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미노에서 늘 좋고 아름다운 사람들만 만나고 신비로운 일만 일어나는 것은 분명 아니다. 지인이네 삼 남매는 봉지에 넣어둔 베이컨과 요구르트를 도둑맞아 야채만 들어간 점심 샌드위치를 먹어야 했다. 나는 어제저녁 불려놓은 밥 냄비를 닦기 위해 개수대에 가득 담겨 있던 주인 잃은 더러운 그릇과 냄비들을 모두 닦아야 했다. 어제 늦게까지 부엌에 있었던 남편이 본 대로 추측해보면 도둑과 무책임한 놈은 동일범인 것 같았다.
까미노의 후반부가 가까워지면서 사람들은 각자의 영역에 머무르는 시간이 길어졌고 관계가 생기는 일도 드물어졌다. 이제는 급기야 서로에게 해를 끼치는 경우도 발생하기 시작한 것이다. 어쩌면 이곳이 교회 공동체의 모습과 많이 닮아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나긴 교회의 역사야 내가 전부 살지 않아 알 길이 없으나 짧게는 내가 이십 년 간 함께 살아온 나의 공동체 안에서 일어나는 현상이 그렇다.
신도시가 처음 생겼을 때 성당이라고 해봐야 허허벌판 흙바닥에 나무판자를 페인트 통으로 받쳐 만든 의자가 전부이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우리의 땅이 있었고 함께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의자뿐이던 성당에 비닐로 지붕을 덮고 컨테이너를 들여 사무실과 회합실, 교리실로 사용했다. 동네에 있는 어느 건물의 작은 지하실은 우리 같은 주일학교 학생들에게는 비밀 놀이터처럼 소중한 공간이었다. 여름에는 비닐 성당 주변으로 물이 고이지 않도록 아버지들이 수시로 나가 고랑을 팠고 겨울이면 마당 한편에 커다란 드럼통을 놓고 불을 피워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성전 건립기금을 만들기 위해 바자회를 크게 벌이는 날이면 부모님이고 아이들이고 전부 나서서 하루 종일 음식을 만들고 손님을 치렀다.
나야 어릴 때라 신나고 즐거운 일만 기억하고 어려운 일들은 알지 못하는 부분도 있었겠지만 많은 어르신들이 그때를 가장 행복했다고 추억하시는 것을 보면 분명 그때는 까미노의 처음처럼 모두가 하나의 마음을 가졌던 때였던 것 같다.
하지만 번듯한 건물을 짓고 식구가 늘어 또 다른 성당을 짓고 자리가 잡혀나가는 동안 많은 것이 변했다. 사람들이 세워놓은 교회는 더 이상 큰 노력을 하지 않아도 스스로 생명을 유지할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하였다. 공동의 목표를 위해 뜨겁게 타오르던 열기는 모두 식었고 사람들은 각자의 삶으로 돌아갔다. 이제 누구도 뜨겁지 않게 되었다. 심지어 무책임과 몰염치로 교회를 더욱 차갑게 만드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자신의 삶이 중요해지면서 욕심도 생겨났고 그 욕심은 걱정과 불안을 일으켰다. 각자의 자리로 흩어진 만큼 자신을 숨길 공간이 많아진 사람들은 쉽게 타인의 영역을 침범하고는 숨어버렸다.
이런 현상이 비단 교회에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 심지어 개인의 인생에서도 가슴을 뜨겁게 하는 시간은 언젠가는 끝나게 마련이고 견뎌야 할 어둠은 반드시 찾아왔다.
하지만 차갑게 식었다고 해서, 좋지 않은 일들이 일어난다고해서 까미노나 교회가 별 볼일 없는 곳이니 그만두자 할 일은 분명 아니다. 그저 인간의 유한한 생명력때문에 생기는 당연한 현상일 뿐이고 모든 생명체가 겪어야 할 일이기도 한 것이다. 언제까지 뜨겁게 타오를 수는 없는 일이다.
중요한 것은 스러져버린 잿더미에 남은 불씨가 꺼져버리지 않도록 지키는 일이다. 그렇게 살아남은 불씨가 이 길을, 교회를 몇 천 년 동안 지켜왔을 테고 그 작은 불씨로 누군가 또 뜨겁게 타오를 수 있었지 않았을까.
그렇게 해서 생명은 유한함과 동시에 무한함을 지니게 되는 것은 아닐까.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처럼 말이다.
나를 배웅해주려고 아침 일찍 잠에서 깬 친구와 서로 몸도 마음도 아프지 말자며 꼭 안아주고는 헤어졌다. 뜻밖의 만남에 단 하루의 시간이 무척 길게 마음에 남았다.
다시는 비가 올 것 같지 않은 날씨가 이어졌다. 길도 수월해서 모든 것이 만족스러웠다. 오늘은 산 정상을 오르기 직전 마을인 라바날 Rabanal까지만 걷기로 했다. 조금씩 누적되고 있는 피로감이 있어서 서두르지 않기로 했다.
꼬맹이들은 어느새 라바날에 도착해서 짐을 부려놓고 우리를 맞이해주었다. 막내는 어제 이후로 남편에게 90도로 허리를 숙여 인사를 했다. 맛있는 음식을 해준 것에 대한 깊은 감사의 표현이란다.
일찍 도착한 덕분에 열 명에게만 주어지는 단층 침대에 자리를 잡는 행운을 얻었다. 삐거덕거리는 소리에 마음을 졸이며 이 층으로 올라가지 않아도 되었고 계단을 내려가기 싫어 화장실 가는 것을 미루는 일도 없었다. 무엇보다도 한 번 계단을 밟으려면 오랜 마음의 준비와 심호흡이 필요한 발바닥의 통증을 느끼지 않아도 되는 것이 가장 감사했다.
아주 작은 마을에 물건도 변변치 않은 가게가 하나 있을 뿐이었지만 오늘도 꼬맹이들과 함께 푸진 저녁식사를 했다. 어제 타이밍을 놓쳐 제육볶음을 함께 먹지 못하고 혼자 부실한 식사를 했다며 안타까워하시던 도미니꼬 아저씨도 오늘은 함께 하셨다. 매일매일 오병이어의 기적(五餠二魚: 예수님께서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군중 오천 명을 먹이신 이야기)을 경험하는 것처럼 우리는 가난했지만 풍족했다.
내 옆자리의 아저씨는 손을 다쳤는지 손이 얼굴만큼 부어올라있었다. 무섭게 부어오른 손을 아무렇지 않게 붕대로 대충 감아 목에 걸린 스카프에 걸쳐놓고는 책을 읽고 있었다. 도대체 까미노가 사람들에게 어떤 길이기에 이런 모든 어려움을 마다하지 않는 것인지 상상할 수가 없었다. 그 사람들의 마음속에 붉게 일렁이고 있는 불씨가 이 길을 밝히고 있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