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새벽부터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뒤척거리거나 자리를 비워야 하는 8시에 시간을 맞춰 허둥지둥했었는데 오랜만에 실컷 자고 침대 위에서 뒹굴거렸다. 우리는 결국 11시 체크아웃 시간을 꽉 채우고서야 겨우 밖으로 나왔다.
노리와 헤라르도는 진작에 일어나 길을 떠났고 미콜과 페데리카는 아침 일찍 미사를 드린 후 아침식사까지 마치고 들어왔단다. 나머지 사람들은 어제 새벽 3시까지 놀다가 들어와 푹 자고 우리와 함께 숙소를 나섰다.
우리는 부르고스 대성당에 12시 미사가 있다고 하여 아침식사를 하며 기다리기로 했다. 아침식사로는 정말 맛없는 토스트를 먹어야 했다. 토스트에 삶은 계란만 툭툭 썰어 넣어줄 줄 누가 알았냔 말이다. 목 좋은 대성당 앞에서 그런 음식을 팔고도 망하지 않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몹시 궁금해졌다. 주인이 엄청 부자이거나 스페인 사람들이 맛이 대한 관용도가 매우 높거나, 둘 중 하나임이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퍽퍽한 토스트로 허기만 면하고 미사를 드리러 성당으로 들어갔다. 모든 기도문을 노래로 부르는 창미사라 미사 시간이 무척 길었고 말씀이 무엇인지도 알아듣지 못했지만 이 길을 걷는 사람들과 함께 드리는 미사라는 그 자체만으로도 특별한 느낌이었다. 모습도 언어도 완전히 다른 사람들이 만들고 있는 '공동체'에 포함되어있는 느낌이 좋았다.
내 예감대로 제임스는 다시 만났다. 목사임에도 불구하고 성당 미사에 참여한 제임스와 다시 만나 반갑게 인사했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또 저녁을 약속했다. 이상하게도 우리 인연이 그리 쉽게 끝날 것 같지는 않았다.
우리는 비싼 호스텔 대신 공립 알베르게로 숙소를 옮길 작정이었다. 그런데 이미 아침에 미사를 드렸다던 미콜이 우리를 찾아 다시 성당에 나타났다. 미콜은 산타 카타리나 Santa catalina라는 알베르게를 찾았다며 우리를 그곳으로 안내해주었다. 스무 자리 채 되지 않는 매우 작은 숙소였는데 자리가 금세 차 버릴까 봐 주인에게 내 이름만 말해놓고는 서둘러 우리를 데리러 온 것이었다. 친절한 언니 덕분에 우리는 매우 조용하고 깔끔한 숙소에서 쉴 수 있었다.
일요일에는 대부분의 가게가 문을 닫는 탓에 구시가지를 벗어나 멀리까지 나가서야 작은 가게 하나를 겨우 찾을 수 있었다. 오르테가에서의 경험으로 가게를 찾는 일은 매우 중요해졌고 아무리 몸이 피곤해도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 되었다. 행선지에 대해 정확히 예측하는 것이 어려우니 또 언제 식량이 부족할지 모르는 일이었다. 사실 바 bar나 레스토랑에 가도 되긴 하지만 대체로 가격에 비하여 맛이 훌륭하기란 쉽지 않다는 것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터라 굳이 고집하고 싶지 않았다. 가격 대비 만족도로만 따지면 우리가 애용하는 1유로 가격의 햄, 치즈, 빵 등의 조합이 훨씬 나았다.
이 길을 걸으면서부터는 하루의 생활에서 먹고 자고 쉬는 것의 중요도가 매우 높아졌다. 잉여의 삶에서 원초의 삶으로 돌아간 느낌이었다.
신혼 시절 TV를 사지 않아 잡다한 생각을 할 시간이 많았었다. 그때, 잠들기 전에 남편에게 자주 던진 질문이 있었다.
"인간은 왜 나무랑 다르지? 다른 것이 맞기는 한가?"
정말 바보 같은 질문이지만 아직도 대답을 찾지 못한 어려운 질문이다. 사실 이 궁금증은 평생을 '더 나은 삶'이라고 하는 애매모호한 생활을 꾸리기 위해 애를 써야 하는 것이 힘들고 귀찮은 나의 게으른 마음에서 시작되었다. 하지만 순수하게 그 자체가 궁금하기도 했다. 어째서 인간만 다른 생명과 달리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특별한 의미를 찾아야만 하는지 말이다. 사는 모양새야 어떻든지 간에 살아있는 것 자체만으로는 의미가 될 수 없는 것인지 궁금했다. 원시의 삶을 사는 작은 부족의 사람들이 문명의 이기로 얻은 잉여의 시간에 허덕이는 사람들보다 무의미하거나 무가치한 삶을 살고 있다고 누가 판단할 수 있을까? 생명이 시작되고 난 후부터 그 생명을 온전히 유지하는데 최선을 다하고 죽음의 운명에 순응하는 것,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은 삶이 아직도 나에겐 잘 납득이 가지 않는다.
이 길에서도 사람들은 '왜 이곳에 왔는지'를 항상 묻는다. 많은 사람들이 까미노를 걷는 것의 의미에 대해 서로 묻고 이야기하지만 뚜렷하게 대답을 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나도 여행 전부터 생각해봤고 걷는 중에도 고민을 해보았지만 만족스러운 답을 내지는 못했다. 그런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우리가 너무 과도한 '의미 찾기'에 강박적으로 얽매여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도 든다.
여기서는 모든 사람들이 아침에 일어나 하루 종일 온전히 내 몸 하나만 의지해 길을 걷는다. 그런 '나'를 온전히 기능할 수 있게 만들기 위해 먹고, 자고, 쉬는 일에 최선을 다한다. 길을 걸으며 만나게 되는 모든 자연은 더 이상 문명의 산물들로 인해 분리되었던 외부의 대상이 아니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나를 포함하고 있는 완전한 환경이며 나의 모든 행위는 그 안에 존재하기 위한 목적만 갖는다. 나무나 개미처럼 말이다.
오래전에 이 길을 걷던 진정한 순례자들은 종교적인 목적이 분명했을지 모르지만 지금의 사람들은 어쩌면 자신도 모르게 원초의 삶에 대한 강렬한 욕망에 이끌려 이곳에 왔을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나는 그런 것 같다. 자연에 마련되어 있는 나의 자리를 만끽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다.
삶의 의미는 채우는 것이 아니라 의미의 자리마저 비우는 것, 생존 자체만 남겨 놓고 모두 비워내는 것이 진짜로 필요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비워야지'라고 생각하는 것마저도 의미를 부여하려는 노력인 것처럼 여겨지는 이 모순은 좀처럼 해결하기가 쉽지 않다.
제임스, 미콜과 함께 저녁식사를 했다. 지금까지 살면서 먹어본 중 가장 맛없는 파스타를 먹었지만 이야기는 즐거웠고 걷지 않고 즐기는 휴식은 달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