팜플로나로 가는 길

by 신지명

역시나 사람들이 아침 일찍 일어나 떠날 채비를 했다. 어제 너무 신나게 웃고 떠든 통에 조금 더 뒤척거리고 싶었지만 일어나야 했다. 정오쯤에는 비가 올 거라는 소식에 서둘러 가야겠다고 준비를 시작했다. 그러나 오늘은 세월호 참사 1주기가 되는 날이었다. 우리는 뭐라도 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가진 것은 없고 할 수 있는 것도 특별히 없어 방명록을 찢어 메시지를 좀 적고 그림을 그렸다. 우리는 희생된 304명의 사람들을 위해 기도를 청하는 메시지를 적어 가방에 붙이고 다니기로 했다. 그것이 무슨 힘이 될지는 모르겠으나 누군가 기억해주는 사람, 기도해주는 사람이 많아지면 변화의 기운은 분명 긍정적인 방향을 갖게 될 것이라고 믿고 싶었다.
결국 우리는 가장 마지막으로 라라소냐의 알베르게를 떠났다.


IMG_6221.JPG 몇몇 사람들이 이 일에 대해 물었고 기도해주겠다고 했다.


분명 정오부터 비가 온다고 했는데 숙소를 나선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이미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다행히 부슬부슬 내리다 말다를 반복할 뿐 빗줄기가 더 강해지지는 않았다. 흐린 날씨가 오히려 걷기에는 더 좋았다. 날씨 때문에 화사하게 핀 봄꽃들이 좀 칙칙해 보이기는 했지만 작은 들꽃들과 언덕 하나를 온통 덮고 있는 유채꽃밭은 힘든 몸을 쉬는 동안 충분한 위로가 되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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팜플로나 Pampelune는 제법 큰 도시여서 입구에 들어서고 난 후에도 알베르게까지 족히 3km는 더 걸은 것 같았다. 전체 거리는 어제의 절반 정도밖에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몸이 힘들기는 마찬가지였다. 순전히 마음가짐의 문제였다. 도시에 들어선 순간 다 왔다고 마음을 놓아버려서인지 그 이후의 길은 도통 줄어드는 것 같지도 않고 발바닥은 더 욱신거렸다. 깨끗하게 정비된 도시의 중심을 거의 다 벗어나고 공원까지 지난 다음에야 언덕 위의 성당 주변으로 형성된 구도시가 나타났다. 우리는 'Jesus et Maria' 알베르게 표지를 따라 찾아 들어갔다. 제법 시설이 큰 편이었고 깨끗하게 새로 정비되어있었다. 남녀가 화장실이며 샤워실을 함께 써야 해서 자꾸 깜짝깜짝 놀랜 것을 제외하면 숙소의 시설은 아주 훌륭했다. 무엇보다도 노란 전등 빛이 숙소 전체를 묵직하게 누르고 있어서 마치 추운 겨울 두터운 솜이불 안에 누워있는 것 같았다.
샤워와 빨래를 마치고 나오는 길에 에디를 다시 만났다. 어제 다른 숙소에 머물러서 무척 오랜만에 본 듯이 반가웠다. 에디는 우리에게 저녁식사를 언제 하면 좋을지 물었다. 어제 제임스가 농담조로 팜플로나에서 파티를 할 것이라며 우리를 초대하겠다고 했는데 농담이 아니었는 모양이었다. 에디는 제임스를 데려와 지도를 펼쳐 들고는 약속시간과 장소를 정했다.
우리의 짧은 영어실력이나 저녁 '파티'에 소비될 비용이 무척 염려되기는 했지만 거절하기 어려운 제안이었다. 이 파티가 계획된 것은 순전히 나로 인한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어제 점심시간에 우리가 생장피에트포르에서 고기를 먹기 위해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기다려야 했던 처절한 일화를 이야기했더니만 제임스가 깔깔대고 웃으며 팜플로나에서 고기 파티를 하겠다고 외쳤던 것이다. 그러니 이제 와서 함께 할 수 없다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어떻게든 되겠지 싶어 일단 약속시간과 장소를 다시 확인하고는 숙소를 나섰다.
며칠을 다녀보니 우리가 텐트에서 잘 일은 없을 것 같아 텐트를 포함한 몇 가지 짐을 목적지로 더 보내기로 했다. 우체국에 들러 텐트와 남편의 짐 몇 가지를 부쳤다. 우체국 직원들은 영어가 전혀 되지 않았지만 양쪽 모두 목적이 분명했고 눈짓, 손짓만으로도 짐을 부치는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사람은 인종과 문화를 뛰어넘어 생각보다 많은 것을 공유하며 살고 있다는 점이 새삼 놀라웠다.
우체국을 나와서는 밑창이 반쯤 떨어진 남편의 신발을 대신할 녀석을 찾아 백화점으로 갔다. 백화점에 들어선 순간 진하게 풍기는 화장품 냄새며 화려한 상품들이 그렇게 낯설 수가 없었다. 우리는 어느새 먹고 자고, 이동하는 것 외의 모든 일에서 멀어져 있었던 모양이었다.
남편은 다행히 발에 잘 맞는 큰 신발을 찾아서 한시름 놓게 되었다. 여행을 시작하면서부터 신발에 약간의 틈이 생겨 중간중간에도 신발을 사려고 노력했으나 300mm나 되는 크기의 적당한 신발을 찾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았었다. 유럽 사람들은 대부분 크다고 생각했던 것이 착각이었다.


IMG_6250.JPG 무언가 사야 할 것이 있다면 팜플로나에서 사야한다. 당분간 큰 도시는 나오지 않을 예정이다.


마트에서 내일 먹을 음식까지 사고 나니 머리 무거운 일은 모두 해결되었다. 이제 에디, 제임스와 함께 할 저녁만 남아있었다.
여섯 시 반, 카스틸로 Castillo광장에서 제임스를 만났다. 제임스는 광장 주변의 파스텔톤으로 꾸며진 멋진 집들에 몹시 감탄했는데 인구밀도가 유독 낮은 호주 사람이라 '주상복합' 건물을 몹시 신기해했다. 함께 건물 예찬을 하고 있는 사이에 에디도 나타났다. 에디는 이곳 어딘가에 사는 한 아가씨를 만나 맛집을 알아왔다며 작은 메모를 내놓고 메뉴들을 꼼꼼히 설명했다. 하지만 제임스는 대충 흘려듣더니 자기가 오후 나절 머물렀던 광장 바로 앞 카페에서 일단 맥주부터 한 잔 하자고 했다. 그 후에는 무조건 고기를 먹겠다고 큰 소리로 선언했다.
꼼꼼하고 세심해서 다소곳해 보이기까지 한 영국 남자 에디와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존재를 알릴 만큼 큰 소리로 웃어대는 호방한 호주 남자 제임스의 조합은 무척 흥미로웠다.


2015-04-17-00-00-54-7216.JPG 카스틸로 Castillo광장


카페 안은 스페인 할머니들로 가득해서 우리 테이블의 기운이 몹시 이질적이었다. 제임스와 에디는 우리에 대해 무척 궁금해했고 얘기하는 족족 큰 소리로 호응해주거나 배꼽을 잡고 웃는 바람에 스페인 할머니들은 우리에게서 시선을 거두지 못했다. 우리도 시원한 맥주를 한 잔씩 들이켰겠다, 두 사람 덕분에 주변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실컷 떠들며 웃었던 것 같다. 언어 실력이 부족해도 마음만 열려있으면 대화가 가능하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까페를 나서면서 친화력 좋은 에디와 제임스는 우리를 쳐다보던 할머니들과 어느새 인사를 나누고 사진까지 찍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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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게 근처의 식당은 아직 저녁식사가 시작되지 않았다. 스페인어를 몰라 한참 눈치를 본 후에야 알았지만 여기는 밤 아홉 시에서 열 시 쯤이나 돼야 저녁식사를 하고 그 전에는 타파스 Tapas라고 하는 작은 접시에 담긴 몇 가지 음식과 맥주나 와인을 마시며 시간을 보내는 모양이었다.
우리도 맥주와 와인을 좀 시켜서 마시고 있었는데 뒤쪽 테이블에 앉은 스페인 어르신들이 뭔가를 맛있게 먹고 있었다. 친화력 좋고 약간의 스페인어를 할 줄 아는 에디와 제임스가 그들과 인사를 나누더니 그들이 먹고 있던 음식의 이름을 알아내어 냉큼 주문을 하고 왔다. '모스코비따 moscovita(모스크바를 말하는 스페인어인데 이 음식을 왜 그렇게 부르는지는 모르겠다.)'라고 하는 그 음식은 계란과 하몽, 모짜렐라치즈를 꼬치에 꿰어 통째로 튀긴 것이었는데 한 입 한 입 눈이 커지게 하는 맛이었다. 모두 무슨 맛인지 알고 있는 재료들인데 그 맛의 조합으로 상상한 그 이상의 맛이었다. 그 감탄스러움을 표현하기에 턱없이 부족한 내 영어 실력이 아쉬울 따름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찬사는 한 마디뿐이었다.
"이건 계란이 아닌데?!!! This is not an egg!!!"
오날 밤, 이 말은 유행어처럼 몇 번이고 회자되고 응용되었다.
뒤쪽 테이블에 앉았던 사람들이 가고 새로운 사람들이 왔는데 그 사람들은 심지어 오늘이 핀쵸 pincho를 저렴하게 파는 목요일이니 참고하라는 정보까지 주었다. 제임스는 당장 모스코비따 한 접시를 더 주문했다. 그 사람들은 저녁식사 메뉴를 추천해주고 주문까지 도와주었다. 순전히 에디와 제임스의 친화력 덕분이었다.
현지인이 추천해준 음식은 모두 훌륭했다. 나와 제임스는 '츌레따 데 바카 chuleta de vaca-소갈비', 당연히 두툼한 고기를 먹었고 에디와 남편은 생선살과 야채를 다져 만든 음식을 먹었는데 우리 네 사람은 맛에 감탄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우리만 있던 식당의 2층 홀은 간간이 우리의 감탄소리만 울려 퍼졌다.
"음..."
"오!!"
"하...."


2015-04-17-02-53-32-7221.JPG 'Hosteria El Temple'의 모스코비따 moscovita
2015-04-17-04-34-42-7224.JPG 츌레타 데 바카 chuleta de vaca


우리는 음식을 모두 먹어치운 후 이런저런 이야기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떠들다가 알베르게가 문을 닫는 열한 시가 다 되어서야 급하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에디와 제임스는 약간의 비용이라도 부담하려는 나를 극구 말리고 그저 함께 해주어 고맙다고만 했다. 오히려 우리가 너무 감사한 시간이었다.
고난의 길을 예상했고 그래야 한다고 다짐한 길에서 예기치 않은 풍족한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두 사람에게서 느껴진 사람에 대한 순수한 애정은 마치 타닥타닥 경쾌한 소리를 내며 타오르는 모닥불처럼 따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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