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 부르고 라네로로 가는 길

by 신지명

우리가 준비를 거의 마쳐가는 동안 제임스는 침낭 속에서 움직이지 않고 누워있었다. 그냥 갈 수는 없고 깨워서 인사를 해야 하나 고민되었다. 다행히 로비에서 아침식사를 하고 마지막 짐 정리를 하는 동안 제임스가 어느새 말끔히 잠을 깨고 나와 앉아있었다.

제임스는 우리와 함께 노래하기를 원했다. 모두 천장만 바라본 채 조용히 마지막 노래를 불렀다.
긴 말을 하지는 않았다. 오랜 포옹이면 서로의 마음을 충분히 전할 수 있었다.
제임스의 눈동자가 눈물에 일렁거렸다.
다시 만나자는 말에 주문을 걸듯 힘주어 말하고 우리는 밖으로 나섰다.
남편과 나는 꽤 오랜 시간을 말없이 걸었다. 흥겨운 잔치가 끝나고 이제야 우리만의 까미노를 시작한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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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을 낮춰 내 발끝만 보며 걸어야 할 정도로 바람이 거세게 불었다.
지나는 길마다 서로 다른 바람소리가 들렸다. 마른 갈대에서는 버석버석하게 부스러지는 소리가 나고 소나무에서는 수많은 솔잎이 비벼지며 풍성하고 묵직한 소리를 내었다. 보리가 누웠다 일어날 때는 귀를 바짝 세워야 할 만큼 수줍게 스스슥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바람이 세게 불수록 소리들은 더욱 다양해졌다.
사실 보리와 바람의 만남은 소리보다는 그 모습이 더욱 설레었다. 눈에는 보이지도 않는 것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갈 것인지 모르겠으나 연둣빛으로 막 여물기 시작한 보리밭을 쑥 눌러서 훑고 지나가면 보리들은 그 결에 흔들흔들 몸을 맡겼다. 바람이 휘 한 번 지나가고 다시 한 번 휘 하고 지나가고 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어느새 내가 보리인지 보리가 나인지 모르겠는 물아일체가 되어 걸음을 멈추게 되었다. 내 심장이 꺼내어져 그 위에 놓인 것처럼 그 바람결에 함께 어루만져지는 느낌이 들었다.



바람이 거세게 불면 불수록, 바람에 저항하며 힘들게 앞으로 나가면 나갈수록 나는 묘한 쾌감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나뭇잎을 지나는 바람이 아니라 내 머리카락 사이사이를 훑어나가고 내 피부의 미세한 결의 틈새를 하나하나 파고드는 바람이 느껴질 때마다 생동감이 올라왔다.
내가 살아있음을 이렇게 생생하게 느껴본 적이 있었던가!
오랜 시간 동안 내 몸에 느껴지는 것은 언제나 '아픔'이거나 '불편감' 뿐이었다. 머리가 아프거나 뒷목이 뻐근하거나 등이 결리는 느낌들이었다. 매일매일 내 허리춤밖에 되지 않는 아이들과 눈을 맞추고 마음을 나누는 동안 정작 나는 병들어 가고 있었다. 아이들 탓이 아니라 나를 돌볼 틈도 없이 많은 아이들을 돌봐야 하는 열악한 현실 탓이었다.

행동치료가 시작되고 이미 자리가 잡힌 미국에서는 아이 한 명을 치료하기 위해 치료사가 두 명 내지 세 명이 함께 일한다. 집중을 요하는 일이고 체계적인 접근이 필수적인 일이기 때문이다. 아이 한 명의 치료를 위해 동료들은 충분히 의견을 나누고 준비한다. 치료실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상황에 함께 대처한다. 그리고는 또다시 의견을 나누어 치료의 방향을 다듬는다.
꿈같은 일이다.
나의 아이들은 모두 여섯 명이었다. 치료사는 '밥 값'을 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처음 이 일을 시작하였을 때였다. 병원 식당에서 밥을 먹고 있는 나의 동료에게 행정직원이 한 말이었다. "우리 병원 치료사들은 밥값을 못한다."

어떻게든 치료의 질이 떨어지지 않게 해보려고, 미국의 환경과 다르지 않게 해보려고 노력하느라 환자 수가 적었던 것을 비아냥거린 것이었다.
물론 그 직원은 무척 예의가 없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병원을 운영하는 입장을 모르쇠로 넘길 수는 없는 것이기도 했다. 그렇게 꼬리에 꼬리를 물다 보면 장애인의 삶은 버려진 삶이나 다름없게 만드는 정치권에 화가 나고 그러다 보면 그런 정치판을 바꾸지 못하는 국민들이 어리석게만 느껴져 또 화가 나고, 그 어리석은 국민들, 결국 나에게 화가 나고 마는 악순환이 반복되었다.
그러한 현실을 비통해하며 당장은 나의 아이들이 내 눈앞에서 제대로 돌보아지지 못하고 있는 것을 매일매일 지켜보아야 했다. 나의 불편하고 답답한 마음은 내 몸을 조금씩 조금씩 굳어지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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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가 푸르게 일렁일 수 있는 것은 바람이 그들에게 다시 일어날 시간을 허락했기 때문이다.
바람이 다시 나의 온몸을 훑고 지나갔다. 나의 모든 세포가 바람을 따라 누웠다가 다시 일어났다. 다시 살아나는 그 짜릿한 느낌은 무척 경이로웠다.
제임스가 큰 소리로 외쳤던 것처럼 나도 소리치고 싶었다.
"나는 살아있다! I'M ALIVE!"

하지만 신이 난 것은 나 뿐이었다. 땀이 바람에 식어 몸에 한기가 든 남편은 혼자서 추위와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던 모양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저녁 무렵 도착한 엘 부르고 라네로의 공립 알베르게는 이미 꽉 차서 머물 수 없었고 지나치게 고지식한 직원이 상도덕 때문인지 뭣 때문인지 다른 알베르게에 대한 정보를 일체 알려주지 않아 마을을 휘적휘적 헤매고 돌아다녀야만 했다. 마을의 끝까지 길을 따라 들어가 찾아낸 알베르게 역시 단 한 자리 남아있을 뿐이었다. 다시 마을 초입으로 돌아 나오는 것은 고역이었다. 순례자에게 가장 힘든 일 중 한 가지가 바로 걸어온 길을 다시 걸어가는 것이었다. 우리는 그 괴로운 일을 한 끝에 간판도 어떤 표시도 되어있지 않은 건물 앞에 나와 앉은 사람들이 '알베르게! albergue!'라고 하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7유로의 가격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허름한 시설이었지만 재고 따지고 할 처지가 못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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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없는 어두운 부엌에서 와인 한 병과 올리브 한 봉지, 뜨끈한 컵라면으로 한기를 달래며 우리만의 첫 까미노 신고식을 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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