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라소냐로 가는 길

by 신지명

날이 밝기도 전부터 사람들이 부스럭거리더니 새벽 6시가 되자 침실 불이 모두 켜졌다. 밤새 다리가 욱신거려 끙끙거리기는 했지만 온갖 약을 동원한 덕에 다시 걸을 수 있는 정도는 되었다.
딘이 어젯밤 내 가방에 꽂힌 갈대를 무척이나 부러워하며 어디서 났냐고 물었던 것이 계속 마음에 걸려 짐을 모두 꾸리고 난 후 갈대를 뽑아 딘에게 주었다. 나도 탐이 나긴 했지만 그깟 갈대가 뭐라고 욕심을 내는가 싶어서 기념사진 한 장만 남겨두었다. 내가 갈대를 건네자 이미 쉰은 넘어 보이는 미국 남자에게서 그런 어린아이 같은 표정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로 딘은 무척이나 감동하며 좋아했다. 딘 덕분에 나도 기분 좋게 둘째 날을 시작할 수 있었다.
수도원을 나와 걷기 시작한 곳은 찻길과 분리되어있는 좁은 숲길이었다. 아직 여명이 채 가시지 않았고 앞뒤로 사람들도 보이지 않아 좀 으스스한 길이었다. 게다가 종종 순례 중에 강도를 당했다는 뜬소문인지 사실인지 확인되지 않은 소식도 들은 터라 발걸음이 점점 빨라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소문은 소문일 뿐, 간격이 있기는 하지만 사람들이 끊임없이 지나다니는 길에서 특별한 일은 일어날 것 같지 않았다.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 날에는 강도들도 기회만 노리다 장사를 접어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IMG_6157.JPG 혹시 노숙을 하게 될지 몰라 지고 온 텐트... 결국 팜플로나에서 보냈다. 피레네 산맥을 넘기 전에 보냈으면 좋았을 것을.


우리는 작은 상점에 들러 점심으로 먹을 바게트와 소시지, 사과를 사고 저녁에 먹을 파스타까지 샀다. 목적지가 어제처럼 상점이 없는 곳이라면 난감하겠다는 생각에 일단 이것저것 샀는데 가방에 주렁주렁 달린 음식들의 무게가 제법 되었다.
13~4kg이나 되는 가방을 메고 걷는 길은 결코 쉽지 않았다. 그동안 더 무거운 짐을 지고 다니긴 했지만 기껏해야 이삼십 분 걷는 정도였고 이렇게 몇 시간 씩 오르막 내리막을 걷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어깨를 짓누르는 가방의 무게가 심상치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병원에서 일을 할 때보다는 훨씬 힘들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 년 동안 하루의 대부분을 유아용 의자에 앉아서 아이들 눈높이에 맞춰 구부정한 자세로 생활하고 딱 나의 가방 무게만 한 녀석들을 수시로 들어 올렸다 내리기를 반복해야 하던 때에는 등이며 어깨며 결리지 않은 곳이 없었다. 신체적인 문제는 정신적인 스트레스와 합쳐져서 도통 해소할 수 없는 피로로 나를 짓눌렀었다. 사실 가장 어려운 일은 내가 쉬고 싶을 때 쉴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때에 비하면 지금의 길은 전혀 힘들다고 할 수 없는 상태였다. 그러고 보면 몇 년 간의 일을 견뎌낸 것만으로도 이미 나는 단단해진 것은 아닌가? 더 이상 나를 몰아세우지 않아도 되는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이제 시작일 뿐이니 속단하기는 이른 시점이기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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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시간이 되었을 즈음 에디와 제임스를 다시 만났다. 우리에게 함께 점심을 먹지 않겠냐고 청해 풀밭에 자리를 잡았다. 제임스가 만들어준 홍차 맛도 너무 좋았고 날씨며 풍경도 훌륭한데다 두 사람 모두 별 얘기 아닌 것에도 큰 소리로 웃어준 덕에 소풍을 나온 것처럼 왁자지껄하고 즐거운 시간이었다. 목사인 제임스는 매일 점심식사 후 성서를 읽고 기도를 한다고 해서 우리도 함께 했다. 나도 순례 중에 성서를 읽겠다며 가방에 작은 성서를 이고 지고 다니기는 했지만 도통 읽을 여유가 없어 아쉬워하던 참인지라 기꺼이 동참했고 영어와 우리말로 번갈아가며 성서를 읽고 묵상했다. 바람소리며 새소리가 선명하게 들리는 그 잠깐의 시간이 더없이 평화로웠다. 그리고 우리는 떼제 성가를 몇 개 불렀는데 에디와 제임스, 남편 모두 화음을 넣어서 노래를 풍성하게 만들었다. 무척이나 특별한 시간이었다. 한국 부부와 영국, 호주에 사는 이십 년지기 친구가 스페인의 어느 시골 풀밭에 앉아 각자의 말로 같은 노래를 부르고 있는 상황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전혀 예상하지 못했고 준비하지 않았던 시간이 주어져서 우리는 서로에게 거듭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두 사람과 헤어지고 난 후에도 오랫동안 남편과 나는 그 특별했던 시간에 대해 이야기하고 감사해했다. 이미 이 길에 오르는 순간 사람들의 마음은 열려있고 뭐든지 경험할 준비가 되어있어서 가능한 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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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녘엔 구름이 좀 끼기 시작해서 걸음을 서둘렀다. 함께 출발했던 한국 분들은 주비리 Zubiri라는 마을에 머문다고 했는데 우리는 그다음 마을까지 가기로 해서 마음이 더 바빴다. 중간에 만난 한국 아가씨와 이런저런 얘기를 하느라 길이 지루하지 않았다.
라라소냐 Larrasoana의 알베르게는 매우 작고 좁은데다가 시설이 오래되었지만 충분히 지낼 만은 하였다. 남편은 아침부터 힘들게 들고 다니던 파스타와 소시지를 꺼내 어마어마한 양의 음식을 만들어냈다. 한국 청년 주현 씨와 중간에 만난 희원 씨가 함께 먹고도 남을 양이어서 스페인 청년 헤라르도와 이탈리아 청년 알렉산드로, 일본 청년 노리에게 권해 함께 먹었다. 파스타의 본고장 이탈리아에서 온 알렉산드로가 엄지를 들어준 덕에 남편 기분이 제법 좋아 보였다. 집에서 만들어온 볶음 고추장을 섞어 만든 파스타는 정말 맛있었다.
함께 저녁을 먹고 신나게 웃고 떠들고 있을 때 어떤 퉁퉁한 아저씨가 들어오더니 샴페인 한 병을 말없이 테이블 위에 놓고는 사라졌다. 스페인에서 유학 중이어서 스페인어가 유창한 노리가 다급히 그를 쫓아가 이것이 무엇이냐 물으니 그냥 우리 마시란다. 마침 내가 읽고 있던 책자에 '라라소냐의 활기찬 읍장 아저씨' 얘기가 있었는데 아마 그분이 아닐까 싶었다. 스페인산 스파클링 와인 'CAVA'는 하루의 피로를 단숨에 날려버리기에 충분히 청량했다.
오늘 하루는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예상치 못한 선물을 받고, 모든 것이 감사한 날이었다. 매일이 이렇지는 않겠지만 앞으로 만날 날들 중에 무언가 재밌는 일이 생기기를 기대하게 만드는 하루였다.


IMG_6195.JPG 노리, 주현, 헤라르도, 희원 그리고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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