젤시 할머니가 빵과 우유 등으로 차려준 간단한 아침식사를 마치고 또 오늘의 여정을 떠날 준비를 했다. 할아버지는 우리와 노래하는 것이 좋으셨는지 떼제 성가집을 들고 나오셔서 출발하기 전에 한 곡을 함께 부르자고 청하셨다. 덕분에 우리도 기도하는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할 수 있었다.
오늘의 길은 전혀 아름답지도 않았고 재밌지도 않았다. 며칠 전 로스 아르코스로 갈 때 잘못 들어선 산 위에서 보았던 매우 넓고 평평한 바로 그 산 위에 있는 것 같았다. 오르막을 좀 올랐으니 분명 산은 산인데 넓은 흙길이 앞으로 쭉 뻗어 옆으로 거의 휘지도 않고 8km째 계속되었다. 상상도 할 수 없는 모양새였다. 양옆으로는 소나무 숲이 속이 보이지도 않을 만큼 빽빽하게 이어졌다.
수많은 소나무 때문에 가는 길에서 송충이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는데 이 녀석들이 이동하는 모습이 매우 흥미로웠다. '몬테후라'에서 처음 이들의 이동을 보고 에디, 제임스에게 사진을 보여주며 재밌어했었는데 오늘은 그때보다도 더 장관이었다.
송충이는 기차처럼 서로의 꽁지에 머리를 대고 줄지어 이동했다. 제일 처음 그 모습을 봤을 땐 고작 두 마리뿐이라서 교미를 하는가 싶었다. 두 번째 산 위에서 보았을 땐 32마리의 행렬을 보았다. 오늘은 무려 76마리가 서로의 꽁지를 따라 길을 건너고 있었다. 비록 소나무를 모두 갉아먹는 해충이라고는 하나 나름의 생명을 지닌 녀석들이 살아보겠다고 행렬을 열심히 따라가는 모습이 너무 진지해서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사실을 고백하자면 이들의 행태가 너무 흥미롭고 궁금하여 산 위에서 첫 행렬을 만났을 때 손을 좀 대보았었다.
행렬이 끊기면 어떻게 될까?
남편과 나는 앞에서 네 번째쯤 되는 녀석을 나뭇가지로 막고는 어찌 되는지 지켜보았었다. 놀랍게도 앞서가던 세 놈이 멈춰 서는 것이 아닌가?! 뒤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을 감지했는지 잠시 멈춰서 기다리는 모습에 소름이 돋았었다. 한낱 미물이라 생각한 송충이가 그런 사회적인 행동을 보일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물론 사고력이니 판단력이니 하는 차원이 아니더라도 문제를 감지하고 특별한 대처를 하는 것 자체가 신기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녀석들이 혼란스러워할까 봐 다시 행렬을 붙여주려고 한다는 것이 그만 네 번째 녀석을 열 밖으로 빼낸 꼴이 되었다. 녀석이 나뭇가지에 붙어 꿈틀거린 탓이었다. 그 뒤의 녀석은 용케도 앞 열의 꽁지를 찾아내어 따라붙었고 기다리던 녀석들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네 번째 송충이는 끼어들어보려고 머리를 계속 들이밀었지만 이미 움직이기 시작한 행렬은 행여 동료를 놓칠까 싶어 바싹 붙어선 녀석들로 인해 틈이 나지 않았다. 우리는 할 수 없이 그 녀석을 살살 굴려 행렬의 제일 뒤로 붙여주었다. 그제야 그 녀석도 동료의 꽁지를 더듬거리고 찾아 다시 움직일 수 있었다. 그날의 새로운 발견이 몹시 흥미로워 오늘도 76마리나 되는 송충이 행렬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한참을 구경하고 선 것이었다.
그런데 길 위에는 미처 길을 건너지 못하고 차나 자전거 등에 깔려 죽은 무리들이 제법 있었다. 조금 더 가서는 원을 그리고 있는 한 무리를 만났는데 가만히 들여다보니 길을 안내해야 할 선두가 영 어리석은 모양인지 자신들의 행렬 꽁지의 안쪽을 파고들어간 탓에 점점 더 안으로 말려들어가고 있는 중이었다. 자연이 하는 일에 다시는 손을 대지 말자 싶어서 이들이 이 난관을 어떻게 벗어날 것인지 한참을 그냥 서서 지켜보았다. 그런데 도통 문제가 해결될 기미는 보이지 않았고 뒤의 무리는 심지어 여럿이 엉키어 서로를 타고 넘는 중이었다. 하하... 이렇게 우왕좌왕하다가는 몰살을 당하기 딱 좋은 꼬락서니였다. 제법 오랫동안 지켜보아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자 남편은 행렬의 고리를 서너 군데 끊어버리기로 하였다. 카오스 상태로 답이 나오지 않을 땐 새롭게 시작하는 것이 더 낫다는 생각에 도와주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그러자 또 흥미로운 일이 생겼다. 행렬이 끊어져 졸지에 선두가 된 몇몇 녀석들의 행동이 제각각인 것이었다. 어떤 놈은 꽁지를 찾으려고 연신 머리를 움직이며 제자리를 더듬거리다가 가까이 있는 엉망이 된 행렬로 다시 파고드는가 하면 어떤 놈은 몇 번 꽁지를 찾다가 포기하고는 뒤에 달린 녀석들을 데리고 새로운 행렬을 시작했다. 그 녀석이 어찌나 기특하고 대견하던지 박수를 쳐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렇게 나누어진 행렬은 세 무리 쯤으로 갈려 새로운 길을 향해 나가는 놈들, 행렬이 형성되기는 했으나 머뭇거리는 선두 탓에 영 앞으로 치고 나가지 못하는 놈들, 마지막으로는 여전히 뒤엉켜 서로의 꽁지만 찾느라 서로가 서로를 타고 넘는 카오스가 남게 되었다.
새로운 길을 찾아 거침없이 나가는 행렬을 보고 있자니 무척 부러운 마음이 들었다. 너희들은 참 훌륭한 우두머리의 뒤를 쫓게 되었구나... 미물의 우두머리도 저렇게 용감하고 현명한 것을... 다른 생각하지 않고 공동체의 운명을 이끌고 거침없이 나가는 모습이 정말이지 든든해 보였다. 그들이 새로운 길로 나가는 동안 어리석은 우두머리가 이끄는 무리는 점점 더 어려운 상항에서 몸만 격렬히 움직여대고 있었다. 그렇게 헤매다가 둥지를 틀지 못한 채 몰살을 당하지 싶었다.
우두머리의 어리석음은 구성원의 생존을 위협한다는 너무나 당연한 자연의 섭리를 적나라하게 목도하고 나니 마음이 영 심란해지고 말았다.
길고 지루한 길 위에서는 앉을 곳을 찾기도 마땅치 않아 쓰러져 누운 나무를 의자 삼아 몸을 좀 쉬어야 했다. 햇빛이 나지 않아 스산한 바람을 맞으며 오렌지를 하나씩 까먹고 앉아있는데 저 멀리서 무척이나 크고 뚜렷한 휘파람 소리가 들렸다. '오! 수제너'를 신나게 부르는 소리의 주인공들이 궁금하여 노래를 따라 흥얼거리며 그들이 모습을 나타낼 때까지 소리의 방향을 빼꼼히 쳐다보고 있었다. 경쾌한 발걸음으로 나타난 사람들은 '거지꼴'에 가까운 행색의 두 남자였다. 긴 머리는 뒤엉켜있고 수염은 자라는 대로 그냥 둔 꼴이었다. 큰 배낭도 모자라 짐을 대충 얽어 맨 손수레까지 끌고 가는 중이었다. 그 옆을 따르는 큰 개는 흙탕물을 첨벙거리는데 정신이 팔려있었다. 그들의 행색이나 분위기가 범상치 않고 가는 방향은 우리와 반대인 것이 어찌 된 일인지 너무 궁금하여 큰 소리로 물었다.
"이봐요! 당신들 어디로 가는 겁니까?"
그들의 대답은 영화 속 대사처럼 강렬했고 뚜렷했으며 신선했다.
"우리는 예루살렘으로 갑니다!"
에?! 예루살렘에 간다고?
자기들은 집을 떠난 지 4년이 되었고 걸어서 예루살렘에 가는 길이라고 했다. 지금까지 걸어온 길은 무려 8,000km쯤 되었단다. 어디서 출발했는지는 무슨 도시 이름을 몇 개 말했는데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다. 하지만 분명 먼 거리를 걸어온 것이 분명한 행색이었다.
개와 함께 예루살렘으로 걸어가는 두 남자라니! 그들의 표정을 보고 있으니 내가 잠시 영화의 한 장면을 보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었다. 그들은 정말로 신이 나 있었다.
그들은 우리에게 국적 대신 'Kimchi?'하고 물었다. 며칠 전 캠핑을 했는데 한국 여자 두 명이 와서 기타도 쳐주고 음식도 만들어주었다며 엄지를 높이 세웠다. 그 두 사람도 두 사람이거니와 쉽게 다가서기 어려운 그 행색의 사람들과 캠핑을 함께 했다는 겁 없는 한국 처자들도 참 대단하다 싶었다.
세상에 나와보면 소위 '정신 나간' 사람들이 천지다. 우리처럼 직장을 그만두고 퇴직금 털어 3개월 여행하는 일쯤은 지극히 정상적인 상태라고 할 수 있겠다. 몇 개월 여행하는 사람은 부지기수고 일 년 동안 여행 중인 사람, 잘 되던 가게 접고 집 없이 돌아다니는 사람, 심지어 기약 없이 떠돌아다니는 사람들도 있다.
반상에서 하는 외국 놀이 중에 '오셀로 othello'라는 것이 있는데 검은색, 흰색이 서로 겨루어 상대방 돌을 감싸 돌을 뒤집어 자신의 색으로 바꾸는 식이다. 마지막에 자신의 색이 많은 사람이 승자가 된다. 어쩌면 사람 사는 방식도 이 놀이와 같아서 주변의 색에 따라 자신의 색깔이 결정되기 마련이라는 생각이 든다. 일상에 있으면 여행이라는 것이 완전히 멀고 먼 이야기지만 이렇게 여행자들 틈에 있으면 너무나 당연한 삶의 모습이 된다. 오히려 여행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 이상하게 여겨질 정도다.
어쩌면 내가 바라는 삶의 모습도 이미 그렇게 살고 있는 사람들 곁에 머무르기만 하면 자연스럽게 나의 색깔이 뒤집어져 그리 될 수 있지는 않을까 하는 소극적인 희망을 품어보았다.
우리는 지루한 길의 끝에서 그다지 적절하지 않은 곳이라도 일단 앉아야겠다 싶어 길가에 자리를 잡고 점심을 먹었다. 그런데 점심을 먹고 조금 더 내려오니 바로 산 후앙 드 오르테가 San Juang de Ortega 마을이 나왔다. 몇몇 사람들이 지나가면서 우리에게 '조금! 조금! poco! poco! '이라고 말한 의도를 그제야 알았다.
며칠 전에 헤어진 지향 언니와 희원 씨가 우리 뒤를 이어 알베르게로 들어왔는데 에디가 산 위에서 인사를 하고 다시 벨로라도로 돌아갔다는 소식을 전했다. 오늘이 마지막 걷는 날이라고 했었다. 내일이면 부인을 만나러 떠난다고 했던 것을 기억해서 여기서는 만날 수 있을 줄 알았다. 나헤라에서 함께 한 사람들 대부분이 이곳에 모였는데... 이 마을이 너무 작아 기차역이 있는 벨로라도로 돌아간 모양이었다.
조금만 더 천천히 걸었으면 만날 수 있었을까? 이틀 전, 산토 도밍고에서 멈췄더라면 함께 할 수 있었을까? 마지막 인사도 하지 못하고 그렇게 헤어진 것이 못내 아쉬워서 몇 번이고 한숨만 내쉬었다. 에디와 마지막까지 함께 있었던 체코 청년이 우리를 찾아와 에디의 인사를 대신 전해주었다. 가슴께가 뻐근해졌다.
홀로 도착한 제임스와는 몹시 반갑게 인사했지만 그도 조금 쓸쓸해 보였다. 우리 셋은 마당 벤치에 앉아 함께 노래를 몇 곡 부르며 에디의 빈자리를 달래야 했다.
작은 마트 하나 없이 성당 하나, 알베르게 하나가 전부인 듯 작고 춥기만 한 오르테가의 분위기 때문에 더욱 쓸쓸한 저녁이었다. 특별한 선물처럼 행복했던 지난 이틀 간의 시간이 깊은 아쉬움으로 돌변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