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스트로헤리즈로 가는 길

by 신지명

작은 규모의 알베르게인데다가 유독 느긋한 사람들이 한 방에 모였던 것인지 날이 밝았지만 일어나서 부스럭거리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그 평화롭고 조용한 휴식을 차마 깨울 자신이 없어서 눈을 뜬 채 한참을 숨죽여 누워있었다. 하지만 언제까지 누워있을 수가 없어서 조용조용 움직이기 시작하니 사람들도 그제야 뒤척거리며 일어날 준비를 했다. 모두들 고요를 깨는 첫 번 째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아 숨죽여 기다렸던 모양이었다.
아침식사를 신청한 사람들을 위해 차려진 상 옆 귀퉁이에서 우리는 따로 식사를 했다. 3 유로면 둘이서 든든히 먹을 수 있는 비용인데 숙소에서 내주는 음식은 그 가격에 고작 딱딱한 비스킷이나 바게트, 잼과 커피, 차 등을 내줄 뿐이었다. 그렇게 먹고서는 오전을 걷기 어려워 보이는 데 서양 사람들은 참 잘도 버텼다. 길을 나서고 얼마 가지 않아 레스토랑에 들르는 것이 그 비결인가?
오늘도 날씨는 어김없이 훌륭했다. 고원에 오르니 보리며 밀을 키우고 있는 땅이 둥글게 지평선을 만들 만큼 넓게 펼쳐져 있었다. 낮게 내려앉은 구름 아래를 걷고 있자니 '잭과 콩나무'에 나오는 구름 위 거인의 마을로 걸어 올라가는 기분마저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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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4-28-16-48-19-8625.JPG 땅과 물이 화살표를 만들었다. 신기하게도.


그러나 넘치게 좋은 것은 화를 부르게 마련이던가. 불과 하루 전에 우리 둘이 함께 하고 있음에 감사하고 행복해했었는데 오늘은 여행 떠나고 처음으로 남편에게 화를 내고 말았다.
그러고 보면 인생은 마치 어떤 파형을 그리며 반복되는 무엇인 것 같다. 끝없이 오르기만 하지도 않고 끝없이 내려가기만 하지도 않는다. 그리고 너무나 만족스러운 어느 지점에 이르렇다고 생각되면 어김없이 내리 꽂힌다. 참 희한한 일이다.
나는 언덕 위의 풍경이 너무 좋아서 잠시, 정말 잠시 걸음을 멈추고 조용히 서있고 싶었다. 그곳에 서서 밀이 바람에 움직이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남편은 몇 발자국 앞에 서서 걸음을 재촉했다. 약간은 원망스러워하는 것도 같은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다시는 만나지 못할 것 같은 그 풍경을 잠시 바라보는 것도 허락해주지 않는 남편에게 불현듯 서운하고 화가 치밀어 오르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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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훨씬 걸음이 느려 언제나 기다리는 쪽은 남편이었지만 종종 남편이 사진을 찍느라고 걸음을 멈추었을 때 나는 싫은 티를 낸 적이 없었다. 물론 그 참에 쉬는 것이 좋았으니 별말 안 하는 것이었지만 길을 즐기는 것을 막을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런데 내가 사진을 찍거나 풍경을 감상하려고 하면 언제나 남편이 저만큼 앞에 서서 나를 보고 있는 것이 영 눈치를 주는 것 같았다. 그것에 대해 그간 쌓였던 서운함이 폭발한 것이었다. 그냥 걸어서 목적지에 가는 것이 전부가 아닌데, 내가 좋은 것을 왜 함께 즐겨주지 않는 것인지... 나와 같은 마음이 아닌 것이 무척이나 서운했다.
사실 생각해보면 남편이 내 더딘 걸음에 눈치를 주거나 뭐라고 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나중에 하는 말로는 보리밭도 조금만 더 올라가면 더 멋있는 풍경을 볼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에 나를 재촉했다는 것이었다. 순전히 내가 서두르지 못해 남편이 나를 기다리거나 발을 맞춰주는 것에 대해 미안한 마음이 드는 만큼, 딱 그만큼 화가 난 것이었다. 또 풍경이 너무 멋있어서 함께 감탄하고 싶었던 마음만큼, 딱 그만큼 서운했던 것이었다. 머리로는 분명 알고 있었다.
'나는 내 마음대로 갈 테니 당신이 나한테 맞춰주쇼. 그리고 내가 미안한 마음도 들지 않게 알아서 잘 해주쇼.'
말도 안 되게 이기적이고 과도한 요구이지 않은가. 그런데 이놈의 감정이 요상해서 머리로 생각한 것은 전혀 상관하지 않은 채 화가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남편의 진심과도 상관없이 내 마음에 씌워진 무언가 때문에 완전히 왜곡된 감정에 휩싸여버렸다.
나는 내 마음대로, 내가 보고 싶은 것 실컷 보고 갈 테니 마음대로 하라고 소리를 버럭 지르고는 혼자 빠르게 걸어갔다. 무거운 가방과 피곤한 다리에 붙잡혀 잘 움직이지 않던 몸뚱이가 그렇게 날쌔게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에 혼자 움찔 놀랐다. 나는 입이 퉁퉁 부어 '올라 hola'하고 인사만 겨우 내뱉으며 사람들을 질러나갔다. 빨리 걸으면 화가 좀 식을까 싶어 더 열심히 걸었는데 심장이 빨리 뛰니 더 화가 난 것 같은 느낌이었다. 게다가 아무리 빨리 걸어도 남편이 계속 비슷한 거리만큼 뒤에 있어서 거의 뛰다시피 걸어야 했다.
열심히 앞만 보고 씩씩거리며 걷고 있는데 두 여자가 밭의 어딘가를 보고 사진을 찍으며 나를 향해 말했다.
"저 새 좀 보세요! Look at that bird!"
그들이 보라고 하는 새가 무슨 새인지 너무 궁금했지만 나는 화를 내고 있는 중이라 멈춰 서서 볼 수가 없었다. 남편이 바로 뒤에 있어서 서둘러 가야 했다. 두 여자는 내가 쌩하고 지나가버리니 뒤이어 나타난 남편에게 손짓까지 해가며 그를 불러 세웠다. 남편은 화를 내는 중이 아니니 그들의 손짓에 반응이라도 보이려고 잠깐 걸음을 멈췄고 나를 부르기까지 했다.
"지명아! 여기 새 좀 보래!"
하지만 화를 내다 말고 돌아가 새를 보는 것이 무척 우스운 일이라 나는 계속 갈 수밖에 없었다. 내가 걸음을 멈추지 않으니 남편은 나를 쫓으랴 그 여자들의 요구에 대응해주랴 어정쩡하게 옆걸음으로 뛰다시피 하고 있었다. 사실 그 모양새가 좀 우스워서 웃음이 날 뻔했지만 나는 화를 내고 있는 중이라 그것마저도 참고 말았다.
한 십오 분쯤을 정신없이 걸었을까? 나보다 더 큰 가방을 메고 거친 숨을 내쉬며 바싹 따라오는 남편이 좀 안쓰러워 걸음을 약간 늦췄다. 이제 화도 가라앉은 것 같았다. 그렇게 화를 낼 일도 아니었다는 것은 진작에 알고 있었다.
"따로 가자니까 왜 자꾸 쫓아와?"
이미 말을 건다는 것은 기분이 좀 풀렸다는 신호임은 남편도 알고 있었다.
"네 점심 도시락이 나한테 있어서..."
진심이든 농담이든 참 남편다운 대꾸였다.
한바탕의 질주가 끝났고 우리는 다시 함께 걸었다. 다행히도 따로 한국에 들어가는 일은 생기지 않았다. 모든 감정이 수그러들고 나니 내가 무시하고 지나친 그 사람들에게 미안한 마음만 계속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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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_6946.JPG 다닐라가 제임스에게 남긴 메모. 정작 제임스는 이 메모를 보지 못했다. 내가 사진을 보여주자 무척 기뻐했다.


잠시나마 아주 빠른 속도로 걸은 덕에 카스트로헤리즈 Castrojeriz에는 한 시에 도착했다. 알베르게 시설은 그다지 좋진 않았지만 오랜만에 뜨거운 물이 잘 나오는 샤워시설을 만나 피로를 풀기에 너무 좋았다. 하지만 따뜻한 물이 좋다고 샤워를 오래 했더니만 밖에서 기다리던 사람이 문 손잡이를 덜컥거리며 재촉을 했다. 밖에서 프랑스 청년 제롬과 어떤 여자가 불어로 뭐라고 떠들었고 옆 칸에 있던 프랑스 소년 다지가 뭐라고 대꾸를 했었는데 그것이 아마도 빨리 나오라고 채근하는 소리였던 모양이었다. 여태껏 샤워실 앞에 줄을 서는 경우는 없었고 내가 들어갈 때만 해도 욕실이 텅텅 비어있어서 마음 놓고 있었더니만 그 잠깐 사이에 사람들이 몰려들어온 것 같았다. 미안한 마음에 서둘러 정리를 하고 나왔는데 하필이면 내 문고리를 잡고 흔든 여자는 오전에 내가 지나쳐버린 그 '새' 아가씨였다. 제롬이 웃으면서 '얘가 그랬어'라고 손가락질을 하는 것을 보니 장난기가 돌아 그랬던 것 같긴 한데 미안한 것은 미안한 것이었다. 의도치 않게 두 번이나 실례를 했으니... 그 아가씨에게 난 무례하고 이기적인 동양 여자로 기억될 것 같았다.
남편은 전기밥솥으로 파스타를 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매일매일 열악한 주방시설과 얼마 되지 않는 재료로 저녁을 만드느라 애를 쓰는데 이곳의 주방에는 전자레인지와 뜬금없는 전기밥솥이 전부였던 것이다. 우유와 마늘 파우더, 소시지로만 만든 파스타는 훌륭한 맛이 났다. 2유로짜리 이 지역 와인을 사들고 와서 주방에 굴러다니던 빵에 올리브유와 소금을 뿌려 곁들이니- 토스안토스에서 만난 조지가 알려준 레시피였는데 제법 맛이 괜찮았다.- 후식까지 완벽했다. 이러니 우리는 점점 더 레스토랑이나 바에 갈 수 없게 되었고 식료품 가격에 대한 기준도 이상하게 잡혀나가고 있었다.
적은 돈으로도 풍성하고 행복한 식사를 할 수 있게 해주는 남편에게는 이미 서운함 따위 사라져 버렸고 그저 감사할 따름이었다. 내 마음은 그랬다. 하지만 정작 남편은 별일 아닌 것에도 화를 내고 하루에도 몇 번씩 기분이 오락가락하는 마누라를 건사하느라 진정한 순례길만 기억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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