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엔떼 라 레이나로 가는 길

by 신지명

이제 고작 4일 째가 되었는데 아침 일찍 일어나 가방을 꾸리고 길을 나서는 일이 일상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모두들 출근하는 사람처럼 나갈 채비를 하고 있었다. 낯설었던 일들이 몸에 젖어드는데 필요한 시간이 매우 짧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사무실에 앉아 산티아고 길의 사진을 보며 '사진만 봐도 떠날 결심 하길 잘했다'며 설레어했었는데 그 길에 들어선 지 고작 나흘 만에 사무실로 출근하던 그때처럼 늑장을 부리고 몸을 뒤척거리고 있는 나를 보면서 스스로에게 꿀밤이라도 한 대 때려주고 싶었다. 핑계를 대자면 어제 늦게까지 놀다가 들어와서 아침이 더욱 힘들었다. 좋은 사람과 함께 하는 것은 즐거운 일이지만 피로를 풀 시간이 없는 것은 어쩔 수 없이 감수해야 하는 일이었다.
우리는 식사할 곳이 마땅치 않은 알베르게를 나서 근처 공원에서 아침 식사를 했다. 식사라고 해봐야 늘 빵과 소시지, 잼 등이 전부이지만 그만큼으로도 생명을 유지하고 몇 시간 씩 걸을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었다. 둘 다 먹는 것을 워낙 좋아해서 늘 배가 꽉 차도록 먹는 것이 당연했었는데 지금은 배가 고프지 않을 정도, 걸을 수 있을 정도만 먹으며 살고 있다. 하지만 그동안의 생활이 과욕이었음을 인정한다고 해서 지금의 상태를 유지해야겠다는 다짐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며칠을 걸으며 내가 무엇이 가장 불편하고 힘든지 들여다보니 내가 삶에서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가 여실히 보였기 때문이다. 우습게도 내게 제일 힘든 것은 무거운 가방도 아니요, 욱신거리는 발바닥도 아니요 그저 먹고 싶은 음식을 먹지 못하는 것이었다. 내 삶에서 식도락이 제법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틀림없었다. 그런 면에서 나는 지금 최고의 고행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약간 흐릿했던 아침과 달리 오후 내내 날씨가 쾌청했다. 게다가 유채꽃 재배가 주업인 지역을 지나고 있는지 온통 노란색 들판이 몇 시간 째 끝나지 않았다. 덕분에 앞으로 나가는 일이 영 쉽지 않았다. 나중에 보면 다 똑같을 사진이지만 아쉬운 마음에 몇 번이고 걸음을 멈춰 사진을 찍었다. 꼭 사진 때문이 아니더라도 앞만 보고 걷다가 종종 뒤를 돌아다보면 분명 내가 걸어온 길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다른 풍경이 눈에 들어와 걸음이 더욱 더뎌졌다. '내가 걸어온 길'이 아름답게 보이고 뿌듯하게 바라봐지는 지금처럼 내 삶도 아름다운 길을 남길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게 들었다. 나의 한 걸음 한 걸음이 선택하여 만들어진 길이 빛을 내며 저만치 펼쳐져 있다면 얼마나 마음이 벅차오를까! 앞으로의 삶에서 어리석고 나약한 마음으로 섣불리 아무 곳에나 발을 내딛지는 말자고 나름의 결심을 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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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여정이 아름답고 평탄한 길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언덕을 넘기 위해 약간의 오르막과 내리막을 걸어야 했는데 댕글댕글한 자갈들이 잔뜩 깔려있어서 걷기가 쉽지 않았다. 희한한 것은 종종 나타나는 갈래길에서 노란색 화살표는 언제나 쉽지 않은 길을 가리킨다는 사실이었다. 이번 길에서도 분명 한 쪽은 폭신거리는 잔디가 깔려있고 들꽃이 늘어선 길이었는데 다른 한 쪽은 자갈만 가득한 길이 이어져 있었다. 분명 두 길은 저 앞에서 만날 것 같아 보였지만 확신을 할 수는 없었다. 그러니 자갈길로 들어설 수 밖에 없고 아니나 다를까 결국은 꽃길과 만나고야 말았다. 이런 일이 몇 번 반복되고 나니 화살표를 처음 표시했었다는 이름도 어려운 '돈 엘리아스 발리냐 삼페드로' 사제가 우리 같은 사람들이 '순례'의 의미를 되새기기를 무척이나 바랐던 모양이라고 투정을 부릴 수 밖에 없었다.
그래도 그런 길을 내려와 다리가 후들거리고 내리쬐는 태양에 땀을 흠뻑 흘리고 나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바람을 맛 볼 수 있는 특권이 주어지니 더 따져 묻고 싶은 마음은 또 금세 사라졌다. 눈이 부시도록 빛나는 유채꽃밭을 바라보며 내 몸의 곳곳으로 스며드는 바람을 느끼고 서 있으면 그 바람이 너무나 맛있어서 몇 번이고 입맛을 다시고 음미하게 되었다.


IMG_6302.JPG 화살표는 늘 험한 길을 향한다.
IMG_6297.JPG 용서의 언덕 Alto del Perdó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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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엔떼 라 레이나 Puente la reina의 알베르게는 5유로로 매우 저렴해서 따뜻하지 않은 물로 샤워하는 고통을 불평 없이 감수해야 했다. 우리에게는 아직도 봄이 오지 않은 것 같았다.
남편은 어제 제임스와 에디가 너무나 근사한 저녁을 마련해준 것에 대해 무언가 답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모양이었다. 주현 씨와 함께 마트에 가더니 파스타 재료와 와인, 맥주를 한 가득 사가지고 와서는 샤워도 하지 않고 음식을 하기 시작했다. 까미노 시작부터 함께 했던 지향 언니도 밥과 3분 카레, 짜장을 내놓고 근처 다른 알베르게에 있던 병원 아저씨도 라면을 들고 건너와 저녁식사 자리는 점점 커졌다. 그래도 모두가 함께 한 덕분에 저녁식사는 매우 풍성해졌고 한국 음식에 대한 그리움으로 눈물이 날 지경인 나에겐 3분 요리도, 고추참치도, 밍밍한 라면도 모두 감사할 따름이었다. 남편이 만들어준 좁쌀만 한 알갱이 파스타와 사골 계란국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맛있었다. 제임스도 계란국이 입에 맞았는지 몇 번이고 'yummy!'를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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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저녁을 다 먹은 후에도 주현 씨가 제공한 네 병의 와인과 두 병의 맥주를 두고 자리를 떠날 수 없어 늦게까지 식당에 남아있었다. 다른 사람들이 생각보다 술을 즐기지 않아 결국 나와 남편, 에디와 제임스가 모든 술을 거의 다 마신 듯했다.
술을 마시느라 제임스와 오래도록 얘기를 나눴는데 그는 언제나 삶에 관한 진지한 주제를 던지는 바람에 그의 영어를 이해하고 내 생각을 전달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도 다행히 종종 고민해보던 주제에 대해 뭐라도 주절거리면 제임스는 크게 동의해주고 기뻐해 주었다. 살아오면서 쓸데없이 곱씹던 잡생각들이 새로운 친구를 사귀는 데는 제법 쓸모가 있었다. 떼제 기도도 에디네와 우리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는데도 큰 도움이 되었다. 저녁식사 전에 부른 우리 노래 소리를 듣고 체코 사람 둘이 다가와 녹음을 하고 싶다며 다시 노래를 청했다. 모두 술이 약간 올라 화음은 엉망이었지만 덕분에 새로운 사람들과 인사할 수 있었다. 나는 심지어 제임스가 부추기는 통에 대금까지 꺼내 불어야 했다. 여행 중에 행여 여비가 떨어지면 길거리에서 자리라도 펴 볼 요량으로 두 달을 겨우 배우고 여행길에 올랐는데 영 실력이 늘지 않아 가방에서 무게만 차지하고 있던 애물단지가 술김에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는데 요긴하게 쓰였다. 연주야 당연히 엉망이었지만- 그래도 남편은 지금까지 중 제일 나았다고 위로해주었다.- 덕분에 사람들은 즐거웠고 한자로 적힌 악보를 신기해하며 또 한참을 떠들 수 있었다.

나는 사실 서른여섯이 되도록 특출 나게 만들어놓은 재능 따위는 별로 없었다. 타고난 재능도 없고 노력할 재능도 없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특출 난 재능을 개발하고 더 멋진 삶을 살아보겠다고 나를 불태우는 것은 뭔가 어색한 나이이기도 했다. 그래도 잡다한 호기심에 뭐든 경험해보는 것이 남는 장사라는 생각으로 살았는데 오늘은 그 덕분에 여러 가지로 즐거운 시간을 보냈고 내 삶이 제법 재미나는 삶이었음을 확인받은 것 같아 묘한 안도감이 들었다.
나는 때때로 어떻게 하면 특별한 삶을 살 수 있는지, 나에게 주어진 능력은 무엇인지를 심각하게 고민해보곤 하는데 언제나 같은 질문에 이르러 생각을 치워버리고 말았다.
'한 가지의 훌륭한 결과물을 내기 위해 삶의 많은 부분을 희생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사람이 가진 에너지는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매우 특별한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비슷한 수준의 에너지를 갖고 있으며 그저 에너지를 분배하는 과정에서 선택한 일에 모든 에너지를 집중하여 결과물을 낼 것인지, 작은 파장의 에너지를 삶의 여러 부분에 균형 있게 사용할 것인지의 차이가 날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나는 언제나 후자의 방식을 선택하기 때문에 특별한 사람이 될 수 없는 것은 결국 나의 선택인 셈이다. 내가 어떤 그릇의 사람인지, 어떤 방식의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인지 이미 알고 있기 때문에 사실 불평할 여지는 별로 없다. 단지 그렇게 살아도 되는가? 에 대한 약간의 불안감은 늘 따라다녔다. 그런데 이렇게 어설픈 대로, 그저 즐거운대로 삼십육 년을 살고 지금에 와서 사람들과 즐거울 수 있고 나도 제법 만족스러울 수 있으면 앞으로도 계속 이 삶을 유지하면 되는 것은 아닌가 싶은 태평한 마음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우리는 누군가 침실에서 나와 이제 제발 조용히 하고 좀 자라고 항의를 한 후에야 자리를 정리했다. 그래 봐야 열 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는데... 이곳에서의 시간은 '잘 걷기'에 맞춰져 있으니 하는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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