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온에서의 휴식

by 신지명

공립 알베르게는 다음날의 순례객들을 위해 하루밖에 머물 수가 없다. 레온에서 하루의 휴일을 갖기로 한 우리는 다른 알베르게로 이사를 가야 했다. 일상복을 입고 가방도 대충 걸쳐 멘 채 레옹 대성당 앞을 어슬렁거리며 바쁘게 오늘의 길을 떠나는 사람들을 보자니 슬쩍 웃음이 흘렀다. 오늘은 걷지 않는다!
하지만 알베르게를 찾다가 오늘 걸을 만큼의 거리를 걷게 생겼다. 아직 문을 열 시간이 아니지만 위치를 알아놓고 카페에서 기다리자고 했다. 그런데 골목골목 돌아봐도 알베르게를 찾을 수가 없었다. 작은 마을에도 두 집 건너면 한 집이 사립 알베르게일 만큼 즐비했는데 대도시 레온에 어찌 숙소가 없는 것인지 의아했다.


2015-05-04-15-02-53-1433.JPG

결국 인터넷으로 좀 알아보고 움직여야겠다 싶어 대성당 앞 카페로 들어갔다.
그 길로 우리는 발이 묶여버렸다.
카페에 들어서고 얼마 지나지 않아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비바람이 제법 거세 보였다. 우비를 뒤집어쓰고 길을 떠나는 순례객들의 뒷모습만 봐도 마음이 심란해졌다. 하지만 그런 마음이 우리를 너무 오래도록 붙잡아둔 것이 문제였다.
위치를 알아낸 사립 알베르게는 아침에도 들어갈 수 있다고 하니 당장 가서 짐을 풀고 침대에 누워 쉴 수 있는데 그곳까지 갈 수가 없었다.
길을 나설 마음을 먹었다면 기꺼이 빗속으로 뛰어들었겠으나 쉬려는 마음을 먹고 있으니 도저히 그 비를 맞고 싶지 않았다. 비가 좀 잦아들면 나가자고 상황을 지켜본다는 것이 한 시간, 두 시간, 세 시간... 비는 도통 잦아들지를 않았다.


IMG_7268.JPG


우리가 카페의 마수걸이 손님인데 자리를 뭉개고 있는 것이 눈치가 보이기 시작했다. 게다가 여직원이 혼자서 바쁘게 일을 하기는 하는데 영 손이 야물지 못해 쉴 새 없이 우당탕거리거나 챙그랑거렸다. 그러다 결국 그릇이며 컵을 깨는 것이 한 시간에 한 번 꼴이었다.
우리에게 눈치를 주지도 않았고 나가라고도 하지 않았지만 그 어수선한 소리가 마치 우리에게 화를 내고 있는 것처럼 뒤통수가 찌릿거려 도저히 편히 앉아있을 수가 없었다. 괜스레 밖을 살펴보는 척을 하고 한숨을 쉬는 시늉만 몇 번이고 했다.
하지만 결국 우리의 등을 떠민 것은 그 여직원이 아니라 점심시간이 되었음을 알리는 허기였다. 이제는 더 미룰 수가 없었다. 아침보다는 훨씬 약해진 빗줄기를 결국은 맞아야 했다. 아침 일찍 곧장 알베르게를 알아보고 갔더라면...이라는 후회는 부질없는 것이었다.
십여 분 걸어서 도착한 알베르게에는 아침 일찍 만실라에서 출발했다는 지인이네 삼 남매가 비에 홀딱 젖어 떨며 도착해있었다 - 스물세 살 된 누나가 스무 살, 열여섯 살 된 남동생 둘을 데리고 길을 걸었다. 프로미스타에서 처음 만났다.-. 그네들의 몰골에 대한 안쓰러움과 그 비를 피한 것에 대한 안도감과 그래서 우린 무엇을 했나 싶은 자괴감이 순식간에 혼합되어 어정쩡한 표정으로 아이들과 인사를 나눴다.

휴일이라고 해서 하루 종일 침대에서 뒹굴거리며 일기를 쓸 수 있을 거라는 기대는 헛된 것이었다. 오전은 이미 거친 카페 언니와 함께 모두 흘려보냈고 오후는 내일을 준비하기 위해 마트를 찾아 헤매고 밀린 빨래를 한바탕 한 것이 전부였다. 그나마 우리가 레온에서 가장 만족스럽게 한 일은 먹을만한 음식을 내놓으라고 아우성치던 몸뚱이를 진정시킨 것뿐이었다.
마트를 다녀오는 길에 남편이 이곳에 있다는 중국집 얘기를 꺼낸 탓에 '밥'에 대한 욕구가 치솟았다. 몹시 허기는 졌으나 위치를 모르니 일단 버거킹에서 작은 햄버거를 먹어 정신을 차리고 숙소로 돌아가 인터넷 검색을 해보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몇몇 사람들이 같은 정보를 복사해서 쓰는 바람에 '장성반점'이라는 말도 안 되는 정보밖에 알 수가 없었다. 그 이름으로는 어디도 찾을 수가 없었다.
흠... 이쯤 되면 내가 정말 밥이 먹고 싶어 찾는 것인지 찾는 행위 자체에 집착하여 찾는 것인지 분간이 안 가게 된다.
정신을 차리고 포기하려는 순간, 이미 명령이 떨어져 혼자 열심히 일하던 뇌가 'china restaurant leon'으로 검색어를 바꾸더니 'Gran muralla 長城飯店'을 찾아내고 말았다. 장성반점이 맞긴 했다.
열심히 찾았는데 안 가기도 뭐했다.
거리가 멀지도 않았다.
햄버거가 작기도 했다.


2015-05-04-22-59-28-1481.JPG


나헤라에서 남편이 고기 조림과 밥을 해준 이후로 처음 먹는 밥과 뜨끈한 중국식 수프, 기름기가 맛깔나게 흐르는 볶음면을 배불리 먹고 나니 한국 음식에 대한 그리움이 한결 가셨다.
한국 사람이나 중국 사람들이 바지런하고 악착같은 데에는 이런 복잡하고 풍부한 음식문화가 영향을 미쳤음이 분명하다. 빵과 파스타 같은 담백하고 간결한 음식으로는 도저히 채울 수 없는 부지런한 맛이 있다. 까미노를 걷는 한국인들이 유난히 음식 때문에 고행 아닌 고행을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여간 '장성반점' 덕분에 한동안은 허공에 숟가락질을 하는 정신 나간 짓을 하지 않아도 되게 되었다.


2015-05-04-23-17-41-1490.JPG
2015-05-04-23-17-46-1491.JPG


숙소로 돌아오는 하늘이 파랗게 개이기 시작했다. 축복의 도시 레온을 기점으로 길고 긴 어둠과 추위의 시간이 끝나는 것이기를 희망했다. 까미노의 절반을 무사히 걸어온 서로를 축하하고 또 다른 시작을 응원하며 와인잔을 기울이는 동안 보름달도 환하게 떠올랐다.


IMG_7292.JPG
IMG_7309.JPG


여러 가지로 기분이 좋았는지 일찍 잠이 든 남편이 갑자기 또렷한 목소리로 잠꼬대를 했다.
"지금 이 순간은 지금뿐이에요."
"This time never comes again."
영어로도 중얼거리는 것을 보니 제임스나 에디를 만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 맥락은 알 수 없으나 스페인의 어느 도시, 레온에 함께 있는 이 순간이 남편의 마음 깊은 곳에 소중하게 기억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한 것 같았다.
내일은 분명 파란 하늘과 화사한 햇빛이 내리쬘 것만 같다.


IMG_7299.JPG


매거진의 이전글레온으로 가는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