 완전히 시골마을에 허름한 순례자 사무소가 하나 덩그러니 있는 정도를 생각했는데 실상은 반듯하고 깔끔한 건물들이 가득 들어선 관광지 같은 도시였다. 잘 정돈된 도로며 가로수가 따가운 오후 햇살을 받으며 열기를 뿜고 있었고 많은 호텔과 레스토랑, 기념품 등을 파는 상점들에 사람들이 제법 북적거렸다. 산티아고 순례는 이미 이 마을 사람들에게는 좋은 관광상품이 된 모양이었다.
그래도 순례자 사무소에서 사람들을 맞이하는 '호호 할아버지'들의 친절함과 순박함이 이곳을 들르는 사람들에게 특별한 여정의 시작을 알리기에는 충분히 정겨웠다. 그분들은 순례객 여권이라 불리는 크레덴시알 credential을 발급해주고 숙소 위치나 내일의 루트를 안내해주는 일 등을 도와주셨는데 매우 짧은 영어로도 무척이나 친절하게 설명해주셨다.


참고로 사진에 있는 체크무늬 셔츠를 입은 여인은 순례길의 마지막을 우리와 함께 하게 된다. 미콜 Micol. 이때는 몰랐다. 인연이란...
순례자 사무소 앞 골목


우리는 비교적 일찍 도착한 덕분에 가장 저렴한 알베르게에 묵을 수 있었다. 그런데 과도하게 친절하신 주인아주머니의 배려로 함께 버스를 타고 온 모든 한국 분들과 한 방을 쓰게 되었다.
사실 어느 때부턴가 여행지에 나오면 한국 사람들은 좀 피하게 되는데 낯섦이 좋아 떠난 여행을 다시 한국적인 분위기로 만드는 것이 꺼려져서이기도 하고 이곳 사람들의 삶의 공간을 잠시 빌리는 여행객 입장에서 한국 사람들은 유독 한국적인 특성을 고집하는 것이 불편해서이기도 했다. 그래도 때론 좋은 정보를 나누기도 하고 좋은 인연으로 이어지기도 하니 일단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생장피에트포르에도 여러 가지 유서 깊은 건물이며 볼만한 풍경이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온갖 불확실성을 극복하고 이곳으로 넘어오느라 아침, 점심도 제대로 챙겨 먹지 못했고, 햇살까지 뜨거워져서 나는 신경이 예민해질 대로 예민해져서는 폭발 직전이 되어버렸다. 어디를 둘러볼 정신이 아니었다. 그 와중에 남편은 난데없이 신발 밑창을 사야 한다며 거리를 헤맸다. 왜 한국에서 미리 챙겨오지 않고 이제 와서 그것을 찾아 헤매고 있는 것인지 원... 나는 남편의 말에 점점 날카롭게 대꾸하기 시작했다. 안 된다! 이제 시작인데 처음부터 서로 의가 상하면 앞으로의 힘든 여정을 어찌 버틴단 말인가?! 특단의 조치를 취해야 했다. 그래, 오늘은 반드시 고기를 챙겨 먹자! 나는 일단 배가 부르면 매우 너그러워지는 사람이라 일단 든든히 먹을 무언가를 찾아야 했다.
우리는 가장 가까운 레스토랑에 들어가 앉았다. 그런데 저녁을 주문할 수 있는 여섯 시 반까지는 앞으로도 한 시간이나 남아있었다. 아... 배가 너무 고픈데... 다른 레스토랑을 가봐야 같은 사정인지라 우리는 일단 맥주를 한 잔 씩 시키고 기다렸다. 허기에 부어진 맥주 한 잔은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의 악녀처럼 달콤하면서도 치명적으로 온몸 구석구석 빠르게 스며들었다. 허기에 취기가 더해져서는 눈알이 빙글빙글 돌았다. 커다란 벌 한 마리가 날아와 내 맥주잔에 머리를 처박고 있는데도 쫓아낼 힘이 없어 그냥 둘 지경이었다. 그저 그 녀석이 나처럼 취해 눈이 빙글빙글 돌아 나에게로 돌진하지나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나는 말도 아끼고 숨도 조금씩 쉬면서 인고의 시간을 보냈다.
여섯 시가 조금 넘어 일단 메뉴라도 골라놓자 싶어 메뉴판을 요구했지만 엄마 가게를 도와주러 나온 듯이 후줄근한 반바지를 입고 껄렁거리는 청년이 'six thirty!'를 단호히 말하고는 가버렸다. 아... 드디어 2분 전, 1분 전, 땡! 우리는 메뉴판을 받아 스테이크와 버거를 주문했다. 오랜만에 먹는 단백질 풍부한 식사에 우리 둘 다 무척이나 행복해졌다. 남편을 공격하던 나의 가시도 완전히 누그러들었다.
먼 길을 떠나기 전 제대로 된 식사를 한 것은 너무나 잘 한 일이었다. 떼제에서의 일주일 동안 부실한 식사로 몸이 곯아있었는데 이제야 원기가 좀 회복되는 것 같았다.



앞으로 뒤로 메고 다니던 가방의 반쪽 씩을 떼어 순례길의 마지막 지점까지 보내는 것으로 긴 여행의 준비를 마쳤다. 사십일의 날들이 어떤 의미로 다가올지는 예측할 수 없고 그저 처음 학교에 입학하는 사람들처럼 이렇다더라 저렇다더라만 잔뜩 늘어놓으며 걱정스러운 마음을 애써 달래고는 잠자리에 들었다.


생장피에트포르도 며칠 더 머물고 싶은 아름다운 마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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