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날이 밝기도 전부터 사람들이 분주했다. 다른 층의 사람들은 진작 떠난 것 같았고 우리도 꾸린 짐을 확인 또 확인하며 준비를 서둘렀다. 몇 년 전 남편을 따라 지리산 종주를 처음 나섰던 그때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복장도 다르지 않고 첫길이 피레네 산맥을 넘는 것이니 등산을 가는 것과 다를 것은 없었다.
숙소를 나서면서부터는 지도가 필요하지 않았다. 가는 곳마다 노란색 화살표와 조개 무늬 표지판이 세워져 있으니 그저 가라는 곳으로 가면 그만이었다. 게다가 사람들이 줄줄이 이어져 가니 길을 잃을 일은 없을 것 같았다.
피레네 산맥의 초입으로 들어서는 동안 아침해가 올라왔는데 넓은 들판을 반짝거리게 하는 것이 너무 멋있어 발길을 더디게 만들었다. 우리는 길가에 떨어진 커다란 갈대를 하나씩 주워 가방에 꽂고는 흥이 나서 걸었고 생전 처음 보는 들꽃들을 만날 때마다 걸음을 멈추고 생긴 모양을 뜯어봤다. 오늘 하루 동안 27km의 길을 가야 하고 1400m가 조금 넘는 고지를 넘어야 하는데 도통 시작부터 속도를 내기 어려웠다. 심지어 잠깐 엉덩이를 붙인 어느 집 문 앞에서 개 한 마리가 나와서는 머리를 쓰다듬어달라 하지를 않나 돌멩이며 나뭇가지를 물고 와서 던져달라고 낑낑거리지를 않나... 놀아주지 않으면 물어버릴 것 같이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쳐다보는 바람에 한참을 놀아주느라 또 시간을 지체했다. 하지만 우리는 크게 개의치는 않았다. 빨리 도착하기 위한 길도 아니고 어느 지점까지 가는 것만이 목적인 것도 아닌지라 풍경에 머물렀다가, 사진도 찍었다가, 햇빛도 쪼였다가 하며 산을 올랐다.
꼭 한 달 동안 가방을 메고 다녔고 걷는 것이 충분히 몸이 익은 후에 나선 길이라 걷는 것은 수월한 편이었다. 처음 등산가방을 메고 지리산 종주에 나섰던 때는 성삼재에서 노고단으로 오르는 길을 몇 미터 채 오르지 않고서도 가방 무게에 눌리고 다리 근육이 당겨 거의 울면서 올라갔었는데 말이다. 가방의 무게가 그때보다 분명 무거움에도 불구하고 몸 여기저기에 잔근육이 붙었는지 울거나 욕하지 않고도 산길을 오를 수 있는 것이 다행이었다.
오리종 Orrison은 피레네 산맥에 있는 첫 번째 알베르게(순례객들을 위한 숙소를 이렇게 부른다.)였는데 물론 우리가 묵을 곳은 아니었다. 그저 풍경이 너무 멋져 잠시 머물렀다 다시 떠났다. 초반에 줄줄이 함께 움직이던 대열은 이곳을 기점으로 흩어져 각자의 체력에 따라 간격이 생기기 시작했다. 덕분에 우리는 조금 여유롭고 조용하게 길을 걸을 수 있었다.
처음 이 길에 오르면 나는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게 될까? 나에게 이 길은 어떤 의미가 될까? 무척이나 궁금했었다. 하지만 막상 길을 걷고 있는 나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멋진 풍경과 자유로움에 그저 신이 날 따름이었다. 그러다 문득 과연 사도 야고보는 어떤 마음으로 이러한 길을 한 걸음 한 걸음 걸었을까가 궁금해졌다. 물론 이 순례길은 야고보가 걸은 길이 아니라 야고보의 유해가 발견된 순교지로 향한 순례객들에 의해 만들어진 길이었지만 스페인으로 파견된 야고보가 걸은 어딘가의 길도 크게 다르지는 않았을 것 같다. 여하튼 야고보도, 그분을 뵈러 이 길에 오른 순례객들도 등산객과는 거리가 멀었을 테고 뭔가 큰 도전거리를 정복하려는 사람들도 아니었을 것은 분명했다. 야고보는 무언가 중요한 할 일을 하기 위해 이 길을 걸었을 것이 아니겠는가? 길은 고되었겠지만 자신이 알고 있는 복음으로 인해 기쁨에 차 있었을 테고, 만나는 사람들에게 열심히 아는 바를 들려주었을 테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기 위해 걸음을 서둘렀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을 하고 보니 길을 걷는 것 자체보다 다른 무언가를 하기 위해 이 길을 걷는 것이 순례길의 목적에 합당한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길은 그저 길일 뿐이니 말이다. 그러나 그것이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아직은 당장 나에게 놓인 일을 해결하기에도 벅찬 지경이니 그저 이 길을 걸어내며 겪게 될 여러 가지 일들을 경험하고 나를 더 단단히 할 수나 있게 되길 바랄 뿐이었다. 그러다 야고보처럼 기쁨과 확신에 찬 목소리로 사람들과 만나고 이야기를 하게 될 때가 올지도 모르지. 이 길을 걷는 고된 시간들이 나를 더 기쁨에 차게 해줄 시간들임을 믿어보는 수밖에.
산맥의 정상쯤에 이르러서는 아직 채 녹지 않은 눈 때문에 걷기가 쉽지 않았다. 푸른 하늘 아래 봄옷을 입고는 새하얀 눈밭에 발을 푹푹 담가가며 걷는 기분은 매우 생경했다. 그러나 풍경이 멋진 것은 멋진 것이고, 이미 다 풀려버린 다리로 눈밭을 걷는 것은 이만저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눈밭이 아닌 길을 걸을 땐 또 눈이 녹아 흘러내린 물이 겨우내 쌓인 낙엽 아래로 흘러들어 늪처럼 푹푹 꺼져버리니 도통 속도를 내기 어려웠다.
마지막 두어 시간 동안 그런 길을 걸어서 넘은 피레네 산맥의 풍경은 너무 아름다워 화가 날 지경이었다. 험난한 길을 걸은 사람에게만 자신을 허락하는 그 도도함이란! 하지만 한편으론 산이 가지고 있는 불변함과 평등함이 무척이나 감사하기도 했다. 부자이든 가난한 사람이든, 똑똑한 사람이든 아니든 간에 이 멋진 자연 앞에 서려면 누구나 똑같이 땀 흘려 올라야만 하는 그 평등함이 좋았고, 땀을 흘린 만큼에 대한 셈은 반드시 치러주는 그 변함없는 진리가 마음에 들었다. 쉽게 오르거나 편히 다다른 사람에게는 결코 허락되지 않는 감동에 감사했다.
내리막길은 지리산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많은 자갈이 발걸음을 조심하게 만드는 길의 모양새가 무척 한국적이었다. 그래서 그 길의 끝에서는 왠지 백숙을 먹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어 괴롭기까지 했다. 한 달이 넘도록 먹지 못한 한식이 문득문득 떠오르면 입 안 가득 차오르는 침을 주체할 수 없었다. 다행히 괴로운 생각이 들던 차에 에디 Eddie라는 영국 신사를 만나 잠시 주의를 환기할 수 있었다. 그는 한국인 부인을 두어 한국말을 제법 할 수 있었고 내 더듬거리는 영어도 기다려주고 들어줄 만큼 친절했다. 그 덕에 우리는 피레네 산맥의 끝자락을 함께 한 좋은 말동무가 되었다. 단지 그가 매우 긴 다리로 빠르게 걷는 바람에 내가 거의 뛰다시피 걸어야 했다는 점만 빼면 매우 즐거운 만남이었다. 덕분에 론세스바예스에 무척 빨리 도착하긴 했지만 나의 다리는 완전히 풀릴 대로 풀려버렸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남편과 에디의 동료 제임스 James는 우리의 뒤를 쫓느라 거친 숨을 헐떡이는 오랑우탄처럼 어기적거리고 뒤뚱거리며 마지막 길을 걸어내려 왔다고 했다. 남편의 가방은 너무 무거웠고 제임스의 다리는 거친 산행을 견디기엔 좀 가늘었기 때문이었다.
론세스바예스 수도원의 새로 지은 알베르게는 무척 깨끗하고 넓었다. 더러워진 등산화는 커다란 방에 따로 모아 보관을 해주었고 주방이며 세탁실, 작은 도서관까지 갖추고 있었다. 게다가 할아버지 봉사자들이 군데군데 서서 모든 것이 낯선 우리에게 친절히도 설명을 해주었다. 네 명이 하나의 구역을 함께 쓰는 구조의 침실도 매우 깔끔했다. 남편과 나는 이 층 침대의 위층을 배정받았는데 아래층엔 길에서 종종 마주쳐 인사를 나눴던 리사 Risa와 딘 Din 부부가 이미 자리를 잡고 무척이나 반갑게 우리를 맞아주었다.
수도원 주변엔 마트가 없었고 주방에 있는 자판기에 데워먹을 수 있는 음식들이 좀 있어서 빠에야와 파스타로 저녁을 해결했다. 무척이나 짠 음식들이었지만 빵이 아닌, 양념이 되어있고 조리가 된 음식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무척 감동하며 눈앞의 음식을 순식간에 먹어치웠다.
에디가 8시에 미사가 있다고 알려주어 첫 발걸음을 무사히 마친 것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으로 성당에 들어갔다. 미사는 특별할 것 없이 짧게 진행되었지만 사람들의 뒷모습에서 묘한 기운들이 풍겨져 나와 기분이 이상했다. 모두들 첫 번째 고비를 무사히 넘기고 이 자리에 서 있다는 안도감과 동시에 우리가 함께 해냈다는 전우애 같은 것이 느껴지기도 했다. 옆자리에 앉은 한국 여자분과 우리 앞자리에서 내내 무릎을 꿇고 경건하게 기도하던 제임스는 눈물을 훔쳐내기도 했다. 미사가 끝난 후 신부님이 순례자들을 모두 앞으로 불러내어 강복을 해주셨는데 각 나라의 말로 여러 번 반복하여 기도문을 읽어주셨다. 마치 세상으로 파견되는 사도들의 모습 같았다. 이곳에서 함께 한 사람들이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Santiago de Compostela에서 마지막 미사를 함께 드린다면 어떤 기분일까? 상상도 할 수 없는 그 순간에 대한 기대를 품게 해주는 특별한 미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