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리아카스텔라로 가는 길

지구를 가로지른 부부 이야기 58일 차

by 신지명

새벽 네 시가 되었을 때쯤 갑자기 방 안이 소란스러워졌다. 남편이 코를 고는 소리와 함께 무뢰배 수장이 뭐라고 큰 소리로 떠드는 소리, 콧수염이 가득 난 내 아래 칸 할아버지가 개를 부르듯이 '쫏쫏'거리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이게 무슨 일인가! 할아버지 세 명이서 자고 있는 남편을 무차별로 공격하고 있었다. 그들의 무례함에 너무 화가 나서 'Hey!!!'하고 소리쳤다. 내 고함에 방 안은 잠잠해졌다. 보자 보자 하니까 무례함이 도를 넘었다.
까미노에서 코를 고는 사람은 모두에게 십자가 같은 존재인 것은 맞다. 피로한 몸을 편히 쉬지 못하게 방해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이 미안한 일이다. 하지만 그것이 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사람들은 귀마개를 하던 나처럼 음악을 듣던 저마다의 방법으로 견뎌야 할 일이었고 지금까지는 그래 왔다.
게다가 자기들은 마치 코를 골지 않고 쌔근쌔근 조용히 잔 것처럼 굴다니! 남편 말로는 새벽 두 시쯤 무뢰배 수장이 남편의 옆구리를 찌르기까지 했다고 했다. 남편이 한 번 으름장을 놓은 터라 다시 건드리지는 못하고 시끄럽게 떠들기만 한 것이었다.
나는 화가 나서 씩씩거리다가 아침을 맞았다. 하지만 머리가 허연 어르신들에게, 게다가 말도 통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내가 할 수 있는 보복은 딱히 없었다. 게다가 순례길 중에 머리채를 잡고 싸울 수도 없는 노릇이니 소심하게 알아서 내 화만 삭혀야 했다. 겨우 한다는 것이 오늘 어디까지 갈 거냐고 물어본 것이 전부였다. 다시는 만나지 않는 것이 상책이니 말이다. '콧수염'은 내가 왜 물어보는지도 눈치채지 못한 채 산을 올라야 해서 힘이 들 테니 산 정상에 있는 오 쎄브레이로 O Cebreiro까지만 갈 것이라고 장황하게 설명을 했다.
제기랄... 우리도 거기까지 갈 계획이었는데...
하는 수 없이 우리는 산을 넘어 더 멀리 가기로 했다. 그들을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았다.

아침을 먹는 중에 남편이 나에게 어제 싸놓은 샌드위치가 어디 갔냐고 물었다.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싶어 머리털이 쭈뼛 곤두선 와중에 '콧수염'이 주방에 있는 티백을 몽땅 털어 넣고 끓인- 분명 노후되어 폭발 위험이 있으니 쓰지 말라고 했던 가스레인지를 호기롭게 켜고 말았다. - 차 냄비를 가리키며 우리에게 먹으라고 손짓을 했다. 내가 뒤집히는 눈을 제자리에 붙잡고 화를 꾹 참느라 돌아보지도 않고 씩씩거리고 있으니 또 나를 개 부르듯이 '쫏쫏'거려 째려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나에게 '부엔 까미노 buen camino.'하고는 나가버렸다. 며칠 전처럼 자신들이 사용한 주전자는 닦지 않은 채 말이다. 다음 사람들을 위한 티백도 남아있지 않았다.
'buen camino'라니! 그렇게 무례하게 굴어놓고 'buen camino'라니!
그나마 손톱만큼의 화를 삼킬 수 있었던 것은 우리의 샌드위치를 훔쳐 간 것이 무뢰배들이 아니고 고양이들의 소행이었음을 알아채서였다. 무참히 뜯긴 봉지가 빵가루만 조금 묻은 채 아래층 계단에서 발견된 것이었다. 고양이가 유혹을 참지 못하게 샌드위치를 밖에 내놓은 것은 우리의 불찰이었다.
여러 가지의 이유로 베가는 두말할 것 없이 최악의 알베르게로 기록하기로 했다.


IMG_7919.JPG 우리의 빵을 훔져먹은 요녀석!
IMG_7929.JPG 이 봉지를 발견하지 못했더라면 무뢰배들에 대한 미움은 더욱 커졌을 것이다.
IMG_7925.JPG 무뢰배들이 우리 햄을 훔쳐먹은 탓에...우리의 초라한 점심...이었는데 이마저도 고양이들에게 빼앗겼다.


오 쎄브레이로의 알베르게는 너무나 멋진 풍경을 내려다보는 곳에 있어서 무척 머물고 싶었다. 그럴 수 없음이 한탄스러웠다. 생각보다 이른 시간에 산을 쉽게 올라 어차피 더 가야 하는 상황이 아니었더라면 그 무리를 몹시 원망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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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을 내려와 걷는 동안은 다시 날씨가 더워져 성모송을 읊조리며 걸어야 했고 불쑥불쑥 화가 올라와서 더 힘든 길이 되었다.
그 무리에게 화가 나는 것은 무례함 자체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사람들의 행동 때문에 사람에 대한 신뢰에 금이 갔다는 사실 때문이기도 했다. 그 무리 때문에 길에서 만나는 스페인 할아버지들이 모두 무례해 보여 움찔거리고 피하게 되거나 인사도 하는 둥 마는 둥 하는 상태가 되어버렸다. 얼굴도 모두 비슷하게 생긴 것 같아 더 그런 인상이 겹쳤다. 도저히 환하게 웃으며 인사를 할 수가 없었다. 스페인 사람들 특유의 활기가 이제 시끄러운 소음으로 느껴졌다.
내가 다스려야 할 문제인 것은 알지만 시간이 좀 필요했다. 이렇게 되고 보니 그동안 이 길 위에서 내가 얼마나 순수하게 사람들을 대하고 그들의 선함에 무한의 신뢰를 가질 수 있었는지 알 것 같았다. 사실 그것 자체가 기적이었다. 그 많은 사람이 단 한 사람도 나에게 해를 끼치지 않을 것이라는 순수한 믿음을 갖는 것이 요즘 세상에서 가능한 일이기나 한가? 기껏 나를 화나게 하는 일이 귤과 햄을 좀 훔쳐먹고 무례하게 남편의 몸에 손을 좀 댄 정도라니. 여러 가지로 흉악한 요즘의 우리 삶을 생각하면 애교스러운 범죄이기는 하다. 그렇게 마음을 겨우 달래기는 했으나 그래도 다시 만나고 싶지는 않았다.
그들이 오 쎄브레이로를 지나 다음 마을 알베르게 마당에 모여있는 것을 보았다. 아마 그들도 산을 넘는 것이 생각보다 쉬웠던 모양이었다.
다음 마을은 10km를 더 가야 했지만 우리 둘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그들이 머무는 마을을 황급히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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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친 우리를 끝까지 이끌어준 것은 다름 아닌 '특별한 해산물 요리와 가슴을 불태우는 전통술 오루호 Orujo'였다. 남편이 트리아카스텔라에 대한 정보를 좀 찾아보더니 그런 것이 있다면서 열의를 보인 것이었다.
7시 반이 넘어서야 마을에 도착했는데 공립 알베르게는 이미 자리가 다 차서 하는 수 없이 9유로나 하는 사립 알베르게에 묵어야 했다. 그 길로 우리는 너무 지쳐 해산물이니 오루호니를 찾으러 다닐 수는 없었다. 막상 와서 보니 이곳은 산과 목초지로 둘러싸여 소 농장이 많은 지역인데 해산물 요리가 있다는 것이 영 믿을 수가 없기도 했다. 잔뜩 기대에 부풀었던 남편은 못내 아쉬웠는지 마트에서 냉동 해산물을 사다가 파스타를 만들었다. 그런데 그마저도 오래된 해산물이라 냄새를 잡기 어려운 지경이었다. 해산물과 오루호는 갈라시아 지방으로 조금 더 들어가 다시 찾아보기로 했다.

하루 종일 화를 다스리느라 어떻게 시간이 갔는지도 모르게 하루가 저물었다. 무뢰배들은 까미노에서 내가 짊어진 가장 무거운 십자가가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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