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리나세카로 가는 길

by 신지명

이 길을 걸은지 25일째 아침을 맞았다. 비가 조금 부슬거리긴 했으나 많이 올 것 같지는 않은 하늘이었다. 마을을 벗어나자마자 들어선 아스팔트 길은 가파르지 않은 경사였지만 끊임없이 오르막이었다. 땅이 얼마나 넓으면 이런 지형이 가능할까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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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보다 조금 늦게 출발한 꼬맹이들이 어느새 우리를 따라잡고 앞으로 나갔다. 똑같은 신발을 신고 똑같은 레인커버를 씌운 채 걸어가는 뒷모습이 잔잔하게 가슴을 울렸다.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나도 오빠, 언니와 뭐든 함께 하던 시절이 있었다. 아주 어린 시절.
내가 유치원에 다닐 때쯤 어머니가 많이 편찮으셨더랬다. 어린 시절의 기억이라 드문드문 몇 개의 장면만 남아있고 얼마나 심각한 상황이었는지에 대한 기억은 갖고 있지 않다. 그저 몇 개의 기억과 느낌으로 남아있는 조용하고 어두웠던 집안의 무거운 공기 그리고 뼈만 앙상하게 남은 그때의 사진 속 어머니 모습으로 어려운 시절이었음을 미루어 짐작만 할 뿐이다.
내가 그 시절을 힘든 기억으로 남기지 않은 것은 오빠와 언니의 공이 매우 컸다. 입원해계신 어머니를 만나러 신촌 세브란스 병원을 드나들던 그때, 1987년 민주화 운동이 한창이던 시절이라 신촌 일대에서는 수시로 데모가 일어나고 있었다. 아버지도 출근하고 계시지 않으면 겨우 열한 살이 된 오빠와 여덟 살 된 언니 손을 잡고 최루탄 냄새를 맡아가며 병원을 다녔다. 그 매칼하고 희뿌연 공기가 어렴풋이 생각이 난다. 하지만 무서웠다거나 싫지 않았다. 그저 언니, 오빠랑 함께 엄마를 만나러 가는 길이라는 기분 좋은 기억으로만 남아있다.
어머니가 무사히 건강을 회복하신 뒤에도 오빠는 부모님 대신 우리를 데리고 처음 생긴 롯데월드며 강원도나 밀양의 시골 친척 집을 잘도 돌아다녔다. 크게 싸움을 하거나 속이 상한 기억은 없고 즐겁고 재미났던 기억만 있는 것을 보면 우리도 무척 우애 좋은 형제 간이었던 것은 분명했다.
하지만 오빠가 군대며 유학이며 집 떠나 산 세월이 길었고 언니도 직장생활을 하며 자취를 시작한 뒤 그 길로 시집을 가버렸으니 한 지붕 아래 함께 살지 못한 지가 십 년은 훌쩍 넘었다. 게다가 지금은 서로의 짝들과 제각각 가족을 꾸렸으니 앞으로도 우리가 예전처럼 어울려 놀 일은 없을 것만 같다.

사이좋게 산 길을 오르는 꼬맹이들의 뒷모습을 보니 우리도 조금 더 많이 어울렸으면 좋았을 것을 하는 아쉬움과 부러움이 밀려왔다. 혈육에게서만 느껴지는 특별한 무언가가 세 사람을 휘감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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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미노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자리 잡은 마을 폰세바돈 Foncebadon은 생각보다 특별하지는 않았다. 밤에 내린 비로 길이 질척거리기도 했고 구름이 짙게 껴서 산 아래 풍경이 칙칙하게 보인 탓도 있었다. 어제 무리하게 이곳까지 올라 묵지 않은 것은 잘한 일이었다.
오히려 산을 넘어 비탈길로 내려와 만난 엘 아쎄보 El Acebo가 훨씬 머물기 좋아 보였다. 훌륭한 풍경과 깔끔한 마을의 거리가 마치 관광지 같은 분위기를 내고 있었다.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이곳으로 다시 여행을 와서 묵어도 좋겠다며 유심히 살펴본 후 마을을 벗어났다.


2015-05-08-20-27-02-1858.JPG 엘 아쎄보 El Acebo


마을을 벗어난 후 들어선 산 길의 풍경은 환상적이었다. 까미노 초반 화사한 유채밭을 지나고 푸릇푸릇한 포도밭을 지나던 때가 까마득하게 느껴질 만큼 요 며칠은 풍경도, 날씨도 영 힘들기만 했었는데 실로 오랜만에 풍경에 감탄하며 행복해졌다. 평야 지역이 끝나고 산악지대로 들어서면서 처음 보는 꽃들이 무척 많아졌다. 어느 길엔가는 야생 라벤다가 한가득 피어 약간은 꼬릿한 향기가 퍼지기도 했다. 남편은 그 향을 좋아했지만 나는 원래 라벤다 향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이상한 냄새처럼 느껴졌다. 그래도 꽃의 색은 너무나 고혹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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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_7621.JPG 구름의 높이만큼 올라왔다.
IMG_7636.JPG 저...구름 밑 마을까지만 가면 된다.


한참 길을 걷다가 어제 꾸었던 꿈이 불현듯 생각이 났다.
어떤 공연인지 경연 대회인지를 준비하는 중이었는데 두 명의 다른 누군가와 내가 한 팀을 이루어 무대에 올랐다. 그런데 나는 춤 연습을 소홀히 한 것인지 아니면 처음부터 배우지 않은 것인지 몸을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 전혀 모르고 사람들 앞에 서 있었다. 잠시 그렇게 서 있던 나는 다른 두 명을 힐끗거리며 대충 춤을 따라 추고는 어찌어찌 순서를 마쳤다.
갑자기 왜 그런 꿈을 꾸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중요한 것은 그렇게 아무렇게나 중요한 일을 마치고 내려올 때의 기분이 매우 편안하고 홀가분했다는 점이다.
나는 순발력이 매우 떨어지고 두뇌회전도 느린 탓에 완벽주의 아닌 완벽주의자가 된 사람이다. 미리 꼼꼼하게 준비해서 눈으로 볼 수 있는 자료로 정리를 해놓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갑작스러운 상황이 닥치면 아마 1 더하기 1의 값도 계산하지 못할 만큼 아둔해지는 것 같다.
아닌 게 아니라 처음 미국 땅을 밟고 혼자 샌드위치를 사 먹으러 '서브웨이'에 들어갔을 때 난생처음 외국 사람이 내 눈을 보고 말을 거는 것에 한 번 당황하고 만들어진 샌드위치는 없고 빵이며 재료를 모두 내가 골라야 하는 상황에 두 번 당황한 나머지 머릿속이 하얘져서 오이와 양파, 지금은 생각나지 않는 또 다른 야채 세 가지만 겨우 골라 넣어먹었던 경험이 있으니 말 다했다. 눈앞에 놓인 재료들을 보고 이거, 이거 주세요... 1 더하기 1만큼이나 쉬운 일이었다. 왜 굳이 내 입으로 영어시험 보듯이 떠오르지도 않는 단어를 말하려고 용을 썼는지... 그때는 나를 이상하게 쳐다봤을 직원의 눈빛도 느끼지 못할 만큼 정신이 혼미했었다.
멍청한 일화를 나열하자면 며칠 밤을 새워야 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여행을 가든 중요한 일을 하든 아주 오랫동안 준비를 해야 하고 내 몸에 완전히 익을 때까지 몇 번이고 되뇌어야 마음이 놓여 나 스스로를 무척 괴롭히는 삶을 살았다. 그런 내가 시간에 쫓겨 그림 지도 한 묶음 달랑 들고 아무런 정보도 찾아보지 않은 채 40일이나 머무를 까미노에 왔다는 것은 파격적이고 획기적인 사건에 가까운 일이었다. 알베르게가 뭔지도 몰랐고 사람들이 조가비를 왜 달고 다니는지, 산티아고 콤포스텔라가 무슨 의미인지도 몰랐다. '걷는다' 외에는 아는 것이 없었다.
이 길에 들어선지 25일째가 되는 오늘, 아마도 나는 완벽주의 아닌 완벽주의로부터 조금은 해방이 된 모양이었다. 꿈속에서 아무렇게나 몸을 흐느적거리며 설렁설렁 공연을 마친 뒤에 느낀 그 해방감이 제법 선명하게 오래도록 마음에 남아 기분이 좋았던 것을 보면 말이다.
꿈이 떠오른 뒤로 배실배실 웃으며 혼자 몇 번이고 되뇌었다.
아무려면 어떠냐. 뭐 큰일이 난다고.


2015-05-08-20-56-56-1875.JPG 살아만 있다면...아무려면 어떠냐

그러나... 자유로움은 자유로움이고... 그것이 육체의 피로를 덜어주진 않았다. 너무나 멋있는 풍경이 이어지는 산 위에서 사진을 찍고 감상을 하느라 시간이 너무 지체되어 몸이 무척 피곤했다. 게다가 발바닥 여기저기를 끊임없이 자극하는 자갈길이 가시밭처럼 고통스러웠다. 울상을 짓다가 감탄하다가, 행복하다가 욕지거리를 하다가를 한참 반복한 뒤에야 몰리나세카 Molinaseca에 도착했다. 둘 다 기진맥진해서 마을에 들어섰는데 알베르게는 마을을 다 벗어난 뒤에야 나타났다.
왜...
순례객을 괴롭히려는 짓궂은 의도는 아닐텐데 영 원망스러운 마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먼저 나타난 숙소에 몸을 던지고 싶었으나 사립이라 비싸기도 했고 결정적으로 주방이 없어 조금 더 걷기로 했다. 200m도 되지 않는 길이 천 리 길 같았다.


IMG_7587.JPG 철의 십자가 Cruze de Ferro. 순례자들과 마을 사람들이 뒤에 오는 사람들을 위해 돌을 주워 이곳에 쌓기 시작했다고 한다.


순례객들에게 걸어온 길을 다시 돌아가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오죽했으면 어제 아침, 꼬맹이들의 음식을 훔쳐 간 놈에게 '왔던 길을 다시 돌아가라'거나 '길을 잃고 다시 아스토르가로 갔으면 좋겠다'는 식의 저주를 퍼부었을까. 그런데 그 저주가 바람에 날려 우리에게 돌아왔는지 숙소에 짐을 풀고 힘겹게 찾아 나선 마트가 마을 입구, 처음... 그곳에 딱 하나 있었다. 마트를 가기 위해 다시 나선 길 위에서는 더 이상 중력을 이길 힘이 없어 바닥으로 묵직하게 붙어버린 다리와 발을 살살 달래가며 걸어가야 했다.
저녁을 해 먹고 꼬맹이들과 맥주 한 잔 마시면서 수다를 떨고서야 고된 몸을 겨우 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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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_7668.JPG 이 날은 5월 8일 어버이 날이었다. 마을에서 발견한 카네이션. 한국에 계신 부모님께 오랜만에 전화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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