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술 마시고 놀다가 정신없이 잠든 바람에 마당에 널어놓은 빨래를 까맣게 잊어버렸다. 오후 볕이 좋아 금세 말랐었을 텐데 밤새 버려둔 탓에 새벽이슬을 맞아 다시 젖어버렸다. 하는 수 없이 몇 번의 심호흡을 하고 젖은 옷을 그냥 입을 수 밖에 없었다. 해가 뜨기 전이라 한껏 식어버린 새벽의 공기까지 더해져 머리털이 쭈뼛하고 솟아올랐다. 입고 가다 보면 언젠가는 마르겠지... 그나마 어제 저녁에 잔뜩 만들어놓은 누룽지를 따뜻하게 끓여 한 컵 배불리 마신 덕에 한기를 좀 달랠 수 있었다. 마침 부엌으로 들어선 에디에게도 누룽지 한 컵을 내밀었다. 나는 누룽지를 받아 들고 숟가락을 찾는 에디에게 컵을 휘휘 돌려 떠오른 밥알을 한 번에 털어먹는 기술을 알려주었다. 쉰이 넘은 에디는 그의 높이 솟은 코만 보일 만큼 고개를 한껏 젖히고 큰 소리로 웃었다.
나는 어느새 네가 옳으니 내가 옳으니를 놓고 싸울 일도 없고, 말도 안 되는 요구에 응할 수도 없고 거절할 수도 없어 끙끙대는 짓도 필요 없는 이곳에서의 삶에 시나브로 젖어가고만 있었다. 이런 말도 안 되게 소소한 일들이 웃음거리가 되는 이곳의 생활이 몸속 구석구석 박혀있는 한기를 따뜻하게 채우는 것에 행복감을 느끼고 있었다.
오늘도 날씨는 무척 화창했다. 여전히 아름다운 유채꽃밭이 끝나지 않아서 지친 몸을 달래가며 걸을 수 있었다.
오전 내내 특별한 사람들은 만나지 않고 길을 걸었다. 한참을 걷고 점심을 먹을 만한 자리를 물색하던 중 화사하게 햇빛이 내리쬐는 꽃밭에 이미 도시락을 펼치고 앉은 에디, 제임스를 또 만나게 되었다. 무슨 특별한 인연인가 싶었다.
에디는 나에게 오늘의 길 중 특별한 순간이 있었는지 물었다. 난 길에서 본 개미 이야기를 했다. 털이 달린 씨앗을 열심히 들어 나르는 개미들이 재밌어서 한참을 구경하고 서있었는데 오래전에 읽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개미'에 나온 대로 열심히 일하는 개미와 그저 꽁무니만 쫓아다니는 개미가 있더라는 이야기를 했더니 에디가 몹시 흥미로워하며 더 자세히 이야기를 해달라고 청했다.
사실 이 현상은 이탈리아의 경제학자 페르토 Pareto라는 사람이 발견해서 Pareto법칙이라고 한다는데 '20%의 원인이 80%의 결과물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개미의 20%가 전체 결과물의 80%에 해당하는 일을 해내는데 신기한 것은 일하는 20%의 개미들을 따로 모아놓으면 그중에서 또 2:8의 비율로 나뉘어 일하는 개미와 일을 하지 않는 개미로 나뉜다는 것이다. 이 현상은 벌에게서도 동일하게 나타나고 심지어 인간 사회에도 적용이 된다는 것이다. 20%의 인구가 80%의 부를 소유한다거나 20%의 제품이 회사 매출의 80%를 유지시켜준다는 식이다. 비슷한 맥락으로 수백만 년 전 지구에 기후변화가 생겨 숲이 사라지고 초원이 형성될 무렵 숲에서 생활하던 유인원 중 20%만이 동물의 위협과 불확실성을 무릅쓰고 숲을 벗어나 초원에서 초식동물을 사냥하는 삶의 방식을 택했다고 한다. 그들이 남방사람원숭이라 불리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란다. 그들은 결국 손과 불을 사용하는 인간으로 진화했다. 숲에 남은 80%는 멸종하거나 더 이상 진화하지 않고 아직까지 유인원으로 남아있는 개체의 조상이 되었다고 한다.
나는 이 법칙에 대해 알게 된 이후 다른 자연의 법칙이나 우주의 광활함 등에 잠시 심취하다가 허무주의에 빠지고 말았던 시절이 있었다. 이미 우주는 거대한 질서를 통해 움직이고 그 광활함과 정교함 안에서 나의 존재와 나의 의지는 너무나 미미하여 '무'에 가깝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 모든 행위는 무의미해져 버렸다. 혹여 내가 미친 여자처럼 머리에 팬티를 쓰고 거리를 뛰어다녀도 세상에는 아무 변화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고 정해진 대로 흘러갈 것이다. 내가 방 안에 평생을 드러누워 80% 중 한 사람이 되어도 상관없는 일이었다.
물론 '허무'에 대한 생각은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나이를 좀 더 먹고 나서는 법칙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내가 어떤 역할을 '선택'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무한의 자유가 주어져있고, 혹시 그 선택이 자유의지에 의한 선택이라고 착각한 것이고 이미 나의 역할은 정해져 있는 것이라고 해도 나의 관점을 우주가 아닌 내 안으로 당겨와 '전체로서의 나'를 봐야 한다는 생각은 갖게 되었다. 내가 어떤 역할을 담당하였든 내 몫은 나의 에너지를 정상적인 속도와 상태로 모두 소진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다행히 평생 방에 누워만 있기로 결정하지는 않았다. 무엇보다도 어머니 뱃속에서 나오는 순간 나에게 영향을 미친 모든 요소들이 지금까지의 나를 만들었고 그 관성은 결코 나를 머리에 팬티를 쓴 채 뛰어다니는 미친 여자나 평생 방 안에 누워만 있는 사람이 되도록 내버려 두지는 않을 것이라는 사실도 알고 있다.
여하튼 개미와 역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느라- 생각의 전달도 어렵고 그들의 의견을 이해하기도 어려워 '나눈다'는 표현은 다소 부적절하긴 하지만 같은 주제를 공유한다는 측면에서 이 단어를 그냥 사용하기로 한다. - 우린 또 한 시간이 넘도록 점심을 먹었다.
에디네와 흩날리는 벚꽃잎 아래에서 점심을 먹은 것이 어제인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갑작스럽게 비가 쏟아졌다. 하늘을 보며 지나가는 비일 테니 가방에 레인커버만 씌우고 서둘러 먹구름을 벗어나자고 했던 것은 자연 앞에 무지를 민낯으로 드러낸 짓이었다. 먹구름은 우리를 따라 움직였고 비는 점점 세차게 쏟아졌다. 이제는 가방을 내리고 우비를 꺼내 입기도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점퍼는 이미 물을 다 먹었고 신발도 축축해질 대로 축축해져서 질퍽거리고 있었다. 한 시간쯤 비를 흠뻑 맞고 나서야 먹구름 지역을 겨우 벗어날 수 있었다. 아니, 먹구름이 우릴 따라오는 것을 멈춰준 것일지도 모르겠다.
자연을 예측하는 어리석은 짓은 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고, 늦었다고 생각될 때는 정말 늦은 때일 수도 있다는 말을 절감한 순간이었다.
에스텔라 Estella의 숙소는 몹시 어둡고 추워 비에 젖은 옷가지며 신발을 말릴 재간이 없었다. 건조기가 있어 2유로나 내고 옷과 함께 신발 밑창을 빨아 말렸지만 그마저도 기능이 신통치 않아 여전히 축축한 상태였다.
시설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멀지 않은 곳에 까르푸가 있는 것은 반가운 일이었다. 덕분에 이것저것 재료를 사들고 와 부침개를 해 먹을 수 있었다. 지향 언니가 함께 도와준 덕에 어마어마한 양의 부침개를 부쳤고 주현 씨, 미라 언니, 헤라르도, 안소니와 헤마 부부가 모두 나누어먹고도 남아 배가 빵빵해지도록 먹을 수 있었다. 뱃속을 든든히 채운 덕에 식은 몸에 온기를 돌리고 서둘러 잠자리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