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짙은 먹구름이 끼어 추운 아침이었다. 마을에 마트가 없어서 어제 저녁을 남은 빵으로 너무 부실하게 먹었다. 게다가 아침마저도 어젯밤 잽싸게 뽑아두었던, 자판기에 딱 하나 남아있던 카스테라를 둘이 나눠먹은 것이 전부라 더 싸늘한 아침이었다. 친구를 맥없이 떠나보내고 맞은 아침이라 마음은 말할 것도 없이 서늘했다.
어제 걸은 길처럼 평평하게 이어진 언덕이 다시 나타났다. 그러나 어제의 언덕과 달리 넓디넓은 정상에 나무도 별로 없었다. 사방이 탁 트인 정상이 몇 km 이어지다 보니 이것이 언덕인지 광야인지 분간도 가지 않았다. 바람이 강하게 몰아치는 것을 보면 언덕 위에 있기는 한 모양이었다.
우리는 두어 시간 만에 겨우 언덕을 지나 마을로 내려섰다. 그리고는 결국 바에 들러 뭔가를 더 먹기로 했다. 우리만 그 언덕이 고되었던 것이 아니었었나 보다. 바에는 이미 우리보다 먼저 도착한 몇몇 친구들이 테이블 가득 음식을 시켜놓고 지친 몸을 추스르고 있었다.
페데리카는 내가 '언니'라고 부르는 것을 몹시 재밌어했다. 이름이 아닌 호칭이 있다는 사실뿐 아니라 발음 자체도 흥미로운 것 같았다. '온니!'를 입에 익도록 반복했다. 당연히 '오빠'라고 생각했던 앨런이 사실 나보다 두 살이나 어린 동생이라는 사실이 밝혀져 나는 그에게 '누나'라는 호칭을 단단히 일러주었다.
샌드위치와 치킨 파이에 맥주와 샹그리아 한 잔씩을 곁들여 먹고 나니 속이 좀 든든해졌다. 바를 가득 채운 친구들의 훈훈한 공기까지 더해져 오랫동안 바람에 휘둘리며 소진된 체력은 완전히 회복되었다.
부르고스 Burgos는 제법 큰 도시였다. 따라서 그곳에 이르는 길은 쉽지 않았다. 돌길이 계속되어 발에 무리가 가는 데다가 맞바람이 몹시 강하게 불어 걸음은 더욱 느려졌다. 부르고스에 들어서고 나서도 길고 긴 공원을 지나야 했다. 중간 어느 지점에서는 나무마다 서로 다른 방향의 화살표가 그려져 있던 탓에 엉뚱한 길로 나갔다가 다시 공원으로 돌아와야 했다. 공원 길을 욕이 나올 만큼 걷고 나서야 돌길로 된 구시가지가 시작되었다.
공립 알베르게엔 먼저 도착한 사람들이 줄을 서서 체크인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직원이 어찌나 꼼꼼하고 더딘지 우리는 줄을 선 채로 삼십 분도 넘게 기다려야 했다. 우리와 함께 공원길을 힘겹게 걷던 브라질 할머니는 나에게 불만이 가득한 눈짓과 표정을 보냈다. 우리는 '언어' 없이도 서로의 마음을 완전히 읽을 수 있었다.
'왜 저렇게 느려?'
'그러게 말입니다. 뭐 하는 건지 모르겠네. 다리 아파 죽겠는데'
'나도 다리가 너무 아파. 좀 빨리빨리 하지. 뭐야?! 저 사람은 가족 여권을 다 가지고 왔어?'
'너무하네! 에휴.. 어쩌겠어요. 기다리는 수밖에'
몸짓만으로 할머니와 무언의 대화를 한참 이어가던 중에 우리 뒤에 서 있던 미콜이 나에게 페데리카의 행방을 물었다. 헤라르도네 무리와 오늘 무슨 파티를 한다며 호텔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고 알려주었다. 내 대답이 채 끝나기도 전에 미콜은 그녀와 즉각 통화를 시도했다. 통화를 마친 미콜은 오늘 이 마을에 지역 축제가 열리는데 공립 알베르게는 열 시 반에 문을 닫으니 다들 다른 숙소를 찾고 있는 모양이라며 우리에게 함께 가지 않겠냐고 제안했다.
우리는 거절을 잘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피곤한 다리로 내내 줄을 서서 기다린 보람도 없이 우리는 밖으로 나와 사람들이 모여있다는 바를 찾아 들어갔다. 주현 씨와 이르카, 페데리카, 앨런, 안젤라 그리고 귀-포르투갈 친구의 원래 이름은 귈헤름 Guilherme인데 이름이 어렵다며 주현 씨가 알려준 데로 자기 귀를 잡아당기며 그냥 '귀'라고 부르도록 허락했다.-가 모여있었다. 모두들 공립 알베르게가 아닌 다른 숙소를 알아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우리는 일단 어찌 되는 것인지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
귀의 말에 따르면 헤라르도를 필두로 부르고스에서 맛있는 저녁식사와 함께 늦은 시간까지 파티를 즐길 예정인데 정작 헤라르도가 어디쯤 왔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미콜이 말한 밤에 시작한다는 지역 축제는 뭔가 잘못된 정보였고 파티는 내가 처음 알고 있었던 대로 이 친구들의 계획이었던 것이 맞았다.
그런데 우리는 제임스와 저녁 선약이 있었다. 제임스가 이곳에서 하루 쉬었다가 갈 예정이라서 마지막 식사를 하기로 약속했었다. 게다가 여기저기 통화하는 것을 얼핏 들으니 12명이나 되는 인원을 받아 줄 방을 구하기가 쉽지 않아 보였다. 하여 나와 남편은 다시 알베르게로 돌아가기로 했다. 스페인어를 할 줄 모르니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고 뒤늦게 합류하여 괜히 인원만 늘리는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다시 돌아간 알베르게는 다행스럽게도 기다리던 사람이 모두 사라져서 금세 등록할 수 있었다- 이럴 때 보면 삶의 많은 경우, 행불행을 결정하는 것은 타이밍임을 절실히 느낀다.-. 큰 도시답게 이곳 알베르게는 매우 크고 깨끗한 시설을 갖추고 있었다. 덕분에 우리는 편안하게 샤워와 빨래까지 순식간에 마칠 수 있었다. 그런데 샤워를 막 마치고 나온 나를 남편이 다급하게 불렀다. 주현 씨와 페데리카가 괜찮은 숙소를 구했다는 소식을 전하기 위해 로비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었다. 남편은 나의 의견을 물었다. 말했다시피 우리는 거절을 잘 못하는 사람들이다. 심지어 우리를 부르려고 무작정 숙소 로비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사람들을 거절로 돌려보내는 것은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결국 두 사람에게 짐을 다시 꾸려 곧 따라가겠노라고 말하고 말았다. 우리는 서둘러 자리로 돌아와 힘껏 짜느라 잔뜩 꼬여있는 빨래를 그대로 봉지에 담아 가방에 쑤셔 넣었다. 나는 젖은 머리를 숨기려 모자를 눌러쓴 채 숙박비를 환불받고 숙소를 도망치듯 나왔다. 공짜로 도둑 샤워와 도둑 빨래만 한 셈이 되었다.
주현 씨가 메시지를 보내준 지도를 따라 호스텔을 찾아갔는데 한 층을 우리 일행이 모두 차지하고 있었다. 우리 부부가 복도로 들어서자 모두들 'Grande!'를 외치며 환영해주었다. 영화 타이타닉에서 1등실 손님 로즈가 잭을 따라 3등실, 그들만의 세상으로 조심스럽게 들어섰을 때의 장면이 떠올랐다. 뿌옇게 피어오른 열기와 흥겨운 음악에 맞춰 마룻바닥을 구르는 소리가 뒤섞인 은밀한 축제의 장으로 들어선 기분, 일탈의 설렘에 나는 가슴이 살짝 두근거렸다.
골목이 내려다보이는 작은방, 우리만의 공간에 들어서서 설레기를 잠시 접어두고 일단 가방에 처박아 둔 젖은 빨래부터 꺼내 널었다. 빨래 널기가 이렇게 흥겨운 일이었던가?
우리는 우선 제임스를 만난 뒤 일행들을 찾아가기로 했다. 미콜이 어쩐 일인지 우리와 동행했다. 작지 않은 도시에서 우리가 일행을 놓치게 될까 봐 걱정이 된 모양이었다. 제임스가 이탈리아 아가씨, 에리카와 다닐라를 대동하여 저녁식사 자리는 제법 규모가 커졌다.
적당한 식당을 찾기 위해 골목을 빠져나와 만난 광장에서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화려한 복장을 하고 악기를 연주하며 춤을 추고 있었다. 미콜이 '처녀 파티'를 하는 것이라고 귀띔해주었다. 주인공으로 추측되는 아가씨가 무리의 중심에서 신나게 춤을 추고 있었다. 음악과 분위기에 취해 우리도 나름대로의 흥을 표출했다. 하지만 '걷기'에만 익숙해져 있던 나의 몸은 어색하기 짝이 없게 씰룩거기리만 했음을 고백한다...
늘 그래왔던대로 식전 맥주와 샹그리아가 우선이었다. 우리는 테이블에 둘러앉아 건배를 하고 사진을 찍었다. 마지막이라고 생각되는 시간이었지만 누구도 굳이 마지막을 이야기하지는 않았다. 다른 사람의 마음이 어땠는지 잘 모르겠지만 나는 아쉬움을 세련되게 추스를 자신이 없었다. 나보다는 좀 더 감정을 잘 다루는 남편이 우리 중 처음으로 '마지막'을 입에 올리며 손수 그린 그림을 제임스에게 선물했다. 가진 것 없는 순례객이 해줄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았다. 제임스는 희미한 웃음과 감동에 젖은 표정으로 조가비에 올라탄 순례자 그림을 한참 들여다보았다. 그는 주머니에 넣으려면 접어야만 하는 그림을 들고 그림을 접고 싶지 않다며 한참을 망설였다. 결국은 두 눈을 질끈 감고 그림을 반으로 접어 셔츠 앞주머니에 넣고는 가슴에 담듯 몇 차례 토닥거렸다.
식당에서는 유쾌한 에리카와 다닐라 덕분에 제임스의 호탕한 웃음소리가 더욱 커졌다. 사람이 많아서 다행이었다. 식사를 모두 마치고 나와 제임스와는 진한 포옹으로 인사를 나눴다. 아쉬운 마음에 코가 시큰거렸지만 이상하게도 왠지 다시 만날 것 같은 묘한 예감이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저녁나절 돌아다니던 와중에 남편의 발바닥에 난 물집 두 개가 하나로 합쳐져 커진 바람에 걷기가 수월하지 않게 되었다. 남편은 심각하게 내일 하루를 쉬어야 할지를 고민하고 있었다. 그래도 혹시 에디처럼 인사도 못하고 헤어지게 될까 봐 섣불리 예단할 수는 없어 진심을 다해 인사를 전했다. 까미노는 사람들과 언제 만나게 될지, 또 언제 헤어지게 될지 굳이 약속하지 않으면 기약할 수 없는 길이기 때문이었다. 그저 이끄는 대로 인연이 되는 것이었다.
우리가 저녁을 먹은 식당의 근처 바에 사람들이 모여있어 친구들은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었다. 다들 이미 취기가 돌아있었다. 체코 청년 이르카는 우리와 건배하며 왜 자기 눈을 쳐다보지 않느냐며 타박을 했다. 수줍음을 많이 탄다며 놀렸다. 그러고 보니 유럽 사람들은 건배를 하며 꼭 눈인사를 했다. 이르카가 말하기 전까지는 건배하며 술잔을 쳐다보는 한국 사람들과 그들이 다르다는 것을 미처 인지하지 못했다. 오며 가며 인사를 나눌 때는 눈을 마주치려고 애를 많이 쓰는데도 아직은 눈맞춤이 몸에 익지 않은 모양이었다.
오늘도 지난번처럼 모두 다 함께 왁자지껄은 아니었지만 바에서 바로 옮겨 다니고 흥겨운 음악 속에 있으니 그동안 머문 유령도시처럼 조용한 마을들과는 분명 다른 축제 분위기에 제법 흥겨웠다. 모두들 그동안의 고생을 서로 치하하며 잔뜩 신이 났다. 우리는 어느새 낯선 도시, 낯선 사람들 가운데에서 함께 어깨동무하고 함께 추억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들이 되어있었다.
계속해서 밤거리를 돌아다니고 바에서도 서있어야 하는 상황이 남편 발바닥의 커다란 물집에는 썩 좋지 않아 우리는 중간에 슬쩍 나와 숙소로 돌아와야 했다. 그 정도면 충분히 즐거웠다.
우리 부부는 오랜만에 부스럭거리는 소리, 코 고는 소리를 듣지 않아도 되는 잠자리에 누워 제임스와 친구들에 대해 오래도록 이야기를 나눴다. 골목은 늦은 밤까지 노란 불빛과 사람들의 북적이는 소리로 깨어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