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가로 가는 길

by 신지명

오늘도 아침이 그다지 춥지 않은 것을 보니 뜨거운 하루가 될 예정이었다.
길에 들어선지 얼마 지나지 않아 'Santiago 220km' 표지판을 만났다. 어느새 긴 여정의 막바지에 다다랐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처음 화살표를 따라나서던 새벽 어스름이 생각났다. 설레고 두려웠던 때가 지나고 사람들과 함께 하던 즐거운 시간이 지나갔다.
그러고 보니 어느 때 부터인가는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는 일이 거의 없었다. 지나온 시간이 길지 않았을 때는 그 시간들이 소중해서 두고두고 곱씹으며 흘려보내기를 안타까워했는데 그 시간들이 겹겹이 쌓이니 기억이 희미해져 갔다. 그리고 앞으로 얼마 남지 않은 시간에 대한 생각에 몰두하느라 그때에 대해 완전히 잊어버리고 지내기도 했다. 마치 더 이상 학창시절의 일기장을 꺼내보지 않게 된 것처럼 불쑥 어른이 되어버린 기분이 들어 씁쓸했다.
제임스는 어디에 있을까, 제롬과 다지는 어디쯤 왔을까, 헤라르도네 무리는 산티아고에 거의 도착했을 텐데... 함께 했던 사람들이 사라지고 주변에는 온통 낯선 사람들뿐이다. 생각해보면 희한한 일이다. 그 사람들도 분명 함께 이 길을 걷고 있는 사람들이고 몇몇은 여러 번 마주치며 인사도 나누는 사람들인데 '관계'가 생기기 전까지는 영 얼굴이 익지도 않고 배경에 녹아들어 존재감이 와 닿지도 않는다. 사람과 사람이 서로에게 선명하게 인식이 되는 순간은 언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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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학교를 가는 날 아침에 시끄럽게 지저귀는 새소리가 귀에 박혀 하늘을 둘러본 일이 있었다. 한 마리도 아니고 한 무리가 우리 집 근처 나무에 앉아 어찌나 시끄럽게 소리를 내고 있던지. 그런데 언제부터 그 녀석들이 그곳에 살고 있었는지 알 길이 없었다. 내가 그곳에 산 지가 7, 8년쯤 되었을 때인데 그 녀석들 하는 모양새가 그곳에 하루 이틀 살아온 것 같지는 않았다. 철새인가 싶어 찾아보니 직박구리라는 이름의 녀석들은 엄연한 텃새였다.
그 일은 나에게 제법 큰 사건이었다. '존재'에 대한 이해가 필요했다. 그 녀석들이 내가 인식하지 못했다고 해서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었는데, 이전까지 나에겐 직박구리가 존재하지 않는 것이었다. 내가 그들을 인식한 이후부터는 그 녀석들의 지저귀는 소리가 언제나 들려왔고 하늘을 나는 모습이 언제나 눈에 띄었다. 그동안 어떻게 그 소리가 들리지 않고, 어떻게 그 모습이 눈에 보이지 않았다는 말인가?! 도대체 나와 그들 사이에 무엇이 없었고 무엇이 생긴 것인지 궁금했다. 얼마나 수많은 존재들이 내가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 내 주변에 살고 있는 것일까.
결국 '존재한다'라고 하는 것은 그것 자체의 실재적인 존재를 의미하는 것이기는 하겠으나 관념적으로 '나에게' 그것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분명한 인식의 과정을 거쳐야만 하는 것이었다.
몇 년 전에 정치철학을 공부한 오빠가 말해주기를 '존재가 완성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존재를 인식할 타자가 존재해야 한다.'라고 한 적이 있는데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 명확하게 깨달은 사건이었다.
직박구리 사건 이후로 '하느님이 만드신 온갖 짐승과 새를 아담이 부르는 대로 이름이 되게 하셨다'는 창세기의 말씀은 아마 당신이 손수 만드신 것들이 완전한 존재로 완성되었음을 알리는 것이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때는 주변을 열심히 둘러보고 알아채는 것이 인간에게 주어진 소명일지도 모른다고 여겨 주변을 샅샅이도 둘러보곤 했었다. 하릴없이 스쳐지나갔을 '하나의 몸짓'들을 하나하나 이름 불러 나의 '꽃'으로 만드는 즐거움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컸었다. 그때 만들어진 습관 때문에 까미노의 길이 몹시 더뎌지고 있긴 하지만 말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도 관계가 생기기까지는 그런 인식의 과정이 필요하고 서로에게 완전한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이름'을 나누는 것이 몹시 중요했던 것 같다.
오늘도 이름을 알지 못하는 수많은 순례객들이 우리의 곁을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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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산을 옆에 두고 찻길을 따라 오랜 시간을 걸었다. 옆으로는 계곡이 흘러 발을 담그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으나 가장 좋았던 자리를 다른 사람들이 선점해서 지나친 이후로는 도통 내려가는 길을 만날 수가 없었다.
까미노를 시작한 이래 처음으로 가방에 매달린 물건들을 저 멀리 던져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하지만 물건을 모두 내버린다고 해도 하나도 가벼워질 것 같지 않았다. 내리쬐는 햇볕에 몸이 터질 것처럼 부풀었기 때문이었다. 내 몸 자체가 큰 짐이 되어버렸다. 계곡의 쉼터를 놓치고 조금 더 가서 그늘 아래 놓인 돌 테이블을 발견하지 못했더라면 가방을 내팽개쳐버리고 길 위에 그냥 주저앉아버렸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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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쓰러지지 않고 베가 vega에 도착했지만 알베르게는 절대로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가파른 언덕과 계단... 그 위에 당당히 서 있기엔 너무나 허름한 시설 때문에 더 기분이 상하고 말았다. 게다가 스페인 무뢰배와 한 방을 쓰게 되면서 베가는 까미노 최악의 마을로 기억되게 되었다. 우리가 피할 수 없는 인생의 고비와도 같은 곳이었다.
가스레인지가 있었으나 너무 낡아 위험하니 사용하지 말라고 하는 바람에 전자레인지로 라면과 파스타를 대충 해 먹고 밖에 앉아 쉬고 있었는데 남편이 와서 우리의 귤과 햄이 없어졌다는 말을 전했다. 이틀 전 몰리나세카에서 우리에게 와인을 따라줄 것처럼 꺼내 보여주고는 자랑만 하고 주지 않았던, 음식을 많이 했으니 먹으라고 주었으나 사실은 설거지거리를 떠민 것이었던 시끄럽고 요란스러운 스페인 할아버지들 무리가 우리 다음으로 식당을 사용했었다. 그런데 남편 말로는 쓰레기통에 햄 포장지가 뜯긴 채 버려져있고 우리의 귤은 하나가 빈 채 그들의 음식 봉지로 옮겨져 있다는 것이었다.
안 그래도 내가 잠깐 침대에 누워 눈을 붙인 동안 그 할아버지들이 방 안에서 힘껏 떠들고 요란을 떨어서 기분이 좋지 않았던 참에 그 얘기를 전해 들으니 몹시 화가 났다. 오늘의 뜨거웠던 태양을 견디느라 할당된 자제력을 모두 소모한 나는 화를 참지 못하고 나를 말리는 남편의 손을 뿌리치며 할아버지들에게 달려가 '우리의 햄과 귤을 찾고 있는 중이다!'하고 말했다. 몹시 화는 났으나 혹시나! 그 사람들이 범인이 아닐 수도 있다는 여지를 남겨두고 나름대로 평정심을 유지한다고 한 것이었다. 이 할아버지들은 영어를 전혀 못해 '만다린, 햄'과 먹는 시늉, 손가락질이 내가 분노를 표현할 수 있는 전부였다. 한 할아버지는 나보고 '만다린? 네가 먹었겠지'라는 듯이 나를 가리키며 먹는 시늉을 했다. 어이가 없어 쓰레기통을 까뒤집으려다가 볼썽사납겠다 싶어 그만두고 말았다.
남편이 나한테 말을 전하기 전에 이미 우리의 귤을 되찾아 가방에 넣어둔 터라 냉장고를 털어 따질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남편은 그런 이유로 나를 말린 것인데 이미 내가 있는 힘껏 돌진해버렸으니. 남편 말대로 그 사람들이 아니라고 발뺌하면 어찌할 도리가 없는 일이었다.
칼을 힘껏 뽑아 들고는 '이것은!... 칼이다...'라고 한 마디 내뱉고 다시 칼을 칼집에 집어넣은 것 같은 찜찜한 기분이었다.
원래는 그 일행이 아닌데 그들과 식사를 함께 했던 아저씨 한 분이 뒤늦게 번역기를 돌려 '식탁에 있는 것이 너희 것인지 모르고 먹었다. 미안하다'는 말을 했을 뿐이었다.
'식탁이 아니고 냉장고에 있었다는 말입니다.'
무뢰배의 장물임을 모르고 먹었을 그 아저씨가 무슨 죄냐 싶어 신경 쓰지 말라고만 했다. 무뢰배의 수장은 이미 와인에 얼근하게 취해 있는 힘껏 코를 골며 자고 있었다.
세상에는 내가 이름을 불러 나에게 꽃이 되어주는 사람도 있으나 스스로 내 안에 침범하여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 사람도 분명 있게 마련이다.
'파블로'라 불리는 무뢰한과 또 다른 무뢰한까지 침대에 드러누워서는 신나게 코를 골기 시작해 나는 이어폰을 꽂고 잠들어야 했다.
여러 가지로 견뎌야 할 일이 많은 하루였다. 나의 꽃들이 무척 그리운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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