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베르게의 찬장을 잘 뒤지면 사람들이 두고 간 다양한 식재료가 나오는데 이곳 에스텔라엔 유독 먹을 것이 많았다. 덕분에 아침부터 푸짐한 볶음면 요리를 만들어 먹고 길을 나설 수 있었다.
어젯밤에 또 비가 내린 것 같아 날씨가 걱정스러웠었는데 다행히 하늘은 더할 나위 없이 파랗게 개어있었다.
마을을 벗어난 지 십분 채 안되었을 즈음 헤마 아주머니가 저 앞에서 우리에게 뭔가 손짓을 해주고 있었다. 가까이 가서 보니 'Fuente de Irache'라고 적힌 간판 아래 수도꼭지가 두 개 있었고 '와인 vino'와 '물 agua'라고 적혀있었다. 영어를 못하시는 헤마 아주머니와 손짓, 눈짓으로 얘기해보니 공짜로 마실 수 있는 와인이란다! 내가 두 손 번쩍 들고 환호하니 그녀도 함박웃음 지으며 호응해주었다.
'yeah!!! vino!! free!!'
'Bodegas Irache'라는 와이너리에서 홍보 차원으로 통 크게 서비스를 하는 모양이었다. 와인은 아직 완전히 숙성되기 전이었지만 맛이 제법 풍부하고 훌륭했다. 우리는 점심식사를 위해 한 병, 저녁식사를 위해 또 한 병을 가득 채웠다. 병을 채우고 나서야 하루 100L로 양이 제한되어있다는 간판을 봐서 늦게 오는 사람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기는 했지만 이미 채운 와인이니 어찌할 방법은 없었다.
공짜 와인에 정신을 빼앗겨 무언가에 홀려버렸을까? 우리는 와인을 마신 뒤로 길을 완전히 잃어 엄청난 고행길로 들어서버렸다.
돌산 아래 갈림길이 있었다. 로스 아르코스 Los Arcos로 가는 길은 19km의 우회길과 17km의 산길로 나뉘었는데 우리는 잠시 고민하다가 산길로 들어섰었다. 그런데 산길로 들어서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세 개의 갈림길이 나오고 노란 화살표도 조가비가 있는 비석도 찾을 수가 없었다. 분명 여기까지 오는 길은 하나였다. 남편이 GPS를 확인하는 동안 나는 좀 큰길을 따라 더 나가 봤다. 그러나 그 길은 한참을 나간 뒤 산으로 올라가는 더 큰길과 닿아있었다. 그곳에 뜬금없이 내려가는 방향으로 노란 화살표가 하나 그려져 있었다. 우리가 올라온 방향과 반대인 것이 영 의심스러워 다시 갈림길 앞으로 돌아왔다. 지금 생각해보면 노란 화살표를 믿었어야 했는지도 모르겠다.
GPS 신호도 잘 잡히지 않아 고민하던 중에 어디선가 나타난 큰 개 한 마리가 우리를 한참 바라보더니 갈림길 중 하나로 주인과 함께 들어서는 것 같았다. 잠시 뒤엔 그 길에서 한 남자가 자전거를 타고 나타났다.
길이 있기는 있는 모양이라 우리는 일단 매우 좁아 보이는 길로 들어섰다. 바닥에 노란색은 아니지만 분홍색 화살표도 그려져 있었다. 하지만 5분도 채 가지 않아 갑자기 길이 사라지고 더 이상 오를 수 없어 보이는 곳에 이르러 다시 돌아 나와야 했다. 그럼 남은 길은 하나인데... 개와 자전거가 들고난 길을 잘못 봤나? 마지막 길은 좁긴 하지만 사람들이 다닌 흔적이 분명 있었고 중간중간 나무에 분홍색 표시가 칠해져 있었다. 여태껏 분홍색 표시는 본 적이 없지만 일단 사람이 다닌 길이고, 잘못 들어섰다고 해도 길을 따라 산만 넘어가면 결국 다음 마을로 들어설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우린 계속 위로 올라갔다.
무언가 잘못되었을 때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제자리로 돌아가 다시 시작하는 것이 더 빠를 수도 있다. 하지만 정작 그 상황 안에 빠져있고 이미 들인 노력이 크다면 일을 돌이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이미 돌아가기 어려울 만큼 산을 올랐을 즈음, 길은 점점 더 가파르게 치솟았고 온갖 가시나무 때문에 다리도 따끔거렸다. 심지어 나는... 크록스 슬리퍼를 신고 있었다! 어제 맞은 비로 등산화가 완전히 젖어서 신을 수가 없었다. 남편은 그나마 전에 신던 신발을 대충 수선해서 신고 가는 중이었다.
지리산 천왕봉을 오를 때의 고충을 잊어버려서인지 모르겠지만 지금의 기억으로는 그때보다 더 어려운 길이었다. 좁고 미끄럽고 손을 앞으로 뻗으면 네 발로 기어올라가야 할 듯이 가파른 경사였다. 게다가 그때보다 더 무거운 가방을 메고 있었다. 결정적으로는 길이 맞기나 한 것인지 확신할 수가 없어 불안했다. 한 시간이 넘도록 사람의 소리를 전혀 듣지 못했다. 이미 이 길은 순례길일리 없다는 사실을 인정했지만 산을 오르는 등산길이기는 해야 했다.
한참을 오르니 산 밑에서 올려다보던 정상의 암벽이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나보다 몇 걸음 앞서 오르던 남편이 소리를 질렀다.
"이게 뭐야!"
"다 왔어?"
내가 다급히 물었는데
남편은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으로 이상해! 어쨌든 다 올라오긴 했어!"
라고 대답했다.
다 올랐다는 마음과 다음의 길이 어떻게 된 것인지 궁금한 마음이 뒤섞여 발 길을 서둘러 가시나무에 뒤덮인 길을 빠져나왔다.
"..?..."
산의 봉우리를 이루는 마지막 암벽을 측면으로 두고 마른 풀로 뒤덮인 평지가 나타났다. 오르는 길이 끝났다. 정상은 아니다. 그런데 내려가는 길도 보이지 않는다. 길게 자란 풀들을 보니 사람들이 흔히 다니는 길은 분명 아니었다. 내려가는 길은 없었지만 옆으로 뻗은 길이 나 있어 조금 나가 일단 숨을 돌리기로 했다.
그런데 그곳에서 보는 풍경이 일품이었다.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내 시야에 들어오는 하늘만큼 넓은 평지와 저 멀리 평평하게 깎인 오래된 산에 구름이 닿을 듯이 내려앉아있었다. 구름 위로는 도대체 우리나라의 하늘빛과 왜 그리 다른지 알 수 없는, '완벽한 하늘색'이라고 여겨지는 아름다운 색의 하늘이 모든 것을 감싸고 있었다. 높은 곳까지 올라오지 않았다면 볼 수 없었을 풍경이었다. 거기다가 능선을 타고 올라오는 맛있는 바람까지. 길을 잘못 들어 고생한 것은 이미 모두 보상받았다.
숨을 돌리고 막 떠나려는 참에 우리가 오른 길에서 사람 소리가 들렸다. 우리 같은 바보가 또 있긴 있는 모양이라며 몇 걸음 옮겼는데 그 길에서 튀어나온 여자가 우리 쪽으로 달려와 '몬테후라!'? 뭐 이런 비슷한 말을 외치며 자기가 온 쪽을 가리켰다. 거기서 왔는데 뭐지? 이해가 안 돼서 멀뚱히 서 있으니 'Ah~ camino?'라고 묻는다. 드디어 아는 말이 나와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니 우리가 가려는 방향을 가리키며 'si, si'하고는 사라졌다. 그 여자는 우리같은 바보가 아니고 등산객이었던 모양이었다. 우리가 정상에 오르는 길을 못 찾는 줄 알고 다급히 쫓아온 모양인데 동양인이 커다란 가방을 메고 '몬테후라'에 오를리는 없다는 사실을 눈치챈 것이었다. 그 길은 등산로가 맞았고 멍청한 순례객은 우리뿐인 것이 맞았다. 그리고 우리가 가려는 길이 어쨌든 까미노의 어딘가로 이어지는 것도 맞았다. 그녀 덕에 많은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우리가 가는 길이 우리의 상상처럼 마을로 내려가는 길은 전혀 아니었다. 마을은커녕 처음 시작과 같은 방향, 같은 높이로 옆으로만 가고 있었다. 한참을 걷고 뒤를 돌아보면 산의 윗부분을 두른 띠와 같은 길만 뒤로 물러나 있고 우리는 조금도 아래로 내려가지 않았다.
한 시간 반쯤을 계속 산을 둘러 걸었을까? 드디어 갈림길이 나왔는데 하나는 올라가는 길이었고 다른 하나는 조금, 아주 조금 경사가 낮아지는 길이었다. 조금 낮아지는 그 길로 조금 더 걷고 난 뒤 우리는 매우 갑작스럽게 자전거를 탄 남자와 마주쳤다. 너무 갑작스러운 만남에 우리가 놀란만큼 그 남자도 우리가 그 길에서 나오는 게 이상했는지 한참을 쳐다보더니 급하게 꺾이는 한 길모퉁이를 가리켰다.
조가비 비석이다! 이렇게 갑자기?! 이 길에?!
남자 뒤로 여자가 한 명 더 나타나더니 그 길에서 오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고 말해주었다.
'너희만 멍청한 것은 아니니 안심해'라고 말하는 거지?
영문은 모르겠지만 어쨌든 세 시간 만에 제자리를 찾았으니 다행스러운 일이라며 신이 나서 걷기 시작하자마자 남편이 소리쳤다.
"에디! 제임스!"
이 인연을 뭐라고 설명해야 하지?
그들이 잘 보이는 곳에 앉아있는 것도 아니었다. 길 아래 밭에 등을 기대고 앉아있어 무심코 지나가면 보이지도 않았다. 사람이 있는 것을 봤다고 해도 정수리만 겨우 보이는 상황이었다. 남편은 이제 그들의 정수리도 알아보는 경지에 이르렀다.
그들도 우리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놀랍고 반가워 한껏 소리 높여 인사했다. 그렇게 우리는 또 점심식사와 점심 기도를 함께 했다. 산길을 헤매고 나와 처음 만난 순례객이 에디와 제임스라니... 우리 모두 식사를 하다 말고 'amazing!'을 몇 번이고 중얼거렸다.
에디는 우리를 위로해주기 위해 중국 미담이라며 이야기를 하나 들려주었는데 - 나중에 생각해보니 '새옹지마' 이야기였다. - 에디의 표현대로 굳이 제목을 붙이자면 '누가 알겠나? Who knows?'였다. 이것도 마음에 든다. 여하튼 그 내용은 이렇다.
한 노인이 자신이 키우던 말을 잃어버렸다. 그런데 어느 날 잃어버렸던 말이 훌륭한 말을 데리고 되돌아 왔다. 그것을 보고 사람들이 좋은 일이라며 신이 나서 말했다. 그러나 그는 '누가 알겠나? Who knows?'라고만 대꾸하였다. 아니나 다를까 얼마 뒤 그의 아들이 그 말을 타다 떨어져 다리가 부러지니 사람들이 이번에는 참 안되었다며 그를 위로하였다. 그러나 그 노인은 또 '누가 알겠나? Who knows?'라고만 대꾸하였다. 얼마 뒤 전쟁이 나서 젊은 남자들을 군대로 끌고 갔는데 그의 아들은 부러진 다리 덕분에 전쟁에 나가지 않아 목숨을 구하게 되었다는 이야기였다.
에디가 특유의 영국식 억양으로 이야기를 얼마나 맛깔나게 하는지 우리는 어린아이들처럼 후렴구 'Who knows?'를 함께 외쳤다.
나는 그의 말에 크게 동의하며 엄청 고생은 했지만 산 정상에서 본 풍경도 훌륭했고 우리들이 다시 만나게 된 것도 놀랍고 기쁘다며 호들갑을 부렸다.
그런데 제임스가 갑자기 나에게 진지하게 물었다.
'그래서.. 너희는 왜 그 길을 선택한 건데?'
세 개의 갈림길에 대해 묻는 줄 알고 열심히 설명했는데 첫 갈림길, 17km의 산 길과 19km의 우회길에 대한 질문이었다. 사람들은 모두 19km의 우회길로 갔다고 했다. 나는 '그 길이 더 도전적일 것 같았거든.'이라고만 대답했다.
그들과 헤어진 뒤로도 그 질문은 계속 내 머릿속에 맴돌았다.
'우리는, 나는 왜 그 길을 선택했지?'
그래, 남편 말대로 '정통'이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순례길'을 걷기로 결정한 이상 타협하거나 대충 흉내만 내거나 하고 싶지 않은 것이 사실이었다. 그래서 가방 무게를 줄이는 일에 집착하지도 않았고 다음 목적지로 가방을 배달시키는 일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굳이 돌쇠같이 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안다. 어찌 보면 그저 집착일 뿐이라는 것도 안다. 하지만 우리를 다시 갈림길 앞에 세워놔도 나나 남편은 같은 길로 갔을 것이다. 마음 한 켠에 '그날은 조금 편하게 갔어'라는 생각이 떠오르는 것이 영 불편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좀 더 결정적인 이유는 따로 있었다. 남편의 표현대로는 '특별함 unique'이고 깊숙한 내면의 표현으로는 '비교에 대한 불안감'이다. 남편이나 나나 몹시 불편해하는 것이 '남들 하는 대로'이다. 남편은 줄을 서서 먹어야 하는 맛집은 잘 가지 않는다. 맛과 상관없이 단지 너무 많은 사람이 선택한 집이기 때문에 싫어한다. 영화도 모두가 보는 영화는 잘 보지 않는다. 종종 나한테 고백한 대로 보통 남자들이 다 좋다고 하는 예쁘고 여성스러운 여자도 싫어한다. 그래서 나랑 결혼한 모양이다.
나 역시 친구들이 많이 하는 것은 일부러 잘 하지 않았다. 고등학교 졸업사진을 찍던 날, 학생은 학생다운 사진을 남겨야 한다며 머리 손질도 안 하고 화장도 안 하고 버틴 바람에 혼자 촌스러운 사진을 남기는 굴욕을 겪어야 했다. 대학교 진학한 후에도 친구들과 떨어져 나 혼자 부전공을 따라 대학원에 갔고 대학원에서마저도 남들 다 하는 놀이치료는 안 하고 혼자 떨어져 나와 행동치료를 배웠다.
이런 행보는 거듭할수록 점점 더 심해졌던 것 같다. 아마도 남들과 다른 행동은 비교 대상에서 제외되기 쉽고 무엇을 해도 희소성이 있으니 그것 자체로 인정받을 수 있는 경험을 많이 하게 되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돌려 말하고 있지만 결국 남들과 비교당할 자신이 없다는 소리다. 같은 길을 가며 더 나은 결과를 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렇다고 남들보다 못한 상태를 인정하는 것도 자존심 상해 싫었다. 그러다 보니 언제나 비교할 수 없는 다른 무언가를 찾게 되었던 것 같다.
어찌 보면 비겁한 이유로 늘 다른 길을 선택하며 살았지만 덕분에 늘 조금은 특별하고 재미난 삶을 살고 있다고 느끼고 있으니 그런 선택들이 틀렸다거나 잘못되었다고 후회하고 싶지는 않다. 오늘의 선택 덕분에 재밌는 얘깃거리가 하나 생긴 것처럼 말이다.
산에서 내려왔다고 해서 목적지에 도착한 것은 아니었다. 그제야 제 길로 들어선 것뿐이었다. 그 뒤로도 우리는 세 시간이나 더 걸어야 했는데 도통 마을이 나타나지 않아 애를 먹었다. 앞서 걷는 남편에게 수시로 '마을이야?!', '다 왔어?!'를 물어야 했다. 오늘따라 유난히 길이 구불구불하고 언덕이 많아 마치 '저 굽은 길만 돌아나가면 마을이 보일 거야!'라고 기대하게 만들었다.
산에서도 그렇고 산을 내려와서도 우리는 앞에 무슨 일이 생길지 전혀 예측할 수 없었고 섣불리 예측하거나 기대한 것은 번번이 빗나갔다. 나는 어리석게도 몇 번을 반복해서 겪고 난 뒤에야 '지금의 한 걸음만 생각하자, 머리를 먼저 앞으로 들이밀지 말자'고 다짐할 수 있었다. 실제로 내 발 한 치만 생각하며 걸으면 걸음은 훨씬 가벼워졌다.
여섯 시가 다 되어 들어간 알베르게에 짐을 부리자마자 맥주 한 캔부터 시원하게 들이켰다. '산 미구엘 San Miguel'은 우리 순례길의 동반자나 다름없었다.
다행히 일곱 시에 주일미사가 있어서 오늘의 험난한 여정이 무사히 끝났음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성당에 갈 수 있었다. 앉았다 일어나기도 참 버거운 몸 상태였지만 미사 후 신부님이 순례객들에게 강복해 주시고 각 나라의 언어로 적힌 기도문을 나눠주어 매우 뜻깊은 시간이었다. 나는 한글로 깨알같이 적힌 '순례자의 기도'를 받아 들었는데 '광야에서...'로 시작되는 첫 구절에 그만 눈물을 왈칵 쏟고 말았다. 오랜만에 본 한글이 반가워서인지, 오늘 하루 진정한 광야를 떠돌다 온 기분이 들어서인지, 아니면 그 간의 삶이 광야처럼 힘들었다고 느껴져서인지 모르겠지만 흐르는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 팜플로나에서 잠깐 인사를 나눴던 미국 남자가 어깨를 감싸주며 위로해주고는 내 옆을 가리켰는데 그의 부인도 옆에서 울고 있었다. 내가 왜 눈물이 나는지 모르겠다고 하니 자기도 모르겠단다. 그 옆에선 내 남편도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남편은 누군가 이 길 위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 감동적이라고 했다. 그 말도 맞는 것 같았다.
오늘은 여러 가지로 매우 특별한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