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가야 할 까까벨로 CaCabelo에 마트가 없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폰페라다 Ponferrada를 빠져나가기 전에 마트 DIA에 들렀다. 주방도 없다고 하니 식재료를 살 필요는 없었고 전자레인지가 있다면 라면이라도 끓여서 먹을 생각에 라면과 과일, 음료수만 좀 샀다.
그날 가야 할 마을의 상황을 정확히 알기가 어렵고 모든 끼니를 그때그때 상황에 맞춰서 해결해야 하다 보니 매일 아침 궁리가 필요했다. 만약을 대비해서 음식을 이고 지고 다니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해서... 오늘도 우리는 가방 한가득 음식을 담고 길을 걸었다.
오늘은 날씨가 무척 덥고 뜨거웠다. 우리나라 시골 동네와 비슷한 마을들이 듬성듬성이지만 끊어지지 않고 계속 이어졌다. 하지만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그늘이 있지도 않았고 우물도 거의 볼 수가 없었다. 폰세바돈 Foncebadon을 기점으로 전체적인 마을의 분위기가 크게 변하였다. 순례객들이 대부분이었던 이전의 마을들은 모든 것이 순례객을 위해 준비되고 우리를 진심으로 뒷바라지해주는 분위기였는데 어느 때부터인가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마을에 우리가 잠시 지나가는 이방인의 느낌이 커지기 시작했다. 화살표나 표지석을 찾아 두리번거리는 일도 잦아졌다. 세상 밖으로 다시 나가야 할 때가 다가오는 모양이었다.
까까벨로로 이어지는 길은 어마어마한 규모의 포도밭 지역을 지났다. 이 지역의 날씨가 따뜻해서 포도가 빨리 자란 것인지 우리가 걸어온 동안 시간이 흘러서인지 모르겠지만 로그로뇨지역에서 본 잎이 나지 않은 포도나무와 달리 연두색의 어리고 건강한 포도잎이 제법 올라와 있었다. 햇빛이 잘 드는 곳의 잎사귀는 어찌나 건강하던지 반짝반짝 윤이 날 정도였다. 까맣고 비틀어진 가지에서 어떻게 그런 생명이 피어나 자라는지 너무나 경이로웠다. 우리가 걸어온 시간만큼의 기다림이 틔워낸 화사한 탄생이었다. 이제 열매가 맺히고 그것이 달콤하게 영글 때까지 또 인고의 시간이 필요하겠지.
어쩌면 이 까미노는 사람들이 기대하는 것처럼 인생에 대한 특별한 해답을 제시해주거나 감동적인 선물을 내어주는 기적의 길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기적을 일으키는 씨앗. 우리가 생명이라고 부르는 그 씨앗은 이 길이 아니라 우리 자신 안에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길이 수많은 사람들에게 특별했던 이유는 그 씨앗이 건강하게 자라나 화사한 잎을 틔우고 달콤한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기다림의 시간을 주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이 길에서 특별한 답을 얻은 사람들은 그 안에 이미 좋은 씨앗을 품고 이곳이 선사한 모든 것들과 함께 기다림에 머물렀기 때문에 달콤한 열매를 맺은 것이리라.
나에게서도 이제 연둣빛 잎사귀가 두어 개쯤은 피어나지 않았을까 하는 기대가 생겼다.
하지만 기다림의 시간이 평화로움을 의미한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그 시간 동안에는 거친 비바람과 차가운 밤을 이겨내야 하고 뜨거운 햇빛에 온몸을 달구어야 한다.
점심시간이 지나면서부터 뜨거운 햇빛의 열기가 예사롭지 않았다. 남편은 땀을 충분히 흘리며 몸의 열이 식어 추운 날보다 훨씬 살만하다고 기운이 나서 걸어갔다. 하지만 땀을 잘 흘리지 않는 나는 몸에 고스란히 열기를 품고 몸이 부어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아스팔트 길이라도 걸을라치면 길에서도 열이 올라와 얼굴을 후끈하게 달궜다. 한 발 한 발 옮기는 것이 고행이었다. 너무 힘이 든 나머지 온몸이 쥐며느리처럼 점점 둥글게 말려가고 있었다.
나는 걷는 내내 성모송을 주야장천 중얼거렸다. 힘을 주십사 청하거나 감사의 기도를 드리는 것이 아니었다. 내 머릿속에서 힘들다고 아우성치는 소리를 잠재우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의도가 어떻든 성모님께서 나의 괴로움을 들으셨는지 성모송을 수 없이 읊조리면 머릿속이 훨씬 평온해졌다. 한 번에 한 가지 생각 밖에 하지 못하는 아둔한 머리를 만들어주신 것은 사람을 살게 하는 세심한 배려였는지도 모르겠다.
몰리나세카와 마찬가지로 까까벨로도 순례객을 홀대하긴 마찬가지였다. 마을에 들어서서 온 골목을 기웃거리며 알베르게를 찾았는데 간판도 보지 못한 채 마을 밖으로 나와버렸다. 다시 마을로 돌아가 찾아볼 엄두도 나지 않고 그렇다고 계속 걸어 다음 마을까지 가는 것은 더더욱 불가능했다. 해가 길어진 탓에 다섯 시가 넘은 시간임에도 공기가 뜨겁게 끓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마을을 벗어난 채 울상을 하고 어정쩡하게 서 있다가 근처에 있던 사람을 붙잡고 물으니 마을 밖으로 이어진 다리를 건너라고 손짓을 해주었다.
'아니, 까미노 가는 게 아니야! 알베르게에 갈 거야!'
조금도 더 가고 싶지 않은 마음에 당황해서 '알베르게'를 분명히 다시 말하니 '그래! 다리를 건너면 알베르게가 있다고!'라는 듯한 말과 손짓을 해주었다.
아니기만 해봐라..
우리는 한창 공사 중인 다리를 마지막 힘을 짜내어 올라갔다. 그 사람 말대로 다리를 건너자마자 알베르게가 있었다. 도대체 왜 이런 외진 곳에 숙소를 마련한 것일까... 땅값이 싸서겠지...
수도원에서 운영하는 이곳은 2인실이 칸칸이 이어진 매우 특이한 구조였다. 위치는 몹시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실로 오랜만에 사람들 눈치 보지 않고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이 생긴 것은 매우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전자레인지만 달랑 있고 그릇이며 컵이며 식기가 전혀 없어서 이고 지고 간 라면을 해 먹을 방도가 없었다. 우리는 결국 다시 마을로 돌아가 마트를 찾아야 했다.
'아... 더운데... 먼데...'
움직이지 않는 다리를 어기적거리며 다시 마을로 돌아갔다. 인터넷에 올라온 정보가 잘못되었거나 오래되었는지 이곳에도 제법 큰 마트가 있었다. 하지만 주방이 없으니 특별한 것을 해 먹기 어려운 것은 매한가지였다. 스페인식 토르티야라고 불리는 두툼한 오믈렛과 샐러드용 야채 한 봉지, 참치캔을 담고 오랫동안 정체가 궁금했던 실지렁이 같은 음식이 어묵과 유사한 음식인 것을 알아내고는 그것도 하나 집어 들었다. 그리고 맥주.
주방은 없었지만 제법 근사하고 푸짐한 저녁식사를 마쳤고 어김없이 맥주를 들이켜는 것으로 하루를 마쳤다. 무척이나 고된 하루였지만 건강하고 무탈하게 마칠 수 있었음에 감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