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닐료스 델 까미노로 가는 길

by 신지명

어제 하루를 쉬고 나니 모든 것이 새로운 느낌이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짐을 꾸리는 것도 낯설고 가방도 몸에 착 감기지 않는 느낌이었다. 무엇보다도 늘 함께 아침을 맞던 사람들이 모두 사라지고 낯선 사람들과 함께인 것이 가장 어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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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릿하게 구름이 덮이고 부슬비가 내리던 부르고스를 벗어나고 나니 파란 하늘과 구름이 초원 위로 끝없이 펼쳐져 그나마 우리의 쓸쓸함을 달래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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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 없이 온전히 둘이서만 걷는 시간이 계속되었다. 대화는 거의 하지 않았다. 사이가 나쁘거나 함께 하는 것이 즐겁지 않은 것이 아니었다. 무슨 생각이 떠올라 얘기를 나누려고 하면 이미 남편이 알고 있는 이야기이거나 논의를 마친 이야기여서 다시 속으로 집어넣기 일쑤였다. 우리는 7년을 살면서 참 많은 이야기를 나눴던 모양이다. 새삼스럽게 털어놓을 속내도 없고 궁금한 것도 별로 없었다. 문득 궁금한 것을 묻기도 하는데 대부분은 이미 얘기했던 것을 내가 기억하지 못하고 다시 묻는 경우라 타박만 받고 말았다. 서로의 상태도 말보다는 작은 몸짓이나 눈빛으로 더 빨리 알아채니 굳이 묻지 않고 눈치만 늘게 되었다. 길을 함께 걷기 시작한 지도 벌써 보름이 다 되어가니 더욱 새로울 것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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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우리는 특별한 대화를 나누지 않고 걷는 편이었는데 사람들이 사라지고 둘만 남게 되니 침묵이 더욱 도드라졌다. 그렇게 말없이 한참을 걷다가 내가 기껏 던진 말은 이랬다.
"당신은 누군데 여기서 나랑 이렇게 걷고 있는 거야?"
삼십 년이 넘도록 남남으로 살았고 아무 상관도 없었고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남자가 내 인생 중 매우 중요하고 특별한 이 여행 내내 함께 하고 있고 내 옆을 지키며 걷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새삼스럽게 놀라워서 내뱉은 말이었다.
신혼 때는 '우리가 같이 살아?', '당신이 내 남편이야?'하고 수시로 놀라며 신기해하곤 했었는데 그마저도 시간이 흘러 한동안 당연하게 가족으로 살아왔었다. 실로 오랜만에 그 신기하고 기적 같은 사실이 놀라워졌다.
남편은 늘 그래 왔듯 기꺼이 맞장구를 쳐주었다.
"그러게~우리는 무슨 사이인데 여기 스페인에서 같이 걷고 있냐?"
그리고 우린 다시 각자의 공간에서 한참을 걸었다. 대화는 금세 끝이 났지만 마음속에는 '부부의 기적'에 대한 신비롭고 따뜻한 기운이 걷는 내내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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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날씨에 길도 평탄하고 20km 채 되지 않는 거리여서 호르닐로스 델 까미노 Hornillos del Camino에는 매우 빨리 도착했다. 알베르게에 첫 손님으로 들어가긴 처음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제임스와 미콜이 도착했다. 미콜은 페데리카로부터 이곳에 bed bug라 불리는 빈대가 출몰했었다는 소식을 입수해 다른 곳으로 숙소를 잡을지 고민을 잠깐 했지만 결국 우리와 한 방에 머물렀다.
모두들 친구들을 떠나보낸 첫날이 우리처럼 쓸쓸하기도 하지만 편안하기도 했던지 숙소에서도 일기를 쓰거나 성경을 읽는 등 각자의 시간에 조용히 머물렀다. 부르고스에서의 열기를 추억하기 좋은 따사로운 햇볕이 오후 내내 내리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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