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구름이 짙게 내려앉았고 비도 부슬부슬 내렸다. 최근 며칠 동안 영 날씨가 좋지 않아 도통 몸의 한기가 녹을 겨를이 없었다. 해가 들지 않고 우중충한 숙소 분위기 때문에 더 추운 느낌이었다. 그나마 사람들이 북적거리지 않는 부엌에서 편안하게 우유 한 잔 따끈하게 데워 온기를 돌리고 출발할 수 있는 것이 다행이었다.
길을 나서고 처음 나오는 마을, 렐리고스 Reliegos까지는 13km의 거리였다. 어제의 알베르게가 작긴 했지만 그래도 마을에 우리가 묵을 곳이 없을 만큼 많은 사람들이 함께 머물렀던 것 같은데 이상하게도 길 위에는 사람이 없었다. 은빛 머리카락의 나이 든 여성분과 자전거를 타고 지나간 몇 사람 외에는 마주치는 사람이 없었다. 아마도 일찍 떠난 사람들과 늑장을 부리는 사람들의 중간 어느 시점에 길을 나선 모양이었다.
몇 년 전 지리산 종주를 하였을 때를 생각해보면 아마 나의 추측이 맞을 것이다. 그때도 장터목에서 밤을 보내고 일출을 보러 가는 사람들의 무리를 쫓아 새벽 네 시쯤 출발해서 천왕봉에 올랐다가 그 무리가 모두 내려가고 난 뒤 아무도 없는 천왕봉을 만끽할 수 있었다. 이른 새벽 산 아래에서 출발해 바로 천왕봉으로 올라오는 사람들의 무리가 도착하기 전까지 시간 차이가 있는 덕분이었다.
한 시간이 넘도록 지리산의 정상에는 남편과 나 둘 뿐이었다. 우리는 그곳에 앉아 눈을 감고 산을 따라 올라오는 바람소리에 한껏 취해 있었다. 산 아랫마을에 아침이 깃드는 모습을 볼 수도 있었다. 빛이 천천히, 아주 조금씩 스며들어 마을이 밝아지는 모습을 시시각각 보고 있자니 아, 우리가 살고 있는 땅의 매일 아침이 저렇게 시작되고 있었구나... 그 숭고한 작업에 넋을 잃고 한참을 지켜보았었다.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는 것이 즐거움을 주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때로는 다른 흐름을 타고 살짝 어긋나있으면서 전혀 다른 경험을 하는 것도 특별한 선물이 되었다.
오늘도 조금 어긋난 흐름을 탄 덕에 어둡고 지루한 길이 쓸쓸하기는 했지만 그만큼 다른 것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걷고 있는 나 자신과 충분히 함께 할 수 있었다. 쓸데없는 걱정과 잡스러운 생각들로 갈팡질팡하는 머릿속과 달리 묵묵하게 해야 할 일을 하고 가야 할 길을 알아서 가고 있는 내 몸뚱이가 외롭지 않도록 생각을 멈추고 함께 머물러주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이었다.
그러고 보면 나와 나의 관계는 나와 남편의 관계와도 닮아있었다.
늘 조잘거리고 감정의 기복에 오르락내리락하며 의심과 걱정으로 곧게 걷지 못하는 나와 달리 남편은 언제나 묵묵하게 앞을 향해 걷고 내가 온갖 정보를 모아들이고 점검하는 동안 저만치 앞에 서서 이미 답을 쥐고 나를 기다린다. 때로는 나의 방황을 어리석어 보이게 하는 그 평온함이 얄밉기까지 할 때도 있지만 내가 날아가 버리지 않게 붙잡아두는 그 묵직함을 사랑하지 않을 수는 없다.
그래서 오늘은 나 자신과 함께 머물기도 했지만 다른 곳에 정신을 팔지 않고 남편의 뒤를 바짝 쫓아 함께 걸으려고 노력하기도 했다. 외롭지 않게 말이다.
만실라 Mansilla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비가 쏟아졌다. 다행히도 점심을 먹으려고 바에 들어온 직후부터 본격적으로 쏟아져서 흠뻑 젖는 상황은 피할 수 있었다. 비가 잦아들기를 기다리며 제법 오랜 시간 바에 머물렀다.
오늘은 레온 Leon까지 가야 했다. 총 39km의 쉽지 않은 거리였다. 프로미스타에서 출발할 때 5일간 비가 온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이미 세찬 비바람에 한 번 호되게 당하고 카메라를 잃은 터라 많은 비가 온다는 내일은 레옹에서 하루를 쉬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해 좀 무리를 하기로 했다.
하지만 점심을 먹고서도 20km를 더 가야 한다는 사실은 마음을 무겁게 했다. 아침에 나서도 오후 녘에 도착할 거리인데 지금 나서야 한다니... 게다가 만실라부터는 계속 오르막길이었다.
혹시 마음이 약해지면 중간에 멈출만한 마을이 있을까 싶어 지도만 하염없이 들여다보고 만지작거렸다. 하지만 막상 그 마을에 도착하면 잠망경처럼 내 머리만 쑥 올라와 묵을 곳을 찾아 두리번거릴 뿐 내 발은 이미 다음 마을을 향해 걷고 있기 일쑤였다. 남편의 뒷모습도 멈출 의향은 전혀 없어 보여서 뭐라고 징징거릴 여지도 없었다. 그렇게 네 개의 마을을 더 지났다.
이제 레옹에 가는 수밖에 없었다. 7km의 언덕과 가파른 내리막길 말이다.
제기랄.
팜플로나나 부르고스에서 경험한 바가 있어서 레옹 시내가 드디어 시야에 들어왔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환호하지 않았다. 마음을 놓기에는 이른 시점임을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건 마치 서울에서 걸어와 행신동을 바라보며 마두동 우리 집에 다 왔다고 환호하는 것처럼 섣부른 일이다. 그런 마음을 먹었다간 마지막 걸음을 울며 걷든 쌍욕을 하며 걷든 나 스스로와 뭔가 격렬한 투쟁이 일어나고 만다. 도착할 때까진 절대로 끝난 것이 아니었다.
우리는 평정심을 잃지 않기 위해 레옹 시내의 초입에 들어서서 쉬는 시간을 가졌다. 다시 부슬거리며 내리는 비를 피해 지붕이 있는 버스정류장에 앉았다.
버스라...
깨끗하고 편안해 보이는 버스가 우리 앞에 섰다. 정말 오랜만에 보는 버스였고 몹시 유혹적이었다. 아침에 유일하게 만난 은빛 머리카락의 여자분도 마치 우리를 유혹하듯이 자기는 버스를 타고 갈 건데 여기서 타면 되느냐고 물었다.
그냥... 조용히 생각했다.
'아... 버스를 타야 할 만큼 한참 걸어가야 하는구나...'
나는 몸도 힘들고 정신적으로도 좀 피폐했는지 눈의 초점은 내 뒤통수 어딘가쯤에 내버려 둔 채 비스킷 한 줄을 몽땅 씹어먹었다.
다행히 마음을 단단히 먹은 덕에 레옹에 들어오고도 한 시간을 더 걷는 동안 나는 울지도 않았고 욕도 하지 않았다.
평정심을 잃지 않은 우리가 기특했는지 큰 행운을 얻었다. 알베르게를 찾아 헤매기 시작하려는 그 시점에 한국인 남자분이 뒷짐을 지고 슬렁슬렁 걸어오시더니 당신이 이미 짐을 부린 공립 알베르게로 데려다주셨다. 그분이 아니었더라면 한참을 헤매기 딱 좋은 골목들이었다. 게다가 알베르게에는 미콜과 페데리카가 있었다. 미콜은 이틀 만이지만 페데리카는 일주일 만이었다. 당연히 앞서갔을 것이라고 생각한 페데리카와 당연히 뒤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미콜이 함께 있다니. 이 길을 걷는 사람들은 도통 위치를 예측할 수가 없다. 여하튼 너무 반가워 큰 소리로 '안녕! ciao'를 몇 번이고 외치고 귀가 찡하도록 큰 소리로 서로의 볼에 뽀뽀를 해주었다. 오늘의 노고를 치하받은 기분이었다.
레옹에서 7시에 있다는 주일미사를 드리자는 마음으로 서둘렀었는데 정작 너무 많은 성당을 다 가볼 수도 없고 사람들에게 물어서 찾아간 몇몇 성당들은 문이 굳게 닫혀있어서 어찌 된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시간은 이미 30분이나 지나있었다.
이만큼 돌아다녔는데도 미사를 드리지 못한 것이라면 충분히 이해해주시려니 하는 마음으로 위안을 삼고 지도에 노란 별까지 띄워놓은 버거킹으로 발 길을 돌렸다.
성당과 버거킹. 성스러움으로만 보자면 두 목적지의 간극이 너무 크지만 절심함으로만 보자면 '영육 간의 양식'으로 함께 묶이기에 부족함이 없는 상태였다. 솔직히 말해서는 '육의 양식'이 더더욱 절실한 상태였다.
요 며칠 너무 허기가 져서 무슨 얘기를 해도 '기승전 음식'으로 생각이 흘렀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었다.
'가방이 덜 무거웠으면 걷기가 수월했을까? 아니지, 제주도에서 가방 없이 올레길을 걸을 때도 힘들긴 마찬가지였어. 올레길? 그때 경미 휴게소에서 저녁을 먹었지. 해물라면 먹고 싶다!'
이런 생각에 이르면 도저히 참지 못하고 손으로라도 라면 먹는 시늉을 하면서 울상을 지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혼자 조용히 허공에 떠 있는 어떤 음식을 입으로 넣곤 했다. 배를 곯고 다니는 것은 분명 아닌데 맛도 양도 푸지게 먹을 수 있는 한국 음식에 대한 그리움이 극에 달하는 중이었다. 이곳의 담백한 음식으로 채워지지 않는 허기가 있었다.
핑계를 대자면 여자의 호르몬 장난 때문이기도 했다. 누구는 짜증이 늘고 누구는 우울해지고 심지어 도둑질을 하기도 하는데 나는 우습게도 뱃속에 블랙홀이 생기는 모양이다. 아직 생기지도 않은 아기를 위해 얼마나 열심히 영양분을 저장하려고 애를 쓰는지 원. '밥값'을 못하는 사람은 사실 나 같은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지 싶다.
그래도 남편은 일을 그만 두기로 결심하던 그때는 내가 전혀 식욕도 없고 입맛도 없어 걱정이었는데 확실히 건강을 되찾긴 한 모양이라며 혼자 상상의 음식을 먹고 있는 나를 귀엽게 여기며 토닥여주었다. -여러 가지로 고마운 남편이다.-
정신이 나가기 직전의 상태에서 먹은 더블 와퍼와 콜라! 천상의 음식이 바로 이런 맛일까? 남편이야 햄버거라면 몇 개라도 먹을 만큼 워낙 좋아했고 나는 그다지 즐기는 음식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크게 한 입 베어 물었을 때 입천장과 양 볼, 목구멍까지 빈틈없이 채워지는 풍성함에 나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고 감탄하게 되었다. 풍부한 육즙으로 착각하게 만드는 저열한 소스에 범벅이 된 소고기 패티는 담백하게 정화되어있던 내 혀에 마녀의 수프처럼 휘감겼다. 그 황홀함을 몇 번이고 처음부터 다시 느끼게 해주는 것은 다름 아닌 탄산이 가득한 콜라였다. 음료수라고 해봐야 동네 우물물과 우유가 전부였고 요 며칠 날이 추워져서 그나마도 마시지 못한 맥주가 가장 맛있는 음료였다. 한국에서는 먹을만한 음식으로 치지도 않았던 콜라를 정신없이 들이켰다.
무리한 걸음과 며칠 동안의 추위와 호르몬의 장난이 더해져 햄버거와 콜라를 찬양하는 글을 이리도 길게 쓰게 될 줄은 몰랐다. 하지만 최근 들어 느낀 가장 극적인 감정임은 분명했다.
배가 든든해져서 마냥 행복했던 것인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저녁을 먹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의 골목이 너무나 멋스러워 남편도 나도 더할 나위 없는 기쁨에 휩싸였다. 마치 레옹은 몇 가지의 선물을 준비해놓고 하루 종일 우리를 기다렸던 도시인 것만 같았다. 프랑스에서 국경을 넘어 까미노의 절반을 넘게 걸은 우리를 힘껏도 품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