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미구엘의 주인아저씨는 조근조근한 목소리로 방문해주어 고맙다고 인사를 하시고는 배웅까지 해주셨다. 우리 둘을 세워놓고 사진까지 찍어주셨다. 우리는 까미노를 걷는 친구가 있다면 꼭 이곳에 들르라고 말해주겠다고 다짐했다.
오늘은 정말로 새로운 기운이 열리는 것 같았다. 그러기를 희망했다.
남편의 렌즈는 우리가 마음에 오래 남기게 될 오르비고의 마을 끝자락 표지석 위에 올려주었다. 어제의 일들이 모두 정해진 대로 흘러간 것처럼 그 녀석도 딱 그만큼이 자기의 역할이었을 뿐이라고 위안했다.
어제 무리를 하기는 했지만 자고 일어나면 다시 걸을 수 있게 되는 것이 신기했다. 영화에 등장하는 초능력자들이 몸에 상처를 입고도 금세 아물어 다치지 않는 장면이 자주 나오는데 사실 그것은 매일 우리 몸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 조금 더 빠르게 일어나는 것뿐인 것 같았다.
생명력이라고 부르는 그 신비한 현상을 관찰할 수는 있을지언정 어떻게 그것이 가능한지는 모른다. 원리를 따져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결국 신의 영역을 인정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내 몸에서 일어나는 일이지만 나는 알지 못하고 생명이 스스로 하는 일들. 내가 과연 '나'이기는 한가 싶은 생각마저 든다. 내가 만든 것도 아니요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도 아니요 심지어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지도 못한다. 내가 원한다고 코를 손바닥으로 옮길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다리를 하나 더 만들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렇게 거창한 것이 아니더라도 머리카락 한 올, 손톱의 가시랭이 하나 내가 만들거나 바꿀 수 있는 것이 없다. 그렇다면 과연 주체로서의 나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어쩌면 '나'라는 존재에 대한 개념부터 바꿔야 하지 않을까 싶다. '나'는 내 인식의 한계에 있지 않고 인식의 밖에 스스로 존재하고 있는 우주의 영역일지도 모른다.
갑자기 내 몸이 우주의 위대한 생명력이 발현된 신의 창조물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들고나니 무척이나 특별한 존재가 된 기분이 들었다.
고속도로를 걷다가 들판 가득 하얗게 피어있는 꽃에 반해 발을 멈췄다. 어떻게 들꽃이 이렇게 피나 싶어 가까이 갔는데 무척 좋은 향기가 났다.
그런데 내가 아는 향기다?!
향을 몇 번이고 다시 맡으며 기억을 떠올려보니 카모마일 향이다. 때마침- 마을이 아닌 곳에서 현지인을 만나는 일은 매우 드물기 때문에 정말로 '때마침'이었다.- 노부부가 길을 지나가시길래 저것이 카모마일인지 물었더니 맞다고 했다.
나에게 카모마일 꽃은 티백 봉지에 그려진 그림일 뿐이었다. '카모마일'이라는 이름은 향이 좋은 차였을 뿐이었는데 사실은 이렇게 햇빛 아래 찬란하게 빛나는 예쁜 꽃이었다. 바람에 흔들거리며 스스로 향을 내는 꽃이었던 것이다.
생명에 대해 내가 얼마나 무관심하고 무지했던가. 깨어있지 않으면 놓치게 되는 것이 너무 많았다.
오늘은 아스토르가 Astorga에서 멈추기로 했다. 어제 무리해서 온 만큼 여유가 있기도 했고 마을이 너무 예쁜 곳이기도 했다.
매우 매우 가파른 언덕을 오르고 나니 바로 옆에 공립 알베르게가 있어 헤매지 않고 찾을 수는 있었다. 방마다 까미노의 마을 이름들이 적혀있었는데 우리는 가장 많이 웃고 즐거웠던 뿌엔테 레 라이나 방으로 배정을 받았다. 그때가 생각나 슬며시 웃음이 도는 기분 좋은 방이었다.
시설도 불편함이 없었고 주방이며 세탁실도 좋은데다가 지금까지 중 가장 전망이 아름다운 알베르게였다. 가파른 길을 오르는 동안에는 순례자들에게 너무 가혹한 것 아니냐며 씩씩거렸는데 그 덕분에 마을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훌륭한 경치를 감상할 수 있었다.
아침에 싸놓은 샌드위치도 채 먹지 못할 만큼 일찍 도착한 덕분에 오늘의 점심은 전망 좋은 테라스에서 힘들지 않게 바로 먹을 수 있었다. 어제의 고생에 대비되는 호사에 둘 다 입을 다물지 못하고 웃음을 흘렸다.
이곳에서는 인생의 시계가 빨리 돌아가는 것처럼 하루는 더없이 고되고 또 다른 하루는 한없이 행복하곤 했다.
마트를 가려고 나서는 길에 미콜과 페데리카를 만났다. 어제 이곳에서 하루 쉬고 오늘 오후에 다음 마을로 가려고 한다고 했다.
마흔이 넘은 이 언니들은 도대체 지칠 줄을 모른다. 함께 걸으면 숨이 턱 끝까지 차도록 빨리 걷고 쉴 새 없이 쉽지 않은 주제를 던져 내 생각을 묻곤 한다. 게다가 언니들은 숙소에서 쉬는 것을 본 적이 없다. 늘 다시 바로 나가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밤늦게 들어온다. 무서운 이탈리아 언니들이었다. 그들을 너무 좋아하지만 함께 걷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했다.
프로미스타에서 처음 보고 그 뒤로 계속 만나게 되는 지인이네 삼 남매와 식사를 함께 하기로 했다.
이제 고작 스물세 살 된 누나가 남동생 둘을 데리고 여행을 다니는 것이, 게다가 이 길을 걷는 것이 너무 기특하기도 했고 열여섯 살 된 막냇동생은 한창 많이 먹을 나이인데 제대로 먹지 못해 얼마나 고생스러울까 싶어서 늘 마음이 쓰이기도 했었다.
남편의 제육볶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훌륭했다. 마트에서 상추 계열의 비슷한 뭔가도 팔아서 쌈으로 먹기 딱 좋았다. 막내 인택이는 그릇에 고개를 파묻고는 말 한마디 없이 밥에 고기를 잔뜩 얹어 비벼 먹다가 쌈을 크게 한 입 싸서 먹다가... 정신이 없었다. 그리 잘 먹는 것을 여태껏 어찌 살았나 싶었다. 힘들었을텐데 오히려 형, 누나를 살뜰히 챙기고 늘 웃는 얼굴이었던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순식간에 바닥을 드러낸 냄비를 들고 나간 남편은 남은 양념에 면을 볶아 다시 새로운 음식을 만들어왔다. 우리는 다시 고개를 파묻고 신나게 먹었다.
한국 어르신인 줄 알고 함께 자리를 청한 일본 어르신 겐지 상도 남편의 음식이 무척 맛있다며 행복해 하셨다.
난 이곳에서 대학교 동창을 만났다!
스페인, 어느 작은 마을에서 십 년 만에 동창을 만나는 것은 도대체 어떻게 가능한 일일까?!
대학교를 졸업하고 사회복지 기관에서 일을 하다가 여러 가지로 너무 힘든 일이 많아 그만두고 일 년째 떠돌아다니는 중이라고 했다. 호사스러운 여행이 아니라서 온갖 기구한 일은 다 겪고 지금은 이곳에서 한시적으로 자원봉사를 하며 머물고 있다고 했다. 몇몇 알베르게에서는 호스피탈레라 hospitalera라고 불리는 자원봉사자들이 몇 주 혹은 몇 달을 머물며 순례자들을 돌봐주는데 그들 스스로가 순례자였거나 순례 중인 경우도 많았다.
이 친구도 어려운 상황에 있던 중에 까미노를 걷게 되었고 설명할 수 없는 많은 일을 겪고 다시 이곳으로 돌아와 자원봉사를 하게 되었다고 했다. 어제 마침 다른 한국인 자원봉사자와 대학교 시절 얘기를 나눴는데 오늘 나를 만나게 되었다며 무척 신기한 일이라고 했다.
도대체 이 길 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지 알 수가 없는 노릇이었다. 이곳도 내 몸처럼 인식의 한계 밖에 놓인, 스스로 살아 움직이는 '생명의 영역', 뭐 그런 것은 아닐까?
우리는 그 간 살아온 이야기를 나누느라 늦은 시간까지 함께 했다.
어제의 비구름은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것을 위해 그 길 위에 있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