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미스타로 가는 길

by 신지명

쌍꺼풀이 길고 무척 여성스러운 몸놀림을 하던 주인아저씨는 매우 정갈하게 아침식사를 준비해주었다. 기부금을 조금 내면 누구나 먹을 수 있도록 한 것이라 우리도 기꺼운 마음으로 식사를 했다.
메뉴는 어느 곳이나 유사했다. 비스킷과 잼, 커피나 차, 우유 등이다. 그라뇽에서도 주인 마리아와 이름이 같은 비스킷 '마리아'를 맛있게 먹어서 주인이 직접 만들었나 궁금해했었는데 오늘의 아침식사에도 그 비스킷이 나온 것을 보니 이곳에서 저렴하게 식사 대용으로 즐겨먹는 비스킷이었나 보다.
비스킷을 먹으면 우유가 당기고 우유를 마시면 또 비스킷이 당기니 무엇으로 마지막 한 입을 할지 정하지 못해 제법 많은 양을 먹은 것 같다. 게다가 아저씨가 내준 우유가 너무 고소하고 맛있어서 연거푸 세 잔이나 마시고서야 식사를 마칠 수 있었다.
나의 과욕이 엄청난 참사를 일으키고 말리라는 것을 이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 아니, 마지막 우유 잔을 들이킬 때쯤엔 뭔가 불길한 예감을 느꼈던 것도 같다.

이곳 마을들의 특성은 마을이 끝남과 동시에 바로 들판이 이어진다는 것이었다. 마을의 골목을 걷다 보면 저 끝, 좁은 틈으로 푸른 들판이 보이는 것이 매력적이었다.
오늘도 역시 작은 마을을 벗어나자마자 들판에 들어섰고 오늘은 조금 높은 언덕이 떡하니 앞에 놓여있었다. 언덕 위에서 바라본 마을과 들판의 풍경은 구름이 짙게 덮여있지만 않았더라면 매우 멋있었을 것 같았다. 언덕 너머의 풍경도 역시 흐린 날씨가 원망스러울 따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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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덕을 내려오는 길에 남편은 윈스턴 담배를 한 갑 줍고는 무척 신이 났었다. 한 개비가 빈 새것이었다. 하지만 인생에서 공짜를 얻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한참 전에 소리를 지르며 우리를 앞질러 언덕을 뛰어내려갔던 다지가 저 앞에서 우리를 기다리더니 심각한 얼굴로 담배 피우는 시늉을 하고 허공에 네모를 그렸다. 남편이 건네준 담배를 돌려받고 나서야 다지는 얼굴이 풀려 활짝 웃었다. 고작 17살 밖에 안 된 녀석이 잃어버린 담배를 찾고 그렇게 기뻐하다니. 조금 앞에 있던 제롬도 다지의 기분이 풀어져 몹시 다행스럽다는 표정이었고 남편에게 고맙다는 손짓을 했다.

제롬, 다지는 뿌엔테 레 라이나부터 함께였으니 알고 지낸 지 벌써 열흘도 넘었다. 하지만 영어를 거의 못하는 프랑스 청년들이었고 불량 청소년 계도 차원에서 순례길을 걷는 중이라 제약사항도 좀 있어서 많은 대화를 나눌 수는 없었다. 제롬이 없을 때 남편이 다지에게 몰래 와인을 좀 따라준 적이 있었는데 황급히 한 잔을 털어마시고는 너무 행복해했다고 했다. 심지어 위스키를 먹고 싶다며 언제고 꼭 함께 바 bar에 가자고 약속했다는데 제롬이 늘 함께여서 그 약속은 지켜줄 수가 없었다.
다지는 늘 가방이 불편하고, 걷기가 싫고, 사람들이랑 어울리지 못해 입이 부어있는데 제롬은 그런 다지를 살뜰히도 챙겼다. 나는 무척 친절한 제롬이 목사님이거나 선생님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남편의 의견은 달랐다. 남편이 보기에 그는 다지 못지않게 어둠 속을 헤매다 새 삶을 사는 청년일 것이란다. 팔에 가득한 문신이나 능숙하게 가루담배를 말아 피우는 솜씨도 그렇고, 무엇보다도 제롬의 눈빛에 어둠에서 큰 빛을 본 사람 특유의 평온함이 있다는 것이었다.
어쨌든 두 사람의 재미난 관계는 그들의 뒷모습을 몹시 사랑스럽게 만들었다. 담배를 되찾고 행복해진 다지와 불만에 가득 찰 뻔한 다지가 행복해져서 한시름 놓은 제롬이 가벼운 발걸음으로 멀어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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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을 보내고 난 후, 언덕 위에서 누군가 두 팔을 벌리고 허공을 휘적거리며 소리를 질렀다. 이틀 만에 만난 제임스였다. 어제 우리와 다른 알베르게에 묵어 만나지 못했었다. 나름 오랜만에 만나 반가웠던 나머지 우리는 가던 길을 멈추고 함께 바에 들렀다. 친숙한 사람들을 만나 신이 난 제임스는 우리가 마신 샹그리아와 맥주뿐만 아니라 먼저 들어와 앉아있던 제롬, 다지의 커피까지 모두 계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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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평화로운 시간은 딱 그때까지였다.
바에서 나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내 과욕이 부른 큰 위기에 봉착하고 말았다.
갑작스럽게 복통이 밀려왔다.
오전에 과하게 마신 우유에 차가운 샹그리아가 불을 붙이고 만 것이다.
아...
길은 계속 허허벌판으로 이어졌고 내 몸 하나 숨길 공간이 보이지 않았다.
아...
산모의 진통은 아직 경험한 바 없지만 진통의 간격이 점점 짧아지는 것이 위기의 순간이 임박했음은 알 수 있었다.
한 걸음 한 걸음에 신중할 수밖에 없었고 숨은 날숨을 섣불리 쉴 수 없어 턱 끝에 달랑달랑 달아놓고 죽지 않을 만큼만 쉬고 있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얼마의 거리를 걸었는지도 알 수 없었던 그 순간, 저 멀리 언덕 위에 신기루처럼 나무 몇 그루가 작은 숲을 이루고 있는 것이 보였다. 정신줄을 놓아버리고 싶은 충동과 싸우며 힘겨운 걸음을 옮겼다.


아... 조금만 더 가자.
조금만 더 가자.

조금만 더...


2015-04-29-18-18-07-8747.JPG 저 멀리 작은 나무군락이 보인다. 길은 좀처럼 짧아지지 않았다.


인생에서 누구나 한 번쯤은 만날 수 있는 위기이지만 내내 감탄하고 감사하던 아름다운 자연에서 맞닥뜨린 그 순간은 형언할 수 없는 괴로움이었다. 나를 둘러싸고 끝없이 펼쳐진 들판과 파랗게 개인 하늘의 평화로움이 악마처럼 일그러져서 하나의 지점, 내 이성의 작은 점으로 나의 전부가 빨려 들어가도록 종용하고 있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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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란 쿤데라의 소설 '무의미의 축제'에는 스탈린이 자신의 연설이 계속되는 동안 소변을 참느라 얼굴이 일그러지다가 결국은 이성의 한 점마저 소멸되어버린 전립선 비대증 환자 칼리닌을 보며 재밌어하던 일화가 등장한다. 나는 문득 그 이야기가 떠오르며 스탈린의 잔인성에 격하게 고개를 내젓게 되었다.
그러나 또 한 편으로는 배설 행위가 갖는 원초성이 인간을 완전한 이성의 존재가 되지 않도록 하는 중요한 요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스탈린이 부하 칼리닌으로부터 느꼈을 묘한 해방감을 일부분 이해하기도 하였다.
이성은 때로는 지나치게 진지하고 심각하며 차가운 무엇이어서 경우에 따라서는 뜨거운 생명의 기운과 충돌하고 그것을 부정하기도 한다. 하지만 배설 행위의 원초성, 피를 끓어오르게 하는 그 처절한 욕구의 반복은 이성의 지배를 넘어서서 이성의 모든 활동을 순간적인 '무'의 상태로 되돌리는 역할을 하게 된다.
어쩌면 쿤데라가 스탈린의 일화를 소개한 것도 스탈린의 폭력성이 깔려있기는 하지만 결국 인간은 이성이 자아내는 긴장감으로부터의 해방을 갈망하고 배설 행위는 그러한 갈망에 부합하여 모든 것을 무의미한 자유의 상태로 회귀시키는 중요한 행위임을 보여주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팬티를 더럽히지 않기 위해 괴로움을 견딘다는 것, 청결의 순교자가 된다는 것, 생기고 늘어나고, 밀고 나아가고, 위협하고, 공격하고 죽이는 소변과 맞서 투쟁한다는 것, 이보다 더 비속하고 더 인간적인 영웅적 행위가 존재하겠냐?"-<밀란 쿤데라, 무의미의 축제 중>
"모든 인간이 경험한 고통을 기념해" 칼리닌을 치하하며 러시아 중요 도시의 이름을 '칼리닌 그라드'로 지었다 하니- 실제 작명의 배경은 알 수 없지만 말이다. - 차가운 이성의 삶으로부터의 뜨거운 해방이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지 생각해 볼 일이다.
나 역시 "자신 외에 아무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는 필사적인 투쟁"을 겪으니 머릿속의 어지러웠던 모든 잡생각들은 빛이 바래 무의미해졌고 완전히 백지상태로 돌아간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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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이라 할 수 있는 그 언덕에 도달하기 직전부터 가방의 버클은 이미 모두 해체되어있었고 언덕에 도착하자마자 그 무겁던 가방은 솜 베개처럼 팽개쳐졌다.
생각만 해도 눈물이 날 것 같은 끔찍한 결과를 경험하지 않은 것이 어찌나 다행스러웠는지 모른다. 그곳에 그 숲이 없었더라면... 위기를 극복하지 못하고 대참사를 겪었다면 나는 순례를 멈추고 한국으로 돌아갔을지도 모르겠다.
몸뚱어리는 한바탕 비상사태를 치르고 났더니만 정상적인 상태로 회복되는 데만도 시간이 제법 걸렸다. 하늘이 완전히 개어 빛나는 시간 동안 힘이 풀린 나의 다리도 편안해졌고 한껏 올라붙은 숨주머니도 내려앉으며 조금씩 안정되어갔다. 때마침 제임스가 우리를 따라잡아 함께 점심을 먹고 기도를 하며 모든 것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다시 평화로워졌다.

묘한 청량감이 느껴졌다.

카스틸료 castillo 운하를 따라가는 길은 지금까지의 여정 중 손에 꼽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날씨가 한몫을 해서 운하를 따라 걷는 내내 더없이 행복했다. 내가 당면한 문제가 아무것도 없는 지극히 평화로운 상태로 그 풍경을 볼 수 있음에 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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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4-29-22-12-18-8833.JPG 자칫 잘못했으면 이 사진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뻔 했다.


프로미스타 Fromista는 도시도 매우 정갈하고 조용했다. 하루 먼저 이곳을 다녀간 페데리카가 별로 좋지 않은 기운이 도는 도시이니 다음 마을로 넘어가라고 메일을 보냈던데 아마도 흐릿했던 어제의 날씨 탓이었던 것 같았다. 알베르게가 8유로로 좀 비쌌고 사장님이 장사꾼처럼 생긴데다가 부엌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개방하지 않았다는 점이 다소 기분 나쁘기는 했다. 그래도 뜨거운 물로 샤워하고 따뜻한 햇볕에 빨래를 널고 쉬기에는 충분히 안락한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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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와 함께 숙소 바로 앞에 있는 성당을 둘러보았다. 오래된 벽돌 성당의 처마 기둥에 동물이나 사람 얼굴 등이 장식되어있는 것이 무척 동양적이었다. 내부의 기둥에도 성서에 나오는 듯한 에피소드를 표현한 조각들이 장식되어있었다.
잠깐 앉아서 묵상을 하다가 성당의 울림이 좋아 이곳에서 노래하면 멋지겠다는 생각을 잠시 하고 있었다. 그런데 마침 제임스가 함께 노래를 하자고 청했다. 아마도 나와 같은 느낌을 받은 것 같았다.
성당 입구에서 크레덴시알에 스탬프를 찍어주는 직원에게 양해를 구하고 아무도 없는 틈을 타 우리 셋은 제대 앞에 모여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두 번째 곡을 부르는 동안 한 남자가 들어와 앉았는데 이 사람이 우리 노래를 듣더니 슬며시 눈물을 훔쳤다. 짧은 떼제 노래가 끝나자 그는 우리에게 다가와 격하게 악수를 청하며 고맙다는 인사를 하는 것이 아닌가. 그토록 감사의 인사를 받을 만큼 노래가 훌륭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아마도 오래된 성당에서 뜻밖의 상황을 접한 것 자체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비록 단 한 사람의 관객이었지만 어쩌면 그분 인생의 어느 중요한 시간에 우리의 노래가 한순간의 자리를 내어 받은 것은 아닐까 하고 상상해보니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기분이 한껏 좋아진 제임스는 또 우리에게 저녁식사를 대접하겠다며 등을 떠밀어 식당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안 그래도 숙소에 전자레인지만 덩그러니 있어서 맛없는 냉동피자 한 판을 겨우 데워먹고 아쉬워하던 터라 우리 부부는 염치 불고하고 그와 자리를 함께 했다.
제임스와 함께 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그런지 우리의 일상적인 대화들이 꿈결처럼 아득하게 느껴졌다. 우리 세 명 모두 늘 이렇게 함께 해왔고 앞으로도 함께 할 것처럼,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웃고 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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